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29 00:50 (금)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무리 가운데서 들렸다
상태바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무리 가운데서 들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2.20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휴의는 동휴가 일제 영사관과 접촉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더구나 용희를 만난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그러나 사전에 알았다고 해서 작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나 모르게 그런 일이 있었군.

이 정도의 소회는 남겼겠지만.

휴의는 치고 빠지는 전술을 택한 것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동휴라면 이쪽 사정도 훤히 알고 있었고 당한 경험 때문에 압록강의 약산부대처럼 대규모로 한꺼번에 밀고 내려갈 수 없었다.

더구나 작전은 애초 일정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보름 정도 늦춰졌다. 그것도 작전을 변경하지 하나의 이유였다. 디데이가 자꾸 뒤로 밀리면서 휴의는 단타전으로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데 화가났고 화를 식히기 위해서는 출동을 계속 미룰수가 없었다. 경마장의 말처럼 금방 이라도 달려 나갈듯이 준비를 끝낸 병사들이 콧김만 쐬다 제풀에 지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했다.

휴의를 돌보던 박군은 한 달 후에나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몸 안의 염증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섣불리 나섰다가 재발하면 다리를 잘라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사실 휴의도 부어오른 오른쪽 다리로는 돌격 앞으로는 커녕 제대로 달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기가 내리려면 기다리는 것이 약이다. 그래서 적당히 합의한 것이 보름 후였다.

그 시간을 휴의는 그대로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그사이 작전을 세밀하게 구성했고 특별히 추려 뽑은 30여 명을 따로 훈련 시켰다. 근거리 조준사격과 수류탄 공격이었다.

어부로 변장한 일단의 병사들이 적의 대비를 점검하는 동시에 일시에 타격을 가해 혼란 속으로 적진을 몰아넣기 위해서였다. 어선 다섯 척을 섭외해서 한 배에 여섯 명씩을 태웠다.

그들은 배 위에서 어구를 손질하는 척하다 도강을 하고 도강 후에는 강바닥에 그물을 펴 놓는다. 일부는 찢어진 그물을 손질하고 또 일부는 다른 용무가 있는 것처럼 남하해서 매복 진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는 봄 숭어가 꾸러미에 들려 있었다. 다른 용무는 숭어를 파는 일이었다. 막 대동강이 물이 풀리면서 서해서 올라온 봄 숭어는 크기가 어른 팔둑만했다.

살아서 팔딱거리는 놈도 있었다. 죽은 놈도 눈이 상하기는 커녕 살아서 뜨고 있는 것처럼 탱글거렸다. 아군이나 적군이나 군침이 돌기는 마찬가지였다.

군인 아자씨들, 이것 좀 하나 사주시오.

두 패로 나눈 위장 독립군들이 양손에 하나씩 고기를 들고 장사에 나섰다.

아주 싸게 드려요. 봄 숭어요, 봄 숭어.

교통호 안에서 나른한 오후를 즐기던 조선 출신 일본군들은 봄숭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나는 쪽을 향해 몸통을 드러냈다.

그러고들 있지 마시고 이리들 나와 보시오.

한두 명이 호기심에 나왔다. 그들은 진짜 숭어가 자기들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주머니를 뒤적였으나 사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괜히 흉내를 내면서 있는 척하고 일부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

거저라고 해도 그 가격으로는 안 됩니다, 군인 아자씨들.

기분이 상한 어떤 자는 노리쇠를 후퇴 전진하면서 빈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도 했다. 깜짝 놀란 위장군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안 사면 될 것을 왜 이리 헛총질까지 하시오.

하고 나무랐으나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헛방을 쏜 그들은 미안했던지 다시 참호속으로 들어갔다. 그중 상관인 듯한 자가 목을 길게 빼고는 여기는 장사하는 곳이 아니니 저쪽으로 가라로 손가락질했다.

꺼져, 어서 꺼지라고, 불 맛을 보기전에.

너무 그러지 마시오. 가난한 어부를 생각한다면. 

그러자 손가락질을 하던 그가 고향을 묻기도 하고 자신은 경기도 출신이라고 떠벌이기도 했다. 어부를 상대로 굳이 사납게 군 것이 후회되기도 했던 것이다. 

동휴가 빠진 일제는 이처럼 군기라고 까지 할것도 없이 형편없었다. 아무리 급조했다손 치더라도 해도 이쪽에서 보기에도 너무 했다. 이런 자들이라면 식은 죽 먹기로 돌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총기와 기관총은 사뭇 달랐다. 입은 옷도 부러웠다. 깨끗하게 다림질 된 것이 제법 옷맵시까지 있었다. 그 차림으로 거치된 기관총을 잡고 있는 모습은 부러웠다.

그래서 자신들이 입은 헤진 흰옷을 내려다 보면서 나도 여기서 일본군이나 할 까 이렇게 생각하는 위장군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은 독립군도 있었다.

잘 닦아 반질거리는 기관총에는 총알이 탄띠에 매달려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위장군은 그런 무기가 탐났다. 저것들을 작살내기 전에 손에 넣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차후의 일이다. 일단 수류탄을 던져 넣고 뒤로 빠진 다음 죽는 줄도 모르고 대드는 자들을 저격하는 일이다. 횡렬로 늘어서 숭어 수작을 부리던 위장군이 서로 눈인사를 하면서 참호에서 서너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수류탄을 정확히 던져 넣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달아날 수 있는 거리를 확인했다. 그들이 모두 작전에 성공한다고 해도 살아 무사히 살아올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참호의 길이만 일 킬로 미터가 넘을 정도로 길었기 때문이다. 삼 십 명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수류탄 공격을 받지 않은 나머지 참호에서 일제 사격이 가해지면 상당수는 목숨을 잃을 게 뻔하다.

대장인 자가 공격신호를 머뭇거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공격하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 이런 상황을 예기치 못했기 때문에 대장은 공격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수류탄 수십 개가 일제히 터졌다. 굉음이 울리고 잠시 후 참호 밖으로 흙과 피와 살점들이 튀어 나왔다. 던지고 등을 보이면서 내달리던 위장 독립군들은 신속하게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다.

아직은 적의 유효 사거리 안에 있어 무작정 도주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적들은 어중이 떠중이 답게 마구 총질을 해댔다. 그러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중 서너 발은 독립군을 타격했다.

바로 죽지 않은 독립군은 비명을 질렀고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두만강 일대는 총소리와 비명소리로 흐르는 물소리는 잦아 들었다. 까마귀들이 놀라서 시끄럽게 짖고 아직 떠나지 못한 철새들은 황급히 날아 올랐다.

적들 가운데 용감한 자는 참호 밖으로 나왔다. 손을 집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는 자들은 엄폐한 독립군의 좋은 표적이 됐다. 그들은 나오려다 말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앞서 나가려는 자들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들처럼 하려고 했던 나머지는 고개를 숙이고 마구 하늘을 향해 헛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때가 탈출의 기회였다. 대장은 후퇴를 명령했다.

말보다 발이 빨랐다. 최대한 도주해 대기하고 있는 배를 타고 도강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인지 본능이 시켜서 인지 독립군들은 평소 자신의 실력보다 더 빠르게 달리기 기록을 경신하면서 배에 올라탔다.

배에 오른 그들은 권총 대신 사거리가 긴 소총으로 표적을 바꾸고는 뒤늦게 함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일본군에게 조준 사격했다. 일부가 쓰러졌다. 일부는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다 다시 쓰러졌다. 뱃사공은 실력을 발휘했다.

노를 젓는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기 움직였고 물살을 탄 어선은 순식간에 강 건너에 도착했다. 그들은 미리 파논 땅속으로 숨어들어가 숨을 돌렸다.

적들 역시 강을 건너 추격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참호 속으로 들어가 고개를 숙였다. 상하이를 떠난 동휴가 막 두만강변에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끝난 뒤였다.

독립군들은 각자 역할을 마치고 무사히 귀대에 성공했다. 그러나 작전에 여섯 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적들은 그 열배도 넘는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위치를 탄로시켰다.

어디에 어떤 식으로 숨어 있는지 알고 있는 아군과 그러지 못한 적은 전투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참호로 돌아온 동휴는 처참하게 깨진 자신의 부대를 긁어 모았다.

그리고는 경계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부상당해 어차피 쓸모없은 초급 장교 하나를 즉결 처형했다. 처형을 당한다면 자신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떠난 후 총 책임진 자가 마땅하나 자신은 물론 그자들은 죽은 자를 욕했다.

동휴는 자신의 전투력과 부대장의 살아있는 전투력을 높이샀다.  병력 하나가 아쉬운 동휴는 그런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나머지 병력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짰다.

휴의의 군대는 생각보다 강했다. 물론 병력 전부가 도주한 자들만큼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닐테지만 저 정도 전투력이면 겁이 났다. 그는 각 소대장을 중대장 대대장을 집결시킨 후 두번의 실패는 없다고 소리질렀다.

우리에게는 적에게 없는 압도적인 무기가 있다. 이걸로 적들을 섬멸하자.

구호라고 할 만큼 큰 소리로 연설을 마친 그가 조금은 차분한 소리로 상하이에서 가지고 온 소식을 전했다. 다 자기가 오면서 말하리라고 짠 시나리오였다.

만주는 물론 중국 전역이 우리의 손에 곧 들어온다. 미군은 물러나고 영국도 태평양에서 손을 뗀다. 승리가 곧 눈앞이다. 소련과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다.

상하이 일본 영사관에 따르면 소련은 결코 연합군과 손을 잡지 않는다.

어때? 승리는 우리 것이지. 이만하면.

그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장교들에게 마치 승전보를 알리는 연대장 같은 위엄을 보였다.

그건 그렇고. 조선 독립군 찌끄러기들이 다녀갔나?

대대장에게 그는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면서 물었다.

기습공격이었습니다. 경계는 철저히 했으나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그는 기습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기습이라? 그럼 우리도 기습으로 맞서야지.

점심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던 차였습니다. 밤새 침투훈련을 했거든요. 그런데 저쪽에서 어부들 수 십명이 배에서 내려 어구를 손질했어요. 배운데로 바로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그자들이 바구니에 봄 숭어를 담더니 하나씩 진지 앞으로 왔어요. 팔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샀어. 사서 구워 먹었어?

동휴가 입술에 묻은 침을 닦았다.

아닙니다. 부대내에서 상행위는 절대 엄금이지요. 산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부들은 하나도 팔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기특하군. 잘했다. 잘했어. 바가지 쓰지 않았단 말이지. 다 좋아 좋다고. 그런데 말이야.

동휴가 침을 바닥에 탁하고 소리나게 뱉었다.

안 산 건 좋은데 빼앗을 생각은 안했나? 사지 말라고 했지 뺏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미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봄 숭어를 가지고 그냥 가는데 그냥 가라고 내버려 뒀단 말이지. 참 신사다. 신사야, 조선 사람들은 예의가 발라. 역시 조상을 잘 만났단 말이야. 그럼 조심이라고 했어야지.

동휴가 버럭 고함을 치면서 대대장의 조인트를 갈겼다.

아야, 아파.

기습은 이렇게 하는 거지. 알아 안다고. 이렇게 기습을 하면 막기가 힘들지. 그래도 그렇지. 겨우 여섯 명 죽이고 우리는 열 배가 넘는 130명이 죽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지.

대대장은 벌벌 떨었다. 자신이 즉결처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말은 달리 나왔다.

엄한 군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알고는 있네.

그 시점이 지금이지.

죽여 주십시오.

그가 무릎을 꿇었다. 놀란 부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동휴는 일본도를 만지작거렸다. 꺼내서 벨 것인지 말 것인지를 망설이는 태도였다.

권총도 아깝다 아까워.

도열한 무리 중간 중간에서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