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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6 18:20 (목)
그들은 두 번은 속지 않겠다는 각오로 마차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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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두 번은 속지 않겠다는 각오로 마차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7.1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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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일본을 출발한 미무라 와타시 의원 일행은 정오가 조금 못 된 시각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워낙 거물급 인사의 행차라 조선총독부에서도 총독 다음가는 이인자가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의전 서열로 치면 일본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단한 인물이 밟은 조선 땅의 첫인상은 그저 그런 것이었다. 애초 어떤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보자는 심사였기에 그는 눈에 보이는 것 그대로 가슴에 담았고 그런 것이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행색이 초라한 흰옷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우마차가 비좁은 길을 통행하고 그들이 다니는 길은 마르지 않아 질척거렸다. 이곳에 문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무라는 그들은 측은하게 여길 마음이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조선 땅에 온 목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이 정도면 그런대로 나라 구실은 하고 있구나, 라고 속단했다.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는 뜻이었고 그런 면에서는 조선 땅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노련한 정치인답게 미무라는 자신의 속내를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보고 듣는 것에 일일이 평하지 않는 대신 속으로만 자신에게 판단을 내렸다.

그는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현해탄을 건너올 때 심하지는 않았지만 멀미도 있었다. 배가 흔들리면서 아침에 먹은 것이 울렁거렸다.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시간은 정오를 지나고 있었으므로 부관이 식사가 준비됐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음식이 기다리고 있나 하는 호기심으로 식당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솔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끼니 한 번 때우는 것도 여간 신경 쓰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 일행이 지날 때 지켜보던 근처 백성들은 차림새가 보기에 놀라운 광경이라는 듯이 눈에 가득 호기심을 담았다.

중국인들이 몰려 있는 곳을 피해 미무라 와타시 일행은 조선식의 푸짐한 오찬을 마쳤다. 차린것의 절반도 비우지 않고 미무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성이나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되레 그 반대였다. 그러나 그는 더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수저를 놓았다.

그가 부하들이 식사를 다 마치지 않았음에도 입가를 닦은것은 아들 유지를 속히 보고 싶다는 이유가 한몫했다. 유지가 그 전날 조선에 도착해 있다는 통보를 인천에 막 와서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어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유흥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기생들은 겨우 노래 한자락 마치는 것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흥청망청을 기대했던 주인장은 물끄러미 그들 일행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접이 부족해서인지 주인장은 그들이 떠나고 나자 바로 방으로 들어와 차려진 것을 살펴보았다. 수라상이 부럽지 않을 진수성찬이었다. 어떤 음식은 선택받지 못해 처음 모양 그대로 있었고 손을 댄 것도 시늉만 한 것이 10여 가지가 넘었다.

'기생이 잘못됐나.'

그는 방에 들어가 시중을 들었던 서 너명의 앳된 기생 얼굴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럴 리가 없다.'

인천 바닥에서 용모가 제일 수려하고 노래 솜씨 또한 일품인 그들이었기에 음식이나 접대 때문이 아닌 것을 알고 인천 용호식당 주인장은 그나마 안심했다.

미무라가 유흥을 선천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기에 잠시 뒤로 미룬 것뿐이었다. 그는 저녁 늦게라도 인사동에 도착하기를 원했고 그의 일정에 따라 일행은 서둘렀다.

‘어서 가자.’

그는 머뭇거리는 수행비서를 재촉했다. 인천에서 그들은 기차를 탔다. 구로에 내려서는 서에게 제공하는 군인 차량을 이용하기로 사전에 연락이 돼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짚차에 미무라가 올라타자 차가 출발했다. 느린 기차에 지친 미무라는 군용차가 속도를 내기를 원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경인로는 잘 닦인 도로가 아니었다. 거기다 차와 사람과 우마가 섞여 있어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미무라는 말고삐를 당기듯이 운전수를 향해 급하게 몰라고 다그쳤다. 그러겠다는 신호로 운전사는 차의 경적을 세게 여러 번 울렸다. 뒤돌아 보는 놀란 행인과 우마차가 펄쩍 뛰었다.

그 시각 유지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점례를 만나 회포를 풀고 나서 느지막이 잠자리에 일어났으니 그 어느 때보다도 몸은 개운했다. 그는 전쟁의 복판에서 평화의 한 가운데로 이동한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이 지금의 행복을 만끽했다.

그리고 바로 하루 전의 일을 마치 수 년이 지나 추억을 더듬어 보듯이 경성에 도착날을 떠올렸다. 인사동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유지는 이제 새롭게 시작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펼쳤다.

모든 것은 원하는 대로 되리라, 그런 생각을 밑바탕에 두고 그는 4년 전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잠깐 지나쳤던 조선의 풍광이 지금은 아주 새롭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어서 전선에 투입되기만을 기다렸기 때문에 둘러본 주변이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쟁을 끝내고 오는 것이니 마음은 한결 들떴고 그래서 경성역이나 남대문 역 등을 거쳐 올 때는 이국적인 풍경에 마치 여행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겉모습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리라는 예감은 마차가 종각을 막 빠져나갈 무렵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차가 멈췄고 멈춘 마차 사이로 순사 서너 명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수색하겠다며 마차에 탄 유지 호사카에게 하차를 명령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군복을 입고 부관까지 대동한 고급장교에게 일개 순사가 감히 검문을 핑계로 차에서 내려 땅을 밟으라고 손가락질 했다.

유지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갈 길이 바쁜데 무슨 엉뚱한 일이 갑자기 터졌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과 연관되자 손은 어느새 권총집을 잡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난 그는 그냥 눈앞에 어른거리는 물체를 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그러지 않는 것이 되레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저런 하급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상관을 찾아 역으로 명령이 내려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종로경찰서장과 사전에 연락이 닿지 않은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뒤늦게나마 서장과 통과를 요구했다. 그러기 위해 일행은 전화기가 있는 경성우체국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순사는 네 명으로 불어 그들이 유지 일행을 연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지는 수모를 느꼈으나 그들이 자신의 임무를 적절히 수행하고 있다고 보고 나중에 따로 불러 칭찬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틈이 나자 그들의 이름과 소속을 적었다.

서와 전화가 연결되자 유지는 서장이 출타 중이라 대신 그 아래 참모에게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지금 일본에서 인천을 거쳐 경성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도 말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참모는 참의원 이름을 들먹이고 인천을 출발했다는 말을 듣고 그 아들이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참의원이 총독부를 방문하기 위해 조선에 온다는 사실은 극비랄 것도 없었으나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사항은 아니었다.

당연히 종로서는 참의원의 조선 방문 일정을 알고 있었고 그 의원이 총독을 예방하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참모는 즉시 순사를 나무랐으며 자신이 마중을 나갈 터이니 호위해서 잘 모셔 오라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순사는 떨떠름한 얼굴로 마지 못해 유지 일행에게 가도 좋다고 인사를 올려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면서 유지가 마차에 올라타자 그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말을 몰면서 바짝 따라붙었다. 휴의에게 속았던 경험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순사들의 긴장된 얼굴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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