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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국 우선주의에 손 놓은 정부, 뿔난 ‘K-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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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국 우선주의에 손 놓은 정부, 뿔난 ‘K-바이오’
  • 의약뉴스 송재훈 기자
  • 승인 2022.10.0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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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방안 신뢰 흔들...“국산신약 약가우대 먼저”

[의약뉴스] 제약ㆍ바이오 강국을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앵무새처럼 7대 제약 강국만 되새김하던 정부가 지난 7월에는 추가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방안을 발표했지만, 업계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한 분위기다.

▲ 제약ㆍ바이오 강국을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 제약ㆍ바이오 강국을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업계에서 요구하는 ‘국산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는 배제한 채 연구개발 지원, 투자 확대, 규제 혁신, 인력 양성 등 기존의 정책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역시 이 같은 정부의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5일 진행된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세계 각국에서 바이오헬스 강국을 향한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펀드 규모 자체도 작게 책정했을뿐 아니라 그나마 실제 예산마저 제대로 편성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가운데 최근 미국이 인플레감축법에 이어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 등 자국 우선주의를 천명하고 나서자 업계에서도 쌓였던 불만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정부가 통상 마찰을 이유로 국산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오히려 미국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선언하자 당혹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토로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그동안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이유로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를 반복해왔다.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약가 인하를 활용해 온 것. 

약가 인하에 나설 때마다 정부는 연구개발과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국내 기업들이 신약개발 기업으로 변모시켜 제약 강국을 만들겠다는 논리다.

한미FTA와 그에 따른 허가특허연계제도로 국내 제약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2011년에도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일괄 약가인하(시행 2012년)를 추진하면서 이 같은 논리를 꺼내들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높은 약가에 의존해 제네릭에만 집중하고 있어 회초리를 드는 심정으로 약가 인하를 단행, 신약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위기감을 일깨워야 한다는 논리였다.

제약계에서는 신약 개발의 긴 여정 가운데 이제 막 씨앗들이 싹을 틔울 시기에 정부가 대규모 약가 인하로 짓밟고 있다며 하소연했지만, 정부에서는 채찍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결국 2012년 예정대로 진행된 일괄 약가인하로 인해 국내 제약계는 몇 년을 뒷걸음 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프로젝트는 경쟁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일괄 약가인하의 후폭풍 속에서도 제약계는 2015년 이후로 조금씩 신약 개발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한미약품을 시작으로 연이어 대규모 기술 수출 계약이 성사되면서 제약업계에 신약개발의 붐이 일기 시작한 것.

그러나 볕이 강해지면서 어두움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약가 정책이 내수시장에만 집중했던 탓에 저가 정책을 고수, 국산 신약들이 해외 시장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 고전하던 업계는 정부에 국산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를 요청하고 나섰다. 정부 역시 이 같은 목소리에는 공감했지만, 한미FTA를 비롯한 통상 마찰 가능성이 발목을 잡았다.

이에 2016년, 통상 마찰을 피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 이른바 7ㆍ7 약가우대 정책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는 의약품이나 우리나라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의약품, 혁신형 제약기업의 의약품에 약가를 일정부분 우대해 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들이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며 한미FTA까지 언급하자 당초 취지와 달리 다국적 제약사들까지 포함하는 내용으로 수정됐고, 결과적으로 취지가 퇴색하면서 사문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제약산업의 주요 수입원인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압박은 계속됐다. 

특히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당시 정부는 계단식 약가 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동일 성분, 동일 효능, 동일 함량 의약품에 동일 가격을 책정하는 새로운 약가 정책 들고 나왔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계단식 약가 구조로 복귀하며 사실상 약가 인하에 나섰다.

다른 한편으로는 7대 제약 강국에 대한 비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제약ㆍ바이오 산업 육성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산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 방안을 포함하지 않는 제약ㆍ바이오 산업 육성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개발하고 있는 신약 가운데 계열 최고(Best-in-class) 또는 후발 신약(Me-too drug)의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계열 최초의 신약(First-in-class)이 아니면 제네릭까지 포함한 기존 의약품을 기준으로 약가를 산정하는 현행 약가제도로는 신약개발에 대한 재투자에 한계가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신약의 약가가 동일 계열의 제네릭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제네릭의 약가는 최대 계열 최초의 신약의 53.55%로 책정되는데, 국산 신약의 약가가 이보다 낮은 45%선에서 책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균 500억 이상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되고 있는 신약의 약가가 제네릭보다 낮게 책정되고 있는 것. 이로 인해 국산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청구액이 전체 약품비의 5%선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여전히 통상 마찰을 이유로 국산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 자국 우선주의의 속내를 드러내자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정 조건의 신약에 약가를 우대 적용하는 일본이나, 자국 우서주의를 천명한 미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최근 ‘국제 통상질서에 부합하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약가지원 정책 연구’를 추진, 조만간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힘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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