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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00:50 (금)
곤경에 처한 의원은 미리 짜논 각본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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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한 의원은 미리 짜논 각본대로 움직였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0.02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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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은 말을 아꼈다. 그에 따른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아직 정계의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과 총독이 맺은 언약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육사 출신의 참의원은 그것이 고통스러웠다. 거짓대신 참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 침묵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을 가는 순간 자신의 정치 생명은 끝장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그림이었다.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기 위해 그는 다른 불의를 저지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조선총독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그것 역시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나를 실행하면 다른 하나까지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수치심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일이 잦았다.

혈액 좋은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건강을 염려할 단계는 아니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가. 참의원은 성급했던 조선행을 한탄했다.

하필 그 시각에 총독관저에 자신이 있었던 운명을 저주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시간을 몇 번이라도 되돌렸을 것이다. 조선에 가지 않은 자신이었다면 지금쯤 큰 소리치면서 총독을 소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무라 의원, 우리 이 사건을 비밀로 부칩시다.'

의원은 잠자코 있었다. 아직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는 현장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일어난 일을 그러자는 것인지 아니면 숨어 있었던 것만 감추자는 것인지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궁금한 내용은 밝혀졌다. 의원이 묻기도 전에 총독이 급한 나머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가 쪽방에 숨어서 적들의 공격에 무력하게 대했던 사실을 숨기자는 말이요.'

조선 총독은 그말을 하면서 누가 들을 새라 목소리를 낮췄다. 사건 현장은 수습하기 위한 자들과 사태파악을 하기 위한 자들로 시끌벅적했다. 지휘해야 할 총독은 우선 자신의 안위부터 챙겼다. 현장 지휘는 나중 일이었다.

후퇴한 적들을 추격하고 섬멸하는 작전지휘도 뒤로 미뤄졌다. 그것은 현장 요원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총독은 그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 

참의원은 그런 총독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았다. 그의 입장이나 자신의 입장이나 처한 위치는 비슷했다. 총독의 다짐은 자신을 위한 제의이기도 했다. 숨어서 쥐새끼처럼 오들오들 떨던 일은 두고두고 치욕이 될 것이다. 그 치욕을 벗어 주겠다고 한다. 

'참의원, 생각해 보시오.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했소. 계단을 올라오는 적에게 일본도로 맞섰소. 내가 먼저 적을 처치했고 뒤이어 의원이 나머지 한 명을 처리하지 않았소?'

참의원은 멀뚱히 조선총독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숨어서 떨지 않고 파렴치한 적과 당당히 맞서 싸웠던 것이오. 그리고 승리했소. 알겠소.'

살아서만 나가게 해달라고 숨조차 쉬지 못할 만큼 오그라들었던 기세는 사라지고 조선총독의 위치에 다시 선 그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그는 당당해져 있었고 그 당당함은 목소리에 위엄을 더했다. 

참의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다른 장면이 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외였다. 총독이 말한 장면이 실제로 자기들이 행한 행위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손을 꼭 움켜쥐었다. 

정신을 차린 총독이 독 안에서 나와 제일 처음 한 일은 벽에 걸린 장검을 꺼내 손에 쥐는 일이었다. 두개를 내려 하나는 참의원에게 주고는 아직 혼란스러운 현장으로 총독은 달려 내려갔다.

그리고는 쓰러져 벽에 기댄 조선독립군을 향해 장검을 옆으로 세워 날쌔게 그었다. 이어 참의원에게 다른 시신을 향해 그렇게 하라고 눈짓을 주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은 참의원은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도 들고 있는 일본도를 들어 총독과 같은 행동을 했다. 그가 들고 있던 장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모습을 총독이 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들은 서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 것도 보시오.'

총독은 자신의 피 묻은 칼을 바라보는 생사의 동료에게 자신이 앞서 한 말을 상기시키듯이 우리는 해냈소, 자신있게 적을 물리친 것이오. 하고 의기양양했다. 수습을 하던 일본군 장교들은 총독과 참의원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일본 조정은 뒤집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격을 당하자 당황했다. 조선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혼란은 더 시끄러웠다.

먼저 조선 총독에 대한 문책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장수를 바꾸는 것은 패배를 의미했기에 그런 분위기는 금세 수그러들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잔당들의 추격은 성과를 냈는가. 그들의 배후는 누구인가 등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그러나 이것은 극소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것일 뿐 일본 국민은 물론 언론조차 알지 못했다.

조선 총독은 조선내 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도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칠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그 현장에 있었던 몇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조선민 사이에서 총독관저가 공격을 당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의원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한 수군거림은 군부에서도 진위파악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사실은 드러났다. 그들은 분노했고 당장 상해에 있는 조선 임시정부를 박살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 기회에 임정뿐만아니라 몇 몇 당과 독립분파들을 섬멸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아예 중국 본토를 쓸어버려 씨앗을 제거하자나는 말도 흘러 나왔다.

감출 수 없는 것을 감추려고 하는 짓은 어리석었다. 총독과 참의원은 뒤늦게 사실을 인정했다.  원래는 감추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사태를 마무리 짓고 보고하려 했다는 것. 이른바 선조치 후보고를 중시한 현장 경험이라고 둘러댔다.

그것은 그것대로 일리가 있었다. 그런에 여기서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있었다. 의원 가운데 하나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관저가 습격 당할 당시 총독과 참의원이 만찬 중이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 이후는 당연히 두 사람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모아졌다. 용기있는 한 의원이 참의원은 어디에 있었소? 그리고 총독은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질문을 이제서라도 했다는데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참의원은 또한 번 인상을 썼다. 그는 요즘 인상 쓰는 것이 취미인양 뚝 하면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답은 미리 준비해 뒀기 때문이다.

뭐, 그런 것을 다 묻느냐는 투였으나 대답하지 않고는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향한 시선에 하나씩 마중을 하면서 알았다는 듯이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어물쩍 넘어가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그는 대 정치인답게 피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 사실은 총독이 사전에 써준 각본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었다. 기침을 하면서 목소리를 고른 총독은 일행들을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으로 불러 모은 다음 여기에 모인 사람 외에는 누구라도 들어서는 안 된 다는 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싸웠소. 그리고 그들 가운데 대장인 듯 한 자를 작살냈소. 바로 이 손으로 말이오. 그는 들었던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먼저 총독 각하가 장검으로 올라오는 조선인의 머리를 잘랐고 뒤이어 내가 다음으로 쳐들어오는 자의 어깨를 둘로 쪼갰소.'

참의원은 이 말을 하면서 칼을 휘두를 때 튄 피가 얼굴로 날아왔으므로 이를 닦는 시늉을 하기 위해 까불었던 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일행들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몸을 원래 위치로 돌리면서 정말인가? 하는 의구심을 담은 표정으로 참의원에게서 떨어졌던 시선을 일제히 돌렸다.

'내가 적의 몸을 두개로 갈랐을 때 적들은 기겁을 하고 꽁무니를 보이면서 도망치기에 바빴소. 그것으로 침입자들의 운명은 끝난 것이오.'

그리고는 피가 흘리는 장검을 들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이 사실을 여기 있는 사람 말고 그 누구외에도 해서는 안 되오. 특히 조선 총독이 과연 사관학교 출신답게 앞장서서 기관총을 쏘면 달려오는 적의 목을 벤 것을 말하지 마시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모여 있던 사람중의 두 서너 명이 고개를 끄더이면서 그렇게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의원은 부연설명했다. 잘 새겨 들으라는 투였다.

'총독의 행위는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총독이 직접 칼을 휘두른 것은 그 반대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져 줄거요. 요즘 백성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서 처음에는 총독의 용감함을 칭찬하다가 나중에는 그런 상황을 맞은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것이오. 여기 있는 의원들 가운데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소. 대체 조선의 상황이 어떤 지경이길래 기관총을 든 괴한이 총독관저에 난입해 총독과 결전을 벌였느냐고 혀를 찰 것이오. 그러니 당분간 총독과 나의 무용담은 함구해 주시오.'

의원의 세심함에 동료 의원들은 그가 과연 대정치인 다운 노련함을 보이고 있다고 속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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