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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인간실격(1948)-스스로, 제발로 걸어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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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인간실격(1948)-스스로, 제발로 걸어들어가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8.24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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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남이 보기에 남부럽지 않은 사람도 속으로는 골병이 든 경우가 있다. '겉멋속썩'이라고나 할까.( 이것은 필자의 언의유희다. 겉은 멋지지만 속은 썩었다는 말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주인공 요조도 그런 인물이 되겠다.

병약한 것 빼고는 거의 다 있다. 정당 활동을 하는 아버지 때문에 가난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 집에는 머슴도 있고 하녀도 있다. 먹을 것은 늘 넘쳐난다.

그뿐인가. 도쿄로 연설을 갈때면 아버지는 선물을 요구하지 않는 요조에게 화를 낸다. 아무거나 사달라고 해야 비난 대신 칭찬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요조는 사자탈을 사달라고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분이 좋다. 이런 어른들의 세계를 어린 요조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런 것이 되풀이되면서 세상이 무엇인지 차츰 알아간다.

대개 이런 경우 가진 자의 여유와 편안함이 떠오른다. 그러나 요조는 아니다. 풍요가 넘쳐도 정신은 늘 불안하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일이 습관이 된 요조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들처럼 거짓에 물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간파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반항하고 행동하기에 요조는 너무 어리다.

세 번째 수기 가운데 유년기의 요조의 심리 상태는 이렇다. 

학생기의 요조는 수재라고 들을 만큼 성적도 우수하다. 그러나 그가 관찰하는 인간 대상들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요조의 인간탐험은 이어지고 결론은 언제나 인간 자체를 단념할 수는 없다는데 이른다.

어느 날은 면전에서 아버지의 연설을 극찬하던 동지들이 뒤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도 깎아내릴 때면 요조는 인간의 이중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일부러 사람을 웃기는 장난 같은 것을 포기한다.

▲ 요조가 실격 처리된 것은 타인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 요조가 실격 처리된 것은 타인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대신 이미 유년기에 머슴과 하녀로부터 순결을 잃은 요조는 본격적으로 여성을 탐구하기에 이른다. 여성들이 보기에 그는 여자의 비밀을 지켜 줄 멋진 사나이였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먼 친척의 집에 하숙하게 된 요조는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 놓았다. 심지어 아버지와 형에게 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부모 형제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친구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연기라는 것이 발각되자 불안과 공포는 날로 커지고 요조는 처음으로 죽음을, 자신의 죽음이 아닌 친구의 죽음을 바라게 된다.

어느 덧 시간은 흘러 요조는 하숙집 누나와 그 여동생과 바보 친구를 뒤로 하고 도쿄로 상경해 고등학생이 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장차 관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소원 대로 기숙학교에 요조는 들어간다.

그러나 곧 결핵에 걸려 기숙사를 나와 아버지 별택에서 늙은 노부부와 함께 생활한다.이 즈음 요조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그러니 요조에게 젊은이의 기개니 청춘의 감격 같은 말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할 수밖에.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다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화방 친구 호리끼에게 술과 매춘부와 전당포와 좌익사상을 배웠다. 호인이라기보다는 진짜 도시의 건달을 만난 것이다.

이것으로 요조의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졌을까. 천만에. 아침마다 매춘부의 품에서 깨어났어도 마르크스 주의자들로부터 장래성 있는 동지로 인정받아 위험한 일을 처리했어도 그에게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믿음이 위협받고 있었다.

음지의 사람으로 두려운 합법이 아닌 쾌락의 비합법을 즐겼으나 이 또한 오래가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별택을 나와 하숙집에 들어가면서 요조는 처음으로 궁색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대로 생활을 하지 않는 요조에게 가족은 희망을 버렸고 굳이 많은 돈을 지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버린 자식이 된 요조는 학업도 포기하고 연상의 유부녀, 동지로 맺어졌던 누나, 두 살 연상인 남편이 있는 또다른 유부녀 등과 닥치는대로 정사를 즐겼다. 술집의 마담, 매춘부 등은 그 사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죽 하면 호리키가 요조에게 '색마'라고 놀려 댔겠는가. 

그즈음 요조는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한다. 그런데 여자는 죽고 요조는 살았다. 그는 십년 형 대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집에서도 그 일을 알았다. 아버지의 골동품 심부름을 하는 사십이 넘은 넙치가 보호자가 됐다. 

마지막에 해당하는 세 번 째 수기는 청년기에 해당된다. 마지막 장이니 아마도 숱한 죽음이 이어질 것을 독자들도 짐작할 것이다. 눈치빠른 독자는 이 정도 읽어 오는 동안 요조의 죽음으로 책이 마무리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 볼 수 있다.

그런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지 관심을 가져 보면서 수기의 세 번 째로 넘어가 보자. 학교에서 쫓겨나 넙치의 집에서 기거를 시작한 요조는 집에서 보내는 소액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부잣집 아들에서 졸지에 가난한 청년으로 전락한 요조는 늘 돈에 쪼들린다. 그러나 술과 여자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넘치가 감시하고 있으니 무한정 방탕하기도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요조는 저녁에 틀림없이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쓰고 넙치의 집에서 도망쳤다. 믿게 하기 위해 호리키의 주소를 써 놓기도 했다. 도망지에서 요조의 여자 사냥은 절정에 다다른다. 

남편과 사별한 지 사년 째인 다섯 살 날 딸이 있는 이십팔 살 잡지사 여기자 스지코의 기둥서방 역할도 그 무렵 시작됐다. 호색질에 지치면 요조는 걸작을 그리고 싶은 욕심에 붓질을 해보지만 신통할리 없다. 

만화를 그려 겨우 입에 풀칠 하는 정도이니 그의 인생 상실감은 그 어는 때 보다도 컸다. 더구나 집에서 절연 당하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여자와 동거에 들어갔으니 요조의 인생은 이제 정부 관리는커녕 절딴 난 것이나 다름없다.

경멸의 대상이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호리키와의 기간이 길어지자 요조의 술실력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원정 음주는 물론 정부를 두고 외박을 일삼기도 한다.

어느 날 요조는 자신을 끔찍이 사랑하는 정부와 그의 어린 딸의 대화를 듣고 그녀를 떠나 마담 술집과 2층에서 살림살이를 시작한다.

말끝마다 색마라고 부르며 난봉을 이제 끝내라고 하지만 호리키는 진정으로 요조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 무렵 술집 앞에 사는 열여덟 살 먹은 여자애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으면 어떻하느냐고 요조에게 충고하는 일이 발생한다. 여고생인 그녀와 요조는 또 엮인다.

요조의 여자 이야기는 이쯤해서 마무리 짓자. 이 책의 제목은 <인간실격>이다. 인간의 자격을 상실한 자라는 뜻이다. 요조가 자발적 인간실격자인지 시쳇말로 왕따나 사회적 약자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인간실격자인지 따져보는 독자도 있겠다.

어쨌든 요조는 가진 것 다 가지고 태어나 넉넉한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삶을 계속해서 살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그 스스로 그것을 박차고 나왔다.

그런 면에서 요조는 삶에 대한 애착이나 강한 의지보다는 현재를 즐기고 또 즐기는 한마디로 짧고 굵은 인생을 원한 인간의 전형으로 보인다. 책이 씌여진 1948년은 일본이 패망하고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였다.

사회 분위기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상실감, 불신, 희망 부재 같은 파편들이 햇살의 먼지처럼 끝없이 부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억지로 자신을 구렁텅이 속으로 밀고 들어가는 요조의 처절한 몸부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렇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작가를 관통했기 때문일까. 

: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요조는 그러지 않고 적극적으로 퇴폐의 길로 성큼 성큼 걸어들어갔다.

정상과는 거리가 먼 비정상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언제 죽어도 좋다는 자포자기 심리가 유년기부터 그를 사로 잡았다.

그는 끝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벗어나는 것이 되레 고통이고 끔찍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앞서 유년기의 바보 친구는 두 가지 예언을 했다. 하나는 위대한 화가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가 홀딱 반하는 타입이라는 예언 말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하나는 틀렸고 두 번째는 맞았다. 정말이지 요조는 사람다룰 줄을, 여자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연상이든 연하든 그는 자신에게 오는 모든 여자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했다. 여자로부터 돈을 받았고 잠을 받았고 마약을 받았고 그리고 죽음을 받았다. 여자 없는 요조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요조는 여자가 삶의 일부였으나 그 보다 더 큰 자신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로 인간 허무였으며 세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딱히 그가 받은 구조적 불평등은 없었으나 그는 사람에게서 인간 신뢰보다는 인간 불신을 먼저 보았고 깨달았다. 그런 면에서 요조는 불쌍한 인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무라야마 하루끼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라고 손꼽았다. 뉴욕 타임스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데 있어 다자이 오사무보다 뛰어난 작가는 없다고 평했다.

한편 작가는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것을 평생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세 번에 걸쳐 잡지에 연재 됐는데 마지막 연재물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에 작가는 자살했다. 책 속에서 처럼 39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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