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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은 환자의 건강을 위해 소고기를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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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은 환자의 건강을 위해 소고기를 사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2.02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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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을 뜬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양쪽 엄지의 지문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보시오. 이렇게밖에 안 나오니, 영사관으로 일단 가야겠어요.

형사가 미심쩍은 얼굴로 말수를 쳐다봤다.

나야 지문 전문가가 아니라서.

안타깝다는 듯이 말수가 대꾸했다.

뭐가, 보여야 말이지... 가 보겠오. 너희들은 여기 그대로 있고.

형사가 말했다.

하야시 선생,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병원에 무장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아무래도 환자들이 겁먹을까 봐 걱정입니다. 환자는 심리적인 것이 중요하니까요. 더구나 요 며칠 새로 입원 환자들이 부쩍 늘었어요. 그들에게 총칼을 보이는 것이 어떤 이득이 될지 모르겠네요.

하야시가 뒤를 돌아봤다. 기분 나쁘다는 투였다. 감히 네깟것이 내게 이렇게 따질 수 있어. 하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의사 선생에 머물지 않음을 알고 있어 참았다. 영사관 요원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내가 미처 생각이 짧았소. 애들아 가자. 의사선생 무례를 용서해 주시오. 사복형사를 보낼테니 그때까지는 저 깡패인가 하는 자를 감시해 주시오.

알았어요. 살표보지요. 어서 일 보세요.

말수는 상대하기 귀찮은 듯이 말했으나 그래도 그가 병원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지켜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열린 문틈으로 바깥 상황을 보던 용희는 형사가 돌아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문 대조는 실패할 것이다. 양쪽 엄지는 알아서 지웠다. 나머지 손가락도 희미하다. 휴의는 이제 상하이에서 정체불명의 인간이다. 그저 깡패일 뿐이다.

그러나 형사의 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잖은가. 회복되는 시간은 길다. 어쩌나. 용희는 다음 환자에 대한 처방에는 신경 쓰지 못하고 휴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다.

그러고 있을 때 간호사가 안을 보면서 노크를 했다.

환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선생님을 면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용희가 고개를 들자 중년의 사내가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거구의 사내가 호남형인데 표정이 밝았다. 웃고 있지 않았으나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그런 인상을 받았다.

용희는 알았다고 간호사를 물리치고는 들어 오시라고 해요, 하고 밖에 있는 사내가 들을 수 있도록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사내가 고맙다고 하면서 비켜주는 간호사가 나가자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사내는 더 크고 호남형이었다. 용희는 눈으로 작은 의자를 가르켰고 사내는 고맙다면서 자리에 앉았다. 손에 들고 있는 모자를 만지작거리던 사내가 총상 환자 면회는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용희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형사가 찾아와 그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면회객까지 온다. 이러다가는 상하이 전체가 휴의를 알게 되는 날도 멀지 않겠군.

환자와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용희가 콧수염을 옆으로 늘어뜨린 사내를 보면서 물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그 콧수염을 위로 쓸어 올리더니 뒤를 한 번 보고 나서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휴의장군과 아는 사람이고요. 임정과도 연관 있는 사람입니다. 몽양이라고 합니다. 용희는 이름은 알고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부인도 그랬으니 그 남자에 그 부인이다.

그 말을 하는 사내의 눈이 빛이 났다. 젊은이 못지않은 힘과 패기가 넘쳐났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혁명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휴장군을 도피시켜야 합니다. 한시가 급해요. 일제가 알아채면 끝장이요.

그가 이 말을 할 때는 절망적이라는 듯이 눈꼬리가 내려갔다. 빛나던 눈은 수그러들었고 커다란 눈은 금방 눈물을 쏟아낼 거처럼 어수선했다.

미행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수사관처럼 용희가 말했다.

형사와 무장경찰이 나가는 것을 보고 바로 들어왔어요. 이때가 적들이 허점을 보이는 시간이거든요.

면회는 불가해요. 환자가 자고 있어요.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모양이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죽지는 않겠지요?

다리 총상이니 아마 그럴걸요. 하지만 출혈이 심해요.

헌혈이 필요한가요? 

한고비는 넘겼어요.

언제쯤...아니.

그런데 내가 휴의를 알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용희가 처음에 하려던 질문을 했다. 포목점 집 사장이 사고가 났다며 알렸고 그 전에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했어요.

관계라고요?

죽마을 동무라는 것도 알고요. 종로서 동휴가 이리로 오고 있다는 첩보도 보고 받았어요.

점례는 입을 벌리는 대신 눈을 크게 뜨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동휴말인가요? 그 친일 왜놈 앞잡이요?

그가 성을 낸 목소리로 말했으나 크지는 않았다. 

전부 다요.

아닐 수도 있지만 맞을 거요. 그래서 휴의를 빨리 빼야 해요.

오늘 밤까지는 안돼요. 그리고 잠시 후면 사복 경찰이 올 거예요. 수배자 아니신가요?

나, 나 말이오? 그래서 막 여기를 떠나려는 참입니다. 가다가 급보를 받고 들렀는데 그렇다면 후속조치는 약산에게 맡겨야 할듯 싶습니다.

약산이라면?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그가 잠시 머뭇 거렸다. 할 이야기는 다 끝난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수염으로 잡고 옆으로 쓸었다.

참, 상하이를 떠나려니 감회가 새롭네요.

사내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꺼냈다.

여기서 애를 둘이나 낳았어요. 사랑이 뭔지도 비로소 알게 됐지요. 옥살이하는 남편 돕다가 아내도 옥살이를 했는데 내가 할 때보다 더 고통스럽디다. 형무소를 벗어나 상하이로 오니 그 때 사랑이 보였지요.

그가 용희를 편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다음 말을 해도 되는지 시험해 보는 듯 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혁명할 자격도 없어요.

용희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요. 뜬금없이 얘기를 꺼냈어요. 그러니 젊은 의사 선생도 열심히 사랑하시오. 나는 오후 배편으로 인천으로 갑니다. 고향 갈 생각에 조선 사람 만나니 나잇값도 못하고 주책을 떨었지 뭡니까?

아닙니다. 그러저나 약산이라고 했던가요. 그분은 언제 오고 왜 오는 거지요?

휴의 장군을 안가로 모실 담당입니다. 휴 장군은 여기 있는 조선의용군을 끌고 조선으로 가야 할 임무를 띄고 있어요. 조선민족 해방을 위해서요.

제가 알기로 장군은 임시정부 주석의 명령을 받고 있는데요.

알아요. 다 얘기하자면 복잡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더 있어야 하는데...중년 사내는 그 말을 마치고 손에 든 모자를 썼다. 가겠다는 뜻이다.

어쨌든 휴장군이 여기 있는 한 일제의 체포를 피할 수는 없어요. 사방에 밀정이 널려 있고 포먹점 집 사장도 온전히 믿기 어려워요. 그러니 생명이 지장이 없겠다 싶으면 바로 약산을 도와주세요.

무슨 명령 같아서인지 몽양은 그 말을 하면서 미안해 했다.

의사 선생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그만.

몽양이 고개를 숙였다 들자 예의 그 눈빛이 용희를 사로 잡았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또 무서웠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저 사람의 운명이 궁금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제 명을 다 살지는 못하겠지만 그 이전에 그가 하는 일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떠나면서 신문지에 싸서 잘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내밀었다.

환자에게 주세요. 작은 성의이나 선생께 부담을 드렸습니다. 조선독립후에 경성에서 한 번 뵙지요. 말수 선생과 함께 오세요. 식사 한 번 모시겠습니다.

그가 나가고 나자 용희는 기운이 빠졌다. 말수 선생이라니? 내 남편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용희는 의문보다는 꾸러미에 관심을 보였다.

과연 소고기인지 폭탄인지 다른 물건인지 풀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고기였다. 대여 섯근은 됨직한 무게였다. 환자에게 이걸 먹이라고. 그래, 기운을 차리는 데는 소고기가 좋지. 그런데 미역국을 끓이나. 어떻게 하지.

용희는 당장 고기를 들고 부엌에 가야한다는 듯이 서성였다. 그러다가 한쪽으로 밀어 넣고는 오늘은 먹지도 못할텐데. 속으로 중얼 거렸다. 말수가 들어왔다.

아까 그 사내 말이야, 내가 들어가는 것 보고 나가는 것 확인하고 들어왔어. 무슨 말을 했어. 환자는 아니고. 그 자가 나가자 로비에서 서성이던 젊은 사내 하나가 급히 따라갔어. 비서인가, 경호원인가 말이야. 도대체 저 중년 사내의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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