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조선특공대는 타격의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살아서 복귀한 인원도 상당수였고 나머지는 상해의 지령을 기다리면서 반도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일제가 발표한 공식문서에 따르면 특공대원의 희생은 모두 38명이었다. 현장에서 죽은 대원이 23명 나머지는 후퇴하거나 교전 중에 사망했고 두 명이 체포됐다.
그중 한 명은 부상 정도가 심해 심문조차 받지 못한 채 죽었다. 온전히 잡힌 포로는 한 명이었고 그래서 일제는 이 한 명의 취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처음에는 윽박지르고 손톱을 뽑고 인두로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특공대원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불지 않았다. 조직도를 그리지 않았고 최종 명령권자가 누구인지도 침묵했다. 소지한 무기의 구입처나 후퇴한 자들이 어디서 합류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함구했다.
그가 죽으면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간다. 일본 헌병사령부의 수장은 그를 살리기 위해 작전을 바꾸었다. 강압이 아닌 환대였다. 그러나 이 방법도 신통치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그는 모른다, 알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급병이어서 침투로나 도피로 같은 상세한 것은 알지 못해도 침투 규모와 그들이 공격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창의문 일대, 북악산 뒤쪽이나 북촌 방향의 인원 배치 등 아주 간단한 것까지 모를 리 없었다.
이도 안 통하고 저도 안 통하자 사령관은 화가 치밀어 올라 아예 죽여 버리자고 작정하고 부하에게 숨이 끊어 질 때까지 패라고 지시했으나 지시가 실행될 즈음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포로로 잡힌 자 한 명을 죽인들 자신들의 작전에 어떤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간파한 것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어떤 계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로의 마음이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자신처럼 금방 죽이라고 했다가 살려 두라고 명령하듯이 인간의 마음은 순식간에 오락가락한다. 그는 일단 감방에 가두었다. 그리고 몽둥이질 대신 삼시 세끼 식사를 제공하면서 그가 심경의 변화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포로는 포로대로 두고 특공대의 제 2차 총독부 습격 사건에 대비했다. 우선 일차로 광화문 일대를 둘러싼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아무나 드나들도록 허술하지는 않았지만 작정하고 달려들면 뚫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뜯어고친 것이다.
헌병사령관은 총독에게 면목이 없었다. 자신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총독이 자신을 파면하거나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본국으로 추방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노심초사하면서 총독의 심기를 살피는 한편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여러 루트를 통해 총독에게 전했다. 수시로 작전 회의도 열었다.
그 가운데 그의 구미를 당기는 것은 상해 임정에 대한 원점 타격이었다. 임정뿐만 아니라 여러 조직의 조선독립당은 물론 각개로 활동하는 독립군들을 일망타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특공대처럼 대일본 특공대를 조직화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들은 대략 300명 정도로 보였다. 그는 일본 특공대는 그 배수인 600명으로 규모로 일단 정하고 무기나 부식 기타 피복 등에 있어서 장교급으로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특별히 선발된 요원인 만큼 그 정도로 대우를 해주면서 확실히 성과를 올리겠다는 각오였다. 구성은 4개 부대였고 그 부대를 총괄하는 사람은 당연직으로 헌병대사령관인 자신이 맡기로 했다.
그만큼 무게를 실어주는 조치였다. 그들은 경복궁 옆 공터에서 매일 훈련을 했다. 제식훈련 같은 기초적인 물론이고 누구나 저격수가 될 수 있을 만큼 사격술에 공을 들였다.
수류탄 투척과 요인 암살을 위한 폭발물 설치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담금질 했다. 기한은 올 삼월까지다. 불과 4개월 만에 인간 병기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고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특공대원들은 일진과 이진이 함께 기차로 이동했고 삼진과 사진은 다음 기차를 탔는데 특별열차를 공수한 것이 아니라 일반 열차였다.
객실에 섞여 있으면서 승객들이 주고받는 말들도 하나의 정보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조선헌병대가 이같은 음로를 꾸밀 때 상해는 축제 분위기였다.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일제는 큰 충격에 빠졌다. 조선총독이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힐 뻔한 상황에 처했고 마침 면담을 위해 방문한 일본 정계의 거목도 총독과 같은 운명에 처할 뻔했다. 조선은 물론 일본이 발칵 뒤집혔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동지들, 수고했소. 그대들의 빛나는 투쟁 성과가 조선 독립을 한 발 짝 아니 여러 발짝 앞당겼소. 그러나 이제 시작이오. 독기 오른 일본이 대규모로 상해에 잠입한다는 첩보가 돌고 있소.
그들은 닥치는 대로 한인들을 척살할 것이오. 아무 죄 없는 한인 민간인의 피해가 막심할 것인데 은밀히 쪽지를 보내 베이징이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고 해도 실적이 좋지 않아 걱정이오.
그들 말로는 여기서 죽으나 다른 곳에 가서 죽으나 죽음은 매한가지이니 삶의 터전이 있는 이곳에서 버티겠다고 하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임정이 그들을 먹여 살릴 수 없으니 안타까움은 우리들의 몫이오.
제군들, 그나저나 적들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오.'
그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듯이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하면서 그 해답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는 듯이 손으로 안경 코끝을 밀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