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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그는 수전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심하게 손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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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전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심하게 손을 떨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2.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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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오다. 현장을 확인하는 살인자처럼. 다만 언제 오느냐, 어떤 차림으로 오느냐가 문제였다. 실내에서 체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소란스럽다. 어떤 돌발행동이 벌어질 줄 모른다.

점례가 까무러치는 모습도 근사할 것이다. 그것을 보는 호사카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질 것이다. 허나 그 과정에서 호사카가 내가 이 사람 아는 사람이오? 한다면 일이 어찌될까.

사람 잘못봤다고 되레 야단이나 맞지 않을까. 점례가 우리 동업자라고 하거나 파리 동료라고 나선다면. 거기에 둘러 댈 핑계를 동휴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들어가려는 순간 혹은 멀찍이서 이곳을 향해 걸어 올 때 뒤에서 덮치는 방법이 좋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을 실토 받은 후 삼촌에게 통보한다. 그러면 상황은 말끔하게 정리된다.

그것을 노리고 동휴는 사복형사 삼십여 명을 갤러리 주변에 깔았다. 이번에는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제 와야 한다. 덫에 거려들 때가 됐다. 어디 쯤 오고 있나.

시간은 저녁으로 간다. 갤러리가 문을 닫기 직전이다. 불길한 예감이 동휴를 감싸고 돌았다. 아까 호떡을 호호 불며 먹던 그 촌놈이 혹시? 아닐 것이다. 대로에서 그것도 은폐물도 없는 곳에서 휴의같은 거물이 쉽게 자신을 노출할리 없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그 자가 그 자인가. 둘이 만나서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다. 동휴는 들어간 그 자가 휴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오면 바로 체포하기 위해 날랜 대원 10여명을 갤러리 맞은 편에 대기 시켜 놓았다.

틀림없다. 그런데 들어가는 했으나 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들어갔다가 한 시간이나 길어도 두 시간 안에는 나왔다. 그런데 세시간이 지나도 호빵맨과 함께 있던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놓쳤다. 동휴는 또한 번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혹시 건물 뒤에서 드나 드는 통로가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야 한다. 이틀전에 꼼꼼히 봤을 때는 모두 벽이었다.

혹시나 해서 그는 다시 뒤로 돌아갔다. 역시나 빠져 나올 구멍은 없다. 동휴는 자신이 직접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체면이 많이 구겨졌다.

삼촌을 보는 것도 그렇고 점례와 마주치기도 싫었다. 호사카를 볼 면목도 없다. 휴의를 잡으랬더니 한가하게 그림 구경이나 하러 왔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이래 저래 동휴는 심사가 뒤틀렸다. 삼층 갤러리는 모두 벽으로 차단됐다. 창문도 커튼으로 닫혀 있고 인파는 여전히 북적였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휴는 화장실에 들렀다. 겨우 사람 하나 빠져 나갈 정도의 작은 구멍이 눈에 띄었다. 그는 청소용 의자에 올라타서 아래를 보았다. 여기 였구나. 창문 너머는 바로 옆집의 지붕으로 이어졌는데 거의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창문으로 몸을 내밀면 그대로 지붕을 타고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구조였다. 놓쳤다. 그는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여기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동휴의 출현도 모른 체 점례는 안절부절 했다. 언제 올까. 왔다 갔을까. 아니다. 그가 아무리 변장을 해도 내 눈을 속일수는 없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일이 틀어진 것이다.

휴의는 오지 않을 것이다. 헌병대사령부로 장소가 변경됐어요. 수도 없이 입속에서 외웠던 말을 써먹을 수가 없다. 아니 휴의를 확인하고 나서 그 말을 뱉을지 삼킬지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한 것도 소용없는 일이 되버렸다.

이제 결정의 고민은 사라졌다. 그런데 점례는 그것이 더 불안했다. 내일이다. 호사카가 죽는다. 나도 죽고 아이도 죽는다. 피할 수 없다. 어떤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식은땀이 난다.

뱃속에서는 부글부글 끊는 소리가 들린다. 발길질 하는 모양새다. 건강하고 잘 크고 있구나. 아냐, 아냐 속단하지 말자. 아이는 없어. 난 엄마 자격이 없고 아이를 키울 만큼 건강하지 못해.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삼촌은 대만족 했다. 그는 동휴와의 약속은 까마득히 잊고 오로지 완판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점례는 대단한 인물이다. 까미유 클로델을 능가한다. 어떤 여류화가보다도 뛰어나다. 그러니 조카가 꼼짝 못하지.

그가 휴의와 내통하든 말든 그녀를 보호하는 것이 맞다. 일본의 자산인 동시에 세계의 유산이다. 삼촌은 이런 마음으로 자신의 화랑에 걸어 둘 그림 한 점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이리도 자연스러운가. 모자를 씌워주고 넥타이를 매주는 장면은 사랑 그 자체였다. 사랑을 표현한 어떤 그림보다도 더 확실하고 뚜렷했다. 도쿄로 가져가자. 교과서에도 실어야지.

자고 가라는 거듭된 요청에도 둘은 호텔로 돌아왔다. 호사카는 점례의 의견을 존중했다.

'아침에 못 일어날 거같아요. 내 몸은 내가 알거든요. 삼촌 집에서는 그게 안돼요. 밤 새 못자고 아침도 못잔다면 총독 만찬에서 저는 쓰러질지 몰라요.'

둘이 있는 시간에 점례는 호사카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알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해 하시겠지만 어쩌겠어. 당신이 더 중요하지. 삼촌은 내가 설득해 볼게.'

호텔에 도착하자 점례는 자신의 몸이 녹초가 된 것을 알았다. 뜨거운 불을 이겨내지 못한 밀납처럼 점례의 몸이 녹아내렸다. 머리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몸통과 다리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까무라치기 일보 직전에서 점례는 침대에 누었다. 그는 호사카를 의식하지 못했다. 마치 시체처럼 눈이 감겼다. 그 상태로 그녀는 아침을 맞았다. 억지로 눈을 떠야만 했다. 두 손으로 감긴 눈을 펼치는 시늉을 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일곱시 였다.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더 자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빠져 나왔다. 목욕을 했다. 따뜻한 물이 고마웠다.

몸은 다시 생기를 찾았다. 몇 시간을 잔 거야. 도대체. 점례는 중얼 거리면서 커피물을 끊였다. 향이 좋은 원두에서 나오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뜨거운 것이 몸에 들어가자 점례의 몸은 원상회복 됐다.

억지로라도 기분을 업 시키자고 의식을 모으자 정말로 신바람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 이런 말짱한 정신이라면 오늘 일은 무사히 치를 거야. 그렇지, 정리해 보자.

11시 조금 넘어서 호텔을 나간다. 대기하고 있는 차를 타고 일본각으로 향한다. 30분 후 쯤 정문에 도착한다.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자. 10분 정도는 일찍 도착해야 한다. 총독을 만난다. 이런 저런 안부 인사를 나누다 보면 정오다.

한옥으로 이동해 식사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 총을 쏜다. 수류탄을 던진다. 아수라장이다. 호사카가 맞는다. 피를 흘린다. 점례야 살려줘, 그가 외치면서 숨이 멎는다. 점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것은 아니다. 그런 계획은 없다. 공격이 있을 거라고 말해야 한다. 약속 장소를 변경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휴의는, 그러면 휴의는. 그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체포된 그는 고문 끝에 나와의 관계를 털어 놓는다. 호사카는 외면한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재판을 받다 휴의는 매질독으로 사망한다. 아니 교수형에 처해져 대롱대롱 나무에 매달린다.

그가 죽어 나가는 모습을 옆방에 있는 내가 보고 통곡한다. 나는 이곳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감히 천황의 시혜를 받고도 첩자와 놀아났다는 죄목이다. 점례의 손이 떨렸다.

수전증을 앓는 환자처럼 잔을 잡은 손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출렁인다. 그러더니 넘쳐서 식탁으로 떨어진다. 스케치 북에 검은 물이 번진다. 피다. 검은 피가 흐른다.

아기가 다시 발길질을 한다. 배가 아플정도로 차고 있다. 힘이 센 녀석이다. 나 잘 크고 있어요. 엄마. 조금만 기다려요. 곧 세상으로 나가 엄마품에 안길게요.

그때 점례의 머리에 번개와 같은 생각이 스쳤다. 통증이다. 병원행이다. 도착 직후 까무러 친다. 호사카가 동행한다. 총독은 기다리다 내무대신의 아들 대신 폭탄을 손님으로 맞는다.

그와 장관들이 사망한다. 작전을 성공했다. 휴의는 무사히 조선을 빠져나간다. 상하이는 축제 분위기다. 조선독립을 미리 축하한다. 잘 됐다. 휴의도 살고 나도 살았다. 무엇보다 호사카가 여전히 내곁에 있다.

화사카도 눈을 떴다. 어제 일이 아무일 없이 지나간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종로서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휴의하나 체포하지 못하는가.

전시회에는 분명 그림과는 상관없는 수상한 자들이 들락거렸다. 거기에 분명 휴의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근처를 배회했을 것이 분명하다. 호사카는 당장 동휴를 체포하고 싶었다.

옷을 벗겨 감옥에 처 넣어 분풀이를 해야 한다. 이불 속에서 그의 심장이 크게 울렁거렸다. 점례의 체온은 없다. 그녀는 지금 무슨 꿍꿍이를 펼치고 있는가.

나를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의심한 적이 없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한 번 들기 시작한 생각은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확인해 보자. 물어볼 수는 없다.

'사랑하느냐고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신 설마 나를 못 믿는 건 아니죠?'

내가 무슨 대답을 할까. 이렇게 나오면 나만 못난 남자가 된다. 확인할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그래 맞다. 그거다. 장소와 시간을 말해줬다. 총독도 위험하지만 총독 맞은 편에 앉은 나도 위험하다.

내 위험을 그녀가 방치하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휴의가 뭔가 하는 그 조센징을 사랑하는 것이 맞다. 기다려 보자. 서너 시간 후면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것이다.

그녀가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옷을 입고 약속 시간에 맞워 일본각에 도착하면 나는 그를 버려야 한다. 총독이 도착했으면 빼내야 하고 오고 있다면 차를 돌리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점례는? 나를 배신한 점례는. 그는 동휴에게서 받은 권총을 꺼내 들었다. 손에 익었다. 전선에서 사용한 그것과 동일한 기종이다. 내 손으로 처치하자. 그것이 속시원하다.

한 때 사랑했고 누구보다 그의 예술성을 존중했으니 최후는 내 손으로 하자.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죽는 것을 점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총구를 보는 순간 점례는 자신의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는 체념할 것이다.

'나를 쏘세요. 나는 당신을 배신했어요. 부모 같은 은혜를 준 당신을 저버린 나는 죽어 마땅해요.'

호사카는 권총을 다시 침대 옆 서랍에 넣었다. 인기척이 들렸다.

'당신 일어났어요? 기분 어때요? 식사해야지요?'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점례는 이렇게 물었다.

'어 천천히 해, 하나씩. 첫 번째 질문이 뭐였지? 일어났느냐고. 보시다시피. 기분은 매우 좋고. 굿모닝이다. 식사는 해야지. 체력 보충은 든든한 아침에서 오거든.'

'그래요. 대충 씻고 내려가요.'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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