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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이를 원하고 있을까, 용희는 마음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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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이를 원하고 있을까, 용희는 마음이 흔들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8.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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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희는 창밖을 보았다. 오가는 행인들이 분주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지나가고 나면 한동안 거리는 텅 비었다.

집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자신처럼 지나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3층 창가에 비스듬히 비쳐드는 병원 간판이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용희는 사람의 처지가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환자가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언제나 창가에서 밖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좋은 세상이다.

자신에게 이처럼 더 좋은 세상이 더 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이 종착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랐다. 조선땅은 아니다. 그녀는 조선이 떠오르면 의식적으로 고개를 강하게 가로 저었다. 조선은 곧 보령의 죽마을이었고 그곳에는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가 있었고 일가붙이가 있고 마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살아 있을 것이고 자신을 알아 볼 것이다. 의사 선생님을 그들은 우러러볼 것이고 어련한 신랑과 함께 온 용희를 존경하면서도 시기할 터인데 그런 모든 것이 귀찮았다. 아니 죽기보다도 싫었다.

죽어서도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확고했다. 밤 길이라면 엄마는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포기했다. 혈연이든 아니든 이승의 끝은 죽마을을 떠나올때 끊어졌다.

그것을 다시 잇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삶에서 여유의 시간이 왔을 때 용희는 이처럼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했으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더 나쁜 경우는 지상천지에 없을 것이다. 그녀가 겪었던 최악의 순간들은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해도 다시 복기할 수 없다.

현재를 즐기고 열심히 살고 그러다 보면 한 세상 살아 질 것이다. 그래,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저쪽에서 큰 걸음으로 말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틈나면 창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조계지를 돌아 다니고 그곳에 있는 한인촌을 다녔다.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산책하고 지리를 익히기 위해서였다.

지금 그는 점심 식사 후 급하게 나갔다 한 바퀴 휘 둘러보고 오는 것이다. 상스러운 노가다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고 여기까지 온 말수는 그에게 신이었고 부모였으며 지아비였다.

다정한 남편인 그는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간이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뢰를 준 인물이었다. 용희는 그를 위해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밖에서 눈을 떼고 부엌으로 가 저녁에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살폈다. 그러다가 그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삶기로 했다. 갯가에서 살았으나 해물보다는 육식을 말수는 좋아했다.

'당신 성이 육씨인 것이 육식을 좋아해서 인가봐요.'

용희는 돼지기름으로 번질거리는 말수의 입가를 손으로 훔치면서 이런 농담을 했다.

'그러게, 난 그 때도 해물보다 고기가 더 좋았어. 해물은 흔했고 고기는 귀했기 때문인지도 몰라.'

말수가 웃었다. 동파육을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간장에 졸이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층계를 오르는 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희가 마주 나갔다.

'여보, 저녁에 동파육 어때요?'

여느 때 같으면 좋지 하고 엄지 손가락을 세웠을 말수는 조금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녁 약속 있는데. 막 그 말 하려고 했던 참이야.'

용희가 물끄러미 그런 남편을 쳐다 보았다.

'한인촌에서 포목 장사를 하는 이씨라고 있는데 그 사람이 지난 번 치료 잘 받았다고 저녁이나 하자고 하데.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러마 했지.미안해, 여보.'

'아니, 뭐 미안할 것 까지야.' 

용희가 가볍게 받아 넘겼다.

'동파육은 내일 먹으면 어때. 마침 토요일 이잖아. 다음 날 병원도 쉬니 우리 간만에 고량주 한 잔 할까.'

용희가 반색했다.

'그래요, 여보. 내일 한 잔 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동파육 만들게. 소동파도 울고 갈걸.'

금요일 오후는 한 산 했다. 환자 몇 명이 오전에 왔다 갔고 발이 부러진 노동자가 항생제를 받아간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둘은 이처럼 한가한 이야기를 했다. 누구 말마따라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집에 말이야. 애들이 서 너명 있는데 한결 같이 잘 났어. 이제 서 너 살 정도인데 말도 제법 하고 달리기도 하고 귀여워 죽겠어. 당신도 한 번 같이 가보자고.'

말수가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은지 웃는 낯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아이들이 얼굴에 선한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말수가 웃을 때는 제법 잘 생긴 얼굴이었다. 커다란 광대뼈는 입술이 좌우로 벌어지면서 평평해지고 눈꼬리 역시 좌우로 잘게 찢어지는 것이 배우를 해도 좋을 상 같았다.

고기 재우는 것이 미뤄지자 용희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버린 사람 답게 심심해 졌다. 쌓여 있는 의학 서적을 보거나 영어 공부도 오늘은 영 내키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도 조계지를 구경하고 싶었다. 간혹 차를 타고 지나가기도 하고 찬거리를 구하러 나간 적은 있었지만 걸어서 20분 거리인 한인촌 구경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용희는 저녁 약속에 자신도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말수는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혼자간다고 했는데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이 한 말을 바꾸고는 같이 가도 상관 없다고 허락했다.

거울 앞에서 단장을 하던 용희는 남자들끼리 할 애가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고 당신도 알잖아, 환자로 만나서 조선 말 알아 듣는 사람끼리 동지적 마음이 있다는 거. 딱 거기까지야.'

'그 사람 부인은 어때요.'

용희는 자신이 상대해야 할 사람에 대해 물었다.

'인상이 괜찮아 보여. 홍성 출신인데 용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

'홍성이라면 우리 옆 동네요.'

용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보령하고 가까운가.'

'그래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야.'

용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래 고향애기 해도 되겠군.'

그 말을 남기고 말수는 이층 병원으로 내려갔다. 그가 올라올 때와는 다른 소리가 났다. 용희는 조금 전에는 고향을 의식적으로 무시했으나 어느 순간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애써 참았다. 

거울 속의 용희는 아주 젊었다. 이제 이십대 초반이니 그럴만도 했다.

'그 집 아이들이 잘 났다.'

그녀는 그 말을 곱씹었다. 남편이 아이를 원하는 구나. 자신과 나이차가 많으니 아이 생각이 자신보다 더 클 수도 있었다.

아직까지 용희는 단 한 번도, 맹세컨데 단 일초도 자신의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잘 났다는 말에 용희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다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임신할 수 있을까. 한 번의 낙태 경험 이후 임신의 기미는 없었다. 피임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틀림없었다.

석녀가 된 것일까. 용희는 또 다른 공포를 느꼈다. 정말로 말수가 아이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다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그의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갑자기 용희는 엄마가 된 자신과 영원히 출산할 수 없는 자신을 비교해 봤다. 생각은 후자에 머물렀다. 그러자 출입문을 막아서고는 환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막막함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튼튼한 가죽혁대가 가슴을 조여 오는 듯이 숨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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