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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한약사회, 회색 코뿔소에 대응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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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한약사회, 회색 코뿔소에 대응하려면
  • 의약뉴스 이찬종 기자
  • 승인 2023.02.13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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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회색 코뿔소’는 커다란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로 인한 피해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그 영향을 간과해 온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다.

이 단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주로 예측 가능했었던 위험이 실제로 벌어진 상황을 설명할 때 쓰이곤 한다.

경제학에서 주로 쓰였던 이 용어가 이제는 약사사회에서 곱씹어야 할 단어가 되고 있다.

약국 환경을 바꿀 수많은 현안이 다가오고 있지만, 대한약사회가 이렇다 할 결과물이나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3월 출범한 최광훈 집행부는 ‘해결사’라는 표어를 내걸고 다가오는 현안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화상투약기의 규제샌드박스 시범사업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고, 전문약사 제도에 약료 개념을 포함하는 일에도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대면 진료 법제화로 인해 조제약 배달이 이뤄질 가능성도 커지고 이런 와중에 배달의 민족은 편의점 안전상비약 배달을 위해 규제샌드박스 시범사업을 신청했다.

현재 약사회가 맞이한 현안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었다. 화상투약기는 약 10년의 세월 동안 약사사회와 갈등을 빚던 주제였고, 전문약사 제도는 지난 2020년에 약사법이 개정된 후 3년의 유예기간이 있었다.

그리고 비대면 진료 법제화는 윤석열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부터 추진하려 했던 정책이었다. 회색 코뿔소라고 불리는 상황은 주로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영향을 간과했을 때 피해가 더욱 커진다.

이 개념을 처음으로 세상에 제시했던 세계정책연구소 미셸 부커는 회색 코뿔소가 사전 예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스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어려움, 책임성 결여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약사사회를 이끄는 대한약사회는 미셸 부커가 언급한 원인에 해당하는 바는 없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다.

약사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음에도 이를 찻잔 속의 태풍으로만 판단했던 것이 아닌지, 명확한 우선순위 없이 그저 다가오는 문제에 대응하기 바빴던 것이 아닌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물러서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미셸 부커는 회색 코뿔소에 대응할 방법으로 ▲회색 코뿔소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 ▲회색 코뿔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 ▲위기를 허비하지 말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 ▲바람과 같은 방향을 유지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대한약사회도 이제는 비대면 진료와 이로 인한 약 배달 도입 같은 현안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현안들에서 상실감이 아닌 자신감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현안 가운데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을 정하고, 화상투약기와 전문약사 사례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외부에서 신산업이라는 이름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이를 인정하고 약국만의 새로움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며 흐름에 순응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회색 코뿔소는 약국 문을 들이받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일선 약국가에서 고군분투하는 약사들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지게 된다.

더 이상 현안에 대한 대응을 차일피일 미루어선 안 된다. 이제는 다가오는 회색 코뿔소를 제대로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 시간이다. 그것이 비록 험하고 어려울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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