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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22 16:08 (수)
412. 얼라이브(1993)-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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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얼라이브(1993)-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는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4.19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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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나서 영화 밖의 이야기가 더 궁금할 때가 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됐는가 하는 주인공들의 행적 말이다. 선하게 결말났다고 해도 영화 안의 과정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었다면 이런 궁금증은 더욱 배가 된다.

프랭크 마샬 감독의 <얼라이브>를 보고 나서는 주인공 난도(에단 호크)와 안토니오(빈센트 스파노) 로베르토(조쉬 해밀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후속 이야기는 없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1972년 우루과이 대학 럭비팀이 탄 비행기의 추락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니 더 그렇다.

이쯤 읽은 독자라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추락 후 악전고투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과연 그 짐작은 맞다. 비행기는 안데스 산맥의 험악한 어느 지형에 떨어졌다.

고도를 착각한 기장의 실수와 난기류, 거기에 악천후까지 겹쳐 일어났으니 누구 탓하기 보다는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어쨌든 산에 부디 친 비행기는 꼬리 부분이 날아가면서 그 즉시 사망자가 발생했다.

간신히 동체착륙 했으나 그 와중에 또 죽고 수많은 부상자가 생겼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으나 다행히 멀쩡한 사람도 있다. 산자와 부상당한 수 십명이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고산에서 밤을 맞았다. 그리도 아침을 맞고 또 밤을 맞았다. 또 아침이 오고 또 밤이 왔다.

그러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더니 무려  두 달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생존자들은 과연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밤에는 영하 40도를 오르 내리는 그 겨울에 이 사람들은 온전히 사람이었을까. 겉모습이야 그랬겠지만 실상은 사람의 경우도 있었으며 짐승의 경우도 있었다.

▲ 비행기를 보고 환호했으나 구조대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잘라서 말린 인육을 줄서서 먹을 때 그들을 누가 비난할까.
▲ 비행기를 보고 환호했으나 구조대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잘라서 말린 인육을 줄서서 먹을 때 그들을 누가 비난할까.

재난 상황에서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인간과 짐승. 거기다 인간과 짐승의 어중간한 지점에 있는 부류까지 더하질 수 있겠다. 영화에서 인간과 짐승을 나누는 기준은 인육이다. 처음 시체를 먹자고 제의했을 때 그는 짐승이었다.

그러나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하는 자가 없다는 말처럼 굶주림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짐승의 길을가게 된다. 희망의 시기가 지나고 절망의 시간이 왔다. 그들도 예외 없다. 나가서 잘라 먹을 준비가 된 것이다. 태초에도 분명히 이런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처음이 아니다. 어머니와 동생과 형제의 시체를 줄을 서서 파먹는다. 친구를 먹고 입맛을 다신다.

그들을 짐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한 짐승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단순히 살기 위해 하는 인육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다. 영화에서는 오로지 인육 생식을 가장 극한의 고통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해충돌로 인한 살인이나 살인 방조나 그와 엇비슷한 것들 말이다.

물론 여기서는 이런 암시는 한 장면도 없으니 없었다고 넘어가자.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살아났을까. 구조대는 오지 않는다. 비행기는 지나쳤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도전하는 자들은 나타난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덤지는 자들은 용감하다.

이들 용감쟁이들은 어렵게 수신한 라디오 주파수에서 수색을 종료한다는 당국의 발표를 들었다. 그 이전에 지나갔던 비행기는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렬로 뉘어 놓은 시체를 먹어 치우고 더 먹을 수 없게 된 최후의 일인이 죽을 때까지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러기에 생명들은 너무 젊고 패기가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걸어가고 싶다. 두 발로 우뚝 서서 그렇게 산을 넘고 또 넘는다.

없는 신을 찾아 본들 소용없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나 그 아들 예수를 찾는 대신 그래,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았더라도 앞서가는 그들은 안다. 가만히 앉아서 죽느니 죽더라도 지금 당장 살고 싶은 것이다. 

다행히 계절은 봄을 향해 달리고 있다. 눈은 녹아 폭포를 이루고 땅속에 있던 씨앗은 자라 푸른 초원을 만든다. 안데스의 압도적인 겨울 풍관이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저 산을 오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 풍경을 가슴에 담으면서 전진을 계속하는 난도 일행에게 박수를 보낸다. 초인의 힘으로 그들은 짐승을 이겨내고 마침내 인간으로 돌아왔다. 

국가: 미국

감독: 프랭크 마샬

출연: 에단 호크, 빈센트 스파노, 조쉬 해밀턴

평점:

: 인생이 시들해 질때면 좋은 영화를 보라고 팁을 준바 있다. 특히 극한의 땅과 대결하는 인간의 사투가 나오는 영화라면 더 좋다. 우울하고 짜증나고 상대가 싫고 어쩌다 나온 말이 후회를 가져올 때 <얼라이브>같은 영화는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자극제 같은 것이다.

저런 환경에서 저런 사람도 살아나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너무 풍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상대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반드시 상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대와 비교해 보면 자신이 너무 많이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삶은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인생은 그런대로 괜찮은 여행으로 변모하게 된다. 한편 살아 남은 16명의 생존자들은 그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인육을 먹은 트라우마는 없을까. 동료들의 죽음과 죽은 동료의 옷을 벗겨 추위를 막았던 것에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지는 않을까.

생존자들은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위로하면서 인생에서 위기가 올 때마다 극복하고 이겨내고 있을까. 속편이 나온다면 비슷한 추락과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용기 있는 자들의 구출이 아니라 살아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면 어떨까. 일단 살아서 환호했으나 그 살아 있는 기간이 길수록 환호도 같이 이어질까. 치유의 시간을 생존자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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