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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01:53 (금)
그는 다른 하나가 누구인지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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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하나가 누구인지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4.1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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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대사령관이 지휘봉으로 식탁을 탁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거침이 없는 행동이었다. 완용 고바야시가 멈칫하고 몸을 움직였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아무리 헌병대사령관이라고 해도 종로경찰서장을 마주 앉혀 놓고 마치 때리기라도 하는 행동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엄한 선생이 말썽꾸러기 학생을 닥달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완용은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다. 때린 곳이 바로 휴의의 면상이기 때문이었다. 지휘봉 끝은 정확하게 휴의의 얼굴을 강타했고 그 힘으로 눈 주위가 찢어져 나갔다. 몽타주가 옆으로 비틀어져서 얼굴쪽이 완용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빠가야로. 완용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면서 헌병대장 못지 않은 적개심을 뿜어냈다. 아는 자지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와타나베 사령관이 속사포 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그럴 필요없었다. 이 헌병대장이라는 자는 성격이 불같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화를 풀수는 있었지만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부하들은 겁을 먹었고 그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정작 중요한 정보를 놓치기도 했다. 빠가야로. 이번에는 완용이 받아쳤다. 속으로한 것이지만 제대로 했다고 완용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머저리, 바보, 천치 같은 놈. 완용은 한 번 더 쏘아주었다. 한꺼번에 질문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답이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고바야시는 와타나베가 덤벙댄다고 생각했고 최고 지휘관의 그런 성격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나는 저런 자는 닮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알고 있어요. 알다마다요. 일찍이 친구였어요. 그도 연달아서 세가지 질문에 답변했다. 이미 알고서 하는 질문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작은 눈이 옆으로 찢어지면서 와타나베는 총독부 습격 사건이 마치 완용때문에 일어난 일인 듯이 그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이것 보시오. 나도 이 자를 잘 알고 있소. 내 평생의 업적은 이 자를 잡아 처단하는 것이오. 내가 몰라서 아느 냐고 물은 게 아니오. 왜 잡지 못하는 질문이었오?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와타나베가 고바야시의 머리쪽을 지휘봉으로 가리켰다.

고바야시가 가래 침을 모으듯이 얼굴을 안쪽으로 일그러 트리면서 사령관을 쏘아 보았다. 기분나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간혹 그럴 때가 필요했고 완용은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매번 끌려만 가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사령관은 완용의 눈길을 피했다. 살이자 처럼 번득이는 눈동자를 마주쳐다 보아서 이득이 될 것이 없었다. 그가 죽었다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한다는 눈초리였다. 아, 그만두시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해요. 공과는 나중에 따지고 일단 휴의를 잡아 들입시다. 사령관이 한 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런 피라미 하나 잡지 못해서 이게 무슨 꼴이오. 총독 각하 볼 면목이 없어요. 하필 그 때 본국에서 참의원 나리께서 오시고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했소. 일을 빨리 끝냅시다. 사령관이 군인답게 시원스럽게 나왔다. 종로서장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럽시다. 그럼 이 자리 빨리 잡아 오시오. 그러나 방향은 빗나갔다. 경찰은 노는 줄 아시오. 잠을 못자 부하들이 사경을 헤메고 있소. 이럴때는 군인들이 좀 나서야 하는 것 아니오? 치안유지에도 바쁜 경찰이 일손이 부족하면 헌병대가 지원해야지요. 완용은 휴의 체포를 온전히 경찰에게 묻은 사령관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다시 두 사람은 대결 국면에 처했다. 이봐요. 광화문에 사방 경계를 치고 사단 병력이 집결한 것을 모르시오. 완용이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건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이다. 휴의 체포를 논하는데 총독부 방어진의 공치사가 왠말이냐, 완용은 답답했다. 일본놈만 아니라면 작삭을 내주고 싶었다. 하나마나한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같잖았다. 이런 자와 무슨 대화가 필요한가. 가슴이 강한 무엇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알았어요. 그러면 헌병대는 총독부 방어에 집중하고 휴의 체포는 우리 서에서 잡아 내겠소? 대신 중무장한 조석독립군은 그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시오. 그 자들은 이미 도망치지 않았소? 또 온단 말이오? 와타나베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직 잔당이 남아 있단 말이오. 우리 첩보에 의하면 그렇소이다. 상하이로 거의다 도망갔지만 일부는 경성에서 암약하고 있어요. 암약의 우두머리가 바로 휴의이고 휴의는 상하이에서 행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여기 경성에 있다는 뜻이지요. 휴의든 그와 협력하는 자든 잡아서 족쳐야 앞으로 독립군계획을 알 것이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이번에는 규모를 더 키워 제대로 전투를 할 모양이오..,뭐시라고요? 전보다 규모가 큰 부대가 침략한다고요? 사색이 된 와타나베가 부관 하고 소리쳤다. 옆에 있던 부관은 깜짝 놀랐다.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됐다. 사령관이라는 작자는 늘 이런 식이었다.

부관은 성난 와타나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종로서장이 잔당이 있다는데 우리는 파악했소? 추측 일 뿐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조선독립군 잔당은 없습니다. 있었다면 벌써 잡아 들였겠지요. 전투가 벌어진지 벌써 세 달이 지나고 있어요. 정초 아닙니까? 부관이 되물었다. 되묻는 질문에 사령관이 기분이 상했다. 감히 어린 놈이 그런 식으로 되묻다니 불쾌했으나 화살은 그 쪽이 아니라 완용쪽에 퍼부어야 맞았다. 그래서 부관에 대한 화풀이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아니 종로서장은 정보를 어디서 듣고 오는거요? 우리쪽이 파악한 바로는 죽은 적들 말고는 조선땅에 독립군은 한 명도 없소. 아니오. 있소. 바로 이 자요. 완용이 사령관의 지휘봉에 맞아 일그러진 휴의의 몽타주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한 차례 흔들었다. 이 자는 상하이로 가지 않았소. 내가 잡으라고 한 것은 상하이로 가든지 거기 영사관과 접촉해서 그곳 형사들에게 체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주라는 것이었소. 서장이 말귀를 제대로 알아 들어야지? 기회를 잡았다 싶었던지 와타나베가 말꼬리를 길게 늘렸다. 아니오. 틀렸소이다. 휴이는 아마도 경성에 있소. 못박혀서 꼼짝 않고 있는거요. 왜 잡지 못해요? 그렇게 잘 알면서. 와타나베가 시비를 걸었다. 잡을 거요. 귀신사에 잠복이 들어갔어요. 귀신사라면 절? 그렇소이다. 아니 왜 절을. 시주할 돈이 남아 도는 거요? 말귀를 못 알아 먹으시는군요? 휴이가 아끼즌 소년병사가 그 절에서 죽었소. 아마도 천도제를 지내러 올거요. 스님이 그랬거든. 원래 중들은 거짓말을 못하니 틀림 없을 겁니다. 날짜는? 그것이 문제요. 그래서 절 주변에 우리 형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거요. 무슨 말이지 아직도 몰라요? 완용이 와타나베에게 물었다. 나를 바보로 아나? 와타나베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못잡는지 원. 그가 혀를 찼다. 

기다리시오. 아직 때가 아니오. 녀석들이 출몰하는 곳은 대충 파학했소. 동선도 일부 확인했고요. 지금 잡으면 상하이와 접선하기 전이라 일망타진이 어려울 수 있어요. 활동하게 놔 두었다가 임정의 새로운 계획이 실행되는 동시에 휴의 놈을 체포할 겁니다. 그래서 적들을 독안에 잡아 놓고 몰살 시킨다? 와타나베는 무릎을 쳤다. 자신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완용에게 갑자기 신뢰의 마음이 생겼는지 와타나베는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그것은 와타나베의 전략이었다. 자신은 자신이 없는데 완용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그를 칭찬하면서 독립군 체포를 아예 종로서에 맡기려는 술책이었다. 와타나베의 마음을 알았으나 완용은 신경쓰지 않았다. 휴의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꼭 체포하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진 와타나베는 휴이만 체포하면 훈장을 상신하겠다고 말했다. 더러운 쪽팔이 놈, 네가 아니라도 훈장은 당연한 거야. 이 왜놈의 자식아. 완용은 속으로 끊었으나 사령관 각하가 그렇게 해 주면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둘은 은근히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당황하는 척 했지만 와타나베는 골치아픈 헌병대사령관보다는 조선총독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번 사건으로 총독이 책임을 지고 본국에 소환되거나 다른 총독이 거론 될 경우 자신이 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일인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이 건강상의 이유로 야욕이 없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는 허수아비 정무총감 대신 자신이 먼저 그 자리를 꿰차야 했다. 그런 다음 총독을 노리는 전략을 썼다. 그래서 그는 기분이 상했어도 완용을 칭찬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어떤 식으로든 공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총독부 방어에 병력을 집중 투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비난을 받았다. 많은 병력으로 총독 관저를 둘러싼 것은 조선의 치안이 나쁘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려주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세에 밀리고 있는 전쟁에서 전선에 갈 병력이 겨우 조선인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용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좋은 전술이 아니라는데 모아졌다. 보고서는 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와타나베는 방어 인력을 10분의 일로 줄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래저래 헌병대사령관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었다. 그는 종로서장의 공을 가로 채기 위해 휴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또다른 조직을 가동했다. 한편으로는 전적으로 맞기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뒤동수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서장이 나가자 와타나베는 부관의 귀에 대고 저 자를 미행하라고 지시했다.

부관은 놀랐으나 즉시 그 명령을 수행했다. 서장을 뒤쫒다 보면 언젠가는 휴의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찰보다 한 발 앞서 체포해 공을 세우겠다는 일념이 사령관의 얼굴에 가득했다. 절 주변도 불순분자 수색을 이유로 가끔 들러라. 하이. 부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완용은 사령관과 헤어지고 나서 곧바로 서로 향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발길은 사령부를 남산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신사 참배의 기다란 계단이 마치 깊은 굴로 들어가는 출입문 처럼 보였다.

그는 그곳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일본의 승리를 위해서 기도했다. 대일본제국의 승리를 위해. 그는 꺾은 고개를 더 깊이 꺾었다. 신사에 묻힌 왜의 조상신들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준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완용은 휴의를 잡아다 문초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눈 앞에 그 모습이 어른거렸다. 고바야시는 일본의 승리도 중요했지만 그 보다는 휴의를 체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의 우선순의를 따져도 휴의 체포가 먼저였다. 도무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녀석에게 질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구겨도 여러번 체면이 구겨졌고 세워도 모자랄 자신의 위신이 되레 깎여 나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잡으면 반드시 사지를 찢어 죽이리라. 이를가는 소리가 뇌 속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는 부관도 돌려 보낸 채 홀로 신사를 거쳐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서진 성곽의 잔해들 사이로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런 것이 다 뭐람. 그는 워커발로 쓰러진 돌무더기를 밟고 일어섰다. 대일본 제국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이곳에서 불이나 지피고 있겠지. 적이 쳐들어 왔는데 어느 세월에 연기를 보고서 대비를 하느냐. 전화기를 들고 그는 인천에 파견나간 부하를 닥달하는 자신을 돌아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가지에 잎이 돋고 곧 사꾸라가 만발하겠지. 그래 사쿠라 바람에 흩날릴 때 쯤 다시 한 번 찾아오자. 무언가 결실을 손에 쥐고서. 

코트 깃을 세우고 완용은 멀리 총독부 건물을 내려다 보았다. 오후의 지는 해를 받아 대리석의 흰빛이 슬쩍슬쩍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람했다. 저 늠름하게 서 있는 거대한 석조 건물 앞에 왜소한 기와집 몇 채가 눈치를 보듯이 한쪽에 비켜 서 있었다. 왕이라는 자가 준비는 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졌으니 나라를 잃는 게 당연하지. 그자가 아직도 조선 왕으로 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여전히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있겠지. 배를 곯고 밤낮 일해도 헐어빠진 옷과 짚신 따위를 신고 진창길을 헤매고 있겠지. 일본, 아 나의 조국, 왜나라. 완용은 순간 감상에나 빠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이 날 듯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사령부 대원이 행여 놓칠새라 그 뒤를 따라 달려 내려갔다.

완용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부하들은 퇴근했고 당직자 일부만이 완용에게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서장님, 헌병대사령부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고바야시가 대답 대신 어떤 내용이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전해주겠다고 했으나 그쪽에서는 직접 말하겠다고 하면서 오면 전화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래? 완용은 그렇게 말을 받고도 전화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가놀다 왔으냐, 왜놈 사령관 놈아. 완용은 속으로 사령관과 있었던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불쾌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네놈이 뭔데 종로서장에게 이래라 저래라야, 개새끼. 완용은 부하들이 사라지고 나자 이런 욕을 하면서 책상아래 발을 굴렀다.

어, 저리들 가 있어.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움직이는 부하들은 없었다. 그들은 벌써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당직자가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사령관을 바꿔달라는 말도 하기 전에 와타나베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종로서장과 한잔하려고 찾았는데 어디갔었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 둘러대고 뭐라고 할 기분이 아니었다. 신사 참배하고 남산에 올랐다가 내려왔어요.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아니, 아니 별일 아니오. 그저 술 생각이 났던 참에 서장님이 생각나서 전화해 본 거요. 우리 낮에 했던 얘기 잊지 맙시다. 그렇다고 밤잠까지 설치지는 말고요. 그쪽에서 먼저 전화 끊는 소리가 찰깍하고 나서야 완용이 던지듯이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개새끼. 단순 술자리는 아닐 것이다. 할 말 다 해 놓고 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전화질이야. 화가 덜 풀린 그는 밥에 장국을 말아 먹으면서 대포 한잔을 걸쳤다. 이대로 잠을 잘 수 없을 듯했다. 오늘 밤은 자기는 다 글렀다. 왜놈 자식에게 이런저런 지청구를 들었으니. 그렇다면 야간 순찰이나 돌아볼까. 그는 당직자 가운데 한 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사방은 어두었다. 가로등 몇 개만이 어슴푸레 빛나고 있었다. 행인들의 발걸음은 뚝 그쳤다. 그는 인사동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가 문득 점례를 떠올렸다. 그렇지, 점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일등상을 받은 점례를 왜 이제야 떠올렸는지 자신에게 빠가야로를 외치며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래 맞아. 참의원이 그 집에 들렀었지. 그리고 그 집 아들이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으로 돌아왔고 그 집 삼촌이 골동품상을 한다고 했지, 그래. 지난번 술집에서 마주쳤고. 군바리 티가 나는 그 애송이와 점례는 무슨 사이야. 아무래도 조합이 맞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점례와 그들과의 관계는 족보를 사 양반으로 성씨가 바뀐 상인처럼 도무지 짜맞출수가 없었다. 화실의 불은 꺼져 있었다. 간혹 살림집을 겸한 가게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그 집 화실은 껌껌했고 모든 것이 닫혀 있었다.

한동안 완용은 그 집 앞을 서성였다. 언젠가 술집에서 맞닥트린 것이 점례가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자 이번에는 화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휴의와 점례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참의원은 뭐지? 완용은 상상만으로는 이들의 관계를 파학할 수 없었다. 이른 새벽에 다시 오리라. 그리고 나오는 자는 일단 체포하고 보자. 그는 시나리오를 짰다. 참의원 집 일행을 잡아들이는 것은 종로서장의 권한 밖이었으나 근거를 대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수상한 자가 밤에 드나들었다거나 첩보에 따라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둘러댈 수도 있었다. 요인의 집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라고 하면 충분히 먹혀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완용의 계획은 한 발늦었다. 일본으로 갔던 점례와 유지는 일주일 전 쯤 화실에 들러 파리 유학에 필요한 짐을 챙겨 떠났다. 삼촌 혼자서 빈집을 지키기 적적해 골동품 가게서 소개받은 종업원 하나가 그 큰 집에 사는 전부였다.

허탕을 친 완용은 이번에는 직접 사령관을 찾아갔다. 부르지 않아도 그가 보기 싫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조선제일화랑이 의심이 갔기 때문이다. 뭔가 미심쩍은 예감 같은 것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대개 이런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종로서장은 자신의 직관을 믿었다. 필시 휴의와 화랑이 어떤 끈으로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이제 그는 확신을 가졌다. 틀림없다고 단언하는 마음이 들자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서장 일행은 사전에 연락해둔 대로 우리가 왔다고 보초에게 일렀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지 보초는 순순히 문을 열면서 마침 사령관 각하가 집무실에 있다고 말했다. 사령관은 정복을 입고 있었다. 언제나 업무 중에는 깔끔한 군복으로 위엄을 과시하던 그가 오늘도 예외 없이 날 선 눈으로 서장을 맞았다. 어서 오시오. 말은 호탕하고 목소리는 웃고 있었으나 네 놈이 무슨 볼일이 있어 이곳 남산까지 기어 올라왔느냐고 묻고 있었다. 각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장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짧고 가는 눈을 치뜨고 있던 사령관이 관심을 보이면서 앉을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조선제일 화랑이 의심스럽소. 거기 조선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미술대전에 금상을 받은 것 알고 계시지요? 사령관이 그래서? 하는 눈초리로 서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도 조선제일 화랑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곳은 참의원 동생이 운영하는 화실이었고 자신도 동생과 안면을 트고 있는 상태였다. 총격전이 있기 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참의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가 직접 화실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의 직급이 한 단계 더 올라갔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분해 있었는데 완용이 화랑을 직접 언급하자 관심이 쏠렸다. 

공을 들인 것이 허사로 돌아갔고 그래서 와타나베는 진급은 커녕 물 먹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참의원은 본국에 돌아가 사령관의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던 사령관은 모두 참의원 덕분이라며 동생을 통해 대신 치하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내막을 종로서장은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화랑 이야기를 하고 금상까지 꺼냈음에도 사령관은 그 집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시늉을 하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대답해도 늦지 않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섣불리 중간에 끼어들었다가 눈치챈 서장이 방향을 바꾸면 중요한 내용을 듣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격을 죽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압수수색 한 번 해야 할까봐요. 아무래도 사령관님이 애타가 찾는 몽타주의 인물이 거기와 연관돼 있다는 의심이 들어요. 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사령관은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한 거요. 괜한 잘못 쳤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는데? 낭패라니요? 화랑하나 건드렸다고 종로서가 무슨 곤란한 지경에 빠질리가 있나요? 완용이 전혀 모른다는 듯이 되레 반문하면서 사령관을 빤히 바라봤다. 네가 감싸고 도는 이유가 무슨 잘못을 감추기 위한 것이냐고 추궁하는 시선이었다.

그 집은 참의원 동생이 운영하는 화실이오. 나도 그곳을 알고 있고 화랑 주인과도 통하는 사이요. 괜히 벌집 쑤시지 말고 제대로 짚고 몽둥이를 휘두르시오. 하필 참의원 집이라니. 완용은 모른 척 한 발물어섰다. 아니 물러난 척 했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저도 그 사실을 아주 조금은 알고는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집니다. 금상을 받은 조선 여자가 감쪽 같이 사라졌어요. 그 아들도요. 아실 거예요. 태평양 전쟁 영웅 참의원 아들요. 부상 때문에 돌아왔는데 조선 여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어요.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의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와서 프랑스로 갔단 말입니다. 그래서요? 사령관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그게 무슨 압수수색할 만한 근거가 되는지 의아하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완용은 결정적인 근거를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집에 몽타주 인물이 드나든다는 첩보가 있소. 드나든다고요? 언제요, 지금요? 아닙니다. 과거의 일이예요. 한 달쯤 됐을 거요. 그 시기가 묘하게 겹친단 말입니다. 파리로 떠나고 나서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고요. 그 전에는 몇 차례 있었거든요. 그러니 휴의는 점례나 참의원 아들과 관련이 있고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떠나자 관련이 이제는 없어졌으니 그 집을 찾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길게 말하고 나서 고바야시는 분하다는 듯이 한 숨을 내쉬었다. 

몽타주 인물, 완용은 휴의라는 말 대신 몽타주 인물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면서 그 몽타주 인물과 조선여자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친 소리요. 설사 연관이 됐다고 한든 그 조선여자는 지금 프랑스에 가 있다면서요. 그래 프랑스까지 쫓아갈 작정이요. 아니요. 조선에서 무슨 꿍꿍이를 펼치는 휴의를 잡는데 그 조선 여자를 미끼로 삼자는 것이오. 어떻게? 편지를 쓰는 것이오. 조선으로 들어오도록 편지를 써야 하는데 삼촌을 이용하자는 것이지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 여자와 삼촌은 일 년 이상 화랑에서 같이 생활을 했어요. 사령관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후하게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러니 화랑 주인이 프랑스 주소를 알 것이고 편지를 쓴다면 돌아올 것이오. 돌아온 그녀는 필시 몽타주 인물과 연락을 취할 것이고 그 때 덮치자는 말입니다. 사령관은 대충 이해는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참의원 동생 집을 건드리는 것이 자신의 신상에 어떤 득실이 있을지 따져 들었다. 순간 귀찮아진 그는 그 일 때문에 자신과 상의하러 온 완용에게 갑자기 싫증을 냈다. 나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고 독단으로 해도 될 것을 왜 와서 귀찮게 하는지 화가 났던 것이다. 이 자가 나를 끌어들여. 물귀신 작선을 쓰는 구나. 

그래서? 이봐요, 종로서장. 그런 일은 서 단독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니요. 다른 일은 잘 알아서 하더니 왜 이 일에는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오? 사령관이 말하면서 벌떡 일어섰다. 완용도 따라 일어나면서 각하, 심려를 끼져 죄송합니다. 일단 꼬리를 내린 완용은 일전에 저에게 부탁하신 것도 있고 해서 보고할 겸 상의한 것입니다. 완용이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 집이 보통 집이 아니잖습니까? 경호도 할 겸 새로운 내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보고라는 말에 사령관은 자신이 서장보다 위에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표하면서 그 일은 알았어요. 일단 화랑 주인을 화나게 하지 마시고, 그 화가 나에게 미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난 뭐가 뭔지 모르겠오. 조선사람끼리 잘 해 보시오. 사령관이 한 마디 쏘아붙였다.  조선사람 끼리. 누구와 누구를 말하는갈. 하나는 나를 지칭하는 것인데 다른 하나는? 점례인가? 휴의인가? 완용은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불리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조선사람을 끄집을 내는 사령관이 저질스러웠다.

내선일체를 주장할 때는 언제고 조선사람이라고 얕보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완용은 자신의 출신 성분이 분했으나 그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각하, 저는 조선사람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는 부하를 향해 조선말로 거칠게 쏘아 붙였다. 야, 가자. 이것은 마치 사령관에게 하는 명령같았다. 완용은 부하를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안의 더운 열기가 밖의 시원한 기운과 맞서다가 이내 풀이 죽었다. 귓가에 찬바람이 횡, 하니 스쳐 지나갔다.

화가 났지만 완용은 자존심을 접었다. 안에서 지켜 보고 있을 사령관에게 손을 들어 뒤를 돌아보면서 거수 경례를 올려 붙였다. 그리고 신사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누구보다도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완용은 그랬다. 그는 그 순간 천황을 위해서 죽어도 한이 없다고 다짐했다. 그 모습을 본 사령관은 입맛을 다시면서 중얼거렸다.

종로서장이라는 놈은 우리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스럽단 말이야. 하여뜬 저놈은 조센징 중에서도 특이한 놈이야. 잘 써먹어야지. 가능하면 놈이 화랑을 압수수색 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내. 사령관은 두 발을 책상 위에 얹은 채로 담배를 꺼내 물고는 거만하게 연기를 품어냈다. 저 놈을 어떻게 이용해 먹어야 제대로 이용해 먹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없는 머리를 짜내면서 사령관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으나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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