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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원들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급히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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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원들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급히 이동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2.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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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휴는 자신의 부대가 오합지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급조된 병사들은 싸우러 가겠다는 의지보다는 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런 자들은 혼란한 틈을 노려 이탈할 가능성이 매우높았다.

병사에 필요한 것은 돌격할 용기인데 그들은 탈출할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게 뻔했다. 이참에 지휘관의 뒤통수에 총을 갈기려고 작정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동휴는 뒤숭숭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자신만큼은 누구보다도 사기가 높았다. 정보에 능한 그는 일제가 곧 패망할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에 시달렸다. 조선에서 어슬렁 거리면서 사태만 지켜 보는 것은 애국자가 할 짓이 못됐다.

그는 오기가 발동했고 직접 현장에 가서 분위기를 살펴 보고 싶었다. 마침 휴의 부대가 조중 국경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도 가만히 있으면 자신은 비겁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어떤 식으로든 조선땅에서 일본을 지탱하고 싶었다. 일제가 무너지는 그런 억울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지탱해야 할 자들이 마땅히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신도 포함돼 있었다. 나만 쏙빼놓고 다른 사람만 잔뜩 집어넣지 않았다. 그래서 부대 구성도 조선인 위주로 짰고 중간 지휘자 가운데 조선인을 일부러 끼워 넣기도 했다.

조선인에게 책임감을 주겠다는 의도였고 이 의도는 일부 맞아떨어졌다. 완장을 찬 그들은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조선 독립군에 맞써 싸우려고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자들에게 충성을 강요했다.

병력으로 보면 적지 않은 수고 이 정도면 임정의 뿌리를 아예 뽑을 수도 있다. 아예 싹을 없애 버려서 독립이 얼마나 허황되고 무모한지 상하이 임정 수뇌부가 알 수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되면 우리 조선인은 독립을 원하지 않은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는 목적은 저절로 달성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우산아래 있는 조선이 독립된 조선보다 좋다는 것이 인민의 뜻이라는 것은 증명된다. 

동휴는 이런 커다란 야망외에도 개인적으로 해결할 일이 있었다. 바로 휴의와의 대결이었다. 그자와는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원수의 감정은 어린 시절부터 싹터왔다.

일은 자신이 더 열심히 하는데 공은 그에게 돌아가는 꼴의 연속이었던 추억은 깨끗이 지워야 한다. 점례도 그렇고 용희도 나를 떠나 휴의에게 마음을 주었을 때 동휴는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점례는 그렇다고 쳐도 나와 약혼까지 거론됐던 용희마저 마음은 휴의에게 가 있었다. 그것을 알았을 때 동휴는 이미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찍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한이다, 늘 이런 마음을 품었으나 이번 출병이 있자 되레 그때 일을 저지르지 않은 것이 되레 잘됐다는 판단이 섰다.

깨끗하게 처리하마.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다. 고문실에서 취조당하는 그가 아니고 취조하는 내가 아니다. 그도 준비했고 나도 준비했고 싸움터는 동등하다.

네가 좋아하는 평등한 상태에서 붙어보자. 이 싸움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동휴는 일부러  자신을 그쪽으로 세게 몰고 갔다. 두만강은 피로 물들 것이다. 우리도 당하는 자가 나오겠지만 월등한 무기는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너는 알겠지. 전투는 사기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원병력이 있고 후퇴할 공간이 있다. 아무리 적들이 전술에 능하다고 해도 우리의 전술을 따라 갈 수는 없다.

일단 먼저 도착해서 매복하고 기다리자. 오는 적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휴의는 체포해도 좋고 사살해도 상관없다. 굳이 사로잡아 왜 그랬니? 따위의 말을 묻고 싶지도 않다.

그냥 얼굴이 보기 싫다. 다만 숨쉬지 않는 시체라면 확인할 수 있다. 최후의 승자는 네가 아닌 나라는 것을 입증하면 좋을 것이다. 사진으로 남겨도 된다. 기념사진 하나 찍어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혹, 그럴리는 없지만 점례나 용희를 만나면 이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겠느냐고 내밀수도 있다. 그들의 놀라는 표정을 보면서 안됐다고 같이 위로해 준다면 우애는 그런대로 쌓일 것이다.

그러나 동휴의 이런 기대는 일부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이 지체하는 사이 약산의 부대는 벌써 압록강을 넘어섰다. 신의주에 막 도착해 병력을 점검하던 동휴는 수천 명의 독립군이 함경도 경찰서를 접수했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동휴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는 생각할 겨늘도 없이 일개 중대를 급히 함경도 쪽으로 뺐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또다른 중대를 평양으로 급파했다. 양동작전으로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약산은 그런 일제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들이 평양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전에 먼저 그곳을 돌파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의 속도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부사령관에게 작전 지휘를 맡기고 날랜 병사 8명을 데리고 철도회사를 급습했다. 처음에는 덕기만을 상대할 생각이었으나 동휴의 부대가 방향을 틀었다는 첩보를 듣고 작전을 급히 바꿨다.

평일이고 이 시간이라면 그는 회사에 있을 것이다. 약산의 계획은 맞아떨어졌다. 형식적인 병력을 배치했던 철도회사는 심장부가 쉽게 약산의 손에 떨어졌다.

그들은 움직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쏘았다. 그리고 이층으로 내달렸다. 사무원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총소리를 듣고 일부는 피했고 다른 일부는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약산의 부하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충분한 시간이었다면 일일히 대조했겠지만 쫓기는 신세이고 보니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적과 매한가지였으므로 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양심의 가책을 이런 식으로 피한 약산의 부대는 내려오는 3명을 조준 사격으로 해치웠다. 그리고 이층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급하게 책상 아래로 숨는 사람 가운데 유독 침착한 제복의 사나이가 눈에 띄었다.

그는 일어나기 위해 몸을 세우면서 서랍을 열었다. 그 모습이 약산의 눈에 띄었다. 바로 사격을 가했다. 팔뚝에 총을 맞은 그는 맞지 않은 다른 손으로 피를 막다가 손을 때고는 다시 책상 서랍으로 뗀 손을 들이밀었다.

약산은 번개처럼 달려나가 발로 책상을 세게 찼다. 그러자 그자가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것은 그자만이 아니었다. 책상위에 있던 명패가 바닥에 굴러떨어져 약산의 발밑까지 왔다.

발로 차서 확인해 보니 덕기 부장이 창씨 개명한 이름이었다. 노구치 부르메. 그는 발로 피를 흘리는 노구치의 팔을 밟고는 덕기 이놈. 반역자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그리고 총구를 머리에 겨누었다.

내 이름을 어찌 아세요. 그리고 선생님은 누구신가요?

그것을 내가 너에게 설명할 이유는 없다. 난 시간이 바쁘다. 다만 네가 죽는 이유를 한 번 더 설명하겠다.

민족을 배신한 친일분자, 독립군 사령관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탕 탕 탕.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는 부하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밀폐된 공간이 있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 없었다.

순식간에 마당에 나온 그들은 사이렌을 울리면 달려오는 트럭을 피해 언덕을 타고 넘었다. 그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검은 트럭은 한 대가 아니고 세대 였으며 뒤에 타고 있던 가득 찬 군인들이 곧이어 뛰어내렸다.

넘어지는 자들을 보면서 약산은 그 순간에도 훈련받지 못한 신입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정면대결을 펼치면 이쪽의 피해도 막심했다. 약산은 도피를 결정했다. 

동휴 부대가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했고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약산은 함성을 지르며 마구 헛방을 쏘는 그들을 따돌리고  앞서 간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만나기로 한 장소를 향해 급하게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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