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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2-27 06:01 (화)
사진 대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상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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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상처를 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1.31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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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줘서 고마워.

저도요. 

두 눈이 마주쳤다.

그리움이랄까. 아니면 놀라움이라 해야할까.

이럴 시간 없어요. 바로 남편을 만날게요.

용희가 잠깐 휴의의 손을 잡았다 놓으면서 문밖으로 나갔다.

따뜻하군. 여자 손은 정말 오랜만이야. 아니야. 오랫만이라면 그전에 그런 일이 있어야 할 터인지 도통 기억에 없다. 작고 따뜻해. 그래서 여자를 좋아하는군. 그 손 때문에. 남자의 투박한 손과는 달라.

휴의는 이런 생각으로 발끝에서 시작해 머리 쪽으로 달려드는 통증을 애써 참았다.

여보, 이리로요.

용희가 남편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얘기는 잘 됐어요?

안 될 것도 없지.

그런데 말이에요.

용희의 평소와는 달리 뜸을 들였다.

쳐다 보는 눈도 달랐다. 말수가 말해봐, 무슨 일이야, 하고 아무것이라도 괜찮으니 말해봐 하고 물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요. 여기서는 좀 그래요.

환자 때문인가? 

그래요.

뭐가 잘못됐어? 수술은 잘 된 거 확인했잖아.

그게 아니에요. 들어봐요. 일전에 내가 보령 죽마을 동네 오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하나는 종로서장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운동한다는.

그 휴의가 뭔가 하는 작자 말이지. 작자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렸으나 용희는 대꾸할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 이름을 기억해요? 

당신이 관심있는 남자인데 내가 그냥 흘려 들을수는 없잖아.

농담할 기분 아니에요.

왜 내 말을 그렇게 받아.

난 진지해.

알았어요. 진지한 대화는 다음으로 미루고요. 그 휴의가 바로 우리 병원에 있어요.

말수는 놀랐다. 놀라는 일이라면 왠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그이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오호라, 휴의 였다고. 근육질이 장난 아니더만. 역시 조선독립군은 달라. 저 정도는 돼야 독립군 장군이지. 그래서?

그래서 라니요. 형사가 왔잖아요. 휴의는 조선 팔도는 물론 여기 중국 전역에서도 현상금이 걸렸잖아요. 그것도 주석보다도 몸값이 높게.

우리 신고할까? 그 돈 가지고 일본에서 개업하자.

여보, 여전히 조심성 없는 말수에 용희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희는 머뭇거릴 수 없었다.

급해요. 수술 좀 해줘요.

했잖아.

다리 말고 얼굴요.

얼굴은 수술할 만한 상처가 없던데. 긁히긴 했어도 꿰맬 정도는 아냐. 당신도 알잖아.

형사를 따돌려야 해요. 사진을 가지고 와서 대조할지 몰라요. 그러면 들통나요.

말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태도였다. 그럴 시간 없어요.

당신 관상도 관심 있잖아요. 사람을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어디지요? 외과의사가 제일 처음 보는 곳.

그야 눈이지.

눈만 가리면 다른 사람이 돼나요?

천만에. 입술은 속일 수 없어.

그리고요.

귀를 살펴야지.

귀까지도요?

사람의 귀천은 귀에 있어.

코는 어때요?

코큰 거지는 드물지.

안되겠어요. 얼굴 전체를 해야겠군요.

아주 다른 사람 만들겠다는 거군.

그래요. 사진을 대조해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조선이름은 휴의. 휴가 성이고 의가 이름. 창씨개명한 이름은 와타나베에요.

그건 내가 알 필요 없고. 직업은 조선 깡패. 조선 깡패가 왜 상하이까지 와서.

그거야 나도 모르지요. 여보, 날 좀 도와줘요.

그러지 뭐.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부탁인데.

둘은 수술실로 내려왔다.

용희가 칼을 건넸다.

아니, 당신이 해. 나보다 당신이 더 신경 써서 할 거 아냐. 아는 사람이니.

여보... 좋아요. 이리 줘요.

내가 코치해 줄게.

이마는 어때요? 

이 사람 이마는 그래... 내가 깜박했네. 사람 이마처럼 그 사람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 없어.

그렇다면 이마를 찢고 눈썹을 조금 파고 귀와 코를 뚫고... 광대뼈는요?

거기도 사람을 구별하는 중요한 잣대가 돼.

여기도 구멍을 내지요.

당신 정말 사람을 바꿀 참인가.

살아야지요. 이 사람은 살려야 해요. 이걸 일본 영사관이 알면 우린 사형감이야. 그런 가정은 말아요. 당신이 입만 다물면 누가 알겠어요?

이제 보니 당신 옛날의 그 용희야. 전선을 누비던 바로 그 용희로 돌아왔어. 좋아, 난 그 모습이. 그런데...환자 하고는 다 얘기가 된거야? 

용희가 칼을 휘두르기 직전 말수가 제동을 걸었다.

동의를 얻어야 하나요?

그건 당신이 판단하고.

용희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이건 죽마을 소황 앞바다에서 두꺼비집 짓는것과는 달라요. 지었다가 허물면 원래 대로 돌아가는 그런 것과 비교하면 큰 코 다쳐요. 한 번 수술하면 흉터가 남는 것 아시지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건 상관 없어요.  그렇잖아도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잘됐군. 

들었지요? 여보.

칼 쥔 용희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그러나 한 번 피를 보자 착검을 하고 근거리 적과 싸우는 것처럼 찌르고 빼고 휘두르는 것이 번개처럼 빨랐다. 그러기를 한 시간 넘게 했다.

휴의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됐다. 용희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런 땀방울 가운데 여러개가 부풀어 오른 휴의의 얼굴에 시차를 두고 떨어졌다.

항생제 좀.

링게르에 들어간 양만 해도 충분해. 더 많으면 쇼크가 올지 몰라. 위험은 당신이 책임져.

꼭 그런 말을 지금 해야겠어요.

어쩌나 보려고 해 본 소리야.

당신은 정말 저 사람을 극진히 모시는군.

빈정거리지 말아요. 당신보다 더 극진히 모시는 사람은 대명천지 하늘 아래나 말고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알아 모시리다. 어디보자, 대충 다 됐군. 잘 생긴 얼굴에 흉터 투성이야. 이제 다시 잡히면 그걸로 인생 종치는 거지. 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말수가 잊었던 것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참, 이 정도 인물이면 지문도 떴을 텐데. 손은 살폈어?

돌아서 손을 씻는 용희에게 말수가 등뒤에 대고 놓친 것을 확인하라는 듯이 말했다.

지문, 지문요?

그래. 지문.

손은 멀쩡하더구먼. 지문 한 방이면 끝나지 않아. 조선 최고 현상범인데 일제가 지문 정도는 갖고 있겠지.

용희는 닦다 만 손으로 얼른 휴의의 손을 펴 보았다. 눈으로 보아도 다섯 손가락 지문이 확연했다. 다른 손을 잡았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용희는 지문을 찾다 순간 다른 생각에 빠졌다.

따뜻했다. 그 와중에도 용희는 잡은 휴의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여기도 멀쩡하네요. 어쩌죠?

그건 당신이 알아서.

말수가 두 손을 펴고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수가 없을까요. 손톱을 빼거나 지문을 찢을 수는 없어요. 더구나 여기서 더 피를 흘리면?

당신이 헌혈하면 되잖아.

어이없다는 듯이 용희가 말수를 노려봤다.

어제부터 당신 왜그래요? 자꾸 삐딱하게 말하고.

그것도 이따가 얘기하지.

내 생각에는. 손톱 가는 줄 있지? 당신 손톱 손질하는 거. 얼른 그거 가지고 와.

용희가 맞다 싶어 급하기 이층으로 올라갔다. 말수는 휴의 곁으로 다가갔다. 녀석은 잠을 자지 않고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뜬 자의 호흡이 느껴진다.

내가 용희 남편이오. 말수라고 해요. 악수는 나중에 하고. 말은 많이 들었수다.

고맙소. 대화를 다 들었습니다. 살려 주셔서.

아, 환자는 긴 말 하는 게 아니요. 듣고만 있어요. 형사가 왔다 간 것은 알고 있지요? 세 시간 후에 올 겁니다. 사진이나 지문을 대조하겠지요. 난 걱정말아요. 당신이 조선독립군 장군 휴의라는 걸 내 입으로는 말하지 않을테니. 내 입으로는 말이오.

내 입으로는?

휴의는 그 말이 거슬렸다. 말투도 그렇고 억양도 그렇고.

신세는 꼭 갚겠... 어 어...말하지 말라고 했지요. 환자가 의사의 말을 안 들으면 어떻해요. 당신은 그냥 조선 깡패요. 쫓으니 그냥 달아났다고 하시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한 건 하려고 혼자 나왔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고만 진술하시오.

휴의는 자신도 그렇게 대답하려고 머릿속으로 꾸며댔는데 말수가 미리 말했다. 어쩌면 용희 남편도 나와 같은 패일까. 적어도 적은 아니다라는 안심이 들었다.

손을 갈거요. 지문을 좀 지워야지요. 그리고 바늘로 조금 찌를 거요. 아픈 거는 잘 참으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요.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휴의는 쏟아지는 잠을 간신히 참으면서 귀를 열고 집중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말 안해도 알겠지만 우리들이 나눈 대화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

됐어요. 그만, 당신의 어릴적 연인 용희가 내려와요. 자요. 푹자고 일어나야 회복이 빨라요. 무슨 말을 하든 듣지 말고 그냥 자요.

어느 새 용희가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 곁에 다가왔다.

당신이 갈아. 가는 것은 전문이니.

손톱 깎기를 들고 있는 용희에게 말수는 박군에게 하듯이 명령하는 투로 말했다. 용희는 휴의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아까와는 달리 뜨겁지 않았다. 시체처럼 차가움애 용희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뒤집어 손바닥이 위로 올라가게 해 놓고는 엄지부터 갈기 시작했다. 수술할 때보다 더 긴장됐다.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났다.

권총을 버렸어요. 저들이 찾아서 지문을 떴을 거요.

휴의가 힘겹게 말했다.

그래서 지우는 거요. 입 다물고 있어요.

용희도 말수처럼 휴의에게 말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입좀 다물어, 오빠.

용희는 말수가 자리를 비우자 갈기를 멈춘 검지를 들어 휴의의 입술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휴의는 손가락의 온기를 몸 전체로 받으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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