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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는 조심스럽게 파리 미술 유학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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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는 조심스럽게 파리 미술 유학을 꺼내 들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7.22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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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가 말단 순사에게 검문 수모를 당한 몇 시간 후 그 아버지 미무라 참의원도 같은 꼴을 겪었다. 한강 대교를 넘고 경희궁 앞을 지나는 순간 유지를 검문했던 순사가 그들이 타고 있던 차를 막아섰다.

안에 있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나 탈 수 없는 차를 타고 총독부 소속임을 겉모습으로 확인했음에도 순사들은 과감하게 차를 가로 막고 멈추게 했다.

검문하기 위한 겁 없는 행동이었다. 더구나 그 차 안에는 조선통독부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오로사 이끼유 경무총감이 있었다. 그는 조선 헌병사령관을 역임하고 있어 순사의 최고 상급자였다.

통행을 저지한 순사들을 보는 순간 헌병사령관은 기가찼다. 그래서 옆사람이 들릴 정도로 저 자식들이, 하는 말 외에는 한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몰라보는 태도를 가장 격멸했던 그는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치기보다는 내려서 바로 주먹이나 워커 발을 내지를 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 자신이 불과 일주일 전에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의심이 되는 인물이나 차량 등 그 어떤 것도 검문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는 것을 기억했다.

'사전에 통보는 한거요. 의전이 엉망이군, 이거.'

미무라가 질책하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차안을 들여다 보던 순사 중 하나가 안에 탄 사람의 신분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라 급하게 한 발 물러서서 경례를 붙였다.

'저 자들은 늘 한 발 늦어요.'

헌병사령관은 그제서야 화가 풀린 듯이 소리내어 웃었다. 말단이 곧이곧대로 일을 처리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그런 작은 실수 정도로 치부했다. 그는 늘 그런식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건을 해석하는데 능숙했다.

위로와 질책 차원에서 며칠 전에 종로경찰서를 방문했을 얼굴을 알린 것이 이런 때 요긴하게 먹혀 들었다. 그러나 경무 총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차에서 내렸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 것은 미무라 참의원에게 이런 기회에 자신의 위상과 이런 사람이 나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일종의 모션이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굵은 나무처럼 부동자세로 일렬로 서있는 순사들의 머리통을 지휘봉으로 가볍게 치면서 툭툭 치면서 그래 니들이 수고가 많다고 격려인지 화풀이 인지 모를 행동을 했다. 

'누구라도 검문이 예외가 될 수는 없으나 사람을 보고해라, 응. 알았니?'

그는 다시 하이를 외치며 경례하는 남발하는 부하들을 외면한 채 차를 출발시켰다.

참의원은 자신도 인천항에서 검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요즘 조선 사정이 심각한가요. 시도 때도 없이 아무나 잡고 검문하니 말이요.’

참의원이 조금은 짜증이 섞인 얼굴로 경무총감에게 말했다.

‘그런 것도 있고요. 그보다는 예방 차원이지요. 조센징이 요즘 날뛰고 있어요. 뭘 믿고 까부는지 모르지만 만주의 독립군 잔당들이 조선으로 침투한다는 첩보까지 있어요. 총독님의 안위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일본에서 듣던 것과는 다른 말이었다. 조선민은 일본민이 되는 내선일체를 백프로 찬성하고 식민정책을 열렬히 환영한다는데 사실과 다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의원은 경무 총감이라는 자의 언행이 마음이 들지 않아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쏘아 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고 해야할까. 헌병사령관씩이나 하는 사람이 고작 한다는 말이 조선독립군의 활약상이라니.

미무라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이런 자는 바로 해고해야 마땅하다고, 그래서 총독을 만나 경무 총감의 자질에 대해 넌지시 의견을 물어봐야겠다고 그 순간 결심했다.

그리고 나서 일본으로 돌아가면 이 자를 해고하고 다른 자를 그자가 떠난 자리에 넣어야겠다고 속으로 계획을 짰다.

그런 식으로 참의원은 검문과 검문 과정에서 보인 경무 총감에 대한 불만을 삭였다. 우여곡절 끝에 미무라는 인사동에 도착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동생이 운영하는 조선제일 화실에 들렀다. 숙소는 조선호텔로 정했으나 그보다는 아들을 재회하는 것이 급했다.

그리고 그가 편지에서 언급한 조선여자 점례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아들이 빠져들었는지 그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다행히 아직 어둠은 내리지 않았다. 검문은 짧게 이뤄졌고 그 이후는 일사천리로 내달린 덕분에 저녁 6시가 못돼 미무라는 아들과 식탁을 놓고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둘은 사내다운 굳은 악수를 했고 남자들의 정을 느꼈다. 미무라는 유지의 피가 링게르 줄을 통해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그는 반가움 때문에 눈물을 흘릴 뻔했다.

외아들을 전선에 보내놓고 그는 한시도 마음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 아들이 살아서 조선에 왔고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다. 이곳이라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오랜 타향살이 끝에 고향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동생은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으나 형님이 온다는 전갈을 미리 받은 터라 일찍 들어오기로 했다고 유지가 말했다. 그러나 동생은 미무라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회포를 풀고 나서 잠시 한가한 시간이 오자 미무라는 조선 여자는 어디 갔느냐고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이 층에서 아버님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요.’

‘아니다, 난 조선호텔에 이미 숙소를 정해놨다.’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 우리들이 있는 이 집에서 하루 묵고 가세요. 우리가 자는 옆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어요.’

'우리들이라고.'

'네 아버지, 우리들요.'

이 말과 함께 점례가 위에서 계단을 타고 유지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미무라는 이층에는 제수씨가 있는데 어찌 방을 함께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점례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것보다 먼저 들었다.

‘제수씨는 어떻게 하고?’

‘돌아가셨어요.’

참의원은 대꾸 대신 놀라는 얼굴로 유지가 무슨 설명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몸이 아팠잖아요. 그래서 점례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6개월 정도 숙모 수발을 들었지요.’

‘그랬구나.’

‘그 숙모가 돌아가시고 세심한 점례의 태도에 삼촌은 아내 잃은 고통을 극복하고 지금은 거의 숙모의 존재를 잊었어요.’

그때 점례가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점례에요.’

점례는 안녕하세요, 다음에 점례대신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부를 뻔한 것을 두고 깜짝 놀랐다. 감히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나오질 않았다.

유지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음에도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떡 벌어진 어깨에 고급 양복을 입고 서양 모자 아래 금테 안경을 두른 의원은 지금까지 그녀가 봐왔던 어떤 일본인보다 근엄했다.

그녀는 망설였다. 고개를 숙이고 빈자리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가 주는 위압감에 주눅이 들어 꾸중듣는 보초병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삼촌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여기 앉으시오, 하는 말에 기운을 차리고는 조심스럽게 유지 옆에 앉았다.

점례는 자신이 만주의 어떤 막사 안에서 병사를 기다리는 위안 소녀로 미무라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몸을 떨었다. 그녀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이번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등상을 받았어요, 아버지.’

유지는 점례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특등상을 언급하며 아버지가 칭찬 대열에 끼어들기를 바랐다.

‘그래 대단하구나, 그림에 솜씨가 있다고. 만주에서 화랑을 하다가 외박을 나온 유지가 반했다는 바로 조선 처녀가 너구나.’

참의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두 눈은 뚫어져라, 점례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통해 그녀의 과거가 어땠는지 알아보기라도 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정말로 그렇게 살았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참의원에게 그런 일은 손쉬운 것이었다. 사람을 보고 첫눈에 그 사람이 됨됨이나 지식 정도나 인성까지도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경무 총감을 해임해야 한다는 소신도 이런 자신감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의 눈이 엑스레이처럼 자신을 관통해 과거 속에 있던 자신을 꺼내 들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지금까지 이런 기분은 없었다. 조선에 와서 당당하게 과거를 묻었다고 생각했으나 미무라 앞에서는 포승줄에 매달린 죄수 같은 신세였다.

숨이 갑자기 차올라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유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엑스레이 대신 그 몸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 줄 만큼은 놓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돌파해 내려는 의지로 두 눈에 힘을 모았다. 그런 모습을 미무라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 어떤 그림이었어요. 나도 그림에는 제법 솜씨가 있지요. 사실 그리기보다는 보는 눈이 더 나아요.’

유지가 아버지도 제국대학 시절에 미술을 취미로 해서 지역 대회에서 상을 받은 사실을 언급했다.

‘그렇군요, 틈나면 저에게 지도 좀 해주세요, 사실 저는 많이 부족해요.’

점례가 겨우 입을 뗐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같은 기분에 떨리는 입술에 물기가 말라 가기 시작했다.

그 일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문을 열고 달려나가고 싶었다. 낯선 병사를 처음 대할 때 느끼는 두려운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마치 사형수를 감시하기 위해 어깨를 세우고 양팔을 쭉 펴서 무릎 위에 놓은 헌병 앞에선 죄수가 자신의 신세였다.

점례는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들어 유지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지가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면서 기댄 점례의 몸을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는 표정을 짓자 점례는 눈치채고 유지 장교가 만주에 있을 때 군복을 입고 병사들을 독려하는 장면이었어요. 단순히 애국심의 고취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어떤 심오한 질문 같은 것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그림이라, 한번 보고 싶구나.’

미무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다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보이는 것만 표현하면 그것은 연습생이나 하는 그림이라면서 ‘프로는 그림에 메시지를 담아야 해요.’ 라고 덧붙였다.

말을 하면서도 그는 점례에 가서 박힌 시선을 풀지 않았다. 그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무라는 속으로 민낯의 수수한 그녀는 태생은 비천할지 모르나 스스로 그것을 깨고 나온 알 같은 존재라는 마음을 굳혀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부족한 것이 많아요. 열심히 배우면서 채워 나가겠습니다.’

미무라는 어린애처럼 감춘 그것을 알고 싶은 마음을 밀어놓고 살짝 웃었다. 점례는 칭찬에 얼굴을 붉히고 겸손할 때는 공손했다. 그런 태도가 미무라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순사에게서 받은 모욕이나 헌병대장의 모습에 못마땅하고 제수의 죽음 소식을 갑자기 듣고 나서 들었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찜찜한 기분을 날려 보냈다. 

총리대신을 노리는 그는 아들 유지가 자신의 길에 주춧돌이 되기를 바랐다. 전투에서 공과도 있고 위험한 지역에서 성과도 올렸다. 그에게 아들은 일본 전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었다.

비록 신분은 천하나 미술 솜씨가 조선에서 제일가는 수준인 점례와 어울릴까. 피카소나 고흐 같은 존재로 점례가 성장할 수 있을까. 미모나 말하는 태도는 많이 배운 여자와 다를 게 없었다.

둘을 결혼시키면 어떨까. 미무라는 그것이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 자신의 앞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속단하지는 않았다. 노련한 정치인의 본성이 그 순간에도 드러났다.

더구나 아직 유지의 뜻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조선에 있는 동안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보자는 것이 미무라가 지금 내린 판단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런 판단에 흐뭇한 마음이 들어 이번에는 입을 벌리고 소리 나게 웃었다. 아들의 여자에게 보이는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신호였다.

잘 정리된 침구에 누워 미무라는 제수와 점례가 머물렀던 방의 체취를 느꼈다.

경무 총감이 제의한 거나한 술자리보다 이 얼마나 좋은가. 조선에서 자신의 행적이 누군가에게 기록될지 모른다. 절제 없는 행동을 하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종로서장이 잘 아는 곳이 있다고 초대한 술자리를 마다한 것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미무라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선의 첫날이 이렇게 기분 좋게 저무는구나, 시인처럼 중얼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더 열심히 할게요’.

귓가에 들리는 점례의 목소리는 잘 익은 가마를 두드릴 때 나는 청아한 소리였고 그 소리는 초보 엄마가 부르는 자장가처럼 달콤했다.

참의원이 눈이 뜬 것은 일부러 조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어떤 소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귀를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때가 됐으니 일어나도 좋다는 새들의 지저귐처럼 나쁘지 않았다.

잘 잔 잠 때문인지 그는 뒤척이지 않고 바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행인은 많지 않았으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조선도 사람이 세상이구나.’

참의원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잠을 깨운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잠시 귀를 기울였다. 분명 아래쪽에서 나는 소리 같았는데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동생 노리요끼였다.

‘형님, 일어나셨어요.’

그가 반가운 얼굴을 하면서 다가왔다. 손에는 항아리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순백처럼 새하얀 것이었다. 그는 형님의 근황을 물어보는 순서도 잊은 채 손으로 들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이 조선백자예요. 척 봐도 대단하지요.’

마치 아이를 안은 것처럼 노리요끼는 참의원 앞으로 손에 든 것을 조심스럽게 안고 갔다. 해가 비치지 않은 실내에서 그것은 새롭게 빛을 내면서 의원의 눈앞에서 아지랑이 처럼 어른거렸다.

그는 이런 류의 골동품을 처음 보았다. 그것의 쓰임새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요강으로 쓰기에는 입구가 너무 작았고 무엇을 담아 보관하기에도 그랬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그는 동생에게 물었다.

형님, 이것도 모르십니까 하는 표정으로 그는 지금 형님이 그 쓰임새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의원은 동생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것은 물건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감상하기 위한 예술품이었다.

‘그래 아름다운 빛이 나는구나.’

‘이런 색을 내는 도자기는 저도 처음 봅니다. 어제 이곳 저곳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달라는 값의 절반으로 후려쳐서 가져왔는데 공짜나 다름없어요. 조센징들은 그 값도 감지덕지하면서 나중에는 더 좋은 것이 있으니 가져다준다고 허리를 굽신거렸어요.’

참의원은 감식안을 가진 예술가의 눈으로 동생의 손에서 백자를 받아 들고 위아래로 살피면서 요리조리 뜯어 보았다. 어디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었다.

좌우 대칭이 완벽했으며 거꾸로 보거나 세워 놓고 보아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어떤 흠도 발견하지 못하자 참의원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말로만 듣던 조선 자기의 기품에 혀를 내둘렀다.

‘네가 어릴 적에도 잡동사니 모으는데 취미가 있더니 조선에서고 버릇을 버리지 못했구나.’

‘아이고 형님, 무슨 섭섭한 소리를 해요. 잡동사니라니요. 이것은 조선백자 중에서도 최상급이예요. 이 무늬를 보세요. 호랑이와 용이 서로 싸우고 있지요. 둘 다 막상막하라 어느 쪽이 세고 약한지를 알 수 없어요. 거기다 싸움을 말리기보다는 붙이기 위해 서 있는 심판관이 물고 있는 담뱃대에서 연기가 나지요. 저도 한 대 피고 싶네요.’

노리요끼는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조선백자에 대해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늘어놓더니 고려청자도 있어요. 형님, 하고 바싹 다가섰다.

‘지하에 창고가 있는데 백자와 청자가 삼백 점이 넘어요. 고려시대, 조선시대 것을 내가 다 모았어요. 어마어마하게 돈이 들었지요. 거기다 그림도 수백 점이 넘어요. 김홍도나 신윤복 겸재 같은 내로나 하는 조선 천재 화가들 그림이 산처럼 쌓였어요. 형님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조금 보낼 테니 잘 좀 보관해 주세요.’

그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연설가가 다 된 듯이 자기 말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신중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 앞에서 재롱을 떠는 동생에 불과했다. 형은 그런 동생을 혈육의 정으로 바라보면서 동생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래 조선 것을 싹 다 긁어모아라. 일본에 큰 박물관 하나 짓자. 형제 이름으로. 영국이나 불란서 박물관도 다 남의 나라 유물을 뺏은 것으로 채운 것 아니냐.’

‘형님, 뺏다니요. 돈 주고 다 산 겁니다. 비록 헐값이지만요.’

둘을 껄껄 웃었다. 조선의 행복을 모두 독차지 한 것처럼 이른 아침 인사동의 한 화랑은 웃음으로 넘쳐났다.

참의원은 동생이 조선의 유물에 관심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서너 달 전에 고려 시대의 팔각 구층의 청동탑과 화강암에 새겨진 정교한 문인석, 무인석 한 쌍을 보내온 것을 기억해 낸 의원은 그 많은 것들을 어디로 처분할지 그것이 궁금했다.

‘네가 박물관을 차릴 것은 아니잖느냐.’

형님은 조금 전에 한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듯이 말했다. 동생을 떠보기 위해서였다.

‘형님, 저는 조선의 제일 갑부가 되고 싶어요. 그래야 형님 정치하는데 제가 좀 보탤수도 있고요.’

그 말에 의원은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그래 네가 우리 집안을 그런 식으로 돕는구나 하면서 형제애를 보여 주기라고 하듯이 어깨를 다독였다. 동생은 모은 것을 수 백 배 더 붙여 되팔 작정을 하고 있었다.

이층에서 미무라 다타시 형제가 이런 일로 아침잠을 깨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는 점례가 식사를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그는 조선식의 아침상을 미무리 의원에게 올릴 참이었다. 깻잎이며 마늘종 등의 밑반찬과 취나물이 포함된 서너 종류의 나물, 갈비찜과 굴비구이, 된장찌개와 미역국이 올라왔다.

아침상을 받아든 의원은 눈이 둥그레졌다. 이 많은 음식을 점례 혼자서 차려낸 것이다. 수저를 들고 미우라는 어떤 것부터 먹어 볼까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잡채를 한 젓가락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에 넣고 맛을 음미했다.

점례는 어떤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의 잡채가 들어간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삼촌이었다.

‘우리 점례 음식 솜씨가 대단하지요.’

‘조선 최고예요, 아버지.’

유지가 옆에서 거들었다.

‘너는 뭐든지 조선 최고구나.’

넷 중 둘이서 엄지손가락을 세우자 미우라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구나, 네 말이 맞다. 이런 음식을 만들다니. 몇 시에 일어난 것이냐.’

점례는 머뭇거리면서 새벽 4시부터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럴 것 없다. 애야. 나 때문이라면 이제 내일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런 시간이 있다며 그림을 그려야지. 여자라고 해서 재주를 썩혀서는 안 된다.’

‘그렇지요, 아버지. 점례는 조선 최고의 화가로 곧 유럽에도 진출할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요. 프랑스로 내년쯤 유학을 가고 싶어요.’

유지가 내친김에 말을 꺼낸다는 듯이 파리행을 이때다 싶어 아버지의 의중을 떠보았다. 삼촌도 거들었다.

‘점례 솜씨가 보통이 아니예요. 조선 땅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어요. 투자한다는 셈 치고 유학을 보내시지요.’

미무라는 얼떨결에 아무말이나 대답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볼까봐 머뭇거렸다.

‘아들아, 그 얘기는 나중에 또 하자.’

불과 몇 시간 전에 조선 땅에 도착했는데 많은 것이 일어났다. 동생의 골동품 수집과 아들의 프랑스 유학 그리고 조선식의 식사에 의원은 마치 몇 개월을 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진작 조선 땅에 올 것을 하는 후회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이내 고쳐 먹었다. 유지가 아니었다면 조선 땅을 밟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에.

조선에 대한 좋은 인상은 여기까지였다. 식사를 마친 미무라는 일어섰다. 눈앞의 장식장 속에 든 잘 조각된 부처님상 여러 개가 인자한 모습으로 미우라를 맞았다.

어제는 보지 못한 것이 오늘에서야 보였다. 그는 부처님의 은총으로 조선에 온 자신의 목적이 잘 성사되기를 빌었다. 그는 서둘러 총독부로 향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행원들은 경무 총감이 보낸 차에 미우라가 타는 것을 보고 씩씩하게 손을 이마에 올려붙였다. 차는 경복궁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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