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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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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2.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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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붕괴, 열정만으로 버티기 어렵다

[의약뉴스] 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이와 관련된 여러 보건의료정책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조차 ‘필수의료’는 각 후보들의 공약집에 포함됐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후보시절부터 필수의료에 대한 강화를 약속했다.

이런 상황에 임기를 한 달 앞둔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자청, 우리나라에 거대한 재앙이 될 수 있는 필수 의료체계의 붕괴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여한솔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자청, 우리나라에 거대한 재앙이 될 수 있는 필수 의료체계의 붕괴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여한솔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자청, 우리나라에 거대한 재앙이 될 수 있는 필수 의료체계의 붕괴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리나라 필수 의료체계 붕괴 위기

먼저 여한솔 회장은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한 세브란스병원 중환자 전담의 故 송주한 교수를 거론했다. 

故송주한 교수는 지난 2018년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호흡기내과 폐 이식 환자와 에크모를 전담하면서 중환자실과 응급실부터 병동과 외래까지 전천후로 환자를 진료했으며, 응급실이든 병동이든 상태가 안 좋아진 환자가 있으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송내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국립중앙의료원 故윤한덕 교수와 이번에 유명을 달리한 故송주한 교수의 사례를 살펴보면 더 이상 의료진이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게 여 회장의 설명이다.

여 회장은 “KTX 등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서울 등 수도권으로 올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무조건 큰 병원, 무조건 서울로’라는 인식이 국민들 머릿속에 자리매김하게 됐다”며 “이로 인해 10~20년 전에 비해 수십 배의 환자들이 수련병원, 종합병원으로 몰아닥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대응하기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보단 병원들은 거대한 병원으로 탈바꿈하게 됐고, 이 와중에 수련생 신분인 전공의들은 가르침을 받기보단 몰려오는 환자들을 꾸역꾸역 소화해내야했다”며 “전공의들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르자, 우리나라 직역 상 존재하지 않는 PA제도를 끌어왔다”고 전했다.

특히 여 회장은 ‘내ㆍ외ㆍ산ㆍ소’라고 불리는 필수의료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현 상황과 전공의들이 더 이상 이런 과들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 회장은 ‘내ㆍ외ㆍ산ㆍ소’라고 불리는 필수의료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현 상황과 전공의들이 더 이상 이런 과들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 회장은 ‘내ㆍ외ㆍ산ㆍ소’라고 불리는 필수의료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현 상황과 전공의들이 더 이상 이런 과들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는 큰 도시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운데, 안전한 출산을 위한 정책지원이 존재하지만,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전공의들이 보기엔 많은 문제가 산적해있다”며 “산부인과 의사로 꿈을 갖는 이들이 꿈을 포기하고 몸 마음 편한 다른 과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산부인과 전공 지원율은 3년 연속 정원 대비 75%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태어난 아이들을 돌봐줄 소아청소년과 의사도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검사와 처치는 한정적이고, 다른 과처럼 비급여 항목도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의료수가에 의존할 밖에 없다”며 “전망은 더욱 암울하고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기에, 소아청소년과는 3년 전까지 88%의 지원율을 유지했으나 2022년 기준 23%의 지원율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또 “수년간 트레이닝 끝에 수술을 포기하는 외과계열 의사의 사례도 허다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개원하거나 요양병원, 한방병원에 취업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일반외과는 3년 전에도 70%의 지원율에서 2022년 현재 62%에 불과하고, 심장과 폐 수술을 담당하는 흉부외과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턱없이 낮은 보상으로 책정된 수가 때문에 지난 10년간 전문의 배출은 연평균 24명에 불과하며, 선천성 심장병 수술이 가능한 소아 흉부외과의사는 전국에 20여 명 남짓이라는 게 여 회장의 설명이다.

여 회장은 그나마 전공의 수를 채워가고 있는 내과도 “수년간의 트레이닝이 무색하게 중환자들이 즐비한 종합병원에 좀처럼 남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경증질환으로 즐비한 마을의 의원가로 개원하는 수가 태반이고,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려운 선생님들은 건강검진센터에 들어가 위 대장 내시경만 기계처럼 해야 하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지원하지 않게 되어 동료 전공의의 업무가 가중되고, 지원율을 모두 만족하게 해도 밀려드는 환자들을 현 제도로는 돌려보낼 수 없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입원전담전문의 사업”이라며 “현재 전문의를 고용하는데 필요한 인건비의 47%만이 국가를 통해 보조되고 있다. 나머지는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를 외면하는 병원들

여한솔 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알면서도 병원들은 교묘히 피해가고 있으며, 의사인력을 고용할 수 없어 값싼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PA를 무분별하게 늘렸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폭증하고 있는 환자 수에 대비해 터무니없는 수가에 의사 인력을 고용할 수 없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각 수련병원은 값싼 인력, 즉 PA들을 무분별하게 늘려왔다”며 “이유는 의사 대신 값싼 인력을 고용해 병원의 이익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왜 값싼 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기형적인 수가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협회가 주도해 필수 의료협의체를 여러 많은 논의가 오갔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며 “전공의들은 바보가 아니다.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를 하고 싶어도, 맞닥뜨린 현실은 참혹하기에 지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재원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민간에 맡기고 강요하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비극은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는 게 여 회장의 설명이다.

여 회장은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문구를 좋아하는데,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려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며 “왜 돈 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면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돈을 기꺼이 사용하겠다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바이털을 다루는 의사들을 향해 의사 사회에서도 ‘아직도 바이털 과를 가려고 하는 멍청한 의사들이 있느냐’고 말한다”며 “이들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순수한 열정만으로는 버티기엔 어렵다”고 지적했다.

▲ 여한솔 회장.
▲ 여한솔 회장.

여기에 여 회장은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상에선 지난 정부의 의료정책을 그대로 이어온다면 의료계의 앞날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심정지 환자의 리듬이 돌아온 이후에도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모든 의료진이 투입된 상황에서 본인 손가락 1㎝ 찢어졌다고 빨리 꿰매달라면서 응급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며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오는데 응급의료 관리료 몇 만원을 제외하고 그 어떤 문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대학병원 3분 진료가 문제라고 하지만, 3분 진료만으로 충분한 경증질환들을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의사와 의료기관에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책입안자의 억지이자 왜곡이라는 게 여 회장의 설명이다.

여 회장은 “지역간 의료격차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고, 지방에 인력이 부족하지만, 기형적인 시스템을 통해 모든 환자가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게끔 한 책임은 누구도지지 않는다”며 “급격한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했던 많은 필요악이 마치 의사들이 만든 단순 ‘악’으로 규정, 의료인들을 돈 벌기에 혈안이 된 미친 인간들로 언론들은 포장했다”고 지적했다.

또 “의사 수가 부족하가면서 정원을 늘리면 해결된다며 자신의 지역구에 의대를 만들겠다고 국민을 호도하는 정치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은 잘만 포장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전선에 남아있는 의료진 지탱할 버팀목 마련

이와 함께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은 생사를 넘나들며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의료 최전선에 남아있는 의료진을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 회장은 “의료인들조차 알지 못했던 코로나19 감염 질환에 대한민국 사회가 공포에 떨었던 때를 기억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료진의 노력은 말할 것 없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노력과 재정을 담당하는 기관의 협조 하에 재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수조원이 투입됐고, 많은 환자가 살아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며 “돈보다 생명이 중요한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국민의 생사를 책임질 수 있는 의료현장에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젊은 의사들이 희망을 갖고 소신껏 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달라”며 “필수과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대우와 처우의 개선을 해야 한다. 의료계는 항상 돈 문제, 의료전달체계 문제만 거론한다는 핀잔을 들었지만, 이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기에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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