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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저쪽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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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저쪽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안전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1.25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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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는 교관의 역할을 잘 해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어서 신바람이 나기까지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하는 솜씨도 점점 늘어났다. 어떤 때는 자기 말에 취해 연설 중에 다음 말을 까먹고 탁월한 연설이라고 자찬하기도 했다.

새로운 일이 말수의 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그는 달군 몸이 식지 않도록 훈련을 하기 전에 반드시 정신 교육을 실시했다. 연설 솜씨도 발휘할 겸 미숙한 그들의 전투력을 고취시키자는 애국적 발상에서였다.

마치 상대가 그것을 요구하기라도 한 것처럼 술술 질문하고 술술 답변했다.

제군들, 우리가 총을 드는 이유는 무엇이요? 평화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없었다면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남의 나라를 강제로 빼앗았으니 우리가 되찾기 위해 먼 이국땅에 모인 것이지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은 이런 때 써야 한다. 연병장 한쪽에서 바람이 불어 모래가 훈련병들 얼굴을 덮쳐도 그것을 치우려는 손동작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감동에 보답하는 훈련병들이 취하는 예의였다.

잠시 말을 멈춘 말수는 단상에서 아래를 훑어보았다. 제대로된 부동자세가 제법 멋들어졌다. 그는 한 번 병사들을 둘러 본 후 이야기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평화를 위해서 때로 우리는 폭력을 써야 합니다. 그 폭력은 부당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이죠. 압박받는 민족이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밖에 달리 다른 방법이 없어요. 독립은 피를 먹고 자랍니다. 꽃밭에 뿌린 씨처럼 저절로 크지 않아요. 무력투쟁 없는 독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난 30년간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지요. 독립을 가장 빨리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투쟁적인 그 방법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러기 위해 전선의 맨 앞에 섰어요.

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말수는 개의치 않았다.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대견했고 자신에게 이런 솜씨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말수는 연설을 할수록 자신의 연설에 스스로 도취됐다.

그래서 어떤 날은 실습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설에 할애하기도 했다. 자기 말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훈련이 끝난 후에도 그는 아까 했던 연설을 복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애초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이런 교육 방식은 더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상적으로 무르익은 독립군은 훈련에 더 열성이었고 습득 성과가 빨랐다. 정예요원들이라는 자부심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말수는 늘 여러분은 정예요원이라는 말로 그들의 사기를 올려 주었다. 일주일 만에 일차 교육을 무사히 마치자 말수는 자신이 위대했으나 그 공을 훈련병들에게 돌렸다.

여러분들은 선택받은 요원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겨우 일주일 폭파 교육으로 여러분 같은 실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도열한 병사들은 한 껏 고무됐다.

이 자리에서 감히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일계급 특진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물론 권한은 임정의 국무회의를 거쳐야 하지만 내가 강하게 요구할 겁니다. 자랑스런 여러분이 특진을 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을 할 수 있습니까.

말수는 앞으로 일주일만 더 교육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전수해 줄 수 있고 어떤 건물이든 어떤 다리든 폭파 할 수준의 전문가가 될 것을 확신했다. 이제 그는 그들 가운데 서너 명을 뽑아 교관으로 임명하는 작업을 서두르기 위해 준비했다.

자신은 뒤로 빠지고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수는 일차 입소 교육이 끝나고 이 차 교육생을 받으면서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두 달 빠르게 60명의 조선독립군 폭파전문가가 교육을 마칠 계획을 세웠다.

여보, 일은 잘 되가요?

화약 냄새를 옷에 묻히고 온 말수에게 용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될 일이 없지. 내가 누구요. 통영사람 말수 아니요?

뭐든 잘 해 낼 줄 알았어요. 그러나 자만은 금물이요.

알아 모시지요. 그런데 내 연설 솜씨를 한 번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군요.

여기서 해보시지요?

그럴 순 없지. 조선독립군 훈련대장이 인파도 없는 곳에서 공갈포만 쏠 수는 없어요.

듣지 않아도 알아요. 당신은 탁월한 대중연설가로 손색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여보? 내가 이번 한국조선독립당 당수로 나서면... 당신 생각은 어때? 임정의 주석도 싫지 않은 내색을 보였소. 내가 당수가 되면 임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 거지. 정치 역시 독주는 독재로 흐르기 마련이오. 양당 정치가 민주 정치의 핵심이지. 그래 양당정치.

꼭 정치를 해야겠어요?

또 그 소리. 이미 정리된 것 아니었나. 나는 늘 새로운 것을 꿈꾸고 있어요. 그것이 없으면 나는 생기를 잃어. 당신도 알잖아. 병원일이 일년차를 넘어가자 내가 술을 먹기 시작했잖아. 그런 매너리즘에 빠진거지.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새 길을 내는 거고.

얼굴 좀 봐, 내가 살아 있잖아. 탄력을 받고 있어. 교육은 다음 주면 끝나. 그러면 나는 또...

방황한다고 협박하려고요?

맹세코 당신 영혼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게. 당신에게 내가 그런 저열한 수단을 쓰다니. 들어봐, 당수가 되면 임정 당연직 부주석 자리도 안게 돼. 나에겐 꿈이 있어. 조선독립은 현실이고. 이곳 임정이 그대로 해방된 조선의 정부 조직으로 승계되면... 내 위치를 생각해 봤어? 미국이나 소련이 방해할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나는 통역이 필요 없잖아. 당신이 할 일도 많은 거야. 부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합심하자고.

당신의 최종 목적이 궁금하네요.

난 목적 같은 건 없어. 과정에 참여하다보면 자연히 그곳에 도달하게 되는 거지. 뱃일도 광산 일도 의사 일도 교관도 다 그런 식으로 시작했고 매듭된 거지. 당의 가입도 임정 참여도 원해서 그런 게 아냐. 일상이 그렇게 그쪽으로 나를 끌고 간 거야. 어디로 내가 가는지는 내가 결정하지만 나도 때로는 모를 때가 있어. 계획이 언제 수정될지도 모르고.

그래요. 하루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다 보면 보이겠지요. 나는 당신의 그 열정을 높이 사요. 때로는 두렵지만 그것이 당신의 본 모습이고요. 당신이 그러니 난 차분해 지고 싶어요. 노래 한 곡 듣고 싶지요?

부르겠다고 하는 것보다 더 설레는군.

군가는 기대하지 마세요. 난 그런 저돌적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낭만이 있어야 하고요. 당신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어요. 바로 작은 것에서 느끼는 행복이고요. 이것만큼은 지고 싶지 않네요.

마음대로. 난 작은 것에는 관심 밖이야.

용희가 피아노에 앉았다. 오래라서 잘 될지 모르겠어요. 실수를 알아채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세요.

‘사의 찬미’였다.

어, 이거 너무 슬프잖아. 일절이 끝나고 나서 말수는 신청곡이라며 목포의 눈물을 요구했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래라고 했다.

질리지 않아요.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

용희가 악보를 찾기 위해 일어섰다.

그러는 사이 내가 한 번 불러 볼게.

말수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때 아래층에서 병원장님 하는 사환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찾는다는 전갈이었는데 말수의 눈은 벽에 가 있는 시간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저녁 10시가 넘어있었다. 이 시간에 나를 찾는다고.

아저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사환애는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는 포목점 집 사장이었다. 조금 안심이 된 용희가 그래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했다.

여보, 가져갈 거에요.

용희가 서랍을 가르켰다. 권총이 들어있는 상자가 그곳에 있었다.

아니야, 불한당을 만날 이유가 없어. 저것을 쓸 정도면 일제 끄나풀 정도는 돼야지. 그쪽에서 먼저 소동을 벌이지 않으면 내가 나설 일이 없을 거요. 의심받을 일이 없으니 걱정 마요.

여보, 그런 소리 말아요.

걱정말래도.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해.

용희는 서랍을 닫았다. 말수는 대충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포목점 집 주인이 손을 내밀었다. 그 옆으로 두 명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어둠 속에서 용희는 말수가 양쪽에 팔을 낀 째 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용희는 처음에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으나 곧 안심이 됐다. 낯선 사람이 연행해 가는 것을 보고도 그런 마음이 든 것은 포목점 집 사장이 얼핏 보였던 낮빛 때문이었다. 하얀 이빨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반드시 나쁜 전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희는 남편을 믿었다. 교관 훈련을 문제 삼아도 말수는 그들이 믿을 만한 말을 둘러댈 것이다. 자신 앞에서 예행연습까지 했고. 용희는 그렇다면 일제도 믿을 수밖에 없겠군, 하고 안심했다.

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 안에서 그는 자신의 양옆에 있는 사람들의 실체를 바로 확인했다.

별거 아냐. 동생. 이분들이 일부러 오라고 하기 뭐해서 모셔가는 거니까. 나도 같이가니까 걱정할 건 없고. 언젠가 한 번 봤을지도 몰라. 우리 집에서 같이 반주 한 적이 있거든. 기억이 날지 모르지만.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소속 요원들이셔.

앞자리에 앉은 포목점 집 주인이 뒤를 보면서 말했다. 말수도 대충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상하이에는 도처에 일제 안가가 있어 그들은 무전을 하면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는 바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중요한 내용 같으면 따로 심문을 할 테지만 그들은 말수와 포목점 집 주인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다.

요즘 조선 독립군쪽과 접촉하고 있나요?

엽차를 앞으로 내밀면서 일본 요원이 말했다.

알고 있는 대로요.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그쪽에서 연락이 오면 만나는 정도고요. 오늘도 잠깐 만났어요.

말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뒤를 미행해 다 알고 있는 자들에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보를 얻는 차원이지요. 알려야 할 내용이 있다면 미리 형님에게 다 보고하고 있어요.

포목점 집 주인이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와 무슨 말을 나눴어요?

임정 요원이라고 하는데 누군지는 모르겠고요. 독립군 훈련에 대한 요청을 받았어요. 아시다시피 병원 일이 워낙 바빠 고맙지만 정중히 거절했지요.

그리고 의사 선생은 훈련에 적합한 교관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들에게 말했는데 그쪽 사정이 급하긴 급한가 봐요.

포목점 집 주인이 거들고 나섰다.

일전에는 나한테도 폭판 제조법을 아느냐고 묻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영사관 요원이 그런 보고는 없었잖소?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것이 바로 어제 일이요. 오늘 만나기로 했으니 오늘 말하려고 했던 거지요.

머쓱해진 요원은 다시 말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선생은 우리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말수는 두말하면 잔소리요 하고 대꾸하려다 상대의 다음 말이 궁금해 기다렸다. 나올 답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병원 개업에 우리가 협조한 일을 언급하고 나카무라 대장을 끼워 넣을 것이다. 말수의 아픈 부위를 가격하는 것으로 네가 이래도 우리를 배신할래? 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요원은 그 점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멋쩍다는 의미였다.

내가 왜 모르겠어요? 저는 황국신민의 정신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러면 왜 독립자금인가 뭔가 하는 것을 내고 임정이 추파를 던질 기회를 주는 거요? 

아, 그거는 한인 소외층에 대한 지원인데 독립자금으로 흘러가는지 몰랐어요. 이달부터 당장 중단했어요.

알고는 지원할 수 없지요.

포목점 집 주인이 대신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 조선족을 돕는다고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당장 아이들이 굶어 죽으니 서너 달 만 도와 달라고 해서 그랬던 거고요. 훈련은 제가 전선에서 폭파를 좀 배웠거든요. 정식으로 한 것은 아니고 눈치껏 했는데 손재주가 있는지 소문이 났어요. 그것이 임정 귀에도 들어간 모양입니다.

사실대로 말할 줄 알았어요.

요원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자들 아지트는 우리도 짐작하고 있어요. 급습하면 달아나고 급습하면 달아나고 그런 적이 서너 번 있어요. 그래서 상하이 전체를 포위하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작정이오. 임정의 우두머리를 체포하면 조선 독립운동도 힘을 잃을 거요. 선생은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시국이 어수선할 때는 더 그렇지요.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고 임정 소식은 아는 데로 우리 포목점 사장님에게 전달해주시오.

영사관이 이제 가도 좋다는 듯이 부하를 불러 모셔다드리라고 말했다. 부관이 들어오기도 전에 포목점 집 사장이 입을 놀렸다.

전쟁이 곧 끝난다는데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요?

글쎄요. 우리가 이기기는 이기는데 쉽지가 않아요. 양키들이 워낙 드세게 나오고 로스케까지 설치고 있으니 조금 정체된 상황이긴 하나 곧 마무리될 겁니다.

영사관은 그 말을 하면서 자신도 신뢰할 수 없다는 듯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사 선생, 일본에 갈 생각은 없어요? 이곳보다는 도쿄에서 개원하는 것이 돈벌이에 더 좋지 않아요. 전쟁 걱정도 없고.

그러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요. 단골 환자도 늘어가고 있고 왠지 오래 있을수록 정이 들어 그것이 걱정입니다.

선생, 선생이 일 좀 해줘야겠어요.

그가 바짝 다가오면서 한 마디했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포목점 집 주인을 경계하지는 않았다.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중요한 이야기인 양 목소리의 톤을 낮췄다.

이번에는 선생이 임정과 접촉하세요. 그들이 와서 만나기 전에 만남을 먼저 요청하세요.

그런데 그들이 어디에 있고 누구와 연락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문제네요.

걱정할 것 없어요. 여기 형님과 같이 가면 됩니다. 만나기 직전에 형님은 빠지고요. 따라가서 약속을 잡으세요. 선생을 그쪽에서 믿는 눈치이니 만나자고 하면 거부하지는 않을 거요. 피라미라도 좋으니 잡아야겠어요.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요. 족치면 임정 수뇌들의 아지트를 찾겠지요.

영사관 직원은 그 말을 하면서 말수의 손을 꼭 잡았다. 이미 들어와 있던 요원은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을 알고는 문간에서 조심스럽게 서 있었다.

어, 왔니? 애가 왔으면 왔다고 기척을 해야지? 중요한 이야기인데. 너 혹시 들은 건 아니지?

예,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그자도 시치미를 뗐다.

알았다. 물은 내가 잘못이지. 저녁도 늦고 했으니 두 분을 집으로 모셔다드려라.

말수와 포목점 집 주인은 동시에 일어섰다. 말수는 영사관 요원과 헤어지면서 도쿄에 적당한 개원 장소가 있으면 알려달라면서 그곳을 나왔다. 말수는 그 말을 하고 깜짝 놀랐다. 진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상하이는 정이 드는것이 아니라 질렸다. 당장이라도 도쿄로 가고 싶다. 용희하고 바로 상의해야지. 그는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장소를 요원과 함께 걷고 또 걸어서 넓은 길로 나왔다.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구석에 대기하고 차가 보였다.

대충은 알겠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 그런 장소에서 말수는 차에 올랐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그다지 좋은 결과도 아니어서 말수는 덤덤한 기분을 유지한 채 병원에 도착했다. 그는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조금 망설였다.

일제의 끄나풀 제의를 공식적으로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포목점 집에서 술을 먹을 때는 그저 술김에 하는 이야기였으나 이제는 정식 안가에서 받은 제의이니만큼 이전의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스파이 노릇을 하라니. 그것도 임정 수뇌 박멸 작전에 나서라고.

군사 훈련은 어찌하고. 독립군 이 개 사단 폭파 교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훈련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발각되면 정보를 얻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둘러대고 그들도 결국 황국신민의 병사가 될 것인데 무슨 문제냐고 따지면 된다.

조선으로 급파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독립군이나 일제의 병사나 마찬가지였다. 점령지에서 훈련받는 병사는 점령지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들은 조선 침투를 명받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일본 군복을 입고 태평양 전선에 투입될 수 있다.

미군 특수 부대로 차출된 일개 사단 병력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말수는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쪽도 저쪽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신변은 되레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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