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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를 더 먹으려다 점례는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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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를 더 먹으려다 점례는 그만 두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3.0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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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의 작은 공터에서 점례가 놀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흙을 손으로 잡았고 손톱으로 팠고 손가락을 갈퀴로 만들어 그러 모았다. 모은 그것을 한 곳에 쌓았다가 다시 평평하게 흩뿌렸다.

흙이 손에 만져질 때 점례는 마음이 진정됐다. 문을 열고 나오면 있는 작은 공터, 점례는 그곳이 좋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안과 밖은 종이 한장 차이였으나 삶과 죽음만큼이나 다른 공간이었다.

문안에서 죽었던 점례는 문밖에서 살아났다. 문밖에서 숨을 헐떡이던 고기가 죽기 직전 물을 만나 다시 헤엄치는 꼴이었다. 이곳이 없었다면 점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례는 조선 여자들과도 말동무가 됐다. 조선말로 서로 알아듣는다는 것이 위안이 됐다. 그러나 점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 온전한 자유를 느꼈다.

그래서 뒷문을 통해 들려오는 왁자한 소리가 나면 일부러 방안에서 웅크리고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때를 놓치기도 했지만 일부러 소리를 찾아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다른 소녀들은 밖에 오래 있지 않았다.

대개는 잠깐 나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잠잠해 지면 점례는 슬며시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으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 온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혼자 있으면 살 만한 용기가 생긴다. 민들레는 지고 또 피어났다. 한 뿌리에서 난 것이 여러번에 걸쳐 피었다 졌다를 반복했다. 녀석들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점례는 동그란 원형의 씨가 모여 있는 줄기를 조심스럽게 손톱끝으로 잘랐다. 줄기에서 피 같은 흰 즙이 흘러나왔다. 점례는 그것이 매우 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에 묻은 그것을 옷에 씻지 않고 언제나 입으로 핥았다. 인상을 쓰면서도 그렇게 한 것은 그 맛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씁쓸한 맛은 언제나 고향을 떠올렸다. 두번 다시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지만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었다.

고향에 있을 때 점례는 곧장 민들레 줄기를 꺾었고 하얀 즙이 손에 묻기 전에 혀를 대고 그것을 핥았다. 쓰면서도 달콤한 그 맛을 여기서도 맛보고 있다. 한 번 그러고 나면 그날은 더는 맛을 보지 않고 뭉친 씨앗이 잘 날아 갈 수 있도록 바람 부는 쪽으로 불었다.

입을 한껏 오므리고 바람에 실려보낼 때 점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날아가는 것을 눈으로 좇으면서 나도 씨앗처럼 가볍게 날아가고 싶었다. 어떤 날 홀씨는 멀리 날아갔다.

어떤 것은 얼마나 멀리 날았는제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도 홀씨에 얹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홀씨는 가뿐하게 그녀를 태웠고 비상했다.

발아래 떨어져 내리지 않고 멀리멀리 날아 갈 때 그녀는 지금쯤 백두산 천지를 넘고 있겠지, 벌써 경성역이 내려다 보이네 하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죽마을이네.

고향에 왔어. 내가 고향땅에 도착한 것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대나무였다. 어른 팔뚝만한 대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잘왔다고 반갑게 인사했다. 너도나도 그렇게 하자 사각거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점례네 집은 죽마을에서도 대나무가 제일 많았다. 집 뒤는 대나무가 너무 많아 숲이 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대나무는 소나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소나무는 대나무와 달라 사각 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았으나 붉은 눈물을 흘리며 점례를 받아들였다.

고생했어, 점례야.

점례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대밭에서 불어오는 파도 소리와 진한 솔향에 그만 감정이 복받쳤던 것이다.

다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옆방 문이 열리고 조선 여자 둘이 다시 공터로 나왔다. 점례는 정신을 차렸다. 운 흔적은 빨리 지워졌다. 소녀들은 점례를 무시하고 자기들 끼리 뭐라고 속닥거렸다.

점례는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언젠가는 이것도 끝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를 악물고 참아도 봤고 저항도 했고 몸져 눕기도 했다.

식음을 전폐하면서 상황 반전을 노려도 봤다. 허사였다.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이곳 만주 일본군 막사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놓아버려야 할 때다. 더는 사는 것은 구차한 것이다. 자신은 민들레가 아니었다. 밟혀도 뿌리뻗는 민들레가 아닌 사람이었다.

점례는 그러기에 앞서 고향을 한 번 더 여행했다. 부모와 마을과 휴의와 여순 과 완용을 떠올렸다. 그들과 인사를 하고 작별을 했다. 할 것은 했다. 미련은 없다.

그녀는 포성이 울리는 야밤을 틈타 고향에서 가져온 보자기를 가슴에 안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간혹 먼 하늘에서 포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번쩍하고 빛이 보였다.

그 순간을 이용해 점례는 한 발 씩 길을 익혔다. 철조망 틈새는 여전히 벌어져 있었다. 연병장을 지나 초소 앞에 다다랐다. 점례는 떨지 않았다. 죽기 밖에 더 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대담하게 그녀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사람이 겨우 하나 지나갈 정도로 작은 초소 옆으로 길이 하나 나 있었다. 개구멍을 이용하는 병사들이 그곳을 통과하듯이 점례는 그렇게 거기를 빠져나왔다.

어디로 간다는 목적지는 없었다.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거기가 끝이구나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만주는 넓으니 끝은 쉬이 나타나지 않겠지만 끝이 없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점례는 초소 옆을 지나 군용차량이 지나는 큰 길로 나섰다. 그 때 뒤쪽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렸고 등에 무언가 꾹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발각된 것이다.

어디로 가니? 너.

점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알 이유가 없었고 내가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꾹 찌른 곳을 그냥 총으로 뻥하고 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초병은 그러지 않고 다가와 그녀를 잡아 세웠다.

총구가 이번에는 가슴을 찔렀다. 옷 위로 차디찬 금속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가려는 동작을 취했다. 초병은 그녀를 한 손으로 잡고 초소 안으로 끌고갔다.

저항할 수 없었던 점례는 끌려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초소안은 포근했다. 밖의 조금 쌀쌀한 기운과는 달랐다. 점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콧 수염이 긴 일본인 장교에 마주쳤다.

그는 짜증난 표정이었다. 할 일은 많은데 풀리지 않고 뭔가 그래도 해야 하는데 방해꾼이 나타난 것이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데 왜 여기에 왔느냐고 힐난하는 눈초리였다. 그러나 아프께 찌르는 눈과는 달리 어떤 동정심 같은 것이 슬쩍 지나쳐갔다. 

장교는 잠시 점례를 보고는 초병에게 지시했다. 다시 막사로 데려가라고. 좀심해서. 한 시간 후 점례는 다시 막사로 잡혀왔다. 탈출은 실패로 끝났다. 초병은 그녀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손에 든 봉지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장교가 준 일본 과자였다. 그녀는 울먹이는 얼굴로 보자기를 끌렀다. 그리고는 집에서 가져온 자수를 어루만졌다. 두 마리 학이 서로를 보면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휴의가 자신도 해보겠다며 어설프게 바느질 한 곳이 눈에 띄었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녀는 보자기를 새끼줄 꼬듯이 꼬았다. 그리고 치마를 엮어 길게 늘였다.

그녀는 그것을 막사의 천장 기둥에 걸었다. 이만하면 됐지. 그녀는 줄을 잡아 당겨보았다. 단단하구나. 점례는 자신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를 냈다.

단단하다고.

그 말을 하는 입술위로 짠내가 스며들었다. 눈물이라는 것은 끝이 없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 군인들처럼 없어졌다 생겨났다를 무한 반복했다. 날카로운 바늘로 눈물이 나오는 그곳을 꾹 찔러 버리고 싶었다.

늘어진 보따리 줄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토담에 몸통을 대고 고개만 흔드는 커다란 먹구렁이처럼 음산한 냄새를 풍겼다. 마지막이다. 이 순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러기 전에 점례는 지금의 점례와 한 달 전의 점례를 떠올렸다. 매우 낯설었다. 돈을 벌어 오겠다는 우쭐함으로 한때 들떴던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 성숙해 져서, 어른이 돼서 돌아오겠다는 다짐은 없었다. 모든 것이 하찮았고 부질없었다. 열아홉 점례는 엮은 줄을 들어 올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과자 봉지가 보였다. 그녀는 잡은 줄을 풀었다. 그리고 앉아서 과자봉지를 잡았다.

과자. 그래 먹자.

점례는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고 맛있었다. 생전 처음 맛본 것이었다. 어쩜 이렇게 맛있지? 점례는 한 개를 더 먹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개 였다. 점례는 하나를 더 뜯으려다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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