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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희와 말수는 병원을 차린지 수개월만에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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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희와 말수는 병원을 차린지 수개월만에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8.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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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우당탕탕 건물 아래 쪽이 시끄럽다. 응급환자가 생긴 모양이다. 용희는 퇴원한 환자의 침상을 정리하다 아래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럴 때는 말수가 필요하다. 

그의 도움없이 병원을 운영할 수는 없다. 제발로 걸어오는 환자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오거나 들것에 실려 올 때는 대책이 없다. 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란을 잠재우는데 말수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이렇게 떠든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일행을 진정시켰다. 환자의 몸에서는 선혈이 낭장했다. 흰 옷 때문에 피는 더 선명했고 확실했다.

조선족인가. 말수는 환자를 보는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 일본인 서양인 등 인종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이 왔지만 흰옷 입은 사람이 피를 흘리면 들어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수는 일행가운데 조선말을 쓰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는 환자와 연관된 보호자라고 판단했다. 그 사람의 얼굴대신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 말수는 물었다.

'무슨 일이오.'

조선말이 자연스러웠다. 보호자인듯한 여자는 다른 나라 말이 아닌 조선말이 반가운지 대답에 힘이 실렸다. 환자가 병원에 왔는데 무슨 말이라니 말이 안 되는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차분하고 정확했다.

말을 알아 듣는 사람에게 하는 동지 의식같은 것이 작동했다. 

'고문 당했거든요. 일본 경찰한테요. 이 상태로 집 앞에 버려졌어요.'

고문과 일본 경찰이라는 말에 말수는 순간 움찔했다. 그에게 들려온 단어치고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고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에 말수는 뜨끔한 기운이 올라 왔으나 목소리와 표정은 그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무슨말인지 알아 들었거나 못알아 들었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우선 응급처치 부터 했다. 빠진 팔을 집어 넣었고 찢어진 다리의 상처를 씻어냈다.

그런다음 꿰맸고 상처에 붕대를 감았다. 감염을 막기 위해 필요한 항생제를 처방했다. 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거드는 간호사도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도 말수의 솜씨에 감탄했다.

말수에게 말했던 환자 보호자는 안도했는지 그제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환자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닥친일을 알지 못해 손을 씻은 다음 수건을 들고 나오는 말수에게 하소연 하듯이 말했다.

'남편은 고문받을 짓을 하지 않았어요. 이 무슨 꼴인지 모르겠어요.'

잘못이 없는 남편을 그렇게 한 일본 경찰을 자신을 대신해 말수가 따져 주기를 바라는 듯한 말투였다. 조선어를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말수를 신뢰하면서 배상이라고 받아야 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당장 치료비가 걱정인지 눈물을 흘리면서 마주잡은 두 손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연신 꼼지락 거렸다. 급한 환자를 치료하고 나자 다른 걱정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침상앞에서 환자가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어떻게 하느냐고 말수에게 물었다. 말수는 간호사를 불렀다.

'여기요. 이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좀 해주세요.'

수술 도구를 정리하던 용희가 다가왔다. 

그녀는 환자 보호자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즉한 목소리로 이런 환자 받아도 되나 몰라요하고 말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조심하라는 의미였다.

'환자를 골라 받을 수야 없지.'

'하지만 여긴 일본인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이 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버렸다고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내 보낸 거잖아. 알아 낼 것 다 알아 냈거나 아니면 잘못 잡은 거지.'

용희는 말수의 판단이 옳았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투였다. 치료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설사 밀정이었거나 역적질을 했다손 치더라도 다 끝난 일이었다. 

그러나 용희는 상해에 병원을 개원하고 나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정리해야했다. 이제 겨우 6개월 지났다.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고 여겼는데 느닷없이 조선인 환자가 들이닥쳤다.

경찰에 잡힌 고문환자.

용희의 입가에는 고문환자라는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과저잉 워낙 험난했기 때문에 고문환자는 이제 막 이루기 시작한 병원을 허물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남아 상해에 왔고 운 좋게도 전선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을 개업했다. 털어 버리자. 말수의 말이 옳다.

설사 조선인 독립군이라 해도 하부조직의 피나미에 불과할 것이다. 버린 환자를 치료한 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용희는 뭔가 꺼림찍한 것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성사셨다. 

말수와 용희는 원래 상해에 오기로 학수고대한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기 전까지  숨가빴던 순간들. 필요한 약품을 함선에 실었고 그것들과 함께 다시 전선의 종군의사로 투입돼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는 와중에도 탈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부상당한 일본군 장교의 상태가 심해지면서 그가 회복될 동안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상해에 한 달 정도 체류 허가를 받았다. 장교는 다른 의사 아닌 말수를 선호했다. 용희의 면밀한 간호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정성을 다한 덕분인지 일본인 장교의 운명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연장됐기 때문인지 몰라도 장교는 보름 후부터 열이 내리고 허벅지를 관통당한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덫나거나 감염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순전히 말수와 용희의 치료 덕분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그 장교는 말수와 용희를 생명의 은인으로 삼았다. 장교는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상해에 남기를 바라는 것을 알았고 그도 아직 완쾌된 것이 아니어서 그들이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어떤 이유를 댔는지 모르지만 전선으로의 복귀 명령서는 해제됐다.

이제부터는 철저한 신분세탁이 필요했다. 장교는 그것도 알아서 처리해줬다. 사실 세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용희는 일본 유학파이면서 경성제대를 졸업했고 말수 역시 연희전문 의과를 졸업한 어렷한 의사로 행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해본부부병원의 간판을 내걸었다. 그날 저녁 말수와 용희는 죽을 때 까지 함께 부부로 살기로 언약했다. 부부병원을 개업한지 한달 후 쯤 일본군 장교는 시찰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일본군 장교가 죽고나서 용희와 말수는 자신들을 보호해 줄 끈이 떨어진 것에 낙담했으나 되레 좋은 기회로 여겼다.

그 말고 자신들의 신분을 어렴풋이 나마 의심하는 사람이 상해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이었고 중국인 행세를 했다. 상해 당국으로부터 의사면허증을 받은 것은 물론 정식 병원간판을 달았으니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부는 정식 의사 면허증을 병원 현관 위에 걸었다. 환자들이 들어오면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걸린 그것을 부부는 하루에도 여러번 쳐다 보면서 자신들이 진짜 의사라는 것을 언제나 상기했다.  

고마운 다마고치 상.

용희는 이따금 그 말을 했다. 다마고치는 죽은 일본인 장교 이름이었다. 부부를 신뢰한 일본인 장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용희는 그런식으로 표현했다. 병원이름에 본이 들어간 것은 일본의 그 본이었고 설명을 들은 장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었다.

장교는 골치아픈 서류를 일사천리로 처리해 준 것은 물론 두 사람의 결혼식도 그럴듯하게 치러 주었다. 상해 조계지의 유명 호텔을 빌려 결혼식을 했다. 초청인사는 수 십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셀 수 없을 만큼의 하객이 축하해준 것보다 더 큰 만족을 느꼈다. 

장교는 자신이 주례를 서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주례사에서 대일본제국의 유능한 의사 부부 탄생을 축하했으며 이곳에서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부부의사의 탁월한 의술 덕분에 걱정없이 치료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장교는 여기까지 일을 마치고 나서 순식간에 부부 앞에서 사라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때로는 그 둘이 혼합된 것인지 부부는 간혹 환자가 없는 시간에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봤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 비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환자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했다. 

그들은 이제 상해에서 실력있는 의사부부로 인정받았다. 특히 외상 환자 치료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면서 상해는 물론 은근의 다른 도시에서도 환자들이 간혹 찾아왔다. 말수는 외상 환자 치료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부러지고 깨지고 찢어진 상처는 그의 손길을 거치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치료됐다. 소문은 널리 나서 그들이 일본 제국대학 출신으로 조선 경성에서 큰 병원을 했고 자발적으로 종군 의사를 하는 등 남다른 길을 걸어 왔다는 이야기가 환자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로 전달됐다. 나쁜 징조는 아니었다.

용희는 주로 산부인과 등 여성질환은 물론 내과 전문의로 활약했다. 외과과장인 말수는 좀 더 안정이 되면 보조 의사를 채용할 계획을 세웠다. 내외과를 통합한 이른바 종합병원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한 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상해본부부병원은 금방 빌린 돈을 값았다.

'병원 이름에 본자를 넣은 것은 신의 한 수 였어.'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상해에서 어쩔 수 없는 병원이름이었고 자신들이 하나인 것을 새기는 부부라는 명칭에 만족감을 표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된 용희는 서서히 삶의 안정을 찾았다. 그는 조선을 잊고 싶었다. 전쟁도 잊으려고 노력했다. 

말수도 그랬다. 남양군도의 막장생활과 노가다는 그의 의식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용희나 말수가 잊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간호사와 의사보조라는 직업이었다. 전쟁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고 그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환자가 없거나 잠시 소강상태를 보일 때면 억척스럽게 공부했다. 특히 영어에 매달렸다. 서양의술은 영어를 모르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사방천지에 붙여 놓고 잠을 잘 때도 사전을 끼고 잤다.

다행스럽게도 용희도, 말수도 노력한 보람이 있는지 의사 흉내를 낼 수 있는 영어실력을 터득했다. 누가봐도 그들은 이제 완벽한 의사였다. 임상적 실력은 더 물을 것도 없고 연구적 실력도 나날히 늘어갔다.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 동안 그들은 삶이, 인간이 삶이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주인공인 그들 조차도 이런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죽마을 처녀에서 위안부로, 전선의 간호사로 태평양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아서 이자리에 섰다.

상해 조계지의 어렷한 삼층 건물을 병원으로 쓰고 있다. 살인과 방화, 통영 뱃놈이 막장 생활을 거쳐 종군의사가 됐고 병원의 외과전문의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간호 보조원 두 명을 두었고 잡일을 처리하는 하인 세 명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곧 병원 식구가 10명을 돌파할 것이다. 꿈을 꾼다면 이런 꿈을 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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