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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휴는 사령관을 향해 손을 들어 경례를 올려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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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휴는 사령관을 향해 손을 들어 경례를 올려 붙였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0.2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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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탕을 친 동휴는 이번에는 직접 사령관을 찾아갔다. 부르지 않아도 그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조선제일 화랑이 의심이 갔기 때문이다.

뭔가 미심쩍은 예감 같은 것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대개 이런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종로서장은 자신의 직관을 믿었다. 필시 휴의와 화랑이 어떤 끈으로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이제 그는 확신을 가졌다. 틀림없다고 단언하는 마음이 들자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서장 일행은 사전에 연락해둔 대로 우리가 왔다고 보초에게 일렀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지 보초는 순순히 문을 열면서 마침 사령관 각하가 집무실에 있다고 말했다. 사령관은 정복을 입고 있었다. 언제나 업무 중에는 깔끔한 군복으로 위엄을 과시하던 그가 오늘도 예외 없이 날 선 눈으로 서장을 안내했다.

'어서 오시오.'

말은 호탕하고 목소리는 웃고 있었으나 네 놈이 무슨 볼일이 있어 남산까지 기어 올라왔느냐고 묻고 있었다.

'각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장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짧고 가는 눈을 치뜨고 있던 사령관이 관심을 보이면서 앉을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조선제일 화랑이 의심스럽소. 거기 조선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미술대전에 금상을 받은 것 알고 계시지요?'

사령관이 그래서? 하는 눈초리로 서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도 조선제일 화랑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곳은 참의원 동생이 운영하는 화실이었고 자신도 동생과 안면을 트고 있는 상태였다.

총격전이 있기 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참의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가 직접 화실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의 직급이 한 단계 더 올라갔을지도 몰랐다.

공을 들인 것이 허사로 돌아가자 그는 진급은 커녕 물 먹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참의원은 본국에 돌아가 사령관의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던 사령관은 모두 참의원 덕분이라며 동생을 통해 대신 치하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내막을 종로서장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가 화랑 이야기를 하고 금상까지 꺼냈음에도 사령관은 그 집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시늉을 하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대답해도 늦지 않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섣불리 중간에 끼어들었다가 눈치챈 서장이 방향을 바꾸면 중요한 내용을 듣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격을 죽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압수수색 한 번 해야 할까봐요. 아무래도 사령관님이 애타가 찾는 몽타주의 인물이 거기와 연관돼 있다는 의심이 들어요.'

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사령관은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한 거요. 괜한 잘못 쳤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는데?'

'낭패라니요? 화랑하나 건드렸다고 종로서가 무슨 곤란한 지경에 빠질리가 있나요?'

동휴가 전혀 모른다는 듯이 되레 반문하면서 사령관을 빤히 바라봤다. 네가 감싸고 도는 이유가 무슨 잘못을 감추기 위한 것이냐고 추궁하는 목소리였다. 

'그 집은 참의원 동생이 운영하는 화실이오. 나도 그곳을 알고 있고 화랑 주인과도 통하는 사이요. 괜히 벌집 쑤시지 말고 제대로 짚고 몽둥이를 휘두르시오. 하필 참의원 집이라니.'

동휴는 한 발 물어섰다. 아니 물러난 척 했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저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집니다. 금상을 받은 조선 여자가 감쪽 같이 사라졌어요. 그 아들도요. 왜 아실 거예요. 태평양 전쟁 영웅 참의원 아들요. 부상 때문에 돌아왔는데 조선 여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어요.'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의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와서 프랑스로 갔단 말입니다.'

'그래서요?'

사령관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그게 무슨 압수수색할 만한 근거가 되는지 의아하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동휴는 결정적인 근거를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집에 몽타주 인물이 드나든다는 첩보가 있소.'

'드나든다고요? 언제요, 지금요?'

'아닙니다. 과거의 일이예요. 한 달쯤 됐을 거요. 그 시기가 묘하게 겹친단 말입니다.'

몽타주 인물, 동휴는 휴의라는 말 대신 몽타주 인물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면서 그 몽타주 인물과 조선여자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친 소리요. 설사 연관이 됐다고 한든 그 조선여자는 지금 프랑스에 가 있다면서요. 그래 프랑스까지 쫓아갈 작정이요.'

'아니요. 그자는 조선에서 무슨 꿍꿍이를 펼치는데 그 조선 여자를 미끼로 삼자는 것이오.'

'어떻게'?

'편지를 쓰는 것이오. 조선으로 들어오도록 편지를 써야 하는데 삼촌을 이용하자는 것이지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 여자와 삼촌은 일 년 이상 화랑에서 같이 생활을 했어요.'

사령관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후하게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러니 화랑 주인이 프랑스 주소를 알 것이고 편지를 쓴다면 돌아올 것이오. 돌아온 그녀는 필시 몽타주 인물과 연락을 취할 것이고 그 때 덮치자는 말입니다.'

사령관은 대충 이해는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참의원 동생 집을 건드리는 것이 자신의 신상에 어떤 득실이 있을지 따져 들었다.

순간 귀찮아진 그는 그 일 때문에 자신과 상의하러 온 동휴에게 갑자기 싫증을 냈다. 나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고 독단으로 해도 될 것을 왜 와서 귀찮게 하는지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이봐요, 종로서장. 그런 일은 서 단독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니요. 다른 일은 잘 알아서 하더니 왜 이 일에는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오.'

사령관이 말하면서 벌떡 일어섰다. 동휴도 따라 일어나면서 각하, 심려를 끼져 죄송합니다. 일단 꼬리를 내린 동휴는 그 집이 보통 집이 아니잖습니까.

참의원 동생 집이고 사령관님과도 안면이 있다고 해서 사전 보고차 들른 것입니다. 동휴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보고라는 말에 사령관은 자신이 서장보다 위에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표하면서 그 일은 알았어요. 일단 화랑 주인을 화나게 하지 마시고, 그 화가 나에게 미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난 뭐가 뭔지 모르겠오. 조선사람끼리 잘 해 보시오.'

사령관이 한 마디 쏘아붙였다. 동휴는 반발하려다 그만두었다. 불리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조선사람을 끄집을 내는 사령관이 저질스러웠다.

내선일체를 주장할 때는 언제고 조선사람이라고 얕보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동휴는 자신의 출신 성분이 분했으나 그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각하, 저는 조선사람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는 부하를 향해 거칠게 쏘아 붙였다.

'야, 가자.'

마치 사령관에게 하는 명령같았다. 동휴는 부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안의 더운 열기가 밖의 차가운 기운과 맞서다가 이내 풀이 죽었다. 귓가에 찬바람이 횡, 하니 스쳐 지나갔다.

화가 났지만 동휴는 자존심을 접었다. 안에서 지켜 보고 있을 사령관에게 손을 들어 거수 경례를 올려 붙였다. 그리고 신사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누구보다도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그는 그 순간 천황을 위해서 죽어도 한이 없다고 다짐했다. 

그 모습을 본 사령관은 입맛을 다시면서 중얼거렸다.

'종로서장이라는 놈은 우리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스럽단 말이야. 하여뜬 저놈은 조센징 중에서도 특이한 놈이야. 잘 써먹어야지.'

화를 냈지만 휴의를 잡을 수만 있다면 총독관저 습격에 대한 분풀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령관은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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