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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그를 보고 동휴는 직위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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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그를 보고 동휴는 직위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2.16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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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사관은 동휴의 방문을 환영했다. 조선에서부터 사전 연락은 없었으나 상하이에 도착한 즉시 받은 전통을 통해 동휴의 방문이 어쩌면 독립군을 일망타진할 수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희망이 의심스러워져 갈 무렵 나타난 동휴의 방문은 다시 희망의 끈을 조이게 했다. 조선 최고의 독립군 토벌대장이 왔으니 뭔가 색다른 계책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동휴는 공격보다는 방어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고 영사관은 이쯤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종로서장은 두만강에 방어선을 치고 대기하겠다는 것이 작전의 전부란 말이요?

하야시는 짜증을 냈다.

내 말을 다 들어 보시오. 지금 상황은 마냥 즐기기만 할 때가 아니란 말이오. 조선내에서도 여기저기 준동 세력이 활개 치고 있고 상하이 사단 병력이 출동을 대기 중에 있다는 것은 하야시 선생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일부는 벌써 압록강을 넘었고 사상자 다수가 발생했어요. 나머지 사단이 두만강을 넘어 남진을 하면서 두 세력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 민심은 크게 요동칠 것이오.

일망타진은 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세력을 감당하기 어렵단 말입니다. 내 말은.

동휴는 하야시의 표정을 살폈다. 작은 눈이 뱀처럼 미동도 없이 고정된채 동휴를 노려봤다.

내 말은, 동휴는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머리를 치자는 것이오. 뱀의 다리를 밟은 들 무슨 소용 있느냐고요. 그는 다른 표현을 쓰려다 하야시의 눈이 뱀눈을 닮았다는 즉흥적인 생각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 대가리는 잘 알다시피 임정의 수뇌부요, 나아가서는 도강한 약산이며 곧 도강을 획책하는 휴의 일당입니다. 이런 소문은 금새 조선 총독부에도 들어갑니다. 일단 함경도 쪽은 더이상 후퇴는 없는 모양입니다. 일본 경찰이 잘 방어하고 있어요. 내가 후속 조치는 해 놓고 왔던 덕분입니다.

하야시가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조사도 끝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조선 형사가 그의 눈에 가시처럼 박혔다.

병력 일부를 급히 그쪽으로 빼낸 것은 신의 한 수였소.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덕술이라는 유명한 형사를 잃은 것은 손실이지만 일단 평양은 잘 버티고 있어요.

하야시는 입맛을 다셨다.

버티다니요?

이거 어디서 써먹는 수작이야. 그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그러나 꾹 참았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정보를 얻고 작전을 짜는 것이 중요했다. 더구나 이 자가 상하이 사정을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은근히 떠 보았다.

휴의라는 자가 동향이라면서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물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내가 만약 하야시 선생이 알고 있는 내용을 질문이라고 한다면 기분이 상하겠지요?

동휴는 고삐를 잡았다는 듯이 놓지 않고 말했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때가 아니오.

난처한 표정으로 하야시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한때 잡았으나 탈출했고요. 그때 죽이지 못한 우환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그 때 죽였어야지...

이때다 싶어 하야시는 동휴에게 휴의 탈출의 책임을 묻고 있었다.

아니 그게 어디 내 책임이라는 말이요?

따지듯이 동휴가 대들었다.

자, 지난 일은 그만둡시다. 앞으로가 중요하니. 그나저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지 왜 여기 온거요? 전통으로 하던지 아니면 급전을 치면 될 것을.

하야시는 그가 온 사이 휴의가 두만강을 돌파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당신이 져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동휴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휴의가 총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고 그 병원에서 탈출한 것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는 투로 받았다. 하야시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사정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었다.

밀정이 없다면 어떻게 심각한 부상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 까요? 상하이 영사관은 도대체 무엇을 했지요?

이번에는 공격의 순서가 바뀌었다. 하야시가 큰기침을 했다.

따지러 온 거요? 영사관을 무시하는 거요? 

그게 아니고요. 내 말은 왜 감시를 게을리했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요?

하야시는 조센징이라는 말이 입 끝에 왔으나 종로서장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 가래침을 탁하고 뱉었다.

이거 이런 식이면 곤란해요.

내가 말할까요? 내 상관인 것처럼 행동하니 말 하지요. 뭘 모르시나 본데. 병원장 말에 따르면 아마 말수라고 하지요. 병원장은 총상 세 발이면 오늘 밤 죽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탈출은 불가능하고요. 그날 바로 놈들의 습격이 있었어요. 병원장과 부부를 묶어 놓고 트럭을 이용해 침대채 통채로 들고 달아났어요. 의사까지 권총으로 협박하고.

하야시는 이런 상태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 했어야 했는지 해답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생각은 안했어요? 침입자들과 병원장 부부가 내통했다는.

무슨 소리요?

내통했다면 묶어 놓고 위협했겠소.

그 말을 하고는 하야시는 아차 싶었는지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나 머리를 굴려 바로 반격에 나섰다.

내통했다고 손 치더라도 환자가 죽는 내통이 성공한 내통은 아니지 않소. 얼굴은 퉁퉁 부어 마치 익사한 시체와 같았고 종아리 관통상으로 칭칭 동여맨 다리는 내 허리통 보다 컸단 말이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시체가 탈출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소.

그런 자가 탈출한 것이 사실입니다. 살아서 한 달도 못돼 회복하고는 병력을 이끌고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이오.

동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동휴에게 있다는 듯이 말하는 하야시가 아니꼬왔다.

휴의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 자는 불사조 같은 자요. 나에게 체포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승부를 걸려고 여기에 온 것이고요. 나도 시간이 없어요. 병원으로 나를 좀 아내 하시오.

동휴가 하야시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병원은... 왜? 어디 아파요? 별 할 일 없는 사람 다 보겠다는 듯이 하야시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병원장 부부를 만나려고요.

아참, 그들은 조센징이지요?

하야시가 조센징에 힘을 주면서 동휴를 노려봤다. 내선일체라면서 그런 말을 쓰면 안 됩니다. 더구나 병원장 부부는 영사관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나카무라 대장을 살렸고요. 그 공로로 덴노의 훈장까지 받았어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동족이고 동향이라고 편들기요?

의심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요. 내통 가능성이 있어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휴의가 어디에 있고 언제 출동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하야시는 이 자가 소문대로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갑시다. 가서 나도 묻고 싶은 것을 묻고.

차 안에서 둘은 영사관의 싸늘한 분위기 대신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가 그래야 이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하야시는 이 기회에 병원장과 더 친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도쿄로 병원을 이전한다는 소식도 있었고 이전에는 영사관이 협조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미래를 생각하면 병원장 부부와 인간적으로 친해져서 나쁠 것이 없다. 유능한 의사를 아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 은퇴해서도 일자리 정도는 하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휴는 하야시와는 다른 생각에 빠졌다. 일단 말수에게 집중하자. 용희가 알거나 내가 먼저 아는 체해도 상관 없지만 일단 용희는 뒷전이다. 6년 만에 만나는 일정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용희가 어떤 내력으로 의사가 됐는지 나는 모르지만 용희는 잘 알 것이다. 좋든 싫든 지금의 용희는 나와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해도 말이다.

내 목적은 용희를 보는 것이 아니다. 과거 한때를 추억하거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휴의를 잡는 것에 집중하자. 어떻게 말수를 꼬드길까.

그가 밀정이라면 시간이 촉박하다. 차라리 용희에게 기대볼까. 감정에 호소하면 어떨까. 아니 될 말이다. 그는 나보다는 휴의 편이 틀림없다. 내가 휴의를 체포하는데 용희가 협조할 리 만무하다.

들이밀고 보자. 그러다 보면 무슨 수가 나오겠지. 나오지 않더라도 생전에 용희를 보고 말수라는 자도 본다면 내 인생도 훨씬 더 풍부해질 거야. 인생이 풍부해진다는 생각은 말수를 잠시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말수는 갑자기 일제 고등계 형사의 신분을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악마라고 할지라도 일 년에 한 십 분쯤은 천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면 자신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상하이에 숨어들거나 아니면 연해주나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곳에서 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조선 바닥에서 남의 뒤나 캐고 고문질 하는 것도 이제 이력이 날 만하지도 않던가. 그러나 그것은 그저 상상일뿐 실현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을 동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헛웃음을 크게 지었다. 

용희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성숙했고 아름답고 지적이었으며 왕비와 같은 품위가 있었다. 단어를 구사하고 작은 몸짓은 마치 격 높은 귀부인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용희가 원래 저랬었나. 직위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의사라고 하니 사람이 정말로 달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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