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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6 18:20 (목)
주모에게 부린 행패가 자신에게 한 행동으로 유지는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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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모에게 부린 행패가 자신에게 한 행동으로 유지는 이해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8.05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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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가 심한 자였다. 저런 자가 대일본 제국의 고위 경찰이라는 것이 못마땅했다. 호사카 유지는 생각같아서는 한 방에 쥐어 박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막 군복을 벗고 조선에 온 지 불과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는 나서고 싶지 않았다. 무려 4년을 전쟁터에서 매일 싸웠다. 여기서 까지 우격다짐을 해서는 안된다. 목소리도 그렇다.

끊어 오르는 분노 같은 것을 유지는 억지로 참았다. 그는 점례와 삼촌과 함께 그동안의 마저 못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화실 근처에 들렀다. 주로 미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간혹 삼촌이 삼천포로 빠져 태평양 전쟁이나 그곳 원주민이야기에 흥미를 느껴도 유지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추측할 수 있는 그런 형식적인 대답만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쟁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파리 유학에 대해 유지는 아버지에게 해썬 말을 삼촌에게 다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유지의 화난 얼굴을 보고 삼촌이 나서려고 일어섰다.

그러나 유지가 제지했다. 

'저자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고요.'

삼촌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화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손님이라고는 저자와 우리 뿐인데 저런 식의 행동은 동행자에게도 불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라고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었다.

주모는 일어나면서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도 잘못을비는행위만큼은 잊지 않았다. '네년이 뭘 잘못했어?'

경찰 간부는 조선말로 욕지거리를 해댔다. 너무나 익숙한 조선말이어서 유지나 삼촌은 그 자가 조선인으로 일본 경찰이 된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더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은 같은 조선인끼리 살펴봐야지 하는데 저자는 아니다.

무슨 곡절이 있다고 해도 센자가 기껏 술이나 파는 아녀자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  삼촌이 다시 일어섰을 때 유지는 말리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삼촌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유지는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자신도 술상을 엎고 군홧발로 음식을 짓이긴 일이 있었다.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온 날 부하들의 사기를 돋구기 위해 일부러 과격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건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유지도 앞쪽에 앉은 경부가 하는 행동과 주모의 행동을 눈여겨 보지는 않았어도 돌아가는 꼴을 알고 있었다. 유지는 저자가 주모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에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조선의 일본인들이 요즘 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가. 유지는 그런식으로 그 자를 이해하려고 했다. 유지는 판단을 뒤로 미뤘다.

그 사이 삼촌은 화난 얼굴을 숨기고 점잖은 걸음으로 아직도 성안 황소처럼 씩씩대는 경부에게 다가갔다.

'형씨,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왠 행패요.'

'행패라니?' 

경부는 말을 받아 치다말고 격조 높은 일본어를 구사하는 그에게서 어떤 위압을느꼈다. 그래서 급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저 년이 손님에게 말대꾸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엄마뻘 되는 여자에게 욕을 하다니요. 그렇다고 해서 화가 풀립니까.'

삼촌은 여전히 점잖은 태도를 유지했으나 나무라는 투가 역력했다. 경부는 자신의 체면이 손상된 것을 즉시 느끼고 예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상대가 바라볼 수 있게 위로 추어 올렸다. 여기서 더 나가면 어찌 해 볼 수 있느니 멈추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삼촌은 그 정도로 기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종로서장과 형,동생하는 사이이고 총독부에게 끈이 있다. 더구나 일본 유력 정치인을 형으로 두고 있고 그 형은 지금 총독과 면담하기 위해 광화문에 들어간 상태였다.

경부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무서워할 대상은 아니었다. 삼촌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버티고 서 있자 경부는 자신도 일어서야 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마주 서니 키가 엇비슷했다. 

'신분증 좀 봅시다.'

경부가 공무를 집행하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깔았다.

'그러기 전에 당신은 어디 경찰서 소속이오.'

경부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식의 대꾸는 경찰 인생 13년 만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무리 일본이이라고 해도 건방졌다. 백번 양보한다는 듯이 그가 입을 비죽 거리면 입을 열었다.

', 나 남대문서 경부요. '

'서장 다음 가는 자리군요.'

경부가 움찔했다. 경찰 직위를 알고 있다면 이 자도 같은 소속인가. 동휴는 순간 머리를 굴렸다. 아니면 돈 많은 상인인가. 그렇다고 해도 이 자는 아직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나 조선제일일등화랑 주인이오. 그건 그렇고 주모에게 사과하고 일을 끝냅시다.'

일은 끝내자고. 경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이 꼬여 가고 있었다. 그 자들의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어디선가 본 듯한 여자의 신분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분은 커녕 얼굴도 마주 보지 못했다. 일이 글러가고 있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오. 동행에게 미안하오. 무슨 중요한 회의인 모양인데 내가 실수 했소.'

경부가 빳빳이 서서 말했다. 그는 빠져 나올 기회를 적절히 잡았다. 이 자와 대꾸했다가 괜히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일어서지 않고 이쪽을 보고 있는 남자 하나도 시선에 걸렸다. 그 자의 태도나 품위는 언뜻 본 것으로도 자기 눈 앞에 있는 자보도 더 귀해 보였다.

그러니 부하를 내보내고 자신은 앉아 있지 않은가. 젊은 녀석이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내세울 때는 그 자의 지위를 생각해야 한다.

경부가 이렇게 나오자 삼촌도 더는 할 말을 잊었다. 주모는 그 사이 바닥에 떨어진 술병과 음식 잔해물을 치웠다. 경부는 호탕하게 술값 이상을 지불했다. 주모는 인상을 펴지 않은 채 감사하다고 연신 고새를 숙였다.

경부는 동휴 대신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대고는 순찰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다음에 또 만날 날 있겠지요. 그 때 정식으로 사과 하리다.'

삼촌은 어이가 없었으나 이쯤에서 일이 마무리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시지요.'

악수를 청하면서 경부는 의식적으로 점례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점례도 이쪽을 보고 있어 두 사람은 잠깐 동안 눈길을 교차했다.

경부가 나가고 나서 삼촌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더는 이야기 할 거리가 없었다. 삼촌은 가게로 돌아갔고 유지와 점례는 종로에서 한 잔 더 하기 위해 종각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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