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흩어져야 해요. 사방으로 가야 합니다. 한곳에 뭉쳐 있으면 발각되기 쉽고 그러면 피해가 커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면해야 합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석은 지금 이 순간도 위험할 수 있다는 듯이 어서 말을 마쳐야 겠다고 다짐하고 는 말하는 시간도 줄이기 위해 빠르게 몇 마디 덧붙였다.
'연고지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부득이한 경우 하루 이상 머물서는 안 되요. 그리고 보름 후에 정확히 각자 훈련 받았던 미군부대로 복귀합니다. 그 사이 미국측과 비용문제를 끝내겠습니다. 자꾸 돈을 더 달라고 하는데 조만간 조선에서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대원 누구도, 단 한 명도 이탈자나 밀고자 없이 전원 복귀해야 합니다. 다 같이 맹세합니다.'
주석은 손을 내밀었다. 손과 손이 포개져 손 산이 만들어졌다. 맹세한 후 그들은 말 그대로 즉시 흩어졌다. 일일이 악수를 나눈 주석은 그들에게 피해 있을 동안 도피 자금을 넉넉히 나눠줬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주석은 급히 장소를 바꾸었다. 차로 30분 떨어진 상해 외곽이었다. 3명의 대장과 그들의 부관 6과 함께 둥그렇게 앉아 아까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부대원 중 누구라도 왔으면 자초지종을 들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니 속상한 마음이 숨겨져 있던 얼굴의 한 편에 나타났다.
핵심 인물들은 거의 다 복귀했는데 아직 휴의는 소식이 없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가 잘못됐을 리는 없다는 확신이 들었어도 답답한 가슴은 어쩌지 못했다.
그의 안전을 위해 특공조의 앞자리가 아닌 후퇴조로 밀어낸 것도 그였다. 신중한 휴의지만 지금껏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주석은 가만히 가슴을 쳤다.
그가 와야 조선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후속조치를 빠르게 취할 수 있다. 빠르게 취하지 못해도 좋다. 지그 당장은 휴의의 생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휴의 소식 아는 사람 있소.'
특공 대장 한 명이 넌지시 말했다. 후퇴 중에 분명히 앞서 있는 휴의 동지를 봤어요. 그가 추격병과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나는 그와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도피했고 그도 곧 뒤따라 인왕산을 넘는다고 했어요.'
이 말을 하고 그가 입을 다물었다. 아는 것이 거기까지였다.
다른 새로운 소식이 없나 하고 주석이 두리번거리자 말을 했던 특공대장이 부관에게 눈짓했다.
'네가 직접 주석님께 보고해라.'
지목을 받은 부관이 입을 열었다.
'함경남도를 지날 때쯤 그 부대 소속 병사 한 명을 만났어요.'
그는 부상병 한 명이 죽고 나머지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에 대해 보고했다.
'제 생각에는...'
부관이 말을 마치가 대장이 아마도 봄이 오면 그 부하를 장사 지내주고 복귀하려는 심사인지 모르겠어요. 휴의는 누구보다 부하를 사랑했으니까요. 더군다나 동생처럼 아끼던 부하였으니 그런 마음이 더 있을 겁니다.
주석은 일단 그 말이 신빙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총독부 공격 이후 일제가 조선에서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고 조선민들의 여론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져올 것이다.
거기다가 조선내에 있는 독립단체나 개인들과 연계해서 그곳의 운동 세력과도 끈을 맺게 된다면 더 없는 기회가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심해 있던 주석의 얼굴에 순간 환한 빛이 지나갔다. 무슨 계획 하나가 빠르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해 침투조가 조선의 세력과 합쳐 동시에 총독부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단 병력이 지킨다고 해도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모를 적어도 연대 병력 정도로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1500명 정도의 규모는 있어야 한다. 주석은 자리에서 벌떡일어섰다. 한 시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측근에게 미국측과 바로 만날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미군이 운영하는 세군데 훈련장에 보름 후에 조선군 병력을 입소시키기 위한 작전을 구체적으로 실현 시키기 위해서였다.
미군이 요구하는 돈이 없었으나 그는 직접 사령관을 만나 담판을 지을 작정이었다.
'우리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니오. 약속을 어긴적이 있나요. 훈련 시켜 주시오. 무기를 지원해 주시오. 우리가 총독부를 점령하고 나면 상해 임정을 조선의 임시정부로 인정해 주고 빠르게 민심을 안정 시킬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 주시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요?'
사령관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너무 쉽게 일본을 깔보는 것은 아니냐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것이 실수 였음을 깨달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조선 특공대의 활약상을 그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괴롭히면 태평양에서 미군이 일본군과 대적이 수월하다.
'이것은 조선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미국을 위한 것이오. 조선을 돕는 것을 결국 세계 평화를 위한 길이지요.'
주석이 안경을 고쳐 쓰는 시늉을 하면서 코 끝을 들어 올렸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보려는 심사였다. 예상했던 대로 미국측 사령관은 바로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도 불사하고 뛰어드는 조선군의 용맹성과 뛰어난 전투력은 대단한 성과로 이어졌다.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본국의 명령 없이 자신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버텼다.
돈이 드는 일, 그것도 연대 병력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데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문제였다. 더구나 개인 화기를 바꾸고 기관총 등을 새로 지급하는 것은 미국도 버거웠다.
'당장 돈을 가져오시오. 그런 다음 다시 논의해 봅시다.'
주석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입을 열었다.
'교관은 필요없소. 단지 무기만 주시오. 교관은 우리 특공대원이 맡을 것이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아, 그러면 귀하게 제시한 돈의 절반이면 충분하겠지요.'
미국인이 콧수염을 벌렁 거리면서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느냐는 듯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나 다문다고 다문 입은 금세 벌어졌다. 그는 궁금증이 많은 미국인이었다.
'연대 병력이라고 했소. 구체적으로 몇 명이오.'
'삼 천 정도는 어렵고 적어도 천 오백은 예상하고 있소.'
'그 인원은 어디 대기하고 있소?'
'없소. 지금부터 모집해야지요. 그러니 내가 서두르는 것 아니겠소.'
그 말을 듣고 미군 사령관이 허탈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