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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비극의 탄생( 1872)- 자아비판 그리고 인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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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비극의 탄생( 1872)- 자아비판 그리고 인류 고전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12.24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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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니체는 바그너를 찬양했다.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고 죽은 비극이 다시 태어난 것은 바그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바흐, 베토벤을 계승한 바그너 음악이 예술의 정점에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비극의 탄생> 서문에 바그너에게 바치는 헌사를 썼을 정도다.

그랬던 니체는 반유대주의와 국수주의적 경향( 실제로 바그너는 유대인을 극대로 혐오했으며 독일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는 민족주의에 빠졌다. 히틀러가 그를 추앙했다.)을 보인다는 이유 등으로 그와 결별했다.

이후 초판에 실렸던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헌정한 서문을 개정판에서 빼버렸다.

음악가 바그너를 서두에 이처럼 언급한 것은 바그너 음악이야말로 죽었던 비극을 재탄생 시킨 사건이라고 니체가 봤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많은 신화를 끌어다 쓰고 난해한 문장 때문에 쉽사리 읽히지 않는다. 두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여러 군데서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어떤 결론에 이를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도 딱 부러지게 그것을 알 수 있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주장하는 것은 문화의 중요성과 이를 이룰 수 있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균형에 있음이고 그 핵심이 바그너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당대 고문헌 학자들의 많은 지적을 받았고 사실과 다른 주장이 밝혀진 이후 이런 지적은 옳은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등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켰다.

독일 고전문학의 대표주자인 빌라모비츠는 니체의 생각은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 종교적인 광신으로 폄훼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무지와 무식의 소치라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니체는 바그너에게 푹 빠져 죽은 비극을 살려낸 장본인이라고 설파했다. 독일정신은 그로 부터 왔다고 추앙했다. 그러나 바그너가 보인 인종주의적이며 지나친 민족주의 성향때문에 그와 결별했다.
▲ 니체는 바그너에게 푹 빠져 죽은 비극을 살려낸 장본인이라고 설파했다. 독일정신은 그로 부터 왔다고 추앙했다. 그러나 바그너가 보인 인종주의적이며 지나친 민족주의 성향때문에 그와 결별했다.

“그가 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역사주의와 소위 세계사에 대한 비판을 전혀 알려 하지 않고 다만 디오니소스적 아폴론 예술, 형이상학적 위안을 만들려고만 한다면 그의 주장은 아마도 저열한 일상이라기보다는 숭고한 망상일지 모르겠다...나는 이것 한 가지를 분명히 요구한다. 니체 선생은 입을 닫고 튀르소스를 잡고 인도로부터 희랍으로 행진하라. 그리고 학문을 가르친다는 교수좌에서 내려와 고전 문헌학을 공부하는 독일 청년들이 아니라 호랑이와 표범을 슬하에 모으라.”

한편 비극의 탄생 이전에는 비극의 죽음이 있었다. 죽음은 소크라테스와 그를 추종하는 에우리피데스 때문이라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책의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12장에서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최고 강령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모든 것은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다. 오로지 아는 자만이 덕을 실천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에우리피데스는 모든 것을 측정하고 규격에 맞추어 언어, 인물 성격, 줄거리, 합창대 음악등 모든 것을 교정했다"고 주장했다. ( 빌라모비츠의 반박을 보면 에우리피데스도...누구나 변화 불가능한 천성을 타고난다. 이렇게 앞서 결정된 개인 생각들의 충돌로부터 필연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개인 성격의 선결정성으로 인간의 노력과 방황, 잘못된 속죄가 무망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에우리피데스는 보았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명제와 관련해 에우리피데스는 정반대 명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의 여주인공 파이드라는 이승의 고통이 그녀에게 찿아오는 것은 무엇이 올바른지를 알면서도 이를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정신은 이를 바라지만 육신은 유약하기 때문이다".( 김남우 번역판)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교양과 예술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그러니까 이 책이 나온 1872년 무렵) 우리가 목도 하는 이 시대보다 소위 교양과 예술 일반을 이처럼 소외시키고 외면한 시대는 없었다는 것. 박약한 교육이 진정한 예술을 증오하는 이유는 자신이 예술로 인해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비극적 인간이 될 것을 진지하게 권유하고 있다. 그러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 그러기에 정염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관조적 태도를 견지하는 포도주와 같은 탁월한 조합을 가진 희랍 인민 정신은 더없이 소중하다고 설파한다.

꿈속에서라도 희랍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 구체적으로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으로 대변되는 의지와 표상(<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상당한 분량을 쇼펜하우어에서 인용했다.) 호메로스와 희랍 서사시 뒤트람 보스 주신 찬가와 비극합창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결박된 프로테메우스>를 언급한다.

: 니체는 이 책에 대해 ‘나의 난해한 견해 혹은 지나치게 장황하고’ 라는 표현을 썼을 만큼 실제로도 독자들이 읽기에는 매우 어지럽다. 마치 입증된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검증해 보면 아닌 것도 있어 니체의 말마따나 문제가 많다.

그러나 서문 격인 ‘자기비판을 시도함’( 1886년에 추가됐다.)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아주 중요하고 매력적이며 사회적인 책이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한다.

이 책이 나온 1872년은 나폴레옹 혁명과 반혁명 그리고 보불 전쟁이 치열했던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였다. 그 시기에 사색가이며 묻기를 즐겼던 니체는 스위스 알프스 끝자락인 루체른에서 희랍 인민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고 적어 나갔다.

그것이 바로 경이롭고 어려운 이 책의 핵심이 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시대의 가장 훌륭한 사람을 만족시킨 책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 여기서 훌륭한 사람은 이 책의 대화자로 설정한 리하르트 바그너다. 김남우 역자에 따르면 1872년 1월 초 바그너와 그의 부인은 <비극의 탄생> 원고에 크게 감동 받아 “생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극찬과 함께 책의 출판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니체는 오늘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불가능한 책이며 형편없고 답답하고 황당하고 비유가 난무하여 뒤엉켜 있고 감상적이고 때로 유약할 만큼 달콤하여 완급이 고르지 못하고 논리적 명료성에의 의지가 결여돼 있고 확신에 빠져 증명을 건너뛰고 심지어 증명이라는 것의 적절성조차 회의적이라고 자기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겸손과 자기 비판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평가는 <비극의 탄생>을 인류의 고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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