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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휴의는 부하들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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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휴의는 부하들에게 사과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7.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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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300여 명의 병력으로 만주 주둔 일본군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애초에 무모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세상 이치라는 것이 언제는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만 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적들 편에 섰던 신이 화가 나서 총구를 뒤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선은 언제나 밀고 밀리는 형국이 되고 밀 때 확실히 밀고 밀릴 때 조금 밀리는 쪽이 승기를 잡는 것이다.

휴의는 그러기 위해 이 기세를 죽이지 않고 늘리면서 차근차근 진군해 나가야 한다고 거듭 다짐했다. 임정 수상은 휴의를 따로 불러 그에게 병사의 손실을 최소화하라고 주문했다.

미군의 2차 훈련이 완료될 때까지 견디고 버텨내라고 당부했다. 훈련을 무사히 마친 그들이 일진이 떠난 길을 따라 성공적으로 남하한다면 경성의 그들은 백만대군과도 같은 엄청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을 수상은 잘 알고 있었다.

‘좀 늦더라도 부하들을 죽이지 말고 살리시오.’

‘네, 그리하겠습니다.’

‘무려 30년 넘게 기다렸어요. 하루 이틀 아니 한두 달 더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추가병력이 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합니다. 언제나 지금 남아 있는 병력이 전부였잖습니까.’

‘허허, 그렇지요. 이번에는 다를 거요.’

‘한 달 열 흘 후면 300명이 아니라 일천 명도 넘을 거 같아요. 오늘도 독립군 가입자가 33명이 추가됐어요.’

‘네, 기분 좋은 소식입니다.’

휴의는 손에 든 주먹밥을 반쯤 먹다 말고 상해서 나눈 수상과의 대화를 복기했다. 이걸 다 먹으면 다시 남하해야 한다. 적들과 아직 직접 교전은 없었다.

산과 산을 타고 야간에만 은밀히 이동한 때문인지 적들은 휴의의 은신처를 급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들은 늘 한 박자 늦었다. 차단선은 휴의 부대가 지나간 뒤에 쳐졌다. 그만큼 독립군의 이동시간이 빨랐다는 말이다. 그들은 산양처럼 날래고 지치지 않았다.

벌써 개성을 지났다. 곧 삼팔선을 넘으면 경성이다.

둘러싼 참모들 가운데 휴의가 손바닥 위에 지도를 그리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듣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조선 땅에서 그것도 경성에서 적들과 한바탕 전투를 한다는 사실에 바짝 긴장해 있었다.

그 긴장은 승리에 대한 확신보다는 어쩌면 그 전투가 자신의 생애에서 마지막 전투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신의주 경찰서를 치고 빠지는 것과 총독부 공격은 질과 양면서 비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못해 볼 것도 없었다. 총독부 뒤쪽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신의주 공격처럼 당기고 던지고 나서 냅다 도망치면 놈들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당황할 것이다.

서늘해진 간담이 식은 뒤에야 당했다는 것을 알고 추격대를 조직한다느니 부산을 떨 것이다. 급습을 당하고 나서 흔히 취하는 그런 행동말고는 대비가 없었던 총독부가 다른 어떤 신묘한 대책을 내놓겠는가.

총독부가 당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질 것이고 흥분한 민중은 수군 거릴 것이고 그러면 일제는 더 큰 동요를 막기 위해 강압 책이든 유화책이든 어떤 식으로든 식민지 정책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어떤 결정이든 그것이 비록 당장은 조선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반드시 필요한 공격이라는 데는 삼천만 조선인 누구도 의견이 다를 수 없었다.

이 작전이 마음에 들었던 휴의는 이른 아침에 출발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명령했다. 별로 망설이지 않고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각자 자리를 찾아 누운 결과 원래 계획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할 수 있었다.

독립군들은 밤의 깊숙한 곳을 서둘러 벗어나 동트기 전에 파주 인근까지 도달했다. 느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부족한 병참으로 병사들을 급히 몰아친 것에 대해 휴의는 조금 미안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러기를 멈추지 않았다. 딱히 몇 시까지 어디에 도착하자는 정한 시간은 없었지만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기로 한 결정은 성공적이었다.

독립군에게 이 정도 움직임은 익숙한 것이었다. 서두르면 그만큼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으면서 휴의는 이 정도면 휴식을 취해도 될 만한 장소라고 여긴 곳에서 다시 발을 멈췄다.

쉬어야 전진할 수 있다는 진리를 휴의는 알았기에 쉬었다 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기 바로 직전에 앞으로 나가는 병사들을 제지한 것이다.

’여기서 좀 쉬자. 모두 누워라. 그리고 누운 머리를 들지 말고 하늘을 보면서 숨을 골라라.‘

병사들이 따르자 휴의도 그들의 옆에 누워서 그들처럼 머리를 들 생각도 없이 가랑잎이 주는 포근한 느낌을 뒷머리를 받았다.

그러기 전에 휴의는 100명씩 3개 조로 나눠진 부대가 서로 100 미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옆에서 자신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부관에게 물었다.

‘말한 대로 됐지.’

‘예, 그래요.’

‘훈련이라는 것이 무섭다. 애초에 오합지졸이 정예군이 됐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게 가능하겠니?’

‘어렵죠.’

‘그래, 우리가 살길은 훈련뿐이고 늘 훈련대로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보는 일이다.’

‘그럼요, 그래야지요.’

쉴 때도 이동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기습 공격에 전멸하지 않겠다는 전술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싸움에서 죽거나 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부대 전체가 당하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쪼개기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들이 머문 곳은 행주산성이었다. 낯설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휴의는 듣고 배워서 이곳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임진란 당시 왜놈들을 뜨거운 물과 돌로 내리쳐 방어한 곳이다.

부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나른 돌이 병사의 손을 떠나 기어오르는 적의 머리를 박살 냈다. 휴의는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앞을 가리는 풀잎을 손으로 쳐내면서 시야를 확보했다. 앞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 흔히 하는 행동이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조선의 땅은 평화로웠다. 한강은 유유하게 흘러 서해로 내려갔고 들판의 곡식은 막 풍성한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뜨거운 쌀밥 한 그릇을 편히 먹고 싶다는 생각을 그가 한 것은 옆에 있던 부관이 우리 고향 대천 땅에도 벼가 누렇게 익고 있겠지요.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후였다.

그들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족들과 도란도란 살고 싶었다. 시절이 하 수상해 이리저리 쫓기고 도망치고 급기야는 군복을 입고 적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는지 휴의는 분통을 터트렸다. 잘 살았는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살고는 있었는데 쳐들어와서는 백성들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고 강제로 병합해서는 온갖 것을 수탈해 가고 있다.

도대체 하늘에 신이 있다면 이런 자들은 응당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더 잘 먹고 뻐기며 살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의 침략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조선땅을 넘어 만주로 아니 세계로까지 치닫고 있다.

끝모를 침략에 휴의는 모든 시작하는 것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끝날 것이다.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앞당기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곳은 고립된 지형이라는 것을 알고는 황급히 참모들은 불러 모았다.

적들이 우리의 위치를 안다면 퇴로가 없다. 왜 그런 생각이 이제야 들었는지 모르겠다. 급하게 강 너머 삼각산 인근으로 이동하자. 그 말과 동시에 병사들은 안식처로 여겼던 행주산성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서둘렀기 때문에 그들은 땀을 흘렸고 긴장감으로 더 많은 체력 소모가 이어졌다. 휴의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한순간에 병사들을 사지로 몰았던 것을 알고는 자신을 책망했다.

이런 실수 하나가 힘겹게 이어온 독립군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다. 그는 다짐을 거듭하면서 작전의 실수가 없도록 참모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말 하라고, 그에 따른 책임이 자신에게 있고 나희들에게는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저곳에 모인 것은 순전히 자신의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전 병사들에게 고지했다. 지휘관의 위엄을 스스로 깎아내린 것은 위엄의 실추가 아니라 더 나은 결정을 위한 결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병사들은 휴의의 결정에 그를 따르는 마음이 더 깊어졌고 상관에 대한 존경심이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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