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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데카메론(1351)-나에게도 여러분에게 그런 행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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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데카메론(1351)-나에게도 여러분에게 그런 행운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8.04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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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과거로의 여행은 언제나 신비롭다. 공간이든 시간이든 그것은 기억 저편의 것을 상기시킨다.

중세 유럽의 건물들이 여전히 건재한 곳에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지금 봐도 걸작인 아니 지금보다 더 뛰어난 건축물 앞에 서면 금세라도 그것을 세운 사람들이 그곳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그들과 말을 붙여 보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해보면 어쩌면 지금과 하나도 틀리지 않고 같은지 새삼 놀라게 될것이 뻔하다. 인류는 발전했지만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도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사랑과 증오, 시기와 질투, 탐욕과 애욕은 인간이 인간인 이상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그렇다고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인류가 앞으로 1000년 후에도 생존하고 있다면 그 인류 역시 오늘의 인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과학의 발전은 지금보다 더 우월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인간의 기본은 동물적 본능에서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굳이 이런 우주만큼이나 거대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사라지지 않고 되레 살아났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하시기 바란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에 인간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밝게 인사했던 사람이 내일은 죽은자가 되고 나 역시 그 길을 가야 하는 운명 앞에 서면 소를 잡아먹는 인간과 사과나무를 심는 인간, 이야기를 하는 인간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 ( 순전히 필자 생각.)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일곱 명의 귀부인과 세 명의 청년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피렌체를 피해 교외로 나가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을 빼고 보름간 100편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 이야기들은 대단히 흥미롭다. 엄격하고 때로는 까다로운 중세 사람들이 혹할 만한 내용 들이 가득해서 오랫동안 교황청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고 한다.

자신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에 불만을 품었을 것이고 자신들이 숨어서 저지른 온갖 악행을 드러내 놓고 옛날이야기라는 식으로 퍼트렸으니 고매하신 분들은 심기가 크게 불편했을 터이다.

대신 독자들은 열광의 도가니는 아니어도 글을 읽을 줄 알던 사람이라면 과연 내 이야기가 여기에 실려 있군,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를 바 없다는데 위로와 안도를 받았을 것이다.

이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것은 적극적인 여성상이다. 이들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든 처녀든 가리지 않고 남성의 대시를 그것이 진정성이 확인된다는 조건하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즐거움으로 대상으로 던진다는데 있다.

화자들은 그런 여인들이 용기 있고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인들이라고 칭찬한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도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랑을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빌고 있다.

간혹 어리석은 남편이 알고 나서 화풀이를 하거나 여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려고 하면 되레 그 남자를 악한으로 몰고 궁지에 빠지게 한다.

도덕 관념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물론 법적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시대에 떨어진 사람이다. 사랑의 행위도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대목이 많다.

심지어 남편을 상자에 가둬두고 그 위에서 하는 행위와 그것이 들켰을 때 그럼 서로 두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아내가 되자고 의기투합하는 장면에서는 아, 하는 가벼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 그리고 그들 두 부부는 한 번이 아니라 오랫동안 행복하게 그렇게 지냈다고 한다는 사족을 붙여 독자들에게 그 행복이 나에게도 왔으면 하는 기대심리를 심어준다.)

이런 경우도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데 이것을 여권신장이라고 봐야 하는지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일단 여성들의 개방성, 적극성을 보카치오는 장려하고 칭찬하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여성을 우위에 두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처녀로 시집가는 여자는 한 명도 없다고 비아냥하거나 여자는 남자의 종, 이라는 식으로 표현을 하면서 여자의 정숙을 종전과는 다른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 열 명의 남녀는 왕관을 돌려 쓰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야기가 끝나면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산책후에는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로 인생을 즐긴다.
▲ 열 명의 남녀는 왕관을 돌려 쓰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야기가 끝나면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산책후에는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로 인생을 즐긴다.

다음은 왕과 귀족 부를 이룬 상인들에 대한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평가가 서민이니 하층민들의 그것과 비교해서 더 우월하게 취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경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신분이 비슷한 그들끼리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리로 치면 힘 좋은 마당쇠에 활력 넘치는 마님과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어쨌든 세상 사는 사람들이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거의 전무 망라돼 안방의 일이 밖으로 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은 너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장면에서는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평자들은 단테가 신의 세계를 그렸다면 보카치오는 인간의 세계를 썼다면서 <신곡>에 비견해 ‘인곡’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은 이 책도 스승 페트라르카가 만류하지 않았다면 불태워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라틴어 학업의 결과물은 뒷전으로 밀리고 <데카메론>은 가장 앞선 곳에 서서 보카치오의 명성을 살려내고 있다.

어떤 작품도 아무리 훌륭한 평이라고 해도 평만을 읽어서는 제대로 느낌을 알 수 없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사실 하나도 힘들지 않다. 번역이나 각주나 삽화가 좋아서인지 동화책처럼 술술 읽힌다.) 주제넘지만 이 여름에 읽어보면 어떨까, 아직 그러지 않고 언젠가는 그래야지 하는 예비 독자들에게 너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비밀이라면서 강하게 권유하고 싶다.

읽다 보면 나는 중세 사람만도 못하구나, 그보다는 조금 낫지 않은가, 하는 나와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데 고전 만큼 유용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교훈으로 독자를 이끌기보다는 음담과 패설로 가는 유쾌한 길을 안내하니 더 그렇다.

: 작가는 유독 괴로움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강조한다. ( 앞서 말한 페스트 상황을 연관해서 생각하면 더 뚜렷하다. 특히 섬세해서 운명에 빠지기 쉬운 여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구원과 안식을 얻는데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권태와 구속을 벗어나 여자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것이 보카치오의 진정한 목적인지 모른다.)

과연 인문학자다운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 괴로움에 빠진 경우는 대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대상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혼 유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부인이든 남편이든 누구든 믿을만한 하인이나 하녀를 보내 다른 남편이든 부인이든 누구든 너에게 마음이 있으니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면 그 대상은 네가 정말로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조건하에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든 사랑의 고통을 이겨내고 결국 쾌락에 다다르게 하는 것으로 결말을 낸다.

그것을 방해하는 자는 곤욕에 처하고 그것을 알고 나서 복수하려는 남녀 역시 되레 그 자신이 구렁텅이에 빠진다. 대상이 누구든 사랑하고 사랑받는 주체는 늘 살아남아 오래도록 그 사랑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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