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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총상환자는 감염에 취약하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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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환자는 감염에 취약하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2.01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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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용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얼굴의 핏자국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여전히 나는 나군, 어디 가겠어 내가. 그러면서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거실로 나오자 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용희에게 다가왔다.

지금 당장 들어볼까? 몇 시간 걸리는 것도 아니고.

레코드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수가 용희의 의견을 물었다.

형식적으로 해보는 말이 아니었다.

음질이 궁금해. 잡음이 얼마나 있을지.

여보, 지금 근무 시간이잖아요. 우리 저녁에 듣기로 하지 않았나요.

우리? 그랬었지. 상황이 달라졌잖아.

말수는 말꼬리를 바꿨다. 그러나 용희가 한 번 더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 말수도 고집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긴 하군요.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요. 아래층 상황은 어때요?

박군 있잖아. 급하면 부르겠지.

좋아요. 타이틀곡만 들어보지요.

홍도야, 우지 말라 오빠가 있다.

두 사람은 노랫말을 음미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따라 불렀다.

그래 지금은 울 시간이 아니지.

말수가 용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기분 좀 내볼까. 약속된 대로 그대로 안 될지도 모르니.

두 사람은 가볍게 스탭을 밟았다. 대세계의 분위기는 아니었어도 춤은 기분 전환에 좋다. 음악도 좋으니 이 정도면 훌륭하지. 두 사람은 신이 난 것처럼 과하다 싶게 몸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멈추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한 잔 해야지.

술 냄새를 환자에게 보여 주겠다고요. 수술 환자를 소독하는 알코올이라고 둘러대지 뭐. 딱 한 잔이야.

그리고는 말수는 두 잔을 가지고 왔다.

당신도 가볍게.

이이가 정말. 낮술을 하다니.

상황이 달라졌잖아.

또 그 상황 따령이야.

조선최고의 독립군 대장이 우리 병원에 있어. 잠시 후면 일제 형사가 사진을 갖고 들이닥칠 거고. 흥분되지 않아, 당신. 더구나 소녀적 첫사랑이라며?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그런 걸 꼭 말해야 아나. 표정에 나와 있는데.

내 얼굴이 어때서요?

벌써 빨개졌잖아.

시시한 농담 그만두고요.

그래, 어쨌든 장군은 확실히 달라도 달라. 몸이 대단해. 그리고 그 인내심이란. 고통을 참아내느냐 여부에 따라 장군과 병사를 가른다면 그는 확실히 장군이야.

일주일 후면 될까요?

아니 사흘 후면 자리를 옮겨 홀로 치료 해도 될 거야.

잘 알겠지. 자신이 병원에 머물 시간을. 그나저나 시나리오를 짜야지. 형사가 이것저것 물을 텐데.

당신이 알아서 둘러대세요. 그 분야는 당신이 전문가 잖아요.

내가?

나보다는 당신에게 물을 것 아니에요?

그자들은 오늘 병원에서 날을 샐거야. 환자 옆에 딱 붙어서 깨어나면 바로 심문하겠지.

수술실을 형사들에게 개방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어쩌겠어. 들어오면 무슨 수로 막아.

영사관이 있잖아요.

그건 나중 일이고?

휴의가 잘 대처할까.

쉿, 와타나베에요. 휴의의 휴자조차도 입에 대면 안되는 것 알죠.

실수. 그런데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여보, 레코드 좀 꺼봐요.

음악이 멎자 정말로 아래층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였다. 그는 부르면서 계단의 난간을 잡고 올라왔다.

마침 여기 계셨군요. 형사들이 왔어요.

몇 시지? 아직 여섯 시는 멀었는데.

말수가 손목을 들었다. 용희는 벽시계를 보았다. 아직 다섯시가 겨우 넘었다. 말수는 간호사를 앞세우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까 그 형사가 이번에는 두 명의 무장 경찰을 데리고 있었다.

의사 선생, 수술은 잘 끝났어요?

네, 그런대로. 상처가 심해 겨우 봉합했어요. 그런데 ...

말수가 시계를 보는 척했다.

아, 내가 조금 일찍 왔어요. 뭐 별로 할 일도 없고. 병원 일은 방해 않을테니 환자를 보아요. 난 여기서 구경이나 하면서 좀 기다리면 되지요. 선생 여기 뒷문은 어디요?

형사가 두리번거렸다.

뒷문이 아니고 병원 후문은 이쪽입니다. 거의 쓸 일이 없어 대개는 잠겨 두고 있어요.

형사가 경찰 하나에게 눈짓을 하면서 너, 저쪽 좀 확인하고 와. 하고 말했다. 하이 소리가 높아 말수가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명령을 받은 병사는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말수가 가리키는 후문으로 발을 옮겼다.

총알이 관통 직전까지 갔어요. 차라리 그랬더라면 수술이 쉬웠을 텐데. 말수가 말꼬리를 흐리면서 이야기를 이어 가려고 했다.

형사가 급히 막았다. 자신이 볼 일이 더 급하다는 투다.

그래, 깨어나는 시간은 언제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섯 이후가 될 거에요. 그러나 언제 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요. 환자에 따르고 특히 총상 환자는 대중이 없어요. 내일까지 못 깨어날 수도 있고 저녁 늦게 헛소리를 시작할 수 있지요.

그래 수술 할 때는 별 말 없던가요? 

비명을 지르고 했어요. 어쩔 수 없지요. 깡패들도 아프면 소리 지르기 마련이니까요. 깡패라니요.

딱 보면 알지요. 보통 사람보다 근육이 많고 주먹 힘이 센 자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이 깡패말고 뭐가 있겠어요?

조선 깡패도 상하이에 있단 말이오?

깡패의 세계에서 국적이 따로 있나요? 그들은 행패 부릴 만한 곳이라면 중국이든 러시아든 어디든 가지요.

다른 낌새는요?

형사가 곁눈질을 하면서 물었다.

보고할 만한 특이점은 없어요. 다만 애초에 다리 총상만 확인했는데 나중에 보니 얼굴에도 두 발이 맞았더군요.

얼굴까지?

형사가 놀라는 눈치였다. 다리부상이 워낙 심해 다른 곳은 못 본 것이지요. 그쪽에서 출혈이 터졌으니. 다행히 얼꿀 쪽에는 턱과 볼을 약간 스치면서 귀를 치고 나갔고 다른 총알은 눈썹을 긁고 지나갔어요. 왜 바닥에 끌린 자국 같은 거 있지요? 

형사가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멈추더니 내 사격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세 발을 쏘았거든요. 겨우 한 발 맞았다고 궁시렁거렸는데 백발백중이야. 그럼 그렇지. 이 하야시의 권총 솜씨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다니까.

정말인가요? 혼자 세 발을 발사했나요?

그렇다니까요. 의사선생은 의심도 많군요.

달리는 표적을 맞추기는 쉽지 않아요. 저도 사격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움직일때는 확률이 팍 떨어져요.

아참, 선생이 독립군 인가 뭔가 폭파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요?

형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심한 듯 물었다.

아직은 잘 몰라요. 그들이 독립군이 될지 황군이 될지. 일단은 교육이 목적이지요. 겉으로는 독립군 훈련이라고 포장 했지만 여차하면 태평양 전선으로 보낼 황군이 될 겁니다.

그래야지요. 나도 영사관 요원에게 들었어요. 조센징들을 그런 식으로 회유하고 있다고요. 황군 훈련이라고 하면 도망자도 나오고 교육열도 떨어지니 독립군 훈련이라고 둘러 대고 있다는 말을요. 의사선생은 정말 애국자에요. 나카무라 대장을 살려서 보냈고 우리 편은 거의 공짜로 치료해 주고. 애국훈장을 내가 상신하겠어요.

어, 됐어요. 그런 걸 바라고 하지 않아요.

그나저나. 그는 아까 꺼내려고 했던 것을 꺼내면서 말수 앞으로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 자가 휴의라고 조선독립군 장군이오.

이름은 들어봤는데...

말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자가 최근 상하이에 왔다는 첩보를 받았어요. 임정 주석을 만나 새로운 임무를 지령받기 위해서지요. 이 자 좀 확인해 줘요.

말수는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아무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자가 이 자와 비슷한 점이 있나요?

글쎄요. 얼굴까지 수술을 해놔서 지금은 알 수 없어요. 부기로 얼굴이 두 배는 커져 있을거요.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수술 전에 사진을 찍어 두거나 미리 눈여겨 봤을 텐데요.

혹 사모님도 같이 수술을 했나요?

그때 용희가 계단을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네, 저도 같이했어요.

형사가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 이 자의 모습이?

말수의 손에서 사진을 낚아채듯이 뺏은 그는 용희에게 사진을 건넸다.

제가 좀 관상을 보는데... 글쎄 이마며 눈이며 광대뼈며 입술이며... 가늠이 안 되요. 이 사람의 얼굴을 본 기억 자체가 안 나요.

아, 이거 낭패군요. 얼굴에도 총상이 있었다면서요?

형사가 용희에게 물었다.

용희가 말수의 눈치를 살폈다. 사전에 그런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전 총상이 어떤 건지는 잘 몰라요. 종아리는 총상이라고 하니 확실한데... 얼굴은 아닌 것 같아요. 다리와는 전혀 달라요. 들어간 구멍도 나온 구멍도 없고 깊지도 않아요.

총알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면 그런 상처가 나지.

말수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런가요. 어쨌든 스쳐 지나갔으니 망정이니 조금만 안쪽으로 붙었으면 저 사람은 지금 숨 쉬고 있지 못할 거요. 그것도 두 발씩이나 그랬으니.

심하게 긁힌 자국처럼 보인게 총상이었군요.

그렇다니까.

형사님 사격 솜씨는 알아줘야지. 세 발에 세 발 명중이었다니까. 백발백중이 따로 없네요. 그렇지요. 사모님이 표현력이 더 풍부하군요. 

칭찬해주니 고맙군요.

아니, 되레 고마워 할 사람은 접니다. 

형사가 황공하다는 듯이 말했다.

용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두 분이서 말씀나누세요 하는 인사말을 남겼다. 형사는 아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고 모자를 벗어 화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럴 줄 알고 여기 이것을 가지고 왔어요. 형사가 가방을 들어올렸다. 지문을 찍을 수 있는 도구가 그 안에 있는 듯 싶었다.

환자가 자고 있어도 지문은 찍을 수 있지요? 

네, 그거는 가능합니다면...감염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수술환자에게 특히 총상 환자는 감염에 취약해요. 일단 손을 소독 좀 하시지요.

말수는 간호사를 불렀다. 그가 미처 다른 행동을 할 틈도 없이 이분 손에 알코올 좀 듬뿍 젖혀서 보내요.

그런데 어디서 술 냄새가 나요.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형사가 코를 벌름거렸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됩니다. 저기 오네요. 간호사를 따라가세요. 제가 수술실 앞에 있을 테니 손을 씻고 그리로 오세요.

옆에 있는 무장 경찰 하나가 형사가 일어나기도 전에 일어나 수술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리 자리잡고 있겠다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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