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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24 12:48 (금)
계획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획은 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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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획은 틀어진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2.29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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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을 그대로 두고 사용하자. 이번만큼은 신이 우리편 인가 보다. 불벼락을 그들에게 내리자. 꿩 대신 닭이라고 총독대신 도적놈이다. 알량한 지식으로 입신에만 열을 올리는 자들의 최후를 보여주자.'

휴의는 새로운 전의에 불타올랐다. 상하이 임정도 환영하겠지. 미리 알리지 않겠다. 그럴 시간도 없다. 사후보고로 충분하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른다는 미군에게서 배운 전략을 이런 때 써먹는구나.

휴의는 중국의 은밀한 산속에서 펼쳐졌던 폭파 교육을 상기했다. 그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마지막 결전은 시작됐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아도 될까요? 새로운 작전인데요.'

대원 하나가 걱정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시간이 없어. 이번에는 우리 단독 결정이다.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 동지들은 나만 믿고 따르면 된다.'

휴의는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미리 작성한 '우리들의 선언문'을 꺼냈다. 선명한 붉은 지장이 눈에 띄었다.

'이것은 전에 한 것 아닙니까?'

'그래. 이번에는 문구 하나만 더 넣자. 다행히 여기 여백이 있구나.'

휴의는 먹을 간 붓을 들었다.

'우리는 적성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합니다.' 라고 끝난 다음에 '또한 적국에 협조하는 왜국 앞잡이를 척살하기로 했습니다. 1944년 8월 13일. 대한애국단 앞 전휴의, 갈길동, 도민청 일동.'

그리고 직인 옆에 손바닥에 먹을 입혀 찍었다. 안중근 열사나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뒤를 잇는다는 명백만 표식이었다.

'그래 뽐 한 번 잡아보자. 제대로 한 번 해보는 거야.' 

점례는 동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었다. 내버려 둘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이 섰다. 호사카에게 부탁하면 안 될 일이 없다. 허나 무슨 이유를 대지.

점례는 초조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마음은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심사도 있었다. 곧 파리로 가는 마당에 각자 자기 길을 가면 그만이다.

그가 파리까지 쫓아올 이유 없다. 살아생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이다. 놓아주자. 운명에 맡기자. 점례는 자신이 홀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때 호사카가 그런 마음에 변화를 주었다.

'종로서장을 어찌 평가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작스런 질문에 점례가 당황했다.

'어떻게라니요?'

'그냥 능력이 있는지 관상은 어떤지 물어본 거요.'

점례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호사카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래도 시건방을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하는 부분도 있고. 백작 칭호까지 받으면서 녹을 먹고 있는데 성과가 제대로 나오고 있지 않으니...'

호사카가 점례를 슬쩍 보았다. 미심쩍은 부분을 이번에는 확실히 털고 가려는 작정인듯 싶었다.

'내가 나설 부분은 아닌 것 같지만. 능력은 잘 모르겠고요. 관상이라면, 좋은 관상은 아니에요. 좀 거칠고 야욕을 숨기는 스타일 같아요. 일할 때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성질이 있으나 두뇌회전은 둔한 것 처럼 보여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아까 보니까 동휴하고 이야기를 제법 길게 하던데 무슨 애기를 했어?'

'뭐 별것 있겠어요. 공개된 장소에서 그냥 서로 덕담했지요.'

점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 했다.

'내 옷차림을 칭찬해 주길래 고맙다고 했고 얼굴에 파리가 붙었는데도 체면 때문에 그대로 있어 내가 손바닥으로 쳐 냈지요.'

'그랬군. 난 또 무슨 소린가 했지.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칠 것까지야 있었나? 생판 모르는 사내 얼굴을?'

'나도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손이 올라갔어요. 아프기야 했겠지만 그 덕분에 파리를 쫓았으니 감사해야 마땅하지요.'

'다른 얘기는 없었고?'

'다른 애기라니요?'

'아, 고향이 어디냐고 묻더군요. 보령의 죽마을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보령은 잘 안다고 반가운 척하더라고요.'

'그랬군. 난 녀석이 당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줄 알았지 뭐야.'

'그럴리가요. 그런데...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악수를 하는데 가운데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을 긁지 않겠어요? 그냥 웃어넘겼는데 기분이 좋을리야 없지요.'

호사카가 얼굴이 어그러졌다.

'총독에게 전화할까? 저놈을 당장 잘라 버리고 감옥에 처넣으라고. 그런데 그런 이유를 댈 수야 없지 않은가. 뭐가 있지?'

호사카는 어떤 식으로든 그자를 엮어 조선을 떠나기 전에 처리하고 싶었다.

'감히 내 여자를 넘 보다니. 그래 내일 조선문인들과의 만남에서 어떻게든 건수를 만들어 보자. 경호 책임을 물어야지. 그러면 그자도 어쩌지 못할거야. 그것이 자연스럽고. 내가 선수를 치지. 총독에게 전화해서 저런 자하고 일을 하니 조선이 이 모양 이 꼴이 아닙니까? 한마디 하면 끝나겠지. 좋아, 그렇게 하자.'

동휴는 동휴대로 점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쓴 웃음을 지었다. 서에 돌아와 자기 책상 앞에 발을 뻗고는 상념에 잠겼다. 따귀를 맞은 얼굴이 아직 얼얼한 지 한 번 만져 보았다.

'감히 따귀를 때려. 네 년이.'

그가 화를 참지 못하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냈다. 지나가던 부하가 힐끗거렸다.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동휴는 그가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 년이 제 서방에게 나를 고자질할까. 머리 좋은 것이 그럴 리 없다. 제 허물도 드러날 텐데 제 무덤을 팔까. 휴의가 걸리겠지. 그러기 전에 과거가 들통나겠고.'

호사카의 심사를 긁어 낼 방도가 없을까.

'최초의 서방은 네가 아니고 휴의다. 알고 있다고? 과거 일이라고. 그런 일은 지나갔다고 신경 안 쓴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식은 어떤가. 과거는 과거라고 해도 현재도 그렇다면. 몸뚱이는 너에게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휴의 것이라고. 이래도 호사카가 가만히 있을까. 내무대신의 아들이 마음이 그렇게 넓어.'

동휴는 어떻게 하면 호사카와 점례를 갈라 놓을까 궁리했다.

'그 년이 믿고 있는 게 호사카 말고 더 있어. 끈 떨어지면 네 년은 내 밥거리도 안돼.'

분해 빠진 동휴가 벌떡 일어났다. 제 화를 이기지 못해서였다. 그나저나 휴의란 놈은 조선땅을 벗어났을까. 신출귀몰해. 내가 못잡은 놈이 없는데, 찍고도 여러 번 찍고도 못 잡았어.

참 난 놈이야. 그래 좋아. 한꺼번에 해치우자. 네 놈도 잡고 네 년도 잡아야지.'

그러나 모든 계획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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