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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06:01 (금)
좋을 때 나빠질 것을 용희는 염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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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때 나빠질 것을 용희는 염려하지 않았다
  • 의약뉴스
  • 승인 2022.08.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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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만 해요. 당신이 부르면 더 슬퍼져요. 안 부른다더니, 부르지 말라러니 왠 일이래.'

'그러게 나도 몰라, 그냥 절로 나오네. 노래라는 것은 그런가봐. 부르면 좋잖아.'

말수가 능청을 부렸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럼 다른 노래해요.'

용희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접었던 덮개를 열면서 용희는 벌써 칠 곡을 예정해 놓았다. 건반 위의 손은 정확한 음계를 치기 위해 자리를 잡았고 고개는 저도 모르게 앞뒤로 흔들렸다.

아마추어지만 누가보면 프로급 자세였다. 용희는 뭐든 시작하면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자세부터 시작해 정확한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인지 말수가 보기에도 피아니스트 같은 풍모가 풍겼다.

'당신 멋져.'

'이제 알았어요.?'

'순간 순간 감탄하고 있어.'

용희를 고개를 돌렸다.

말수가 가볍게 용희의 어깨를 잡았다. 용희는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감정을 추스렸다. 길게 한 숨을 내쉰 다음 대회에 나온 학생처럼 조금 떨리는 손으로 건반을 눌러 나갔다.

말수가 자세히 보기 위해 볼 줄은 모르지만 악보에 눈을 고정한 채 용희가 들려주는 노래가 어떤 것인지 맞추기 위해 음을 따라갔다.  

'그렇군,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말수가 미리 예측한 것이 맞아 떨어진 것에 대해 만족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오오,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에는 박자도 맞지 않았다. 그런 말수는 위해 용희는 그가 따라 올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추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는 제법 따라왔다. 용희도 입을 중얼거렸다.

'이난영은 참 난 인물이야, 조선 최고의 가수라니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해냈다는 듯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수가 말했다.

'특히 사공의 뱃노래로 시작하는 부분이 좋아. 내가 뱃놈 출신이잖아.'

'그래요, 당신이 노젓는 배를 타면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용희가 맞장구쳤다. 둘은 좋았다. 좋으면 나빠질 것을 염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었다. 그들보다 더 나쁜 경험을 한 사람이 조선 천지에 있을까. 아무리 나빠도 그 때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래서 용희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앞에는 오로지 행복만이 자리 잡았다. 

'빨리 보고 싶어요. 포목점 한다는 주인 마누라 말이예요. 저 보다는 나이가 많겠죠. 서로 말이 통했으면 좋겠어요. 언니 동생하면서 지내면 오죽 좋아요. 당신은 형, 동생하고요.'

'그럼 그렇고 말고. 당신도 분명 좋아할 거여. 아이를 보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나니까.'

말수가 다시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때 용희는 처음들었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아이를 못 낳으면 어떤가. 남편도 이해하겠지. 양자를 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디가서 바람을 피고 와서 데려온 아이도 괜찮다. 용희는 그런 심정이었다.

갑자기 자기 삶에 아이가 끼어들었다. 용희는 잠시 환영에 사로잡혔다. 하루 종일 등에 매달려 있는 아이의 무게를 생각했다. 꼬물 거리는 아이가 그 작은 손으로 어깨를 잡고 일어서려고 한다.

그리고 포대기를 감은 발을 차고는 쉬하고 소리친다. 나중에는 울고 불고 난리다. 이 모든 것을 용희는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순간적으로 지웠다. 아이도 괜찮을 것이다. 이렇게 안정된 삶이라면 아이 하나 키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들의 어려운 과거를 잊게 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신분의 위험도 감출 수 있고 어디를 가든 떳떳하게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다. 때가 되면 죽마을에 갈 수도 있겠다.

용희는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졌다. 절대 살아서는 가지 않겠다도 다짐했던 것이 아이와 함께라면 그런 다짐 정도는 쉽게 뒤집을 수 있다. 용희는 아이를 품안에 안고 있는 것처럼 어르는 시늉을 했다. 

저녁 문을 닫을 무렵 기침을 하는 환자가 찾아왔다. 진료 중에도 심하게 기침을 했다. 아마도 폐결핵이 많이 진행된 듯 했다. 입가에 피가 묻어나기도 했다.

용희는 마스크 끈을 조였다. 이런 환자는 대책이 없다. 약으로 다스려야 하는데 치료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용희는 그 환자의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요양을 잘 하면 치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환자에게 이런 위안의 말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용희는 알 수 없었다. 그 환자는 이미 자신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돌아가는 축 처진 환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용희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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