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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를 달리듯이 산속을 그렇게 달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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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를 달리듯이 산속을 그렇게 달려 올라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1.15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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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있었다. 삼 일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안에 해치워야 한다. 믿을 만한 동료는 없다. 홀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만족인 사람은 11명이다. 왜 13명이 아니냐고. 훈련 중에 두 명이 죽었다. 행동은 불만족인 사람이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만족, 불만족의 판단이 아니다. 애초의 약속을 깨버린 쪽의 잘못이다.

미군 요원이라면 애초에 입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독립군을 양성해 주겠다고 분명히 그렇게 전해들었다. 임정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에 미군이라니.

전혀 다른 길에 화가 났지만 휴의는 폭파전문가를 수료한 것으로 불만을 대체했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양키들이 그냥 교육 시켰을리가 없지.

휴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것에 대한 복기는 나 중일이라고 여겼다. 여기를 빠져 나가는게 우선이다. 마음은 어느 새 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들을 욕해본 들 자신의 앞길에 도움될 일이 아니었다.

왜 약속이 다르냐고 묻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아쉬워할 형편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있다. 

어둠속에서 휴의는 눈을 떴다. 불침번이 흐릿한 붉은 조명 아래 목각 인형처럼 침상에 앉아 있었다. 군기가 빠진 모습이었다. 입소 첫날에는 군복에 총까지 메고 바짝 긴장해서 한 시간 내내 서 있었는데 퇴소를 앞두고는 이런 지경까지 왔다.

특수부대원도 사람이다. 그걸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좋은 징조라고 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앉아 있기보다는 누워서 자야 했다. 녀석은 몸에 벤 군기로 앉을 지언정 눕기를 거부하고 있다.

앉은 자는 금방 설 수 있다. 그가 선다면 일은 그르치는 것이다. 자는 틈을 타서 빠져 나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오늘은 틀렸다. 추격대가 온다면 발견하기 까지 시간은 길수록 좋다.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추격을 포기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나는 탈영병도 아니다. 정식 군대로 들어온 것도 아니다.  내가 여기서 훈련 받는 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미군 정보당국이나 임정의 주석, 장개석 군의 고위 간부 등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은 파견에 동의했지 미군으로 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후속조치에는 미진했다.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빠드렸는지도 모른다. 제의만으로도 감지덕지 했으니. 

어쨌든 전시에는 잘못된 것이 많고 틀린 것을 바로 잡을 시간이 없다. 휴의는 다시 눈을 감았으나 말똥말똥 거리는 정신까지 감을 수는 없었다. 그래, 오늘은 그냥 보내자. 내일은 앉은 자가 눕기를 기대해 보자.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배에 오르기 전에, 비행기에 타기 전에 빠져나가기면 하면된다. 덥고 습한 동남아의 어느 곳에서 배명횡사하고 싶지 않다. 그 상황만 피하자.

그런 생각이 들자 휴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아침을 맞았다. 식후는 정신교육의 연속이었다. 간혹 전황에 대한 설명도 있었으나 교육 내용에 대한 함구와 혹시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면 절대 발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었다.

현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교육생 중에는 없었다. 지리에 정통하고 인근에 살았다고 해도 이곳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었다. 만주인지, 베이징 외곽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차에 타는 순간 검은 장막에 덮혔기 때문이다. 한 두 시간 이동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차에서 내려 두 세시간 걸어 왔다. 산과 산만을 타고 왔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그것을 발설해서 이득을 볼 상대가 나타날리 만무했다.

이제 우리는 미군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교관의 말이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었다. 그 말은 라이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방송 같았다.

거울 앞에서 휴의는 군복을 단정하게 입었다. 통상 미군이 입는 전투복이었다. 거수 경례를 올려 붙였다.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미군이라니. 휴의는 자신의 운명, 운명에 대해 그래, 이것은 운명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끝나고 그때까지도 살아 있다면 나는 미군으로 대우 받을 수 있을까. 정식 군번을 받은 미군 말이다. 교관은 우리 미군 여러분이라고 호칭했지만 우리들의 신분은 미 정부가 보장해 주지 않았다.

휴의는 그러나 교관이 하는 말을 꼼꼼히 들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군이 기꺼이 참전한 것은 잘 한 결정이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말은 옳았다. 그러나 휴의의 관심사는 세계 평화보다는 조선 독립에 먼저 가 있었다. 미군은 조선이 어떤 나라에 점령 당하는지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소련이든 누가 점령하고 누가 식민지로 삼고 있든 그것은 미국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들은 입에 조선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오후 수업은 파견 지역에 대한 정보 등 중요한 내용이었으나 대원들은 그런 것보다는 어서 여기를 떠나기를 더 바랐다. 배든 비행기든 올라타서 임무를 멋지게 수행하는 것에 들떠 있었다.

작전 성공으로 받게 될 달러 뭉치를 들고 거나하게 한 잔 하고 있는 성공한 자신들의 미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 지형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 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다들 들뜨고 환한 표정에 교관도 매우 흡족하게 대했다. 불과 보름만에 이들은 인간병기 됐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불구덩이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게 될 용병들을 보는 교관은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다.

미군 대신 그들이 훈련 시킨 용병이 작전까지 성공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잘못돼도 자신들의 책임은 아니다. 포로로 잡힌다고 한들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미군복을 입고 미제 무기를 들었으나 미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미군이지만 실제로는 미군이 아닌 이상한 존재가 이곳 특수부대원들의 신분이었다.

휴의는 이것을 간파했으나 나머지 대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시 저녁이 왔고 잠자리에 들었다. 휴의는 가지고 갈 군장속 내용물을 머릿속에 채웠다.

우선 지급받은 개인화기인 총신이 짧고 소음기가 부짝된 기관단총이다. 거기에 15발이 들어가는 탄창 세 개 정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동료의 것을 훔치지 않아도 기본으로 제공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의는 조금 욕심을 내 옆 동료의 것도 함께 가져 갔으면 싶었다.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그리고 수류탄도 5개 정도면 좋겠다. 군복은 정리된 것을 집어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군장이 간결했다. 들고 뛰기에 전혀 부담이 없는 무게였다. 선잠을 자다 휴의는 눈을 떴다. 자다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그렇게 했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휴의는 눈을 뜬 상태로 천장을 올려다 봤다.

예의 붉은 전등이 흐릿하게 누워 있는 동료들의 침상을 비췄다. 불침번은 앉아 있었으나 눈을 뜬 상태는 아니었다. 관물대에 등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휴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전투복 상의를 걸쳤다.

하의는 벗지 않았으니 입을 필요가 없었다. 군화를 신어야 한다. 그리고 미리 싸둔 군장을 메면 된다. 그는 순서대로 그렇게 했다. 불침번은 몸을 뒤척였으나 휴의의 움직임을 눈치챌 정도는 아니었다.

거치대에 손을 뻗어 기관총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는 연병장의 가운데를 가로지르지 않고 막사의 벽을 타고 작은 철조망 앞에 섰다. 뛰어 넘기에는 조금 벅찼으나 개구멍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았다.

사람 하나 겨우 빠져 나갈 구명은 훈련병들이 만들었다. 그들은 침투의 일환으로 철조망 자르기 등을 연습했는데 연습용으로 쳐논 철망을 이용하는 대신 진짜 철망을 잘라 놓았다.

자른 철망은 이어놔야 하지만 나중에는 그런 절차를 생략했다. 휴의는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휴의는 만에 하나 잘못될 것에 대비해 절단용 가위를 미리 군장에 챙겨 넣었다.

그는 가위가 필요없기를 바랐다. 그걸 쓸 경우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그때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렸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어떤 소리에 휴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몸을 낮추고 최대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면서 소리의 정체를 알아 내려고 애를 썼다. 낯선 소리는 이내 낯익은 소리로 바뀌었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새들이 내는 노래였다.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이라도 그들의 형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머리 위를 지나 동쪽으로 사라졌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철새들의 이동, 그는 브이자 모양으로 긴 대열을 이루고 있는 오리들의 무리를 떠올렸다.

그들이 날면서 내는 끼루룩거리는 소리가 휴의는 어떤 행위의 좋은 징조로 여겼다. 정말 그랬다. 정들었던 곳을 떠나는 것은 새들이나 나나 마찬가지 아닌가. 어렵지 않게 그는 잘린 철조망 앞에 섰다.

그리고 그것을 밀어 내고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겼다. 겨우 몇 발짝 옮겼을 뿐인데 휴의는 알 수 없는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억울하게 잡혀 있다 빠져나온 자의 후련함 같은 것이 휴의를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자, 흥분하지 말고 배운대로 하자. 빨리 설치하고 빨리 철수하자. 위험을 느낄 때까지 이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말자. 그는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철망을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서 산쪽을 향해 평지를 달리듯이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의 팔부능선까지 오는데는 30분 정도 걸렸다. 이 정도 거리라면 막사에서 추격병이 온다고 해도 거뜬히 따돌릴 수 있다.

하지만 휴의는 쉬지 않았다. 능선을 넘어 일단 방위를 확인했다. 배운 나침반을 활용하는 기술은 이런 때 유용했다. 막사 건물은 보이지 않았으나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그 방향으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뛰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 시각까지 언제나 빈틈없는 완전한 작전을 주문했던 교관도 그걸 따랐던 원생들도 완전한 탈출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듯이 휴의는 두 어 시간을 더 달렸고 마침내 높은 곳에서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입고 있던 군복을 벗고 애초 입소할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 입었다.

머리를 깎지 않아 풍성한 두발은 그를 평범한 민간인으로 둔갑시켰다. 그는 산을 타고 내려와 인파속에 섞였다. 교관이 아침 점호시에 휴의의 부재를 눈치채도 그들은 대책이 없었다.

임정에게 항의하거나 혹시 오면 잡아 두라는 엄포성 경고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 온적도 연락해온 적도 없다고 일단 부인할 것이고 그 사이 자신이 임정에 끈을 댄다면 주석은 이해할 것이다.

'동지 수고했오.'

이런 말이 휴의의 귓가에 어른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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