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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9)-'국뽕'의 수준을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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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9)-'국뽕'의 수준을 넘어서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12.24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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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신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교회의 첨탑에 적이 숨어 있다. 폐허의 잔해에는 아군이 저격하기 위해 엎드려 있다.

서로는 서로를 노리고 있다. 풍향과 거리도 쟀다. 이제 조준경을 보면서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전에 그들은 간절하게 호소한다.

신을 찾는다. 주여!를 외친다. 내 주여, 내 하느님! 적의 숨통을 끊어 주소서. 총알이 빗나가지 않고 적의 머리와 심장을 뚫고 지나가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빌고 기도한다.

어떤 절박한 기도보다 더하다. 이런 기도, 신은 들어줄까. 생명을 사랑하고 원수를 그렇게 하라는 신이 그 기도를 들어줘야 마땅할까. 아니라고 고개를 흔드는 것이 정답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는 아니다. 신은 죽이고 평화를 깨트리는데 화답한다. 딱 하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전쟁터라고. 모든 예외 없는 규정이 없듯이 그런 핑계는 그럴듯해 보인다.

전쟁이니까, 그곳은 전쟁터니까. 전쟁은 신까지도 편 가르기에 나선다. 신이 우리 편이라면 신의 적은 누구인가.

각설하고 때는 2차 대전 막바지. 연합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어려운 결단이다. 많은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작전 지휘자는 안전한 벙커에서 명령을 내린다.

'가라, 사지로~. 가서 과감하게 평화를 위해 죽어라.'

명령은 추상같다. 병사들은 불복종 대신 복종한다. 장갑차가 해안선에 닿는다.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총알은 이번에도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생명을 비켜 가지 않고 정면으로 뚫고 지나간다. 관통당한 생명은 여지없이 쓰러진다.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보지만 그곳이라고 안전할 리 없다.

육조 우선을 통과한 강력한 총알은 수면을 가른다. 다만 지상의 소리와는 다른 소리를 낼 뿐이다. 물 먹은 총알은 탕탕탕 대신 피융 피융 피융 소리를 낸다.

소리가 다르다고 관통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피부에 가려졌던 핏줄이 터지고 푸른 바다는 붉게 물든다. 총알받이는 이런 때 필요하다. 

그 와중에도 기적처럼 살아 있는 생명이 있다. 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적을 행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적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고 적들 역시 신을 외친다. 신의 방패가 필요하다.

▲ 잘 만든 '국뽕' 영화 한편은 전쟁을 미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전쟁은 가장 나쁜 평화보다도 나쁘다.
▲ 잘 만든 '국뽕' 영화 한편은 전쟁을 미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전쟁은 가장 나쁜 평화보다도 나쁘다.

신은 이번에는 화답하지 않는다. 신도 잠을 자야 하고 밥 먹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기도는 약발이 없다. 하필 적들은 그 때 기도를 했다.

부서진 벙커에서 화염방사기를 피할 수 없는 적들이 타오른다. 이번에는 너희들 차례다. 신은 공평하다. 불탄 시체에서 축포처럼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합군 대위( 톰 행크스)는 병사들을 추스린다. 죽을 때까지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상부에서 이상한 명령이 하달된다. 공수부대답게 적진 깊숙이 침투하거나 적의 옆구리를 치는 특수작전이 아니다.

라이언( 맷 데이먼)을 구해오라는 것. 전쟁통에 어디서 그를 찾아야 하나. 더구나 라이언은 포로로 잡힌 장군도 아니고 총알받이로 써먹는 일개 일병에 불과하다. 대략난감.

이런 건 신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해서 사람에게 물어물어 찾아 나선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는 성공할까.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풍문처럼 대답은 다들 알고 있다.

찾는다. 찾아서 데려온다. 굳이 ‘스포’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더구나 친절한 영화평이니 다 까발리자. 여기서 잠깐. 라이언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세상의 아들치고 어머니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에게도 어머니가 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라이언 말고도 세 아들을 무릎 아래에 뒀다.

아들 부자 엄마는 행복했을 터.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 명의 아들이 전사했다. 남은 아들은 라이언 한 명뿐. 참 이런 일이 영화에서라고는 하지만 벌어졌으니 딱하다.

가슴이 울렁인다. 미국식 애국주의를 논하기 전에 지구상 어디에서라도 아프지 않을까. 과연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사에 남을 위대한 걸작을 또 하나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국가: 미국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행크스, 맷 데이먼

평점:

: 찾는 과정에서 대원들 간의 갈등이 아니 있을 수 없다. 애 하나 찾는다고 여덟 명의 귀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실제로 대원이 셋이나 죽었다.

갈등이 심각하다. 그러나 대위는 요지부동이다. 라이언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문제는 또 있다. 겨우 찾았는데 라이언은 곧 닥쳐올 독일군 최강 전차 부대와 맞서야 하는 운명이다.

설상가상으로 연합군은 무기도, 인원도 부족하다. 대위는 그를 데리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

'가자, 집으로~. 엄마가 기다린다. 젖 먹어야지.'

그러나 일병은 고개를 젖는다. 완강하다. 여기를 방어해야 한다. 다리가 무너지면 전쟁의 승패에도 영향을 미친다나. 군인 정신 투철하다고 칭찬해야 마땅하다. (이런 사기 하나하나가 모여 연합국이 승리했다.)

어쩔수 없이 대위는 대원들과 함께 독일군에 맞서 전투를 벌인다. 스토리는 엄청 '재미지다'. 전투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해병대 상륙작전의 초반씬은 압권이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앞서 언급한 저격병이 노리는 숨 막히는 순간들, 초원에서 벌어지는 긴급 작전 등은 눈을 한시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아카데미에서 숱한 상을 받았다. (참고로 같은 해에 나온 '황무지'를 만든 테렌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 라인’도 전쟁 영화의 손꼽을 만한 웰 메이드 작품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한쪽이 애국심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른 한쪽은 반전에 무게를 뒀다. 당연히 상은 애국심이 다 가져갔지만 ‘씬 레드 라인’이 보여준 짜임새는 상 없이도 충분히 평가를 받을만 하다.)

적군만큼이나 잔인한 아군의 행동, 잘려나간 팔을 들고 다시 붙일 수 없어 허둥대는 병사, 죽어서야 손 떨림을 멈춘 대위의 행동은 전쟁이 주는 참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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