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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자기만의 방(1929)- 강둑에 앉아서 생각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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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자기만의 방(1929)- 강둑에 앉아서 생각하는 여자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3.21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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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골똘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기 좋은 장소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그곳은 강둑이다. ‘여성과 픽션’에 대해 강연 요청을 받았으니 강연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어떤 식으로 할지 생각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곳을 찾았다.

날씨가 맑은 10월 어느 날이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울프는 생각에 잠긴 채 스물네 시간 계속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라고 자신이 있는 곳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앉아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이 되겠다.

그러나 작가가 생각하기에 사색의 결과물은 작고 하찮았다. 사려 깊은 어부라면 살이 더 붙어 요리해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도록 다시 물속에 넣어 줄 정도의 작은 물고기였으니. 이런 표현은 버지니아 울프식의 자기 겸손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도 그 나름의 신비로운 속성은 있기 마련이다. 갑자기 격정에 사로잡힌 울프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잔디밭을 가로질러 재빨리 걸어야 했다. 여기서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 따라온다. 감상해 보자.

“그 순간 웬 남자의 모습이 솟아올라 갑작스럽게 나를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으나 그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를 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를 도운 건 이성보다 본능이었다. 그 사람은 교구 관리였고 나는 여자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여자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 길로 걸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소파도 각자의 방도 가질 수 없고 그밖의 쾌적한 것을 갖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울프의 고심은 깊어간다.

이제 울프는 비난받아 마땅한 여성의 가난에 경멸을 터트리고 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우리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느냐는 것.

남자들이 일하고 있을 때 콧잔등에 분을 바르고 있었을까. 상점 유리를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몬테카를로에서 일광욕을 하면서 으스대고 있었을까.

질문에 대답은 아니올시다, 일 것이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했을 거라는 확신에 찬 의문이다. 집안일 등 온갖 일을 하면서 13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

경탄할 만한 담배와 술, 푹신한 안락의자, 기분 좋은 양탄자, 사치와 개인적 자유와 공간이 합쳐 빚어낸 세련됨과 온화한 품위에 대한 여자의 생각은 얼마나 비참한가.

가난과 부는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잠긴 문밖에 있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가. 한 성(남성) 의 안정과 번영, 다른 성(여성) 의 가난과 불안정을 생각할 때 작가는 마치 불가사의한 사회에 혼자 버려진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울프는 집에 돌아가서도 ‘여성과 픽션’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무력감에 빠져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림 속의 주인공은 육중한 몸에 턱살이 매우 늘어졌고 균형이라도 맞추듯이 눈이 매우 작은 남자였다.

이 남자는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열등성이라는 제목으로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X교수였다. 그 교수를 생각하면서 강가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울프는 저녁이 되어도 잠자리에 들기보다는 탐구와 생각을 계속했을 터.

▲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울프는 유사이래 계속 되온 여성의 역사에 대해 천착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남성이라면 누구나 노래와 소네트를 지었을 법한데 어떤 여성도 탁월한 문학작품을 단 한 줄도 쓰지 않은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선택한 신사와 결혼하기를 거절하는 딸을 방에 가두고 구타하여 내동댕이쳐도 여론은 전혀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고 아내에 대한 구타는 남성의 공인된 권리였고 상층이나 하층민이나 할 것 없이 수치심 없이 자행되는 그때.

그리고 셰익스피어에 등장하는 여성들이나 초서의 수상록의 여성들 역시 개성이나 성격이 결핍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여성인) 클레오파트라는 자기 나름의 행동방식이 있었고 맥베스 부인은 자기 의지가 있었고 로잘린드는 매력적인 소녀였는데도 여성은 왜?

남성만큼 위대하고 남성보다 위대한 여성이었으나 남성이 쓴 픽션 속에서만 여성은 그렇게 괜찮게 묘사될 뿐 현실에서는 여전히 구타당하고 내동댕이쳐졌다는 것이 울프의 판단이다.

상상에 있어서 여성은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나 현실에서는 전적으로 하찮은 존재라는 아주 기묘하고 복합적인 괴물이 바로 여자라는 것. 시에서는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고루 퍼져 있으나 역사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여성이라고 울프는 단언했다.

픽션에서는 왕과 정복자를 지배 하나 실제로는 그녀의 손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 신세로 여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철학자의 말이 쏟아져 나오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는 남편의 재산에 불과하다는 것.

자, 여기서 울프는 또 하나의 생각을 이어간다. 자기 생활을 글로 옮기는 법이 없고 일기도 거의 쓰지 않고 간혹 편지만 남기는 여성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과연 그녀들이 몇 살에 결혼하고 몇 명의 아이를 낳으며 살림살이는 어떻고 교육은 얼마나 받고 자기만의 방이 있는지, 이런 여성에게 셰익스피어의 재능이 주어진다고 한들 그 재능을 개발해서 써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솟는다.

셰익스피어의 누나( 가상으로 만들어냈다.)가 그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지 못하고 문법과 논리학을 접할 수 없는데 무슨 ‘햄릿’을 쓰고 ‘맥베스’를 지을 수 있겠는가.

십 대를 벗어나기 전에 양털 중개상의 아들과 결혼해 13명의 아들을 낳았겠지요, 울프는 이렇게 조소한다. 교육받지 못했고 종일 노동하며 노예처럼 살았다면 셰익스피어가 태어날 수 없었다는 것.

만약 천재 여성이 픽션을 그려 낸다면 마녀이거나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요술쟁이로 몰려 화형당했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몰렸을 거라고 울프는 여성으로 태어난 삶의 잔혹한 역사를 끄집어 내고 있다.

간혹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가 태어나기도 했지만, 울프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성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질과 정신이 받쳐줘야 온전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울프가 강둑에서 생각에 잠겨 내린 최종적 결론이다.

: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읽힌다. 읽다 보면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성에 의해 길들여 지고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힌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난 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는 기분은 묘하다.

‘어떤 답안지라도 검토하고 나면 학점과 상관없이 최고의 여성이라고 해도 최저의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용이나 ‘여성 존재의 본질은 남성에 의해 부양되고 남자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라는 문장에 이르면 여성으로 태어난 울프의 슬픔이 느껴진다.

하지만 소설가에게는 이런 병균이 더는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18세기 들어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써서 돈을 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은 십자군 전쟁이나 장미전쟁보다 역사적으로 더 중요하게 울프는 다룬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도 여성들의 글쓰기는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 등 특수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공동의 거실에서 작업하며 인습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음악가나 화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여성이 열등하기보다는 남성이 우월하기를 바라는 뿌리 깊은 복합적이고 불명료한 남성의 욕망, 여성은 자연이 빚어낸 바보가 아니라 교육이 빚어낸 어릿광대이고 우둔하리라고 예상되고 설계된 생물이며 슬프게도 펜을 든 여성은 주제넘은 동물로 간주 되고 교양 유행 춤 옷치장 유희, 이것이 여성들이 바라야 할 소양이라고 지금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쓰고 읽고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흐리게 하고 시간 낭비이며 한창때의 남성들의 정복욕을 방해하는데 머물까.

울프는 글을 쓸 때는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고 쓰면 치명적이니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서로 협력하라고 말한다. 위대한 작가의 이런 충고는 언제나 개안 수술을 받은 듯 세상을 훤하게 밝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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