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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안전을 위해 참의원은 파리유학대신 일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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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위해 참의원은 파리유학대신 일본을 택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9.27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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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례의 파리행 유학은 보류됐다. 일단 좌절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언제일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점례와 유지는 쌓아 놓은 짐꾸러미를 무심히 쳐다 보면서 저것을 정리하면서 생겨났던 흥분된 감정이 사라지고 없음을 느꼈다. 다시 기분을 살릴 수 있을까.

점례는 그런 심정으로 유지의 얼굴을 살폈다. 그도 나와 같은 기분일까. 아니면 더 심할지, 되레 잘됐다는 심사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과연 저것을 들고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점례는 자신을 위로받고 싶었던 일정이 갑자기 바뀌자 당황했다. 어떻게 할지 감을 잡을지 몰랐다. 그렇다고 자기의 의견을 먼저 낼 수는 없었다.

참의원은 이미 결정을 내렸고 내린 결정을 통보했다. 유지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유학금지를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큰 사건 앞에서는 누구라도 반항하기 어렵다. 단순한 변심이 아닌 것이기에 유지는 뭐라도 해야 하지만 무엇을  할지 몰라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도 점례처럼 낯선 곳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 받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숱한 사람을 죽였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던 것에 대한 참회라기보다는 그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기 마련이다.

허물을 벗고 새로운 피부로 태어나기로 작정했다. 지금까지의 유지는 없고 새로운 유지만 있을 뿐이다. 화가로 성장하지 못하면 점례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살아도 나쁘지 않다.

그는 자신보다도 점례를 더 믿었던 것이다. 그러니 점례의 실망보다 더 크지 않다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참의원은 아들과는 다른 고민에 휩쌓였다.

조선총독부 습격은 그만큼 자신의 신상은 물론 제국주의 판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참의원은 유지에게 조선은 위험한 곳이니 파리 유학 대신 일본으로 가자고 말했다.

한마디 뿐이었지만 그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었다. 참의원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유지는 지금까지 숱한 정치적 부침을 겪은 부친에게서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일그러지고 깨지고 쪼그라든 얼굴의 주름에서 유지는 그 말에 어떤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고 직감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을 때 유지는 망설였다. 자신도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파리 유학을 안가고 일본으로 간다고 해서 안전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었다.

신상은 그렇다고 쳐도 일본에서 미술공부는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유행을 타는 파리를 가지 않고는 더 나은 화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내면에는 그럴 힘이 없었다.

엄청난 사고 앞에 아버지는 하루가 지났어도 얼이 빠진 것처럼 망연자실했다. 자신이 총독관저에서 조선 독립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비상구 속에서 총독과 둘이 호흡을 맞대고 죽음의 심장 소리를 나눠 들을 때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누구 심장이 더 크고 빠르게 뛰는지 서로는 알고 있었으나 발설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행을 서둘렀다. 굳이 위험한 조선 땅에 한시라도 머물 이유가 없었다. 조선일은 조선총독부에서 해결할 일이지 참의원인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일본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것이 맞다.

그런데 이번 귀국길에는 아들과 아들이 신뢰하는 조선 여자 점례를 함께 데려가야 한다. 아버지는 같이 가자고 한 이후로 그것에 관해 두 번 다시 말이 없었다.

아들이 강하게 반발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 일본보다 파리다 더 안전해요.'

그러나 유지는 그러지 못하고 아버지 의견에 따랐다. 살면서 그럴 기회가 있으면 몇 번이나 있겠는가. 점례는 유지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야 좋을지 가늠하고 있었다.

이미 유지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며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조선에 머물면서 충무로나 명동, 수표교 인근을 떠돌고 싶지 않았다.

그래봤자 우물안 개구리일 뿐이다. 이제 조선미술에서 그녀를 따른 자는 없었다. 모두가 점례의 그림을 최고로 쳤으며 신사임당이나 단원이나 혜원 같은 이도 점례에 미치지 못한다고 성급하게 말하는 화상들도 생겨났다.

유지는 그런 점례의 실력이 아까웠다. 한시라도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보다도 점례가 불쌍했다.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해줘야 하는 것을 하지 못했을 때 미안한 감정이 복받쳤다.

그는 전쟁에는 이제 완전히 관심을 끊었다. 고위장교로 전선에서 숱한 전투를 치렀지만 이제 제대 군인인 그는 심지어 일본의 승패에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자리를 온전히 그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림에 미친사람 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길 떠날 준비를 마쳤다.

유지는 그런 아버지의 등에 대고 나는 아버지 같은 유능한 정치인도 아니고 애국자도 아니며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떠벌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번에는 점례가 나섰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일본에 가고 싶어요. 당신의 고향 땅에 발을 디디고 당신의 어릴 적 체취를 맡게 허락해 주세요.'

점례는 화난 유지를 달랬다. 점례가 그렇게 나오자 유지는 순간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아버지 명령도 따르고 점례의 기분까지 생각하니 유지는 당장 일본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서둘렀다.

가서 어머니를 뵙고 한 일주일이나 보름 정도 시간을 두고 설득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런 말을 해주는 점례가 고마웠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점레에게 유지는 또한번 그녀 내면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한 달 정도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제 그림이 어디 가겠어요. 되레 좋은 기회이고 경험이 될 거예요.'

점례는 아직도 당장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 속에 있는 유지를 이런 식으로 달랬다. 부산에서 일본은 가까운 거리였다. 저녁 무렵에 점례는 일본 땅에 도착했다.

일본은 조선과 다를 바 없었다. 공기도 산천도 냄새도 조선 것과 똑같았다. 옷차림새와 음식과 걷는 거리와 집들이 생소하는 했지만 사람 사는 곳이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는가.

파리였다면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거리며 건물이며 음식이며 사람이며 모든 것이 조선과는 다른 것이니. 책에서 본 마네나 모네 피카소 같은 인물은 확실히 조선사람과는 달랐고 일본사람과도 틀렸다.

그는 파리행이 잠시 유예된 것일 뿐 사라진 것을 아닌 것에 안도했다. 그녀는 유지 어머니에게 깍듯했다. 유지는 그런 점례가 또 고마웠다.

식사를 마친 둘은 유지가 다녔던 대학도 가보고 호수도 산책하고 해변가를 거닐기도 했다.

'좋아요, 이런 곳일 거라고 짐작했어요. 당신이 태어난 곳은 우리 죽마을과 조금 비슷해요.'

'그런가. 나중에 기회 되면 나도 당신의 고향에 가보고 싶군요.'

'아니요, 안 될 말이에요. 거긴 너무 멀어요. 기차도 없고 찻길도 없어요. 역에서 내려 걸어 걸어 서너 시간을 더 가야 하니 아예 꿈도 꾸지 마세요.'

점례의 단호함에 그럴 것까지야 있나 유지는 생각했으나 그 말은 거기서 그만두었다. 당장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해야 십 년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할지도 모른다. 둘은 손을 잡았다. 유지는 아버지에게 공을 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단호했던 아버지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었고 어떤 때는 이삼일 외박을 하기도 했다. 일본 정치 일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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