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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로미오와 줄리엣(1595)-이름이라는 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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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로미오와 줄리엣(1595)-이름이라는 천형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11.05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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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원수인 이유는 모르겠다. 조상 대대로인지 아니면 태어나서부터인지 시점이 언제인지 작가인 셰익스피어도 알지 못한다.

어쨌든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 오죽하면 그 집의 개만 봐도 화나고 두 집 하인들까지도 사생결단 싸울까. 때는 군주가 지배하던 시대의 이탈리아 베로나.

명망 있는 두 귀족 가문 몬터규가와 캐풀렛가의 대립은 군주가 보기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화해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아니다. 이런 두 가문의 아들과 딸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 결과가 어땠을까. 하도 유명하니 다들 알 것이다. 로렌스 수사의 말대로 격렬한 기쁨 뒤에 격렬한 종말이 있었다. 사랑을 절제하라는 충고는 이미 달아오른 두 청춘에게 통할까. 대답은 노.

로미오에게는 로잘린이라는 여자가 있다. 그러나 로잘린은 ‘사랑 따윈 난 몰라’다.( 심수봉의 노래 ‘사랑밖엔 난 몰라’ 들어보자.) 속병이 생긴 로미오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가면무도회에 참석하는 것. 거기에 가면 새로운 여자가 다가와 로잘린을 대체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소가 문제다. 원수의 집안이다. 로미오는 몰래 스며든다.

그리고 문제의 여인 줄리엣을 만난다. 둘이 보는 순간 지남철처럼 철썩 달라붙는다. 로잘린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로미오는 순식간에 변심에 성공한다. (로렌스 수사는 그런 로미오를 보고 그렇게도 사랑하던 로잘린을 이리도 빨리 버렸느냐고 혀를 찬다.)

이때 줄리엣의 나이는 14살보다 더 어리다. 나이를 탓하지 말자. 사랑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머니는 너보다 다른 아이들은 더 어린 데도 엄마가 됐다며 줄리엣의 혼사를 서두른다.)

둘은 결혼 약속을 하고 로렌스 수사가 보는 앞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아, 이 사실을 양가 부모는 알고 있을까. 당연히 노. 원수의 자식이 무도회에 참석한 것을 뒤늦게 안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가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를 죽이고 로미오마저 죽이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성질만 급한 티볼트는 로미의 칼에 찔려, 죽이려다 자신이 죽은 신세가 된다. 사람이 죽었으니 군주가 나선다. 당연히 죽여야 하나 추방으로 끝난다.

로미오가 사형대신 추방을 반겼을까. 노. 줄리엣이 없는 베로나를 떠나 만토바로 가는 것은 죽음보다 못하다. 성벽 넘어 딴 세상은 없다는 것이 로미오의 생각이다.

몸은 떠나도 마음은 여기 있다.( 로미오에게 살인의 죄책감은 일도 없다. 오로지 줄리엣을 만나지 못하는 것만 원통해 할 뿐. 줄리엣도 마찬가지. 사촌이 죽었다고 내 남편을 나쁘게 말해야 돼? 라는 것이 줄리엣의 입장.)

둘이 이러니 오지랖 넓은 로렌스 수사가 이번에도 꾀를 낸다. 몰래 두 사람을 합방시킨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밤. 그런 줄도 모르고 줄리엣의 아버지는 땅 많고 혈통과 자질이 좋은 그야말로 상상속의 남자 파리스와 결혼을 서두른다.

어찌나 급한지 그 주 목요일이 결혼식 날이다. 줄리엣은 이 결혼 찬성했을까. 노. 부모는 너랑 끝났다고 노발대발하고 그때까지 줄리엣 편이었던 유모는 '로미오는 걸레 자식'이라고 돌아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줄리엣은 수사를 만나고 나서 부모의 지시를 받겠다고 결혼을 승낙한다. 수사는 손을 쓰고 있다.

잠시 죽는 약을 줄리엣에게 먹여 가족묘에 안장시키고 그 사이 로미오에게 서신을 보내 깨어난 그녀와 함께 도망치자는 것. (약을 먹이기 전, 그러니까 멀쩡했을 때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따져서는 안 된다.)

역병을 이유로 서신은 로미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로미오는 줄리엣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 줄리엣이 잠든 무덤에 도착한 로미오. 그런데 거기에는 로미오의 행동을 지켜보는 파리스도 있다.

예비 신랑이었던 파리스는 로미오가 무슨 불경한 짓이라고 벌일까 봐 칼을 뽑는다. (파리스는 그때까지도 사촌 티볼트의 죽음 때문에 애통해 하다 줄리엣이 죽은 것으로 알 뿐 로미오 때문인 줄은 모른다.)

그러나 그도 로미오를 당해 내지 못한다. 로미오의 두 번째 살인이다. 사람 둘을 죽인 로미오는 죽지 않고 살아날까. 이런 의문을 가질 즈음 깨어난 줄리엣은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패티김의 노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도 들어보자.)

노래 부르며(?)독약을 먹고 죽은 로미오를 본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그렇게 갔습니다. 줄리엣의 자결. 주인공 둘이 순식간에 죽었다. (패티킴의 ‘이별’를 들어도 좋다.)

이쯤에서 거간꾼 노릇을 했던 로렌스 수사의 어설픈 행동을 지적해 볼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줄리엣에게 약을 먹이기 전에 행동하게 하거나 그 이전, 즉 합방 전후 바로 함께 도망가는 방법도 있었을 터. 하지만 이 역시 안타까움에서 나온 기대일뿐.

▲ 로미오와 줄리엣은 격렬한 사랑끝에 격렬한 죽음을 맞는다. 그야말로 순진무구했던 둘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도 값지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 로미오와 줄리엣은 격렬한 사랑끝에 격렬한 죽음을 맞는다. 그야말로 순진무구했던 둘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도 값지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성급한 판단을 지적할 수 있겠다.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한 후 행동했어도 늦지 않았다고. 그러나 사랑에 눈먼 젊은 두 남녀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부족하고 서두르고 성급한 사랑은 그래서 순수함이 극에 달한다. 순수함의 끝이 어디인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문학적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작가의 4대 비극이나 다른 작품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명성 면에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읽어 보면 안다. 이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는 대충 알지만 전체를 다 읽은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터.

읽다 보면 잘 못 알고 있었던 내용도 있고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

하인들이 시건방지게 주인을 대하는 태도에 놀라고 머큐쇼와 유모( 처음에는 로렌스 수사와 함께 매파 역할을 열심히 했으나 로미오가 추방된 후에는 파리스와 결혼하는 게 낫다며 로미오를 버리라고 충고했다. 이에 줄리엣은 저주받을 할망구라고 욕하고 있다.)가 내뱉는 걸쭉한 음담패설에 입에 쩍 벌어지기도 한다.

<로미오에 줄리엣>에 이런 내용도 있었나 하고 놀라게 되는 순간이다.

: 반어법과 모순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편의 시를 읽는 기분이 드는 것은 이 같은 이유도 한 몫하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들도 많다. 기가 막히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 로미오, 로미오 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하고 줄리엣이 애타게 부르짖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하는 로미오와 숙적 로미오가의 극적인 대비다.

아버지를 부인하고 그대 이름을 거부하라고 외친 이유다. 그까짓 이름이 뭐라고 다른 이름을 가지라고, 그래도 당신은 당신이라는 것. 장미를 달리 불러도 장미향은 같다는 줄리엣의 절규.

줄리엣은 이 사랑이 이름의 천형때문에 험난한 것을 예고하고 해결책까지 정확히 제시한다. 로미오의 대답도 걸작이다. 제 이름을 제가 미워한다나.

1막1장에 나오는 싸우는 사랑이여, 사랑하는 미움이여 혹은 무거운 경박함, 심각한 허영심. 가는 뜻은 좋으나 이치에 맞지 않고, 지면서 이기는 시합, 유죄이자 무죄 같은 문장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로미오가 축복받은 달님에게 서약을 하려 하자 줄리엣이 가로막으면서 한 달 내내 변하는 지조 없는 달에게 하는 대신 품위 있는 자신에게 하라고, 이 몸이 우상으로 숭배하는 신이니까, 하고 말하는 장면은 여러 대사 가운데 가장 압권이다.

1968년 나온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동명 영화는 의약뉴스 ‘내 생애 최고의 영화’에 소개한 바 있을 만큼 영화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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