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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오면서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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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오면서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5.22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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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숙소로 돌아올 때 아침 해가 마침 밝아오고 있었다. 휴의는 해를 정면으로 받으면서 일출은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를 본지도 오래됐어. 그동안은 해가 떴어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해가 모처럼 해처럼 보인단 말이야. 무슨 홀가분한 일을 끝냈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휴의는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슬픔으로 가슴이 옥죄어 오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졌다. 차분해지려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휴의는 자신이 매우 침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은 가벼웠다. 파리의 공기는 상쾌했다. 며칠 전에 비까지 내렸다. 오늘은 일정 없이 잠을 좀 자야겠다. 그러자 졸음이 쏟아졌고 휴의는 달리지는 않았지만 빠른 걸음을 걸었다. 센강이 발자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란히 아래로 흘러갔다. 

한 달 후 여순은 상하이에 있었다. 그녀는 박군에게 맡긴 병원 일을 핑계 삼았다. 말수는 같이 가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워낙 국사가 분주해. 나랏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그랬더라면 애초에 맡지 않았을 텐데.

말수는 떠나는 여순을 배웅했다. 여순은 남편의 눈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것을 직감했다. 병원일은 당신이 알아서 해. 난 한국에서 할 일이 많아. 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여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은 그대로였다.

박군은 말수 부부가 떠난 후 병원을 착실히 운영했다. 동료 의사와 함께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후에 여순이 병원에 도착하자 박군은 놀랐다. 왜 연락하지 않았으냐고 항의했다. 마중갔을 텐데요.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박군의 깊은 눈이 여순을 향했다.

병원은 한시도 비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여순이 싫지 않은 소리로 대답했다. 삼층 방은 여순이 떠나기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계단을 올라오면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그전에도 이렇게 내다 보고 있었지.

여순은 창밖을 보면서 이곳이 고향이라는 것을 느꼈다. 냄새가 나. 고향 냄새. 그녀는 대각선으로 보이는 도쿄여관을 응시했다. 건물은 을씨년스러웠다. 병사들이 떠난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곳을 보면서 바늘로 찔러댔던 고통이 되살아났다. 더는 울부짖지 않을거야. 내 고통은 너무 길고 오래갔어. 이젠 아니야. 저곳에서 우는 여자는 없어. 대신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해야지. 

여순은 울컥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피아노 옆에 기타가 눈에 띄었다. 여순은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줄을 맞춰 사공의 뱃노래 가물 거리니~ 하고 장단을 맞춰 노래 불렀다. 얼마나 열중이었는지 박군이 올라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기타를 놓고 피아노를 치려다 박군과 마주쳤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요. 공짜로는 안 되요. 물론 입니다. 여순은 다시 창가로 갔다. 저기 도쿄여관 건물 보이지요. 아, 그 건물은 이제 폐허가 됐어요. 군인들이 가고 나서 여자들도 사라지고 이제는 인적이 끊겼어요.

저 건물을 알아보세요. 사겠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음악학원을 만들까 해요. 좋은 생각이네요. 어느새 가까이 온 박군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다. 여순은 깊게 호흡을 한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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