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삶은 가벼운 것이어서 언제까지나 숨어서 살수는 없다
상태바
삶은 가벼운 것이어서 언제까지나 숨어서 살수는 없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4.17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가에 선 사령관은 사라져 가는 종로서장 완용 고바야시의 뒷모습을 보았다. 의심스러운 자의 뒤태는 아니었다. 저자는 우리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스럽단 말이야. 미행은 필요 없다. 일본을 위해 나와 경쟁할 망정 밀정은 아냐. 그는 옆에 서 있는 부관에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미행할 인력이 있다면 전선으로 내보내야 한다.

부관은 자신의 귀를 시험하는 듯이 각하, 서장의 뒤를 그만 밟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래, 너라면 저 녀석을 미행할래? 저놈은 몸 속에 일본인 피가 흘러. 아마도 임진 난 당시 우리 선조가 뿌려 놓은 씨일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저렇게 우리에게 열성이지. 나도 때로는 힘들고 지치면 조국을 잠시 잊는 수가 있는데 저놈은 아냐. 자신 몸보다도 부모보다도 더 일본을 사랑해. 우리에겐 저런 조센징이 가득 있어야 해. 내가 흡족한 이유는 저런 놈을 보고 있을 때야. 쓸모 없어지면 적절한 시간에 없에면 되고.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써먹을 게 많아. 그의 눈에는 일본은 개벽 천지의 세상이야. 길 내주고 차 다니고 전신주 세워 등불 밝혀 주는 일본은 구세주 하느님이지. 그런데 조선독립을 원하는 놈들은 대체 뭐냔 말이냐. 본받아야지, 완용을.

헌병대 사령관이 침을 뱉으려고 준비 하듯이 혀를 길게 찼다. 독립해서 자기들끼리 살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라고. 어떤 게 좋은지 답이 나와 있잖아. 모른단 말인가. 그래서 빠가야로인 거야. 하여간 조센징은 더 고생을 해야해. 문명을 받아들일 수준은 아직 멀었어. 와타나베 사령관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명강의를 마치고 떠나는 학자처럼 뒷짐을 진 상태로 그는 자기 방의 문을 적당한 힘을 주면서 닫았다.

한편 노량진의 휴의는 동선을 크게 벌리지 않았다. 간혹 움직여도 영등포나 신도림 정도만 자기 권역에 두었다. 더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고 더 옆으로 퍼지지도 않았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더 그랬다. 유사시에 급하게 대피할 수 있는 동서남북 서너 군데의 숨을 곳을 마련해 놓은 이상 지나치게 자신을 노출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날이 풀리기를 기다렸던 그는 그날이 오자 준비를 서둘렀다. 그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죽은 동지의 넋을 위로 일이었다. 천도제를 지내자. 그리고 나서 유골을 받아 죽기전에 소원했던 바다에 뿌려주자. 인천 앞바다로 가자. 

그것은 자신에게 한 약속이었으며 동지들에게 한 약속이었다. 다른 큰일이 일어나도 휴의는 그것을 포기하고 이 약속만큼은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설사 급하게 상하이서 전갈이 와도 그는 그 일 먼저 처리하고 전갈은 그다음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온통 마음은 죽은 자의 장례에 몰두했다. 그가 노량진 인근에 아지트를 마련한 것은 바다로 가는 강이 가까운 쪽이라는 심리적 안정감도 한 몫을 했다. 강변 언덕에 올라 멀리 인왕산을 보는 것은 마음을 달래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곳에서 작전을 짰고 휴식을 취했고 그 곳을 넘어 후퇴했다.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외투는 불편한 옷이 됐다. 하지만 그 옷을 벗지 않았다. 대장간에서 특수 주문한 작은 삽을 넣기에 적당했기 때문이다. 늦은 아침 휴의는 한강을 넘었다. 같은 배를 탄 부관은 하선한 이후 10여 미터를 두고 그의 뒤를 따랐다. 부관의 옷도 외투였다. 긴 코트는 입어도 좋고 벗어도 좋을 만큼 계절의 중간에 어울렸다. 긴 외투는 무엇을 숨기기에도 좋았다. 유심히 본다면 외투 안쪽에는 무언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조금 튀어 나왔다. 삽 대신 총신이 짧은 삽탄이 가능한 총이었다. 휴의는 작은 권총을 부관은 총신이 짧은 기관총을 차고 그들은 마포에서 마차를 탔다. 신촌까지 가는 거리에는 아침부터 열기가 가득해 아지랑이가 피어올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에는 인파가 제법 있었다. 그는 서대문앞에서 차를 내려 절까지 걷기로 했다. 걷는 것이 체질이기도 했지만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안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잘 한 결정이었다. 십여 분 정도 걷고 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 졌다. 이렇게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휴의는 기분 좋은 사람처럼 기지개를 켜고 어깨를 들썩였다. 오후를 맞는 사람들이 제각기 무슨 볼일이 있어서인지 정동길 쪽으로 또 일부는 광화문 쪽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휴의는 그들과는 달리 도로를 피하고 대신 바로 산길로 접어 들을 수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사직동 쪽도 이미 중천 가까이 떠오른 해가 넓게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서양식 이층 가옥을 지났다. 그는 그곳이 음악가의 집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한때 그는 운동에 몸담았다. 그러다가 다른 지식인들처럼 정권을 찬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휴의는 그가 만든 동요를 흥얼 거렸다. 넉넉하고 아담한 이 층 서양식 집을 지나칠 때 휴의는 자신도 저런 집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도 나이니만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은 수시로 바뀌었고 휴의는 그것을 즐겼다. 그는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한 오 분쯤 가니 커다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집 한채가 있었다. 이 역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의 집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수류탄을 던지고 그 자리에서 일경에게 체포됐다. 조직에 가담하지 않은 단독 범행이었다. 그러나 일경은 가족은 물론 주변 인물까지 모조리 잡아들였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그들은 그의 얼굴을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초를 당했다. 그는 감옥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죽을 수도 없게 되자 곡기를 끊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실패했다. 억지로 입을 벌린 일경은 벌린 곳에 식은 죽을 쏟아 넣었다.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자 토한 것이 자신의 얼굴로 떨어졌다. 은행나무 집 남자는 울었다. 고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데서 오는 체념이 가슴을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포자기 하고 하루종일 독방에서 널부러져 있었다.

휴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날 때는 가슴이 찡해왔다. 형체는 있으나 일부 허물어졌고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인 그 집 담을 뒤돌아 볼 여유는 없었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몇 발짝 더 위로 가자 이번에는 서양식 집이 삼층 정도 높이로 멋들어지게 서 있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건물은 어서 오게 하고 손을 내미는 듯이 친근감이 있었다. 이 집은 작곡가나 허물어진 은행나무 집과는 다르게 매우 컸다. 그런데도 초가집처럼 푸근하게 다가왔다. 모양이 예뻐서 겠지. 서양 외교관이 살고 있는 집답게 외부 공간도 넓찍했다.

외교관은 혼란한 조선땅에 들어온 용기있는 서양사람이었다. 그가 독립운동에 어떤 도움을 주었다는 소문을 휴의도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지날 때는 경외심 같은 것도 들었다. 조선사람도 아니면서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있고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남들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일 없지. 그래서 보는 집은 크기에 비해 위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휴의는 이런 곳도 자신을 안전하게 숨겨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좀 쉬었다 가고 싶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아래쪽이 다 보이는 고개가 나타난다. 쉬더라도 바위에 걸터앉고 싶었다. 그런 곳이라면 적당할 것이다. 그곳에는 빨간 벽돌이 보인다. 악명높은 서대문 형무소. 언젠가는 나도 저곳에 있겠지. 그러기 전에 죽을텐가. 여성 독립군은 지금쯤 죽었을까. 신문에는 시가전 중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했으나 오보였다. 마음이 급했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현장에서 사살됐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여성독립군이 사형 언도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고 했다. 벌서 처형당하지는 않았겠지. 차라리 죽는 게 나을까. 얼마나 고문이 심했으면 제발로 걷지도 않지도 못했을까. 끔찍한 고문의 기억에 휴의는 눈을 찡그렸다. 소달구지로 여성독립군은 실려 왔다. 그래 저 형무소안에는 그녀가 있을 것이다. 휴의는 식은 땀을 닦았다. 

그때 젊은 사람 두 어명이 휴의가 일행이 앉아 있는 쪽으로 급하게 산에서 내려왔다. 호각을 불거나 거기 서, 같은 명령을 하지는 않았지만 휴의는 그들이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은 저들 말고 다른 볼 일이 있는 사람처럼 앉아 있던 곳에서 움직임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가까이 오자 휴의는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가려고 서너 발 움직였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앞을 가로 막으며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오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늙은 엄마가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데 도라지라도 삶아 드리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하면서 휴의는 손에 든 가방을 내려 안에 있는 낫과 삽을 보여 주었다. 쉬면서 휴의는 외투 속의 삽이 불편해 낫이 있는 가방에 옮겨 넣었었다. 그러면서 휴의는 그 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나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는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왜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유없이 시비를 거는냐는 투였다. 그는 질문에는 대답을 않고 급한 볼일이 있어 빨리 자리를 떠야 하는 사람처럼 동료 한 명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언덕아래로 내려갔다. 물어 놓고는 대답도 받지 않고 떠나는 자들이야말로 수상한 자였으나 휴의는 자신이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서양 외교관이 사는 집을  못본척 하고 얼른 지나쳤다. 괜히 순찰 형사에게 잡혀 경치고 싶지 않았다. 산에 가더라도 이 길 말로 저쪽 아래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손가락질 했던 두 남자는 벌써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시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휴의는그 길이 빠른 길이냐? 몰랐다면서 다음 부터는 그렇게 하겠다고 내려가는 그들의 등뒤에 대고 소리 치듯이 대꾸했다. 말을 끝냈을 때 휴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부관이 숨을 더 깊이 내쉬었다. 그는 가슴속의 총에 손을 대고 여차하면 당기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뻣뻣한 몸을 바로 세운 그는 쥐가 나기 직전에 풀렸는지 허리를 한 바퀴 빙 돌렸다. 가슴으로 갔던 손을 쓸어내린 부관은 별 일 없이 젊은이들이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기색을 보이자 담벼락에 숨어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굳이 마주쳐서 휴의와 같은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부관은 그들을 따돌리고 나서 휴의가 뒤돌아볼 때 가볍게 손을 들었다.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산으로 들어가자 휴의는 달리듯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산속에서 달린 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곧 그는 그러기를 멈추었다.

급경사가 이어져서 걷는 것도 힘에 벅찼다. 그는 몸보다 마음이 더 급했으나 빠르게 걷는 것으로 보폭을 조절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녹 눈은 물들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계곡에 접어 들었다. 응달의 눈까지 녹고 있으니 양지바른 쪽은 푹신거렸다. 겹겹이 쌓인 눈이 녹아서 흙이 들떴고 그 흙은 미끄러웠다. 다리에 힘을 주면서 넘어지 지지 않고 휴의는 커다란 검은 바위 근처까지 왔다.

평소에도 운동을 했기 때문에 치고 올라왔어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방심하는 사이에 누가 자신을 뒤쫓지나 않은지 사방을 둘리번거렸다. 그러나 숲은 조용했다. 새들조차 어디로 날아갔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숨을 고른 휴의는 절의 입구앞에서 섰다. 일주문이 지나고 경내에 들어섰을 때 나즈막히 독경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스님의 이미 천도제를 시작했다. 휴의는 스님을 따라 나무관세음보살을 조용히 읆조렸다. 눈을 감고 적은 소년병의 넋을 위로했다. 가라. 가서 극락왕생해라. 제를 끝낸 스님이 작은 단지 하나를 내밀었다. 유골이었다. 고맙습니다. 스님. 잘가시오. 여기도 오래 머물 곳이 못됩니다. 조금 전에 왜놈 두 명이 다녀갔어요. 수상한 자가 있는지 물었고 방문 마다 문을 열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떠났어요. 언제 올지 모르지 어서 떠나시오. 고맙습니다. 스님. 인사를 마친 휴의가 마당을 내려와 부관이 있는 쪽을 눈짓해 보였다. 경내늘 벗어날 때 휴의는 진달래 몇 송이를 꺽었다. 개나도 보였으므로 개나리 가지도 두 어개 꺾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골을 싼 보자기에 함께 넣었다. 

그는 온 김에 바로 인천으로 내려가지 않고 정상을 거쳐 하산한 뒤 부암동을 거쳐 다시 인왕산을 올라 볼까 생각했다. 전투가 있던 바로 그 날을 상기해 보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다. 총독 관저 경비 상태를 보고 싶기도 했다. 소년병사가 보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최후 였던 그 장소에 다시 왔으니 이제 영혼의 편안함을 얻기를 바랐다. 그러나 휴의는 고개를 흔들고는 방향을 바꿔 안산으로 향했다. 인왕산 쪽은 경계가 삼엄하고 이쪽은 그보다 덜하기도 했다. 안산에는 진달래가 더 많이 피어 있었다. 노란 산수유도 여기저기 폈거나 이미 시들은 것들도 있었다.

꽃을 따먹기도 하고 그러다가 쉬면서 스님이 주신 떡을 부관과 하나씩 나눠먹기도 했다. 성벽에 기대서서 땀을 닦기도 했다. 무언가를 끝낸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자신이 상하이로 가지 않고 조선땅에 남아 있던 이유 하나가 사라졌다. 안산에 오르니 저 아래에 붉은 벽돌 건물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형무소에 눈길을 주자 휴의는 이제는 친근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저곳에 아까 올라 올 때 보았던 은행나무 집의 주인이 잡혀 있겠구나.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오는 곳으로 들어갔구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메아리를 타고 산을 올라온 외마디 소리에 휴의는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휴의는 마음을 놓았다가 갑자기 들었던 이런 저런 심란한 마음을 식혔다. 나쁜 것도 오래보면 증오의 감정이 사라진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작은 암자에서 들리는 목탁소리를 들었다. 오후 예불을 위한 신호인가. 스님들은 전쟁통에도 제 할 일을 할 수 있어 좋겠구나, 나라를 뺏겨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다니. 그래, 누군가는 죽은 자의 영혼을 빌어줘야지. 소년병의 영혼을 빌어줬던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휴의는 갑자기 암자에나 들어가 볼까하고 부관에게 의사를 물었다. 

부관은 알아서 하라는 듯이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자가 특별히 위험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휴의는 그러지 않았다. 울리던 종소리가 끝날 무렵 신촌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저녁 무렵 영등포에 접어들었다. 공장의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쉬지 않고 품어져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온통 먹구름 뿐이었다. 휴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경인선 철도를 따라 신도림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림천의 물이 흘러내린 눈으로 제법 불어 있었다. 날은 어두워졌고 간혹 불빛 만이 철로변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가 그 쪽으로 간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계속해서 걷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걸었으나 더 걷고 싶었다. 부관은 아지트로 돌아간지 삼십 분 정도 지났다. 밥을 먹고 나서 산책 좀 할 테니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혼자서 휴의는 걸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몸은 피곤하고 쉬고 싶었으나 마음은 자꾸 움직이라고 재촉했다. 소년병과 영원히 이별한 때문인가. 그걸 핑계로 여지껏 조선땅에 있었다. 상하이 임정은 휴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한달 보름이 지났으니 그럴만도 했다. 

선생은 더 그럴 것이다. 알면서도 휴의는 천도제를 이유로 상하이로 가는 시간을 늦추었다. 이제 그것이 끝났다. 걸으면서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애초 계획대로 하면 지체없이 가야한다. 그리고 선생을 만나 조선 상황을 이야기하고 다른 명령을 받아 다음 임무를 해야 한다. 그러나 휴의는 머뭇 거렸다. 마음 한쪽에서 그러지 말라고 잡았다. 불현듯 그는 점례가 보고 싶었다. 인사동에 가면 소식을 알 수 있을까. 공기는 검은 구름으로 가득차고 하늘엔 비가 내릴 듯이 잔뜩 웅크러져 있었다. 

동지의 넋을 핑계로 긴 시간을 품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마음도 있었다. 가슴 한구석에 미련하게 남아서 그를 잡아 두었던 점례에 대한 미련이었다. 그가 동지의 천도제에 그토록 애착을 보인 것은 소년병과의 약속 때문이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일정은 바뀔 수도 있었다. 나머지 오 프로 정도의 다른 이유는 구십 프로를 상쇄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점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한번 들자 휴의는 걷잡을 수 없는 파도에 놓인 작은 목선이었다. 크게 흔들렸고 상륙하지 않으면 침몰을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다음날 그는 서둘렀다. 인천 앞바다에 소년병의 혼을 뿌렸다. 막걸리 한 잔도 부었다. 그는 술을 마셔봤을까. 아니면 이것이 처음으로 맛보는 술일까. 잘가라. 동생아. 그는 서울로 가고 싶은 급한 마음에도 흔들리는 물결너머로 사라지는 흰 포말에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 그는 일어섰다. 할 일을 했다.부족하지만 약속을 지켰다. 잘가라. 그는 하늘을 올려다 봤고 갈매기들이 염불 하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스스로에게 휴의는 암시의 주문을 걸었다.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복잡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갈매기들은 위험을 감지한 듯이 급하게 방향을 바꿔 다른 쪽으로 날았다.

나에게도 위험이 닥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은 두렵지 않다. 정작 두려운 것은 점례를 보지 못할 거라는 의구심이었다. 순사들이 어두운 거리를 배회하는 자를 의심하기 직전에 그는 아지트로 스며들었다. 호랑이처럼 혼자 어슬렁거리는 짓을 멈추었을 때 그는 굴속의 토끼처럼 편안했다.그가 들어간 곳에 부관은 없었다. 잘된 일이다. 오늘은 부관과 떨어져 있고 싶었다. 그는 아지트를 나와 신도림에서 가까운 영등포시장 통의 작은 벌집으로 몸을 숨겼다. 그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공간은 협소했으나 이곳에 오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냄새가 그를 넉넉하게 품어 주었다. 채소 냄새와 과일이 썩어 가면서 내는 술 냄새 같은 것이 마치 고향집 같은 느낌이었다.

공장의 매연이 바람을 타고 올 때도 그 냄새조차 정겨웠다. 그는 상인들이 내는 호객 소리와 마차를 굴리면서 가는 힘찬 역동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새벽까지 휴의는 잠 못 이루고 있었다. 낮에 먹은 막걸리 잔의 기운도 그런 기분을 부채질했다. 사람이 없다면 자신에게라도 호소하고 싶은 그 무엇이 휴의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휴의는 술을 더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려고 들어오기 전에 술 한 병을 더 사왔다. 그는 술을 앞에 놓고 한 시간 정도 그대로 있었다. 앉았다 누웠다 엎드렸다 하면서 저 술을 잔에 따라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딱히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안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먹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안 달라질 것도 없었다. 먹으나 마나 그만이었던 것이다.휴의는 그런 상태를 깨기 위해 보고 있던 술병을 한참 동안 더 들여다보다가 기어이 집어 들고는 대접에 따랐다. 그득 따르려다가 이러다가는 내일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 때문에 그만 멈추었다. 아직 그는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있었다. 술 냄새가 훅, 하고 끼쳐왔다. 그는 요즘 들어 자주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아직 자기 길을 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하는 그런 식의 의문이었다.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독립운동이 나와 맞는지 불쑥불쑥 의문이 들었다. 진로를 정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꼭 필요한 일인지 그것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지 자꾸 이런 혼란에 빠졌다. 깊은 산속 외딴집에서 사는 것 같은 삶에 회의도 이따금씩 찾아왔다. 그는 그렇게 살더라도 나홀로 살더라도 열흘에 사나흘은 세상으로 나오는 삶을 원했다. 삶은 가벼운 것이어서 언제까지나 숨어서 살 수는 없었다. 하늘의 별이나 산의 바위와 어울리기 전에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나는 아직 어리지 않은가. 세상 이치를 알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로부터 의심받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야 한다.

한때는 시골 촌놈이었다가 군인이었다가 도망자였다가 지금은 독립군으로 총독부를 공격하고 있다. 그 공격의 여파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시간은 그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중요한 순간이었다. 휴의는 벌인 일을 마무리하자는 데는 다른 이견이 없었다. 당연히 끝장을 봐야 한다. 그것에 대해 자신은 물론 주변을 둘러봐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만두거나 멈추더라도 신상을 정리하고 그만두어야 한다. 그는 두 달 가까이 경성에 머무르면서 조선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대개는 체념하는 사람들이었다. 시키면 시키는데로 했다. 나라를 뺏겼든 그렇지 않든 그들의 살아가는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조선백성으로 때나 일본 식민지인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고 누가 임금이 되든 그들의 삶은 바뀌기 어려웠다. 대개는 이런 사람들이 민초였고 민중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보다는 적은 수였지만 민족이나 자존심 같은 것에 기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왜놈이 안 보이면 욕을 해댔다. 어떤 사람은 창씨 개명을 거부했다. 신사 참배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신상이나 가족에 도움이 되지 않고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다. 휴의가 몰래 숨죽여 지켜본 사람 가운데는 조선말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일본말 대신 조선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하면 잡혀갔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조선말로 말하고 조선 글을 써야 한다고 그것이 나라를 찾는 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불이 난 산속에서 쫓기는 짐승과 같은 형형한 눈빛이었다. 쫒기고 있는 자의 눈빛을 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주장했고 불구경하는 사람들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휴의는 눈빛으로 사람을 구분했다. 쫒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가. 조선은 이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고 있었다.

조선어를 쓰자는 사람을 휴의도 만났다. 그는 전국에 흩어진 조선어를 한곳에 모아 사전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야 조선말이 없어지지 않아요. 조선말이 없으면 조선사람이 아니고 영원히 조선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말이 없는 민족에게 무슨 독립이 있나요? 그가 이렇게 되물었을 때 휴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휴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하는 운동만이 애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애국의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다. 자신처럼 총을 들고 하는 애국도 있었고 골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왜놈들 욕하는 서민들의 애국이 있었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서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 자기 길을 가는 것, 나도 내 길을 스스로 가고 있는가. 휴의는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일본과도 한바탕 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예측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감을 때로는 잃었다. 너무 지쳤다. 고향 부모는 돌아가셨고 그에게 남은 것은 빈 손 뿐이다. 

부모님 산소도 가보지 못한 불효자식이 자신이 이라고 휴의는 가슴을 쳤다. 타향을 떠돌면서 그는 차츰 나약한 휴의가 돼가고 있었다. 자식 노릇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그런 회한을 밤새도록 아프게 새기는 날이 많아 질수록 휴의는 언젠가는 자신도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에 휩쌓였다. 이런 때에 점례를 떠올린 것은 그에게 사라졌던 힘을 다시 주는 소고기 국과 같은 것이었다. 이른 아침 화가를 흉내내기 위해 화구를 챙긴 그는 부관이 있는 노량진에 들러 청계천이나 충무로나 인사동을 돌다가 돌아오겠다고 자신의 행선지를 알리고 혼자 길을 떠났다.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걸었다. 마포에서 곧장 서대문 쪽으로 가지 않고 용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수 구경하는 사람처럼 그는 걸어 가면서 지리를 익혔다. 새로운 길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일제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각종 처음 보는 신기한 기계를 가지고 집을 부수고 땅을 파고 신작로를 냈다. 침목을 놓고 철길을 깔고 사람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기차 바퀴를 굴리기 위해 흰옷 입은 백성들을 잡아들였다. 일손이 부족한 일제는 길가는 젊은이들은 누구나 잡아서 일을 시켰다. 휴의는 그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오늘은 노인네 차림이었다. 지팡이를 집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는 삽질을 하는 조선인들을 보았다. 품삸은 받을까. 시골 지주는 먹여 주는 조건으로 일을 거져 시켰다. 일제도 마찬가지였다. 밥먹여 주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힘들게 일하는 조선 백성들을 동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휴의는 일부러 일터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시장은 하겠지만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으면 용산에서 서울역을 거쳐 남대문 시장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검문을 하는 순사들이 보였다. 막무가내로 아무나 잡고 따지고 때렸다. 아무 잘못도 없이 빌고 또 빌면서 애원하는 그들이 처량했다. 차라리 목침을 깔거라 깔리더라도 철길을 옮기는 작업이 나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손짓 발짓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은 순사들이 놀렸다. 장난감 가지로 노는 어른들이었다. 사람이 장난감이었다. 검문을 피한 휴의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총을 내려놓기에는 아직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

그는 불타는 분노를 삭이면서 그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듯 걸었다. 상처에 둔감해진 줄 알았는데 되레 더 심해지고 있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칼 찬 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산천구경은 애초에 글러먹었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그들의 잘못을 알게 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저런 꼴을 보고도 참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닌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휴의가 조선호랑이처럼 밤세워 어슬렁거린 것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숨겨진 야수의 본능을 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점례를 만나든 못만나든 생사만이라도 확인이 되면 바로 상하이로 출발하리라고 다짐했다. 이런 꼴을 보느니 상하이로 가자. 다음 작전을 준비해야지. 

그러면서 휴의는 이번 생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망한 인생 얼마나 더 망가질까, 이런 극단적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봄기운은 따뜻했고 마음은 망했다는 그 한마디로 되레 한결 가라앉았다. 망했으니 희망이 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휴의는 남대분 시장에 도착해 국밥 한그릇을 해치웠다. 맛있었다. 배가 부르자 행복해졌다. 부른 안고 휴의는 부근을 서성거렸다. 어제밤과는 다른 낮의 시간이었다. 점례는 잘 있겠지? 자기가 원하는 여자의 주변이 바로 그곳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그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대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오게 된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걸으니 정말로 인사동에 도착했다. 그는 조선제일 화랑 앞으로 가려다 그만두고 화구를 거리에 내걸고 있는 인근의 다른 화랑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떠벌이 화랑 주인 덕분에 점례의 행방을 알았다. 우연한 기회에 얻어 들은 듣고 싶은 정보였다. 조선미술대전에서 일등상을 받은 점례가 참의원 아들과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는 것이다. 신문에도 났어요. 화랑의 주인 삼촌이 종로서에 끌려갔다 나왔다는 사실은 덤으로 알았다. 휴의는 깜짝 놀랐으나 붓을 고르고 나서 물감을 집어 들면서 그가 계속 말을 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였다. 아, 글쎄 그 화랑 주인은 참의원 동생 아니오. 그 일 때문에 종로서가 경을 쳤지 뭐요. 그 조선인 서장도 헌병대사령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자지요. 뭐, 다행인지 뭔지 서장은 아무 일 없이 곧 나왔고 서로 오해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잘 해결됐나 봐요.

휴의는 말대꾸를 하지 않으면 화랑 주인이 입을 닫을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얼른 이렇게 받았다. 종로서가 실수를 했군요. 맞아요. 삼촌의 신분을 모를 리 없는데 왜 연행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곳 화랑에 의심스러운 자가 들락거렸다는 첩보를 서가 받은 모양이에요. 성질 급한 서장이 급습을 하고 그 와중에 삼촌이 연행된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들락거렸다는 자는 잡혔나요. 왠 걸요. 그런 사실조차 없다고 삼촌이 버럭 고함을 치고 난리를 피자 실수를 인정하면서 바로 풀어줬나봐요. 난다 긴다 하는 종로서도 더는 물고 늘어질 수 없었지요. 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참의원 동생이라고 발로 책상을 걷어 찼으니까요. 전세가 역전된 것이지요. 다들 그 일로 서장 목이 날아갈 줄 알았는데 사령관이 총독부에 손을 써서 겨우 살아난 모양입니다.

헌병대사령부에 잡혀 갔다면서요? 그런데 사령관이 손을 썼다고요? 그래요. 둘은 앙숙이지만 큰 일을 위해 서로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지요. 서로 이용해 먹는다고나 할까요. 그렇군요. 신문에는 어떻게 났나요? 휴의는 자신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물었다. 그 일과 관련된 것은 한 줄도 안 났어요. 다만 점례와 참의원 아들이 파리 유학을 일년 정도 떠난다는 단신 기사가 난 적은 있었어요. 신문을 본 사람도 얼마 없었는데 화랑가에서는 소문이 다 퍼졌어요. 특별히 재능있는 인물이고 여자이고 조선인이니 파리 유학은 화가들에게는 대단한 뉴스였지요. 지금 시대에 파리 유학이라니요. 화랑 주인이 부럽다는 듯이 아니면 한가롭게 그럴 시간이 있느냐는 듯이 혀를 찼다. 

비용이 많이 들 텐데요. 그 여자 집이 그런 큰 돈을 댈 만큼 부자인가요. 아니요. 그 여자는 부모도 없는지 집에서는 한 푼도 받지 못했나 봐요. 대신 참의원 아들이 전액 댄 모양입니다. 참, 참의원 아들이 조선 여자를 어떻게 만난 지 아세요? 휴의는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으나 큰 관심이 없다는 투로 글쎄요, 그걸 일반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하고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화랑 주인이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글쎄 전쟁터에서 만났다고 해요. 여자가 만주에서 그림을 팔다가 마침 시내로 출장 나온 일본군 장교를 만났는데 그게 바로 이번에 파리로 같이 유학 간 참의원 아들이었나 봐요.

화랑 주인은 자신이 이런 것까지 알고 있는 대단한 인물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을 알고 나자 휴의는 단 하루도 조선 땅에 남고 싶지 않았다.그는 서둘러 노량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로 정리할 것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삼 일 후 기차를 타기로 마음을 정했다. 남아 있을수록 심란한 마음이 흔들릴 것이고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생사를 확인했고 행선지도 알았으니 남아 있는다고 해도 점례를 만날 일은 없었다.

삼 일 후 떠난다는 휴의의 일정은 늦어졌다. 경성역은 철저히 봉쇄됐다. 일제는 들고 나는 사람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검문했다. 짐이란 짐은 모두 풀어 헤쳐졌고 옷 속까지 다 뒤집었다. 남녀노소가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휴의는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고 했다. 조금 늦는다고 해서 안 될 이유도 없었다. 그 즈음 상하이 소식도 중국행을 머뭇거리게 했다. 밀정을 어렵게 접촉한 결과 선생은 상하이에 없었다. 그는 저장성이나 후난성 아니면 항저우 등으로 자꾸 거쳐를 옮겼다.

상하이 임정은 어려운 상태였다. 흩어진 독립단체와 정당들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자금이 선생에게 쏠리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지 않아도 좌우갈등과 파벌 싸움이 한창이던 정당은 선생의 한국독립당에 대해서도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선생은 일단 이들을 설득하고 하나로 뭉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설득했다. 조선인끼리 뭉치지도 못하면서 일제와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설득은 쉽지 않았다. 각기 주장이 강하고 서로 우두머리가 되려는 사람들의 기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생은 인내심이 강했다. 그 힘으로 끝내 이들을 하나로 모아 독립된 단체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심산이었다.그래서 조선혁명당 당사인 남목청에 선생을 포함한 핵심인사들이 은밀히 모였다. 은밀히 라고 했으나 비밀이 새 나갔다. 불만을 품은 괴한이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총을 쐈다. 선생도 한 발을 맞았다. 병원에 이송된 환자를 본 의사들은 그가 곧 죽을 것으로 알고 수술도 피했다. 

그러나 세 시간이 넘어도 환자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살아난 주석은 그 이후로 글을 쓸 때 손을 떨었다. 흉통으로 인한 신경의 끈이 손끝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 못했다. 그런 글씨를 본 사람들은 떨림체라고 했고 선생은 스스로 총알체라고 농담을 던졌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총을 맞은 비운도 흩어진 동지들을 결집시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일제는 한인애국단을 만들어 윤봉길이나 이봉창 같은 인물로 자신들을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선생 암살 계획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앞서도 말했듯이 신출귀몰 중국 전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숨었다. 아무리 일제라고 해도 그를 잡아 처단하기는 어려웠다.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으나 현상금의 주인공은 당연히 제발로 나타나지 않았다. 밀고는 많았으나 다 헛된 정보였다. 테러리스트의 두목을 잡아 죄목을 낱낱이 공개하려던 일제의 계획은 잘 이행되지 않았다. 헛심만 쓰다 한 풀 꺾여 들어갔다. 

선생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자의 우두머리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했다. 조선총독부의 총독을 노렸다. 그것은 앞서 휴의 군대의 총독부 습격으로 이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만 총독까지 죽여 세계의 이목을 끌려고 했다. 그러나 일제가 선생을 제거하는 것이 어려웠던 만큼 선생의 총독 제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밀정의 이런 소식을 들은 휴의는 일제와의 싸움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번 실감했다.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정치인과 독립투사들의 엇갈린 방향을 저주했다.

그는 선생을 누구보다도 신뢰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안중근이나 윤봉길, 이봉창 같은 인물로 휴의 자신이 뒤를 잇는 주인공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것을 바라고 독립전선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젊은 혈기와 얽히고설킨 완용과 점례, 여순의 행방 등이 어지럽게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조선독립이 필요하다는 철학적 이론만은 확고했다. 다만 그의 감성이,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다가 최근 들어 확연히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확실했다.

밀정은 눈을 빠르게 굴렸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그의 얼굴에 가득 들어 있었다. 위험을 무릅쓸 만큼 자신의 일이 중요하고 자신에게도 어떤 득이 있는지 그는 잘 알이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이길로 접어들었고 휴의를 만나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더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따라 일어선 휴의에게 언제 중국행 열차를 타느냐고 물었다. 애초에는 삼 일 전이었으나 지금은 일주일 후로 미뤘다고 말했다.

일주일 후면, 아 13일 수요일이군요. 몇 시 차요. 휴의는 한 시라는 말 대신 검지손가락을 들어 표시했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모자를 한 번 만지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휴의도 바로 그가 가는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밀정이 나가고 난 지 삼 분 정도 시간이 지난 뒤였다. 휴의는 최대한 빨리 그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남대문을 지나 바로 남산길로 접어들었다.

도피보다는 신사참배가 목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산을 오르면서 그는 일주일 후라는 말을 그리고 13일과 수요일 한 시라는 말을 곱씹었다.그는 그날 그 시각에 경성역에 있지 않을 것이다. 헤어질 때 보았던 밀정의 차가운 눈은 배신자의 눈을 떠올렸다. 새로운 먹잇감을 잡은 사냥꾼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핏 보았던 것이다. 너의 비밀을 알았으니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라고 작고 가는 눈이 말하면서 사라졌다. 그래 너는 대어를 헐값으로 샀다고 좋아하겠지. 세상은 너를 중심으로 돌지 않아. 그걸 네가 알았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몸이 숨기는 것이 상책이었다. 휴의는 그보다 시간을 더 앞당기기로 했다. 경계가 비록 삼엄하기는 하지만 기차는 예정된 시각대로 출발했고 사람들은 가고 오기를 멈추지 않았다. 되레 이것이 더 안전할지도 몰랐다. 수색이 강화됐다는 것을 경성 사람 가운데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런 소문을 듣고도 차를 탄다면 의심을 살 사람이 아니거나 급한 사람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휴의는 적의 동태를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부관은 당장 내일 떠나기로 했다. 그가 어떤 검문을 받고 어떤 식으로 일경을 따돌리는지는 휴의에게도 도움이 될 정보였다.

부관이 떠났다. 부관이 기차에 오르고 나서 휴의는 갑자기 커진 간이 다른 장기를 억누르기라도 하는 듯이 손을 들어 간이 있는 쪽을 움켜쥐었다. 간혹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행동을 했다. 가슴을 움켜쥐고 나는 이렇게 서 있다. 휴의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 그날 비가 내리는 경성역 광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공기 중에 먼지와 섞인 흙냄새가 훅하고 끼쳐 올랐다. 고향의 냄새인가. 휴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잊은 고향을 떠올리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비가 온다고 해서 광장의 인파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역을 빠져나온 사람이나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리 질뿐이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봄비를 맞고 젖은 옷을 몸에 붙인채 광장을 몸을 부대끼며 가로질러 갔다. 휴의가 이렇게 청승을 떨고 있을 때 파리의 유마와 점례는 순조로운 유학생활을 이어갔다. 낯선 나라에서 누구나 겪는 초기 어려움은 파리 주재 일본 영사관의 도움으로 해결됐다. 참의원은 이 난리통에 유학이라니 하면서 아들의 파리행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한 후에는 뒷바라지에 열을 올렸다. 모든 편의는 아버지 참의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리 중심에 집을 사고 그곳 화가들과 연결하는 것도 다 부친의 지시를 받은 영사관이 발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둘은 아버지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있었다. 특히 점례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자신을 가볍게 두지 않았다. 참고서도 없이 프랑스 말을 무턱대고 외웠고 마구잡이로 익혔다. 배우는 속도는 유마보다 빨라 유마가 점례에게 통역을 부탁하고는 했다. 그만큼 점례의 언어 능력은 비상했다. 

너는 정말 남달라, 점례 마사코. 뭐예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요. 난 긴 이름은 싫어요.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풀네임을 쓰고요. 우리끼리 있을 때는 하나는 생략해줘요. 점례가 눈을 약간 흘기면서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는 창씨개명같은 것은 안해도 되잖아. 그런 것 없어도 우리가 편해면 된다면, 그런 가정이라면. 유마가 뜸을 들였다. 귀찮으면 아무렇게나 불러요. 저는 점례도 좋고 점례 마사코도 괜찮아요. 그냥 마사코도 나쁘지 않아요. 당신이 부르면 나는 언제나 달려 갑니다. 점례가 뒷말을 하면서 노래 부르듯이 콧소리로 말했다.

유마는 그런 점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어를 익히고 파리 분위기를 알아채고 음식에 맛을 들이고 의상을 골라 입은 점례는 어느 순간 파리지엥으로 변해 있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점례는 자신만의 화풍을 다듬어 갔다. 그의 화풍은 전통 유럽식 미술과는 조금 달랐다. 동양적인 것이 가미되면서 유럽이 섞인 것인지 아시아가 썩인 것인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언어에 문제가 없어지면서부터는 직접 화랑가를 돌며 잘나가는 화가들과 교류에 나서기도 했다. 

여기서 나오는 어려운 문제는 영사관이 해결했다. 파리 화랑가는 일본에서 온 젊은 부부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곳 미술잡지는 표지에 유마와 점례의 사진을 박고 무려 5페이지에 걸쳐 그림과 그들의 일상을 스케치했다. 8개월 만에 둘은 프랑스의 미술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재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실력도 어느 정도 가미됐다. 그러나 일류와는 거리가 있었다. 큰 대회에서 수상해야 한다. 점례는 기세좋게 나갔던 첫번째 시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낙선작 가운데 우수 작품으로 뽑히기는 했지만 점례와 유마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고군분투했다.

점례는 어떻게 화면 대회에 수상하는지 수상작품들을 연구했다. 모방을 통한 창조의 길로 나가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는 다작보다는 서너 작품에 집중했다. 전쟁은 좋은 소재였다. 처음에는 일본 찬양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가 손가락질만 받았다. 여기서는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전쟁이 끼어드는 순간 예술과는 멀어졌다. 예술과 전쟁은 어울릴 수 없는 화살표였다. 방향을 틀어 점례는 평화를 그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실제로도 그녀와 맞았다. 화풍과 그림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유마는 일체 반대하지 않았다. 그 무렵 일본에서 편지가 왔다. 아버지는 길고 긴 편지를 통해 외동아들에 대한 사랑을 실었다.

유마는 편지를 읽으면서 부모 이긴 자식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버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는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다 읽고 나서 점례를 불렀다. 여기와서 봐요. 아버지 편지야. 점례가 다가왔다. 그러나 점례는 유마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 읽기보다는 읽어도 되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한테 온 편지잖아요. 부자간에 사적이 대화도 있을 수 있는데 읽기가 좀 그래요. 아냐, 괜찮아. 우리 사이에 그런 벽은 없어.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요.
점례는 처음으로 우리 사이에 대해 유마 호사카에게 물었다. 어떤 금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둘은 늘 함께 했지만 결혼이나 부부나 하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었다.

공식적으로는 부부였으나 실제로는 그런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잡지에서 부부라고 호칭을 꺼냈을 때 둘은 어찌된 영문이냐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서로는 서로에게 놀라운 시선을 보냈다. 그러다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동시에 유마와 점례는 다정한 웃음과 함께 손을 잡는 것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날려 버렸다. 과거를 알고 있는 유마와 자신의 부끄러운 일 때문에 두 사람은 감히 혼인을 꺼내지 못했다. 조선에서도 파리에서도 어쩡쩡한 상태였다. 아마 유마가 먼저 결혼을 말했다면 점례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단호히 자신을 입장을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유마는 한 번도 정말로 단 한 번도 그런 대화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점례는 마음에 걸렸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거부하더라도 그런 제의를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 위치에 내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점례는 그러나 그 질문을 한 것을 곧 후회했다. 유마와 자신이 어떤 사이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냥 이대로만 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신뢰하고 서로 밀고 도와주는 관계가 아닌가. 더 무엇을 바라는가. 그 이상은 사치가 아닌가. 굳이 부부라는 족쇄를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도 아니다. 

일상을 부부처럼 지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부부처럼 지낸다고 다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않는가. 점례는 아녜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읽어 볼게요. 급하게 화제를 돌리면서 점례는 잡은 편지를 눈 가까이로 가져갔다. 그 순간 유마는 점례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우리 사이에 대해 내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 편지는 그 다음에 읽어도 늦지 않아. 그가 기어이 자신이 답을 하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냥 해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유마는 끝내 말했다. 우리는 동지 사이야. 동지. 어때? 괜찮아. 점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너는 내 하녀라거나 식모라고 불렀어도 할 말이 없었다. 첩이라고 했어도 점례는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마 호사카는 그런 식의 저질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동지라는 말로 점례를 안심시켰고 자신도 인격을 유지했다. 점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사이가 아니라서 실망하지 않았다. 

부인이 아니면 어떤가, 부인이 아닌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점례는 안면에 작은 미소지었다. 한 걸음 앞으로 간 점례는 유마를 가볍게 안았다. 고마워요. 동지, 나의 동지. 부인보다도 마음에 드는 호칭입니다. 유마에서 한 발 떨어진 점례는 편지를 쭉 읽어 나갔다. 단숨에 읽어 나간다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은 어쩌면 자신과 연관된 일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편지에는 뜻밖에도 완용의 이름이 언급돼 있었다. 휴의도 나왔다. 동명이인 일수 있지만 점례는 완용이 그 완용이고 휴의가 그 휴의라는데 의심을 품지 않았다. 두 명의 같은 이름이 동시에 나올 수는 없었다.

순사였다가 승진을 거듭해 종로경찰서장이 된 완용. 일제 만주국 토벌대 군인이었다가 독립군이 된 휴의. 휴의 나의 휴의, 그는 내 사랑이다. 점례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들키지 않기 위해 편지를 더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종로서가 네 삼촌이 운영하는 화방을 급습해 삼촌을 연행해갔다. 곧 풀려났지만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서장도 삼촌이 나의 동생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 용서할 수 없어 바로 파면하고 체포할 계획이었으나 조선헌병대사령관이 총독에게 미리 손을 써 어쩔 수 없었다. 사령관에 따르면 조선독립군이 총독관저를 습격할 때 총독과 나를 살려낸 생명의 은인이 바로 완용이었구나.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일은 되풀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휴의라는 독립군이 삼촌이 운영하는 화방을 드나들었다는 연행 이유를 대고 있는데 그 휴의가 이번에 관저를 습격한 대장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조선인들은 은혜를 모르는 경우가 종종있다. 점례는 이 대목에서 또한 번 뜨끔했다. 은혜를 모르는 조선인에 자신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너도 그것을 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편지는 일본 정치로 넘어갔다.

전세는 우리가 이긴다고는 하지만 어렵다. 일단 나는 천황의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만약이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전쟁에서 패하면 그 책임은 오로지 군부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천황은 아무 잘못이 없다. 도조 히데끼 등 군부는 몸은 있어도 머리는 제대로 달고 있지 못하다. 유리한 전세를 늘 불리하게 끌고 간다. 미국의 본토 공격에 이른 또 다른 공격이 예고되고 있다. 도쿄 말고 다른 도시도 위태롭다. 우리 정치인들은 한 몸으로 천황을 모시고 충성을 맹세하고 모든 책임은 군부에 있다는 것을 알린다. 그것이 천황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점례는 뒷장의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천황제나 군부 등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읽은 것은 편지 내용에 대해 유마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토론할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편지를 내밀면서 점례는 힘든 아버지를 위해 우리가 돕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만 아니었어도 당신이 일본에서 아버지에게 힘이 텐데요. 미안해요. 그러기는커녕 짐이 되고 있어요.아냐 점례, 당신은 늘 나의 원군이고 든든한 백이오. 혹 아버지가 조선인에 대해 불쾌한 언급을 했다면 이해하시오. 난 이제 조선인이 아닙니다. 당신의 동지는 일본인이에요.

점례는 그 말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몸은 조선인이지만 정신은 일본이라고요. 나를 당신으로부터 분리하지 마세요. 그날 이후, 정확히는 편지를 보고 나서 점례의 사색의 시간은 길어졌다. 특히 유마가 말한 동지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으로 유마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과 그 이상을 은근히 원한 것인데 거기에 미치지 못한 데서 오는 좌절 같은 것이 혼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동지는 자신을 위해 유마가 선택한 최고의 단어였다는데 모아졌다. 결코 자신이 유마의 부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가 우리는 부부라고 말했다면 아니라고 부인했을 것이다. 난 당신의 아내 될 자격이 없어요. 그녀는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동지라고 했다. 이는 충분히 받아들여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상처였다. 동지, 그것이 부부보다 더 질긴 인연 아닌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것이 부부라면 동지는 영원한 것이다. 유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것이다. 간혹 의견 다툼이 있을 때도 유마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지 않았다. 네 과거를 알고 있다는 비열한 눈짓을 단 한 번도 점례는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전쟁은 물론 막사 근처에도 그의 말은 입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동지, 그렇다. 그는 나의 동지였다. 점례는 우리사이를 그렇게 정리한 유마가 고마웠다. 그러자 남는 것은 휴의와 완용이었다. 휴의는 유마 호사카가 채워주지 못하는 어떤 부분을 은근히 치고 들어왔다.

그것은 설레는 것이었고 언제나 요동치는 감정이었다. 죽마을의 해변가에서 휴의는 그녀의 눈을 오랫동안 지켜 보았고 그녀 역시 그를 따라하는 것처럼 그렇게 했다. 거기서 더 나가기도 했고 어느 순간 시간이 정지한 듯 모든 동작이 멈추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애인인가 그냥 친구인가. 점례는 확정짓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는 친구아닌 애인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동지로 불러준 유마에 대해 조금은 덜 미안한 태도였다. 그런 휴의가 완용에게 쫓기고 있다.

완용은 어떤가. 한때 부모끼리 언약을 맺은 사이 아닌가. 그는 나를 원했지만 나는 휴의에게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완용은 그것이 불쾌했다. 겉으로는 동네 친구로 평온했으나 휴의와 완용은 언제나 무언가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을 놓고도 싸웠다. 앞서가기 위해 혹은 암컷을 위해 싸우는 숫사슴의 거대한 뿔이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돌격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둘은 이렇게 맞붙었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친구가 적이 됐다.

점례는 자신도 그런데 그들의 운명 또한 기구한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생각은 다시 여순에게로 쏠렸다. 귀중한 물건을 숨겨둔 곳이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그는 급하게 여순을 기억속에서 소환해 냈다. 경성역에서 헤어진 이후로 점례는 여순에 대한 그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나처럼 만나지 못했다면 여순은 여전히 전선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일본의 공장으로 갔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점례는 높은 굴뚝 아래서 일하는 여순보다는 자신이 한 때 있었던 군용 모포와 어둡고 침침한 작은 방에 있는 여순이 떠올라 깜짝 놀랐다. 순간 점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여전히 깊은 굴레 속에 있다면 과연 여순이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나름대로 심지가 굳고 자존심도 있으면서 자기 길에 욕심이 많았던 여순이 아니었던가.

설마 잘못된 것은 아닐까. 여순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여순은 결론 없는 삶을 포기했을 것이다. 점례는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숱한 시간이 지났고 이제 잊어도 좋을 만한 상황에서 점례는 여순을 위해 신을 찾았다. 그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두 손을 맞잡았다. 자신말고 친구를 위해 이런 기도를 올리면서 점례는 미안하다 친구야 하고 여러번 속으로 속죄했다. 그러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오랫만이었다. 울어본 적이 얼마만이냐. 

점례는 빛을 감추고 스스로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방문을 잠그고 엎드렸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들켜도 좋았다. 일부러 조금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눈물을 흘리고 나자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점례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더 그렇게 있다가는 자신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기어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 전에 점례는 몸을 추스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화구를 챙겨 들고 점례는 검은 세느 강변을 따라 화실로 향했다. 여기에도 봄이 왔다. 계절이 바뀌자 강 주변에는 새싹이 돋았다.

거지들도 늘어났다. 대낮인데도 깨어나지 못한 채 쓰러져 있는 술주정뱅이들도 흔했다. 고요한 거리가 갑자기 수선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람선은 유유하게 흘렀다. 점례는 그런 풍경을 보면서 걸었다. 움직일때 점례는 살아 있었다. 그 때 인상을 쓰면서 싸움을 걸어 보겠다는 자가 있었다. 뒤가 섬칫해 돌아보면 어린 애들 서너 명이 그런 자세로 노려봤다. 점례는 흠칫 놀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따라왔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들은 점례뒤를 조용히 밟고 있었다. 소매치기들이었다. 낯선 풍경이었고 익숙한 것이었다.

점례는 화구를 맨 가방을 앞으로 잡고 그런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빠르게 지나쳤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런 것 까지도 점례는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어두운 이미지는 그가 작업할 때 필요한 것이었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에 점례는 또 하나의 작품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늘 보고 지나쳤던 것을 스케치했다. 하지만 연필의 방향은 이상한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여순이 나타났다. 생머리를 하고 어떤 표정인지 모르는 여순이 백지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사진을 보고 그리는 듯 여순은 선명하게 점례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손이 떨렸다. 늙은 화가의 붓놀림처럼 화구 앞에서 손은 마구 떨렸고 칠은 자꾸 엇나갔다. 점례는 눈을 감았다. 잊고 싶은 것을 잊었다고 했는데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혼잡한 인파, 기차 경적음, 짐짝 처럼 실린 나의 몸뚱아리, 트럭과 군인들, 멀미, 중국 땅인데 일본이 점령한 만주. 그리고... 점례는 감은 눈 사이로 검은 점과 흰빛이 무수히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군용막사에서 점례는 세상의 끝이 여긴가 보다, 생각했다. 더 갈 곳이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그 많은 군인들과 군가 소리, 삶과 죽음이 하나도 다르지 않은 전쟁터, 그곳에서 점례는 유마 호사카를 만났다. 장교 숙소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세상의 끝에는 막장 말고도 행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만주를 거쳐 경성으로 그곳 인사동에서 삼촌을 만난 것은 다 유마 덕분이었다.

유마가 없었다면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 고향으로 갔을까. 돌아온 그녀를 보고 부모님은 환향년 돌아가라고 손가락질을 할까. 무서워서 막사보다 더 무서운 점례는 그날 밤 달이 뜬 보름날에 대들보에 목매 달아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슬픈 가정은 그만두고 점례는 지금 파리유학 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그런데 여순이 나타나 방해하고 있다. 여순아, 미안해 나만 행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널 위해 할게. 그러나 지금 나는 너의 소재는 물론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몰라. 그러니 나에게서 내가 너의 소재를 알기 까지는 나에게서 멀어줘. 제발. 

점례는 어느 사이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멀리서 황금마차가 다가왔다. 고삐를 잡은 여인은 어서 타라고 했다. 마차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점례는 올라탔다. 위태로웠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는 몸을 어떻게 추스를 수 없었다. 그녀는 고삐 잡은 여인의 고삐를 빼앗아 당기면서 몸을 간신히 돌려 세웠다. 환상이다. 꿈인가. 그는 널부러진 화구를 조심스럽게 챙겼다. 거리 상점들이 하나 둘씩 불을 밝혔다. 한 사내가 점례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달리지 않았어도 그는 달리는 것 이상으로 빨랐다.

흐릿한 형상, 누군가. 이번에는 여인 대신 휴의였다. 그는 살아 있는가. 살아 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순에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휴의에게 하고 있다. 그가 군복을 입고 있다. 총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면서 곧 돌진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만, 쏘지 마. 제발. 휴의 오빠, 나의 점례야. 점례는 악을 쓰면서 눈을 떴다. 극도의 피로감이 엄습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일어나서 찬물을 찍어 눈가를 비볐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에 앉아 쓱쓱 손에 쥔 연필을 거침없이 움직였다.

잠시 후 소녀 하나가 하얀 여백을 채웠다. 빛나는 마차를 타고 온 여인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은 검은 옷고름 사이로 마주 잡았다. 밖은 잠시 전에 보았던 환영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더 해봤자 나올 것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가로등 불빛이 빛났고 그것이 바람이 불면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후우하고 길게 한숨을 내쉰 점례는 파리에 오면 모든 것을 잊고 그림만 그리자고 다짐했으나 그것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잘하고 있는데 하필 그때 편지가 왔다. 안 봐도 되는 것을,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보고 난 후 점례는 마음이 심란했다. 참의원의 편지만 아니었다면, 거기에 휴의와 완용에 대한 이야기만 없었더라면, 점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바닥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점례는 알고 있었다. 어떤 것이 자신을 가로막더라도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을.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시인의 길을 갔던 그 젊은 청춘을, 점례는 그가 갔던 그 길을 갈 수 있고 가고자 했고 그 결심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자심감이 서자 점례는 다시 차분해졌다. 경성에 있을 때 점례는 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쓰고 다니는 젊은 청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어느 날 그 시를 필사한 작은 시집을 손에 들었다. 정식 출간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는 그런 것에도 손을 뻗쳤다. 불순한 내용으로 백성의 의식을 마비 시킨다며 세상에 나오는 것을 방해했다. 집요하고도 비열한 행동이었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습관에 따라 그 시를 외웠다. 갑자기 시가 떠올랐다. 먼 이국땅에서 소리 내 읆으면 기분이 새로울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대목에 이르자 저도 모르게 가슴 속이 소금에 저민 생선처럼 축 늘어졌다. 점례가 이러고 있을 때 유마도 유마 나름대로 편지 때문에 마음을 썩히고 있었다. 휴의니 완용이니 하는 조선인이 언급된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한 일신의 걱정이 앞섰다. 천황제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것은 알겠지만 책임을 온전히 군부에게 물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주장은 옳지 않았다. 군부라면 자신도 군부가 아닌가. 죽기로 싸웠고 실제로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죽어 나갔던가.

지금도 잠결에 들려오는 사자의 비명 때문에 유마는 간혹 잠을 설치는데 아버지는 왜 그래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의 분위기가 패전으로 기울고 있어도 그래서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 하는 희생양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군인일 수는 없었다. 희생자를 또 다른 희생물로 삼으려는 그것에 대해 유마는 반기를 들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가 지웠다가 여러 번 되풀이 하면서 묘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일본을 떠나 올 때 완전히 세계로부터 자유롭게 살자고 다짐했으나 그러지 못할 처지에 이르고 보니 그는 당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밖으로 나오던 점례와 마주쳤다.

약속한 것은 아닌데 산책 나온 점례와 센 강변에서 딱 만난 것이다. 둘은 서로 놀랐고 반가웠다. 서로 상대에게 달려왔다. 나 배고파. 유마가 말했다. 나도. 점례가 웃으며 받았다. 점례는 늘 이렇게 대하는 유마가 고마웠다. 어디가? 밤이 오려는 이 시각에, 그것도 혼자서. 하고 나무라지 않는 유마. 날 마중왔구나. 사랑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동지를 넘어 나의 사랑이다. 점례는 기쁨에 극에 달해 울고 마는 사람처럼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았다. 당신이 만들어 주는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 여기에 조선 된장은 없어. 조선으로 갈까. 된장찌게 먹으러? 농담을 했으나 유마는 이번에는 받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만들면 되지. 당장은 안돼. 메주를 쑤어야 하고 발효하는 데 시간이 걸려. 금 나와라 뚝딱 하면 나오는 게 아냐. 그런가. 그럼 먹고 갈까. 그래요. 모처럼 술이 당기는군. 미투. 점례가 영어로 찬성을 표했다. 둘은 요기도 하고 술도 먹을 수 있는 간이 술집으로 들어갔다. 늦은 저녁이 아니라 저녁을 막 먹었거나 먹으려는 사람들로 식당은 조금 붐볐다. 노랑머리, 파란 눈들이 동양인 남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호기심 어린 눈길로 시선을 마구 굴렸다. 둘은 그런 눈에 익숙해서인지 관심 끄라면서 따돌리고 음식을 주문하고 술을 먹고 그들처럼 수다를 떨었다.

유마는 아버지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해야 한다고 조금은 시무룩하게 말했다.써야죠. 당연히. 점례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투로 대꾸했다.그런데 잘 안 되네. 몇 번 썼다가 다 버렸어. 아버지를 모욕할 순 없잖아. 점례는 순간 뜨끔했다. 유마의 입에서 모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것이야말로 모욕이라는 듯이 멍하니 유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누구보다 부친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유마가 아버지에게 모욕이라니.

당신도 읽었잖아. 전쟁의 책임을 군부에 돌리자고 아버지는 천황의 동생에게 편지를 썼어. 하지만 그것은 희생자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는 아니야. 나도 군부잖아. 난 최고위 고급장교였어. 군인이었다고. 아버지는 육군 대장 출신이고. 이게 말이돼. 지금은 참의원 신분이지만. 유마가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편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점례는 휴의나 완용으로 대화가 옮겨질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가 조선인을 꺼내면 아무래도 점례는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전혀 다른 데서 점례는 유마의 고통을 보았다.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편지를 받지 못한 것처럼 여기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아니면 그것에 대해 코멘트 하지 말고 유학 생활의 순조로움에 대해 그리고 그림에 대해서만 적으라고 조언했다.아버지 편의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영사관하고 소통도 잘 되고. 자신은 물론 점례도 그림이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특히 당신은 요즘 글쓰기에 빠졌으니 곧 단편 소설 하나가 나올 거라고.

아버지는 이제 피카소나 고흐같은 위대한 화가나 모파상이나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를 아들로 둘 수 있다고, 아버지를 위로하는 이런 내용은 어때요. 유마는 그런 말을 열을 올리면서 하는 점례와 시선을 마주치기 위해 술잔에서 입을 뗐다. 점례는 아직 다 하지 않은 말이 있다는 듯이 입술을 약간 들썩였다. 하지 못한 말을 유마가 대신 해 주면 어떨까. 며느리대신 나의 동지 점례는 나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 줄 수는 없을까.

그런 말이 나오면 점례는 당황할 것이다. 아니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유마는 그 말을 입에 담기 위해 눈을 마주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점례의 예상이 빗나갔다. 그러나 완전히 엇나간 것은 아니었다. 유마가 동지를 언급했다. 그는 점례의 말에 덧붙여 나와 함께 온 동지 점례는 자신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프랑스어도 유창해 자신이 배우고 있다고 그런 칭찬의 말을 쓰면 좋겠다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점례는 편지에서 떨어져 나와 화랑가로 시선을 돌렸다. 유마가 일부러 그렇게 유도했다. 잔이 돌고 약간 취기가 오른 유마가 지난 번 모임을 화제로 올렸다. 둘은 함께 어느 모임에 참석했었다. 거기에서 유마는 점례를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소개하는 차례가 오면 점례는 자신도 모르게 떨었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 점례는 떨었던 그 순간을 기억했다. 

유마는 사람들에게 손잡고 있는 이 아름다운 여인이 내 부인이라고도 했고 동지라고도 했으며 애인이라고도 했다. 그래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없어. 괜치 쫄았어.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유마가 이 세 단어 말고 다른 단어를 끌어다 쓴다고 해도 시비걸지 말고 떨지 말자. 상황에 따라 유마는 나를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다시 편지로 돌아왔다. 유마는 지금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답장을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써야 할 내용이 급했다. 

그럼 책임이라든가 군부 이야기는 아예 빼 버리자고.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뭐요? 그걸 언급하고 싶은 거죠? 그러면 일이 꼬일 거에요. 점례가 강조했다. 그러나 유마는 자신의 의견을 반드시 내고 싶어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고 확실히 반대하는 것도 아닌 어쩡쩡한 상태로 두고 싶어했다. 둘은 답장을 놓고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점례가 또다시 묘안을 냈다. 각자 편지를 써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보내자고. 당신의 아들 올림, 나도 당신의 아들 올림으로 끝말은 동일하게. 어때요? 유마가 눈을 가까이 했다. 그리고 잔을 들어 건배했다. 좋았어. 둘은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