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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마더(2009)- 그 힘은 무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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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마더(2009)- 그 힘은 무한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1.1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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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엄마나 어머니가 아니고 ‘마더’다. 마더는 엄마나 어머니와는 달리 느낀다. 그러나 한국어와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더는 공통점이 있다.

다 보고 나서 영화 제목이 <마더>가 아니고 엄마나 어머니였다면? 이런 묘한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엄마가 영화 속에서 얼마나 폭주할 수 있을까 극단까지 가보고 싶었다”고 서문에 썼다. 그 말대로 영화 <마더>는 엄마의 끝판왕이다.

여기 한 엄마가 있다. 모든 엄마가 그렇듯이 이 엄마(김혜자)는 아들( 원빈)을 끔찍이 사랑한다. 작두질을 하면서도 문밖의 아들이 사랑스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은 그러나 조금 모자란다. 속된 말로 바보라고 해야 할까. 28살이나 먹었는데 영 아니다. 하지만 엄마의 눈에도 그럴까. 아니다. 그는 누구의 아들도 아닌 바로 내 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나 다른 식구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유도 없으니 그냥 둘 만이 가족을 꾸리고 있다. 생계는 마더가 작두에 약재를 썰고 ‘야매’로 침을 놓는 것으로 해결한다.

그 아들에게는 친구(진구)가 있다. 술 먹고 동네 양아치 놀이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곧잘 어울린다. 사고가 나면 잘못한 것은 언제나 아들이다. 흰색인지 검은색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벤츠의 백미러를 박살 낸 것도 친구가 아닌 아들이다.

어느 날(항상 일은 어느 날 터진다.) 아들은 집으로 가고 있다. 좁은 골목길의 앞에는 여학생이 종종 걸음으로 걷고 있다. 서두르고 쫓아가고 화면은 긴박하게 움직인다. 사고가 날 것만 같다. 예감은 맞아떨어진다.

여학생이 시체로 발견된다. 그것도 집의 옥상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엽기적인 사고의 범인으로 아들이 지목된다. 형사는 아들에게 이미 짜놓은 시나리오 대고 사건을 몰고 간다.

왜 죽였니? 그러니까 인정한 거네. 여기에 도장찍어.

방어능력이 없는 아들은 포승줄에 묶여 현장검증도 마쳤다. 사건은 서둘러 종결됐다. 엄마는 미친 듯이 날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아들은 살인자가 아니라고. 변호사를 사고 별수를 써 보지만 어쩔 수 없다.

정상참작을 이유로 징역 4년이면 살인자치고는 헐하다. 친구가 범인이 아닐까, 엄마는 머리를 굴린다. 그가 사는 저수지의 허름한 집을 찾는다. 골프채를 꺼내 지문 감식을 의뢰한다.

뚝방 길을 걸어올 때 주변 경치는 아름답다. 그러나 친구는 아니다. 친구는 아들을 위하는데 엄마는 자신을 의심한다. 화가난 친구는 그런 엄마를 함부로 대하다가( 막 대해도 되는 남녀사이?) 딱했는지 엄마가 직접 범인을 잡으라고 한마디 툭 한다.

그리고 내가 형사라면 어떻게 추격을 시작하는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그럴싸하다. 엄마는 그날로 주변 탐문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죽은 여학생이 가정도 불우하고 남자관계가 복잡한 것을 안다.

그녀가 버렸다는 핸드폰 속의 중요 용의자만 압축해도 살인자의 윤곽은 곧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은 코믹하면서도 살벌하다. 약에 취한 아이들의 행태와 그들이 노는 꼴은 살인보다도 더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추격을 멈출 수 없다. 엄마의 힘으로 갈때까지 가본다.

엄마가 구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 마더의 힘은 세다. 마더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살인자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마더의 힘은 세다. 마더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살인자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번에는 고물상을 찾는다. 그의 이미지는 범죄자로 딱 어울린다. 그러나 그는 아니다. 그러나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와 대화하면서 엄마는 아들이 누명을 쓴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진짜 범인이었다.

그가 본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행동이다. 관자놀이를 눌러대는 습관을 표현할 때 엄마는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녀는 길고 굵은 몽키 스패너를 집어든다. 그걸로 진짜 범인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전화를 걸려는 고물상의 뒤통수를 마구 친다. 그리고 불을 지른다. 살인 방화다.

형사(윤제문)는 엄마를 찾는다. 진법이 잡혔다고. 골프공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쓴 아들은 풀려났다. 기도원을 탈출한 종팔이의 혈흔 나왔다고,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한다고 형사는 완벽한 증거를 자랑한다. ( 죽은 소녀는 코피를 자주 흘렸다. 정황상 종팔이와 사랑을 나누다 종팔이 옷에 코피가 묻은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진범을 면회간다. 진범으로 엄마 앞에 나온 누군가의 아들은 척 봐도 자신의 아들보다 더 바보스럽다. 바보가 진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다.

엄마는 입을 달싹 거린다.

네가 범인이 아냐, 진짜 범인은 풀려난 우리 아들이다. 엄마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을 것이다. 이 바보야, 죽였어도 아니라고 했어야지. 그러나 마더는 그 말을 끝내 뱉지 못한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부모님은 있니? 엄마는 있어? ( 엄마가 있고 없고에 따라 죄의 유무가 갈린다고나 할까.)

밥상을 마주하고 살인자 엄마는 살인자 아들에게 말한다.

더 먹어. 이게 정력에 좋은 거야.

국가: 한국

감독: 봉준호

출연: 김혜자, 원빈

평점:

: 아들은 기억력이 비상하다. 때로는. 언제나 그러지 않는 것이 문제지만. 그는 그 기억력을 바탕으로 불과 다섯 살 때 엄마가 농약을 먹여 자신을 죽이려 했던 기억을 꺼낸다.

오죽하면 엄마가 그랬을까. 바보 아들과 사느니 함께 죽자고, 그러나 그 실행은 불발로 끝났다. 아들은 또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낸다. 고물상에 간 엄마가 흘리고 온 침 케이스를 찾아 준다.

그리고 범인이 계단으로 시체를 끌고 옥상에 빨래처럼 엎어 놓은 것은 사람들 눈에 빨리 띄게 하려는 것이라고.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피를 흘리는 그를 누군가 신고해서 병원에 데려갈 것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것으로 그가 자백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자신이 죽인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범인이라는 확인사살은 끝났다.

엄마가 추는 춤이 기이하다. 막춤의 범주에 들어갈 것은 분명하지만 흥이 없다. 아니 흥은 있는데 즐거움이 없다. 몸을 흔들지만 신이 없다.

정작 신이 났을 때는 살인의 증거물이라고 친구의 집에서 몰래 훔쳐 온 드라이버를 들고 저수지 뚝방길을 걸어 경찰서로 향할 때의 그 몸놀림이다.

신들린 듯한 경쾌한 발걸음은 엄마 춤의 본질이다. 봉준호 감독은 <마더>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데 성공한다. 애초 목표를 영화는 달성한 것이다.

여기서 사족 하나: 사람에게 바보라는 표현은 모욕이니 절대 어떤 경우에라도 써서는 안 된다. 특히 자신보다 모자란 사람에게는.

바보같은 새끼 혹은 바보 같은 자식이라는 말 한마디는 살인 충동을 가져오고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가 누구라도 예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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