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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구운몽(1687)- 성진은 양반사회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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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구운몽(1687)- 성진은 양반사회의 이상향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9.12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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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겉으로만 근엄하던 시절에 이토록 대담한 글을 쓰고도 박해를 받기보다는 되레 칭찬받고 승승장구했으니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 그런 이유는 후략.)

서포 김만중은 유배지에서 <구운몽>을 지었다. 홀로 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는 작문 동기가 나와 있다. 과연 아들의 글을 읽고 어머니는 그랬을지 알 길이 없지만 대견한 아들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마음은 조선 천지에 넘쳐났을 것이다. 글을 안다고 하면 누구나 <구운몽>을 읽고 싶었을 것이고 읽은 다음에는 내가 이런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고 위안 플러스 자랑 플러스가 차고 넘쳤을 터.

필자는 그것에 앞서 갑자기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가 생각났다. 김만중은 이 책 하나만으로도 과연 영국이나 스페인의 그런 사람과 견줄만한 조선의 대문호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처 후기를 읽었더니 글을 옮긴 송성욱 교수도 '<구운몽>을 읽는 재미'에서 이와 엇비슷한 평을 내놓았다.(민음사 출판.) 역자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니 위안이 없어도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더구나 한글로 썼으니 이 소설을 우리 문학의 최고, 최대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한문본보다 시기적으로도 앞섰고 내용도 더 충실하다고 하니 정말로 그렇다.

세계 여러 나라에도 출판된 것은 그런 위상에 걸맞는 것이고 자신감의 표출이다. 그런데 위안 후에는 이런 의문이 든다. 이 위대한 작품 이후에 왜 이것을 뛰어넘을 만한 것이 나오지 않고 있는지 안타까움이 바로 그것이다.

<구운몽>의 문체를 모방하고 줄거리를 따오고 그것을 바탕으로 청출어람의 작품이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물론 <구운몽> 이후에 좋은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운몽>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오버 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 바란다.)

잡설은 여기서 그치고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한 마디로 파격적이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시대라고 해도 무려 8명을 한 남자가 거느리고 있으니( 표현이 거친 것은 책의 분위기상 그렇다고 여겼기 때문이니 오해 없기를.) 실로 한 번 입을 벌리면 다물지 못한다.

2명의 정실 부인에 6명이 첩이니 이 정도 숫자라면 아무리 고관대작이라고 해도 숙종 대왕 말고는 감히 넘보지 못할만한 숫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들 8명이 모두 의형제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투기나 시기나 질투 그런 것은 눈 씻고 찾을 래야 찾을 수가 없다. 원하는 남자를 동시에 섬기는 것으로 서로는 서로에게 대만족할 뿐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한결같은 여자들의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 놀라는 것은 이쯤에서 멈추자. 그래야 진도가 나간다.)

그렇다면 여덟 명의 보통여자 아닌 공주와 하늘의 선녀와 내로라하는 기생들이 흠뻑 빠져들게 한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팔선녀의 거룩한 이름을 한 번 적어보자.

첫 번째 부인은 정도사의 딸로 영양공주 칭호를 받은 정경패, 두 번째 부인은 황제의 여동생 난양공주, 세번째 부인은 진어사의 딸 진채봉, 네 번째 부인은 정경패의 몸종 가춘운, 다섯 번째 부인은 낙양의 기생 계섬월, 여섯 번째 부인은 역시 낙양의 기생 적경홍, 일곱째 부인은 칼 쓰는 검객 심요연, 여덟 번째 부인은 동정 용왕의 딸 백능파다. 

이것은 단순한 이처, 육첩의 나열일 뿐 만남의 순서는 다르다.  첫번째로 만나는 여자는 진채봉이다. 소유가 과거를 보러가다 과거보다는 산수를 즐기고 시를 짓는 수작을 하다 눈이 맞았다. 

두번째는 강남의 만옥연, 하북의 적경홍, 낙양의 계섬월이라 불릴 정도로 기생 중의 기생, 명기 중의 명기인 계섬월이다. 정승 가문의 정도사 딸 정경패가 소유가 만난 세번째 여자다. 소유가 여장을 하면서까지 만나고 싶어했을 정도로 음율에 정통하고 미모가 대단했다.

네번째는 정경패의 몸종으로 단순한 몸종이상으로 교감하고 있는 친구겸 애인으로 불릴만한 가춘운이다. 다섯번째는 계섬월과 함께 청루삼절에 해당하는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다.

여섯번째는 이소화로 난양공주라 불린다. 심요연은 소유가 장군으로 정벌을 나갔을 때 그를 해칠 자격으로 등장했으나 세숫대야에 비친 소유를 보고 자객질 대신 첩질에 나섰다. 동정호 용왕의 딸 백능파는 여덟번째다. 비늘을 달고 잠자리를 같이 한 바로 그 여자다. 

이제 이들의 유일한 남편이 나올 차례다. 이름은 성진. 그는 육관 대사의 뛰어난 불자다. 불제자라고? 그렇다. ( 너무나도 불교적인 소설인 이유다.) 양소유가 그의 다른 이름이 되겠다. 여기서 잠깐 소유가 어떤 인물인지 작가의 말을 잠깐 빌려보자.

▲ 불제자 성진은 꿈속에서 팔선녀와 육욕의 향연을 펼친다. 그는 깨어나자 속죄하면서 더욱 불법에 정진, 마침내 극락세계로 들어간다.
▲ 불제자 성진은 꿈속에서 팔선녀와 육욕의 향연을 펼친다. 그는 깨어나자 속죄하면서 더욱 불법에 정진, 마침내 극락세계로 들어간다.

“소유가 열네다섯 살에 이르러서는 얼굴은 반악같고 기상은 청련같고 문장은 연허같고 시재는 포사같고 필법은 종왕같고 제자백가와 육도삼략과 활쏘기와 칼 쓰기를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진실로 여러 대에 걸쳐 수행하는 사람이더라. 세상 사람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더라.”

그런 성진이 스승의 일등 제자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루는 성진이 얼마나 불공에 열심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잠든다고 다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 성진은 운이 좋아 꿈을 꾸었고 그 꿈 이야기가 바로 <구운몽>의 핵심 내용이 되겠다.

그는 꿈속에서 많은 일들은 겪는다. 전쟁에 나가서 장수가 되기도 하고 위험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뛰어난 재상으로 백성의 사랑을 온 몸에 받는다. 문장은 얼마나 빼어난지 한눈을 팔아도 장원급제는 식은죽 먹기다.

거기다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풍채도 당당하니 제아무리 선녀나 공주라 해도 한 번 소유를 보면 그에 품에 안겨 죽는 것이 소원이겠다.

한데 여기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다.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고 해도 하루는 이 방에서 다른 하루는 저 방에서 또 다른 하루는 다른 방에서 사랑을 나누다 보면 몸을 상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도 그는 병 들거나 죽기는커녕 되레 더 튼튼해져서 부인들은 하루도 기쁘지 않은 날이 없겠다. (헤라클레스가 등장한다고 해도 양소유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과연 소유는 오천 년 조선 역사상 최고로 강한 남자 빅 3는 되겠다. 나머지 둘은 변강쇠와 돌쇠아닐까.) 그러니 서두에 승승장구했다고 언급한 것은 당연하다. 이 당시 한다하는 양반치고 성진을 부러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더 그렇다. 위력있는 양반들의 음흉한 속마음, 한마디로 양반사회의 이상향을 성진이 대리만족 준 것이니 그들은 자신이 성진이 되고 싶었을 터. 작품을 칭송하고 퍼트린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문학적 완성도는 빼고라도. )

성진은 선녀들의 요구를 한 번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잠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없다. 비늘이 채 떨어지지 않은 요괴라고 해도, 그래서 아직은 준비가 덜 됐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대시해 정사를 성공시킨다. 놀라운 애욕의 소유자다.

가볍지 않은 문장 내내 이런 육욕의 향연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이런 꿈이라면 양반 아니라도 세상 뭇 사내들의 부러움 대상이 되겠다. 하지만 소설이 전부 그런 것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읽다 보면 당시의 불습이나 생활상도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조선 시대에 조선사람이 조선글로 쓴 글인데 배경은 조선이 아니고 중국이다. 아쉽고 또 아쉽다.

광화문이나 경복궁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낙양이나 장안이 아닌 한양이나 평양 같은 지명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다. 반악이니 청련에 비유하는 대신 화랑 관창이나 백제 계백이 나왔다면. 꿈속이니 핑계를 댈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꿈은 깨기 마련이다. 세상에 깨지 않는 꿈이 없기에 천하의 양소유라고 해도 결국 꿈에서 깨고 만다. 꿈에서 깬 성진은 다짐한다.

더 열심히 불공을 연구하고 도에 정진하겠다고. 우리는 성진의 그 말을 믿어야 한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 하면서 성진이 꿈을 꾸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낮잠을 잘 것으로 지레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꿈은 한 번으로 족하다.(순전히 필자의 생각.) 하권이 있다면 성진은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불자가 됐고 스승 육관 대사를 뛰어넘는 불법을 완성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것이 김만중이 바라는 바가 되겠다.

: 서포 김만중은 유배지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유배라고 하면 잘못해서 벌을 받은 것이니 그의 잘못은 줄을 잘 못 선 때문이고 서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대사헌까지 올랐다.

이후에도 정치적 곡절을 겪으면서 유배에 유배를 거듭한 끝에 남해에서 오십 중반에 생을 마감했다. <사씨남정기>,<서포만필>도 그가 썼다.

팁에 써야 할 내용을 본문에서 거의 언급하는 바람에 팁이 짧아졌다. 그래서 끝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니 두 번 읽어 보면 더욱 느낌이 좋다.

“ 성진아, 인간 세상 부귀영화를 겪으니 과연 어떠하더뇨?”

“ 성진이 이미 깨달았나이다. 제자가 불초하여 마음을 잘못 먹어 죄를 지으니 마땅히 인간 세상에서 윤회할 것이거늘 사부께서 자비로우시어 하룻밤 꿈으로 제자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혜는 천만 겁이라도 갚기 어렵소이다.”

대사가 말하되,

“네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으니 내 무슨 관여함이 있으리오? 네 또 말하되, 인간 세상에서 윤회하는 꿈을 꾸었다 하니 이것은 인간 세상의 꿈이 다르다 함이라. 네 아직 꿈을 완전히 깨지 못하였도다. 장주가 꿈에 나비 되었다가 나비가 다시 장주가 되니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짜인지 분변 하지 못했다.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니뇨?”

성진이 말하되,

“ 제자는 아득하여 꿈과 진짜를 알지 못하니 사부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제자를 위하여 설법하여 깨닫게 하소서.”

대사가 말하되,

“ 이제 금강경 큰 법을 일러 너의 마음을 깨닫게 하려니와 새로 오는 제자가 있을 것이니 잠깐 기다릴 것이다.”

사족을 달면 여기서 새로 오는 제자는 여덟 선녀가 되겠다. 이들 역시 세속의 정욕에 빠진 것을 후회하면서 대사께 가르침을 간절히 원한다.

대사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불법은 깊고 멀어서 큰 역량과 간절한 바람이 아니면 능히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팔선녀는 얼굴의 연지분을 씻고 비단 같은 머리를 가차 없이 자른다. 착한 마음과 정성에 감복한 대사는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한다.

“인위적인 일체의 법은

꿈과 환상 같고,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볼 것이다.”

설법을 들은 성진과 여덟 비구니 도합 아홉 사람( 그래서 제목이 <구운몽>이다.)의 이후 운명은? 친절한 독후감이니 마저 이야기하면, 동시에 깨달아 불생불멸하는 도를 얻어 극락세계에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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