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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각인형은 부서졌으나 대수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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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각인형은 부서졌으나 대수롭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3.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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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례는 어느 날 부터인가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의 대장 숙소에서 지냈다. 대장은 처음에는 밥을 해달라거나 세탁을 요구했다. 다른 것을 점례에게 말하지 않아 점례는 때로는 두려웠으나 이것도 처음이 어색했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졌다.

막사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활의 자유가 주어졌다. 겨우 틀안의 민들레만을 보고 지내는 생활이 아니었다. 안락한 숙소에서 점례는 멀리 보이는 바위와 나무들이 우거진 경치를 감상했다.

계절의 변화도 죽마을에서처럼 직접적으로 느꼈다. 나무잎이 자라면서 신록이 우거지는 봄과 여름을 보았다. 어느 날은 숙소를 나와 혼자 언덕을 올라 오기도 했다.

멀리 가지는 말라는 당부가 있어 점례는 대장이 손가락으로 알려준 그 지점까지 와서는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곳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자유이며 그래서 몸이 홀가분한 것을 느꼈다.

거기에 서면 자신이 있는 숙소와 시멘트 구조물 세개 동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검은 막사가 보였다. 누가 일부로 찾지 않거나 거기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외부에서 보면 안쪽은 전혀 보이지 않아 이런 곳에 군부대가 있으리라고는 알 수 없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시멘트 구조물 뒤에 있는 검은 막사를 점례는 애써 외면했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으므로 점례는 거기까기 시선이 닿으면 이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기가 나쁘거나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은 창밖으로 풍겯을 내다 보았다. 잠시 비가 그치면 멀리 가지 않는 대신 문을 열고 나와 몸을 반쯤 드러내기도 했다. 시선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군인들이 나가거나 들어오는 연병장이었다. 어느 날은 꽉차 있다가도 순식간에 텅비어 버리는 신기한 장소였다. 

거기를 보면 바람이 부는지 안 부는지 알 수 있었다. 모래 먼지가 산쪽으로 몰려가면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희뿌연 먼지가 없이 조용하면 바람도 쉬어가고 있구나, 생각하면 됐다. 점례는 간혹 이것은 꿈이구나 생각할 때가 있었다.

꿈처럼 잡혀왔다가 꿈처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연병장에 부는 바람처럼, 뿌연 연기처럼 혹은 강가에서 피어오르면 새벽 안개처럼 실체 없이 떠도는 가벼운 공기였다. 이런 공상을 하는 점례가 놀랄 때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열을 맞춰 연병장으로 달려 나올 때 였다. 

달려나온 그들은 훈련의 하나인지 어떤 계획인지를 짜기 위한 동작인지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모여섰다. 점례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뜨거운 불을  쬐기 위해 손을 앞으로 내 밀고 있는 한 무리의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어떤 공포를 느꼈다. 처음에는 그 실체를 알 수 없었으나 차츰 무리지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가 아니고 둘이 아니고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가 모여 있을 때 점례는 오금이 저렸다. 

무리지은 그들은 사나웠다. 지르는 소리도 움직이는 모습도 모두 위협적이었다. 점례는 그렇게 무서울 때면 밖을 보기보다는 안에서 기다렸다. 대장이 명령하면 병사들이 달려올때처럼 늘 긴장된 상태로 그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달려온 병사들은 전투에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서 어디론가 계속 무전을 쳤다. 종일 쉬지 않고 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그런 일을 했고 그 결과를 대장에게 보고했다.

대장은 그러면 그것을 다시 정리했다. 보고서는 많았으나 그가 보내는 전통은 길지 않고 짧았다. 아마도 본토로 보내는 작전명령이거나 작전에 대한 결과일 것이다. 이곳 전선의 상황은 시시각각 변했고 그의 전통도 수시로 바뀌었다.

유리한 것이 상부에 올라기도 했고 때로는 불리한 전황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는 어떤 경우든 표정을 바꾸지 않고 원래 상태인 얼굴로 새로운 지시를 내리거나 받아서 새로운 곳에 전달했다. 아마도 그는 매우 높은 직위의 대장인 것으로 보였다. 

이곳에서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곳에서 오는 전화나 전통에서도 모두 그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달고 있었다. 점례는 그의 직책이 도대체 어느 선도 선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어 보지 않았고 묻는 말에만 대답을 했다. 대장은 간혹 산을 떠나 만주에 직접 나가 삼 사일 동안 이상 돌아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가 외부로 나갈 때는 옷장에서 꺼낸 깔끔하게 다린 군복을 입었다.

날이 선 누런 군복에서 위엄과 권위가 느껴졌다. 위엄은 그가 사는 곳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장 집무실은 저 아래 연병장에 비해 다른 세상이었다. 과자나 과일 등 먹을 것도 풍부했고 군봇이나 군화 등은 언제나 새것으로 준비돼 있었다.

군용물품 뿐만 아니라 사제 물품도 있었다. 대장이 떠나고 나면 점례는 대장을 위해 일장기가 그려진 자수를 짰다. 비단에 수 놓는 자수는 보기에 좋았다. 떠나기 전 그는 점례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례는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 

비단천도 지난 번 시내에 나갔다 올 때 사온 것이다. 점례가 학이 그려진 자수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났는지 이것으로 뭐든 해봐, 하고 손에 든 것을 내밀었던 것이다. 자수를 짜던 모습을 유심히 보던 대장은 자신도 해보고 싶다고 바늘을 달라고 했다. 

이 정도는 해보지 않았느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일본 육사 시절에는 군복을 직접 꿰어 입었다고 자랑했다. 그 솜씨 어디가지 않고 여기 있을 거야. 그는 바늘 끝에 침을 묻히고는 비단의 붉은선을 따라 바늘을 꼽았다. 그도 휴의처럼 붉은 부분에 바느질을 했던 것이다. 

휴의가 학의 얼굴에 붉은 실을 넣을 때 장교는 일장기의 붉은 부분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작은 상처를 냈다. 검지에 피가 한 방울 이슬처럼 뭉쳐 있었다. 얼굴을 찡그린 그는 화난 표정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피가 나서 아팠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실수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있게 나섰다가 망신 당한 꼴이라고나 할까. 점례가 무릎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피나는 손을 쥐고 있는 대장의 손을 치우고는 입으로 나온 피를 빨았다. 시골에 있을 때 늘 하던 버릇이 나왔다. 엄마는 바느질 하다 찔리면 침으로 피를 닦아냈다. 그래야 상처도 아물고 빨리 낫는다고 했다.

대장은 그대로 있었다. 대장은 점례를 그런 식으로 신뢰했다. 욕구를 만족 시켰을 때 나오는 은근하고 아득한  표정이 얼굴 가득 배어나왔다. 그는 이제 됐다는 듯이 손을 빼고는 자수는 내 체질이 아니라고 일어섰다. 

대장은 이곳에 점례가 있는 것을 당연한 듯이 여겼다. 되레 너무 늦게 온 것을 질책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 좋은 장소에 점례를 두고 싶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자신의 침실과 사무실의 한쪽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말하자면 대장과 점례가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있는 곳도 충분히 좋다고 했다.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대장의 마음에 또 들었다. 행동이 점잖고 하는 말이 거슬리지 않았다. 그는 명령이라면서 그렇게 하라고 웃으며 말했다. 점례는 더는 거부하지 않았다. 

대장은 점례와 함께 생활하면서 도쿄의 집처럼 안도감을 느꼈다. 전쟁터가 아니라 평시에 사는 생활인 같은 편안함에 대장은 불쾌한 일에도 마음을 다잡았다.

점례는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았는데 이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처럼 상대의 마음속을 샅샅히 살피는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었다. 건축물로 말하자면 화강함처럼 기초가 튼튼했던 것이다. 이제 점례는 어떻게 자신을 단련시켜 나가야 하는지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체득했다.

대장이 만주 시내로 군용트럭을 타고 나갔다. 짚차를 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병사들이 필요한 지점으로 직접 시찰을 나가는 것 같았다. 점례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럴 때면 그녀는 그가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던 책을 읽었다. 소학교 때 배운 일본어는 이제 일고 쓰고 말하는데 불편이 없었다.

불과 세 달 만에 장교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일본어 책도 마음대로 읽는 수준이 됐다. 소세키가 쓴 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은 무척 재미가 있었다. 고양이가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말을 알아 듣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읽다가 죽마을 툇마루를 들락거렸던 검둥이를 생각했다. 온 몸이 검은 고양이는 어느 날 와서는 마치 제 집인듯이 생활했다. 아버지가 작대기로 내쫓아도 그뿐, 언제 그런 낭패를 당했느냐는 듯이 툇마루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고양이와 생활한 경험은 고양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됐다. 점례는 거기 나오는 주인공과 친구와 이웃간의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일고 또 읽고 쓰고 또 썼다. 그러면 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오월로 접어 들면서 맞은편 산에도 새싹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사방에 연두색과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의 이곳 저곳에서 야생화들이 피어났다. 숨막힐 지경이었다. 나무들은 사람이 아래서 해를 피하면서 쉬어도 좋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잎이 무성해 졌다.

점례는 창문을 열었다. 새로운 공기가 들어왔다. 연병장은 언제 보아도 넓었다. 이쪽에서 저쪽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끝에는 절벽처럼 산이 깎였고 그 바라 절벽아래에 시멘트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곳은 아지랑이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아득했다. 달려가면 금방 닿을 곳이 마치 멀고 먼 이국의 땅처럼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점례는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만주 시내가 펼쳐질까. 시내는 어떤 모습일까. 인파로 북적이는 만주 시내가 궁금했다. 

역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경성으로 가는 차도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마음이 이곳을 벗어나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에 갈 수 있을까.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례는 거울을 보았다. 여전히 앳된 얼굴이지만 눈가에는 너무 일찍 생긴 주름 같은 것이 보였다. 얼굴에 진짜 주름이 지기 전에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점례의 가슴은 뛰었다.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보다 막사 밖에서 들려오는 군가의 두려움보다 벗어라녀는 의지가 심장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다. 겨우 세 달이 지났을 뿐인데 그 세월은 너무 멀고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다. 

기적 같은 것이 일어날까. 자신을 고향 땅으로 실어 나를 구름이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좋겠다.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은 필경 멀리를 부를 것이다. 차 멀미와는 다를 것이다. 구름 속을 달려야 하니 몸도 아플 것이다. 그러나 멀미나 아픔 정도는 참을 수 있다.

구름에서 하는 구역질이라면 토사물 때문에 낭패를 당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토사물. 점례는 살풋이 웃었다. 누가 맞게 될까. 맞고 나서 냄새 때문에 인상이  치루려지는 누군가를 생각하자 점례는 웃지 않고는 배길수 없었다. 

제 정신이 돌아온 점례는 눈으로 문가를 쳐다봤다. 그 순간 점례는 아무 소용이 없는 쓸데 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약간의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구름을 타고 가는 것만큼이나. 

그러나 한 번 뛰기 시작한 가슴은 여간해서는 멈추지 않았다. 상상은 계속이어졌다. 좋다. 여기서 탈출한다손 치자. 그러면 그 이후는. 막사에서 보고 행한 것을 함께 가지고 갈 수 있을까. 가지고 가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나. 

점례는 괜한 생각을 후회하듯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봤다. 문제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고향은 여기 일을 모른다. 종일 낙원을 뛰어다녔는지 공장에서 예쁜 신을 만들었는지 지옥 불에서 허우적거렸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허욱적거리다가 어느 새 죽마을 대나무 밭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엄마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휴의였다. 그런데 휴의는 반가운 표정보다는 걱정스런 눈초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 일이 즐겁더냐.‘

점례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세워 그 중 제일 큰 대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말하지 않아도 몸에서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웃음에도 냄새가 있었다. 휴의는 따라서 올라오지 않았다. 점례는 고향땅도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 버려야 한다. 몸도 마음도.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어린 아이로. 이것으로도 안된다.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죽을 때까지 여기 있는 것이 낫다. 그러자 이곳 생활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은 대범하다. 언제까지 그럴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러니 도망칠 생각은 말자. 그러다 잡히면 살지 못할 것이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다.

체념하는 마음이 점례의 기분을 바꿔 놓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했어도 만주로 가는 대장을 볼 때면 다른 생각이 들었다.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기차역에 서성이는 자신의 모습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설마 휴의가 그렇게 물을까.

그녀는 고향에 가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돈을 어떻게 벌고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 아니면 만주나 상해도 좋고 그도 아니면 구라파라도 못갈 이유가 없다.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심연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우러나오고 있다. 점례는 당황했으나 거쳐야 할 관문이니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점례로 사는 힘을 얻었다. 대장이 준 선물로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생각은 정리됐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혼란스러워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까만 어둠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연병장의 부연 먼지처럼 뒤죽박죽된 것이 좀처럼 제자리를 차지 못했다. 나는 나고 나는 점례라는 사실만 변하지 않을 뿐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그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만주에서 그가 돌아왔다. 그는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라고 했다. 점례는 그가 시키는대로 했다.

내민 손에 무언가가 쥐어졌다. 코 끝으로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장미향인가, 들판의 라일락 꽃 향기인가. 눈을 뜨고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예쁜 포장이었다. 무겁지 않고 들을만큼 가벼웠다. 점례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풀면서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빨간 사탕이었다. 검은 초콜릿이었다. 장교가 눈짓을 주었다.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했다. 점례는 자신이 먹기 전에 하나를 장교의 입에 넣어 주었다. 장교는 그것을 빼서 점례에게 도로 주었다. 점례는 부끄러웠다.

그러나 몸 속은 따뜻한 기운이 흘러 나왔다. 다음으로 장교가 준 것은 옷칠이 된 액자였다. 액자 속에는 양복을 입은 늙은 부부가 점잖은 모습으로 점례를 바라고 보고 있었다.

'그 따위 목각인형은 잊고 이제는 부모님을 섬겨. 너도 나처럼.'

대장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점례는 액자 속의 사진을 보면서 뜨끔했다. 인형의 존재를 그가 알고 있었다니. 점례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무언가를 들킨 것 같은 미묘한 표정을 장교는 놓치지 않았다. 서랍을 열고 그는 부서진 나무 쪼가리를 들고 왔다. 점례가 그 모르게 서랍의 한 쪽 구석에 둔 것이었다.

‘이건 이제 버려. 부서진 것을 왜 애지중지 하니.’

그가 말하고 나서 점례의 의견도 묻지 않고 밖으로 던졌다. 그것이 날아가는 모습이 슬쩍 보였다.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장은 어려운 숙제를 마친 것 같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것이 빠져나갔으나 점례는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사탕 하나를 얼른 입에 물었다. 그까짓 부서진 목각인형 쯤이야, 이런 마음이었다.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깨어 물고는 아주 달다면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점례가 의식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체 한다고 여겼으나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만족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대장은 목각인형이 점례와 어떤 사연으로 얽혀 있는 것을 짐작하는 듯했으나 묻지 않았다. 장교가 한 발 다가왔다. 그리고는 검지 손을 세워 점례의 눈 앞에 갔다 댔다. 바늘로 찔린 상처가 아물었고 그것은 너 때문이니 고맙다는 표시였다.

점례는 미소 지었다. 그 일이 즐거웠느냐고? 휴의의 질문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니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니라고 고개를 젓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굳이 거짓말 할 이유가 점례에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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