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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사람의 마음속을 할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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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사람의 마음속을 할퀴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3.0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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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고양이는 개와는 다르다. 걷는 모습을 보면 그 우아함에 한동안 넋을 잃는다. 개가 사람처럼 터덜거린다면 고양이는 신선의 그것과 아주 닮았다.

과연 고양이과 동물의 대표, 고양이의 보행이다. 그래서인지 애견과 애묘는 닮은 듯 다르다. 한편 메이지 유신 시대 아는 것이 많은 지식인 구샤미는 고양이를 키운다.

대개의 고양이는 인간의 도움없이 스스로 살아가지만 키운다고 한 것은 간혹 먹이도 주고 없으면 어디 갔나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느니 구박도 하지만 학대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기분이 좋으면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먹다남은 생선뼈도 던져주니 고양이 한테 구샤미는 인간의 전형은 아니어도 나쁜 인간 축에는 들지 않는다.

구샤미 집에 사는 아니 정확히는 얹혀사는 이 집의 주인공 고양이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바쁠 일이 없다. 그래서 느긋하게 낮잠도 자고 어슬렁 거리면서 주변을 살피고 가끔 사람들이 사는 행태를 관찰한다.

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는 다르다. 사람의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알아 듣는 신묘한 고양이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물론 듣는 사람의 감정까지도 알아챈다.

구샤미가 화가 나면 좀 피해 있고 기분이 좋다 싶으면 비스듬히 기대고서 그르렁거린다. 이런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쨌든 나 주인공 고양이는 구샤미는 물론 구샤미 집에 들락 거리는 인간들의 지식과 성품과 말투를 꼬집고 풍자한다.

마치 인간 평론가처럼 말이다. 자칭 미학자 메이테이는 주인공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다. 허풍선이에다 거짓말을 밥먹는 것보다 더 잘하고 지나칠 정도로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 소세키는 인간 군상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고양이의 눈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 소세키는 인간 군상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고양이의 눈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이런 인물과 구샤미가 어울리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가 빠지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물리학자 간게쓰 역시 없으면 아쉬울 인물이다.

그는 목을 매어 자살하는 역학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강의를 하고 옆집의 사업가 딸과 결혼하기 위해 개구리 눈알의 전동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이라는 무시무시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유리알을 가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 주인 구샤미가 되겠다. 구샤미 이 인간, 이뻐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미워할수도 없다.

위장이 나빠 온갖 좋다는 소문을 따라 시행하지만 금세 식어버리고 또 새로운 시도를 밥멉듯이 한다. (그래도 책이 다 끝날 때까지 나았다는 기색은 없다.)

아는 것은 많으니 불평도 많고 사람도 의심하고 그래서 사람 사귀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공부를 취미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새 배개에 침을 흘리고 코를 고니 학업에도 그다지 진전이 없다.

우유부단하고 냉소적이며 때로는 천하태평하니 세상의 이치에 달관한 것처럼 행세한다. 보기에 딱하나 내가 그를 어떻게 뜯어 고칠 수는 없다.

영어 선생으로 딱 맞는 그 수준이다.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하녀 오상 등이 등장하지만 구샤미의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

내가 이렇게 사람을 평가할 정도이니 나보고 쥐를 잡으라고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말이 안 되니 나는 쥐 따위는 잡지 않는 고양이다. 쥐를 잡지 않는 고양이, 말이 된다.

자유롭게 어느집이든 어디든 가는 고양이 눈으로 보는 인간 세상의 요지경이 궁금하지 않는가.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은 제멋대로 행세한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는 고양의 평가에 과연 자유스러운 인간이 몇 명이나 될까.

재물이나 권세에는 달관한 지식인 흉내를 내는 듯이 보이지만 속내는 다른 사람과 다를바 없는 인간 군상들. 초조하고 불안하고 더 큰 욕망을 추구하는 동물의 본능을 벗어나는 못하는 인간들.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는 표현은 구샤미는 물론 메이테이나 간케스와 나 고양이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다. 

과거 일본 사람들 아니 현대 일본인의 의식이 궁금하다면 근대 일본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 나스메 소세키의 첫 작품이면서 출세작인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나는 절대로 쥐를 잡지 않는다고 앞서 말했다. 대신 사마귀를 잡는다. 매미를 공격한다.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운동삼아 놀이로 하는 것이다.

그런 사냥본능조차 없다면 고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이내 시들해진다. 인간의 고상한 취미를 관찰하는 고양이가 기껏 본능에만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연애는 한다. 그러나 간게쓰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까지 환심을 사려던 사업가 딸과 깨진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연애는 성공하지 못한다.

변심이나 양다리 걸치기 같은 인간사의 시시껄렁함이 고양이 세계에서도 재연된 것은 아니다. 다만 몸이 아픈 애인이 어느 날 죽었기 때문이다.

이후 고양이는 여자 고양이에는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 마침내 세상사가 시들해졌음을 느낀다. 인간의 맥주를 먹고 인간처럼 취한다. 취중에 나는 사는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찬양한다.

좀 서둘러 종결됐다는 느낌이 든다. 이 무렵 소세키는 작품에서도 이런 종류의 책이 과거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세간에서는 표절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을 만했다.

그것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것이 후에 인정됐지만 그는 이미 책 한권 분량을 마친 상태이니 손가락질을 받느니 이제 그만둬야 할때라고 판단한 듯 마침표를 찍는다.

복어를 먹고 중독이 되면 '조선인삼'을 먹으라는 말이 나온다. 그 장면을 읽을 때 묘한 감정이 든다. 을사늑약이 이뤄진 1905년에 책의 첫 연재가 시작됐다.

러일 전쟁이 벌어졌을 당시이니 고양이 단체를 조직해 러시아 병정을 할퀴고 싶다는 둥 여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사형당한 장소.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도 이곳에서 순국했다.)이 함락돼 도쿄 시내가 북새통이라는 등의 표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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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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