[의약뉴스] 지난 11일 열린 소청과의사회의 ‘소청과 탈출 학술대회’를 지켜본 전공의들이 “사명감만 강조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건보개혁 없이는 기피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 3월 ‘소청과 폐과 선언’을 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회장 임현택)는 ‘소아청소년과 탈출(노키즈존)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700여명의 회원이 몰린 이번 학술대회는 ▲고지혈증 핵심정리 ▲보톡스 핵심포인트 ▲폐 기능 검사기계를 활용한 성인 천식의 진단과 치료의 실제 ▲당뇨의 진단과 관리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의 이해와 한국 의료 해외 진출 전략 ▲현지조사, 현지 확인 대처 ▲하지정맥류 진단과 치료의 실체 ▲비만치료의 실전적용 등 소청과 진료에 대한 내용이 아닌, 미용ㆍ비만 분야의 강의로만 구성됐다.
소청과의사회의 소청과 탈출 학술대회를 지켜본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강민구)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고장난 국민건강보험 개혁 없이 기피 영역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청과 진료 대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사건 이후 필수의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고, 이에 대해 정부는 ‘필수의료 지원대책’,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등을 발표하며 해결 의지를 밝혔으나, 구체적인 보건재정 투입 계획이 없어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기피영역 의료인력 수급에 어려움은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현상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의사 수 부족’이라는 논리가 따라붙는다는 게 대전협의 설명이다.
대전협은 “연도별 배출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기피영역에 대한 해결책으로 주로 논의가 되고 있다”며 “정부기관 및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연간 배출 의사 수 증원 주장은 OECD 인구 1000명 당 의료인 수, 임금노동자 대비 의사 평균 임금에 대한 국제비교,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의사인력 추계 결과 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전협은 “기피영역 의료인력 수급 정책에 있어 각국 보건의료체계의 경로, 재원조달 방식, 의료공급체계, 의료인 간 업무 분장, 의료이용 제한 기전의 유무 등을 고려해 기존 의료인력 재배치 방안을 포함한 여러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며 “필수의료 및 지역 공공의료기피 현상은 건보제도의 구매 기능 실패”라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공공보건지출은 GDP 대비 5.6%(총 지출의 59%)로 동유럽 및 아프리카 주요 국가 수준이며, 공공 공급자는 5.7%에 불과한데, G7 선진국이 GDP 대비 10% 수준인 총 보건지출 80% 이상을 공공영역이 담당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미비한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진료건수가 OECD 평균의 3배에 육박하는 17.2회임에도 1인당 연간 의료비 지출은 OECD의 68.2%이며, 보건의료의 상개적 가격 수준이 OECD의 55%, 입원진료 가격 수준은 66%에 불과하다는 게 대전협의 설명이다.
대전협은 “주요국의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3.2%인데 비해, 일본은 27.4%, 프랑스는 52.3%”라며 “급여 중 건강보험료 비율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으로 6.12%로, 일본은 10%, 독일 14.6%, 프랑스 13% 등에 비하면 낮은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실적으로는 고령화에 대비하고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접세 등을 활용, 보건재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충해야 한다”며 “건강보험법상 명시된 건강보험요율 8% 상한을 폐지해야 하고, 보건의료인력을 갈아 넣는 현 체계를 개혁하기 전까지는 기금화 논의 등을 보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점진적으로 보험재정의 최소 30% 수준을 국고지원금에서 담당할 수 있도록 지출 구조의 개편을 해나가면서 영구적인 건강보험 국고보조금을 진행해나가야 한다”며 “중중 진료에 대해 조세기반 국고보조금의 확충이 없다면 필수의료 전반에 대한 기피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대전협은 건강보험제도 내 보험자(구매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필수의료 및 지역 공공의료 기피 현상은 건강보험제도의 구매 기능 실패로, 이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당연지정제)에 따라 단일보험자의 비대화에 따라 가격통제력이 높아지고 의사결정이 느려져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것.
대전협은 “단일보험자의 가격통제력이 지나치게 높아짐에 따라, 현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보다 일반의의 급여가 더 높은 역전 현상이 발생했는데, 소청과 진료 대란에도 불구하고 기피 분야에 대한 혁신적인 보상(수가) 확대를 건강보험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고장난 건강보험제도 아래 소아청소년과 외에도 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전반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대전협은 “단기적으로 기피분야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면서, 중장기적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단일보험자의 비대화로 인해 구매계약 기능이 마비돼 일방적인 정책만 추진되고, 보험자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 문제로, 실제로 보험자가 두 개 이상이라면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선진국 사회보험은 대부분 다수 보험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처럼 장기적으로 다보험자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며 “보험자 간 경쟁 부재 속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력만으로 급여 진료 영역의 혁신을 필요로 하는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대전협은 ‘사명감을 강조하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국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정부와의 필수의료 인력 확충 방안을 포함한 협의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배출된 의사가 필수의료 영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인이 필요하다”며 “젊은 의사들은 진료 현장에서 의사의 전문성이 존중받고 지지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고 밝혔다.
또 “의사가 된다면 주100시간 근무,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사고로 인한 면허취소, 지방 공무원의 관료적이고 고압적인 행정을 감내해야 한다”며 “현재의 문제는 의사 수를 늘려도 의사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우리 사회가 의사 수에만 관심을 두는 사이 소청과 기피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