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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올라타고 나서 기차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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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올라타고 나서 기차는 출발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5.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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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런 날은 기억해야 한다. 아니 그냥 기억이 난다. 인생에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날은 잊을 수가 없다. 점례는 손을 꼽아 보았다. 그래, 오늘이 수요일이지. 그녀는 그러다가 사방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호랑이 앞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했어. 살아야 해. 아무렴. 그래야 논도 사고. 점례는 상상을 멈추었다. 더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의 군인들이 뛰어왔다. 자신들을 에워싸는 듯 했다. 토끼몰이 하듯이 담장을 둘러치고는 안으로 압박해 왔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군홧발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비행기 소리, 트럭 소리, 인파의 왁자지껄한 소리와는 다른 소음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갑자기 몰려 왔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 졌다. 

한 무리의 군대는 정렬을 마치고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렸다. 소녀들은 가슴에 품은 보자기를 꼭 껴안고는 자신들에게 닥쳐올 무언가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군가소리, 구호를 외치는 낮과 강한 소리가 멎고 군인들은 새끼줄을 길제 잡아 늘인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늘어섰다. 잘 훈련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런 자세로 자신들의 권위를 확인했다. 군인들이 멈춘 앞으로 군용트럭들이 짝을 맞추듯이 들어섰다. 이들이 내는 소리는 또다른 것이었다. 광장은 온통 다른 것들이 내는 소리로 북적였다. 그래, 소리야. 지금은 소리를 구분해야지. 이 소리는 트럭 소리 맞지? 점례는 속으로 그렇게 외웠다. 그 소리는 몸짓만큼이나 거칠었고 그래서 연약한 소녀들은 잔뜩 기가 죽었다. 트럭의 뒤쪽에서는 부릉 거리는 소리에 맞춰 시커면 연기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시끄러운 소리와 혼탁한 공기는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소녀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다른 군인들이 구령 소리에 맞춰 군가를 부르면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처음에는 걷던 그들은 호각 소리에 따라 조금 빨리 걷더니 나중에는 달리기  구보로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저쪽으로 돌아 나갔다. 애초 목적지가 여기가 아니라는 듯이 먼지를 날리며 그들은 역쪽으로 급히 내달렸다. 점례가 눈으로 그들을 좆는 사이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군인들이 하나 둘 숫자를 외치며 트럭에 올라탔다. 능숙하게 올라탄 그들은 먼저 탄 순서대로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자리를 채워나갔다. 

타는 동작이 어찌나 똑같은지 마치 한 사람이 쉬지 않고 계속 타는 듯이 보였다. 짐칸은 어느새 군인들로 꽉 채워졌다. 차 한 대가 채워지면 그 차는 바로 떠났다. 그러면 대기하고 있던 다른 군인들이 앞쪽에 세워져 있는 차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같은 동작으로 매연을 뿜어대는 연기를 마시며 꽁무니로 올라탔다. 군인들이 차에 오를수록 광장에 있던 군대의 숫자는 점차 줄어 들어들었다. 어느 순간 광장에는 군인들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점례는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그런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났다. 인솔자로 기차를 함께 탔던 사람이 나타나서는 소녀들을 앞쪽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군인들 처럼 줄을 맞출 수 없었다. 인솔자는 그것이 불만이었으나 불만을 토로할 시간이 없었는지 빨리 빨리 걸으라는 재촉을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광장에는 다 떠난 줄 알았던 트럭 서너 대가 더 있었다. 그 트럭이 여자들이 탈 차였다. 기차역에서 다시 트럭으로 갈아타는 것으로 소녀들은 자신들도 군인들 처럼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가야지. 일본으로. 점례는 가는 길이 복잡하고 더디더라고 일본으로 이렇게 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점례의 판단은 틀렸다. 

가는 곳이 조선의 가장 위쪽인 신의주라는 것을 안 것은 한 참 후였다. 누구도 그들이 그곳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으나 그들을 인솔하는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순사도 완용도 일본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다. 뭔가 착오가 생긴 모양이다. 그러나 점례는 그 착오를 바로 잡아줄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신의주라고. 거기서 일본으로 가나. 점례는 생각했으나 그곳과 일본은 반대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일본인데 왠 신의주? 물음은 걱정을 더해주었다. 그러나 걱정을 덜어줄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점례는 남들처럼 눈치껏 트럭에 올라탔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인솔자는 군인에게 여자들을 인계하고 떠났다. 트럭에 올랐던 점례 일행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다시 트럭에서 내려졌다. 그리고는 경성역으로 다시 들어갔다. 내렸던 역으로 걸어가면서 점례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점례는 벌써 집이 그리웠다. 일본으로 간다는 꿈은 사라졌다. 신의주에도 공장이 있겠지. 비행기를 닦거나 총알을 만드는 일이라고 누군가가 아는 체를 했다. 차라리 잘 됐나. 좋게 생각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일본보다는 우리땅에서 일하는 게 낫지. 

신의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고 있는 이곳을 점례는 둘러봤다.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서양식 건물이 그녀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내릴 때는 정신이 없어 잘 보지 못한 것이 신의주행 기차를 기다리면서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큰 건물의 높은 곳에서 보기 위해 점례는 고개를 뒤로 숙였다. 무언가 내리 누르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큰 건물은 난생 처음 본다. 그러나 더 큰 건물을 보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놀라는 것은 이쯤에서 그만두자. 점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이 교복을 차려 입고 학교에 가는 모습도 보였다. 점례는 덤덤하게 교복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여겼다. 여순은 어디로 갔을까. 트럭에 타고 어디로 갔는지 점례는 여순의 행방이 궁금했다.  

함께 웃고 떠들던 시간이 그리웠다. 하루 전에도 그랬는데 아니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손을 잡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일은 이제 다시 돌아올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늑한 옛날의 어느 날 처럼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하루가 마치 수 십년이 지난 듯 했다. 여순은 어디로 갔을까, 간다는 일본으로 향하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와 같은 신의주 쪽으로 갔을까. 부산으로 갔기를 그래서 일본행 배를 탔기를. 점례는 그렇게 여순의 행방을 추측했다. 나도 여순을 따라갈 걸. 군인이 막았어도 기회는 몇 번 있었다. 한 눈을 파는 사이 그쪽으로 옮겼어도 됐다. 그러나 곧 이런 생각은 한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제복입은 군인들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점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점례 일행은 깜짝 놀란 물고기 떼처럼 어부가 모는 그물 쪽으로 몰려들었다. 어제 보았던 괴물처럼 생긴 일단의 트럭은 광장에 다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례 일행을 다시 광장으로 이동 시켰다. 만약 트럭에 오르면 이번에는 곧 하차 할 것 같지 않았다. 기차를 타는 것 아니었어. 왜 이러지. 또 착오가 생겼나. 착오 뒤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러다가는 경성역에서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점례는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일본이 아니면 어떠랴, 신의주라고 좋다고 생각했다. 광장으로 내몰린 소녀들은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행인들이 점례 일행이 탄 트럭을 힐끔 거리며 쳐다봤다. 안 보는 척 하면서 그들은 이쪽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군인들은 아직 명령을 제대로 전달 받지 못했는지 점례 일행을 남겨 두고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군인들은 서너 명이었다. 소녀 가운데 일부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트럭에서 내려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점례는 저런 행동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저럴 수 있나. 용기 있는 또다른 소녀도 군인들이 딴전을 피우자 트럭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같은 모습으로 광장을 가로 질렀다. 세번째 소녀는 뒷걸음 치다가 군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으나 군인들이 아무말 없이 사라지면 그 때다 싶어 달렸다. 세 명 째 소녀가 트럭에서 내리고 난 후 나머지들은 명령을 기다리면서 그냥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듯이 잔뜩 겁먹은 그대로였다. 보자기를 잔뜩 가슴으로 끌어 당긴 점례는 군인들에게 책잡혀 망신을 당할까 두려웠다. 역으로 들어갔던 군인들이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무엇이 바쁜지 역으로 들어갔다가 광장으로 나왔다가 다시 역으로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군인들은 트럭에 있던 소녀들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내린 소녀들을 소몰이 하듯이 몰고는 역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씩씩거리며 화난 표정의 기차가 곧 떠날 것처럼 길게 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군인들은 기차 한 칸에 점례 일행을 따로 태웠다. 소녀들이 다 타자 남은 군인들이 맨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아예 말라는 듯이 나중엔 탄 군인은 출입문 쪽에 자리를 잡았다. 운 좋게 차장가에 앉은 점례는 밖에서 아쪽을 쳐다보고 있는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마중 나온 부모님이 잘 갔다 오라고 배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손을 흔들거나 입모양으로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마주친 앳된 모습의 군인은 점례와 동시에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점례는 바닥으로 시선을 깔면서 배웅은 커녕 이제는 홀로 세상에 던져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두려움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디는 것과 집에서 놓여났다는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기차는 여러 역을 거쳤다. 말로만 듣던 평양에서는 무려 두시간 넘게 대기했다. 처음 타보는 기차라서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 점례는 알지 못했다. 서로 길을 비켜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고장나서 인지 아니면 제 시간 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는 것인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기차가 멈추고 나서 출입문 쪽의 군인은 부하를 남겨 놓고 나가서 한 참 만에 올라왔다. 그러나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부하와 자리를 바꾸었다. 부하도 상관처럼 나갔다가 와서는 입밖으로 말을 뱉지 않았다. 소녀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누군가가 어떤 상황인지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친절한 사람은 없었다. 한 참을 더 기다리자 점례 또래의 여자들이 수 십명 올라탔다.

그들 역시 점례 일행과 마찬가지로 작은 보따리 하나를 가슴에 안고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나중에 온 그들이 앉을 만한 빈 자리가 없었다. 군인들은 입구 쪽에서 서성이는 소녀들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으로 들어가라. 어서. 소녀들은 고함 소리에 따라 미적미적 통로의 빈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소녀들이 올라타면서 조금 여유가 있던 통로마저 사람들로 가득찼다. 기차 안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저 사람들을 태우려고 기다렸나 보다. 점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몸이 불편했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니 몸이 굳어져 갔다. 잠시라고 꼼지락 거리면 잡아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지 않으려면 꼼짝않고 있어야 했다. 문간의 군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끌려가서 매를 맞을 것이다. 점례는 이런 생각으로 옆에 서 있는 새로운 소녀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힘이 몸에서 다 빠져 나가듯이 점례는 자신도 모르게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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