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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6 18:20 (목)
그것은 독립군의 무책임이나 소홀함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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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독립군의 무책임이나 소홀함 때문이 아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7.06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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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대봐야 알고 싸움은 붙어봐야 안다지만 그러기 전에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작동할 때가 있다. 휴의는 이번 작전 성공을 거의 확신했다.

훈련을 마친 군사들의 사기가 높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실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상해 임정에서도 미군 훈련을 받은 독립군 일진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성공할 것이오. 휴 동지의 성공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저야 뭐, 다 할머니 덕분이지요.'

'그런 말 마요. 휴 동지 아니었다면 이 돈은 여기 책상 위에 없을 겁니다.'

할머니가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둘 다 공이 커요.'

갈색 뿔테 안경 너머로 작고 인자한 눈이 공히 두 사람에게 공이 있다는 표시로 번갈아 쳐다보면서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이 돈은 독립군이 무기를 구입한 것을 값는데 쓰일 것이요.'

부드러운 눈가에 강인한 입매가 움직였다.

이미 구입했다는 말에 휴의는 수상의 철저한 준비정신이 오늘의 독립군을 키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전투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답답했다. 어색한 자리를 빨리 끝내고 동지들과 함께 적과 맞서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강하나만 건너면 조선땅이다. 휴의는 왔던 길을 되집어 다시 조선땅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여기는 왠지 낯설다. 익숙한 조선땅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식탁의 왼쪽 구석에 있는 영어책을 보았다.

수상이 영어를 공부하고 있구나.

수상은 조선말은 물론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에 능통했다.

다 독학의 결과였다. 영어를 익힐 때는 특히 어려웠다. 그러나 영어 없이 조선독립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시도 때도 없이 단어를 외우고 다녔다.

그 결과 그는 통역 없이 영어로 미군 군사고문단과 대화했다. 신념과 시대를 읽는 눈이 먼 거리를 보고 있었다. 군사고문단은 자신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군사령관에 보고했다.

'임정 수장이라는 자가 예사 인물이 아닙니다.'

만나봐서 미국에 손해 볼 것이 없다고 고문단은 보고서를 썼다.

별을 단 군사령이 연락을 해 온 것은 보고서를 받고 삼일 후 였다. 그는 수상을 만나자 마자 바로 조선 독립이 왜 필요한 지 물었다.

'왜냐고, 니가 미국인 아니라 조선인이라고 입장을 바꿔바라. 그런 질문이 나오나.'

수상은 받아쳤다. 사령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조선독립은 조선보다 미국에 국익이 더 크다는 말에 사령관이 입을 다물었다.

반도의 역학 관계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미군은 조선이 일본을 막는 첨병 역할을 담당할 재목으로 벌써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조선이 대신 싸우게 하자. 사령관은 군인다운 빠른 머리 회전으로 이것이 미국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수 초간 생각하다 그렇다고 판단을 내렸다.

'돕겠다.'

'잘한 결정이다.'

둘은 악수를 나눴다.

수상은 비록 손은 작아 사령관 손안에 잡혔으나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그에게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이 무렵 중국 국민당 정부도 임정에 대한 지원을 하면서 일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조선 독립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국민당 정부 인사는 이렇게 물으면서 한 번 더 수상의 의지를 확인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오.'

'첫째는 무기요. 둘째도 무기요. 셋째도 무기입니다.'

맨손으로 싸울 수 없다고 수상은 국민당 정부 요인에게 말했다.

'그것을 다룰 훈련은 되어 있소.'

'지금부터 해야지요.'

정부 관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만난 겁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이오. 왜 그토록 독립군 훈련에 목을 매는지 그것이 궁금해요.'

'알고 싶소?'

'네.'

'내 첫 번째 소원은 조국의 통일이요. 두 번째 소원도 통일이고요. 세 번째 소원은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외다.'

'내가 졌소.'

수상의 말은 몸보다 마음을 먼저 움직이게 했다. 그 날 오후 국민당 정부 요인은 부하 두 명을 데리고 상해 임정 사무실이 있는 2층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군말 없이 거액의 지원금을 내놓았다. 말은 없었으나 일본군을 괴롭혀 달라는 부탁이 들어있었다. 수상은 요인과는 달리 한 마디 했다.

'좋은 총으로 적들을 무찌르겠소. 이 순간부터 무기력한 단어인 비폭력은 존재하지 않소. 그들이 총 칼로 무장했는데 빈손으로 외치는 만세는 이제 끝났소.'

이 말을 듣고 공손하게 내민 두 손을 조심스럽게 거둬들인 요인은 조선독립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면서 자리를 떴다.

수상은 그 돈 보따리를 풀어보지도 않고 또 다른 보따리와 함께 한 보따리로 묶었다. 다른 보따리는 휴의가 경성에서 받은 독립자금의 일부로 선금을 내고 남은 돈이었다.

수상은 묶은 보자기 그대로 미군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출처는 말하지 않았다. 얼마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물었다고 해도 알 수 없어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돈은 전부 독립군에게 들어가야 마땅했다.

'훈련비용과 추가 무기 구입비다.'

'조선인들은 공짜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독립에 공짜가 있는가. 거저 얻은 독립은 독립이 아니라 또 다른 족쇄다.'

사령관은 수상의 결연한 의지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이 보따리를 품에 안고 호탕하게 웃었다.

다음 날부터 독립군에 대한 훈련이 진행됐다. 인원은 계속 불었다. 지원자가 늘어 갈수록 자금이 더 필요했다. 지구상에 공짜는 없었다. 인원이 불어날수록 훈련비 청구도 늘어났다.

'실탄이 없다. 돈을 더 내라.'

'매사 돈이냐, 있으면 주지 없으니까 그러는거다. 다음달에 꼭 주겠다.'

'그러다가 독립도 미룬다.'

화난 미군이 임정 사무실에서 훈련 과정을 상의 한다는 핑계로 왔다가 독촉하는 말을 슬쩍 끼워 넣었다. 임정은 곤혹스러웠다. 보따리의 돈은 미군이 보기에 한 달 치 정도 밖에 안됐다.

그도 그럴 것이 꼭 필요한 기관총 한 자루 값이면 서민이 일 년을 생활하고도 부족할 정도로 비쌌다. 아무리 비싸도 구해야 할 물건이었다. 미군은 처음에는 고장 난 총을 주고 조선인을 시험했다. 과연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구심이 일었다.

그러나 독립군의 훈련 습득 정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했다. 3개월 후에 그들은 정규군으로 손색없는 군인으로 태어났다.

6개월 후에는 특수부대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미군은 임정에 더이상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투입되기 3일 전에 휴의는 안전하게 상해로 돌아와 그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그 3일 후 휴의는 조선 독립군 특공대의 소대장으로 신의주 경찰서 폭파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 자신이 겪고 배운 일경의 순사 경험이 전과를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수적 우세와 무기의 우수성을 믿고 밀고 나오는 일제는 휴의의 치고 빠지기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휴의는 부상병 한 명을 잃은 것을 크게 슬퍼했다. 주검조차 수습하지 못한 것은 통한의 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독립군의 무책임이나 소홀함 때문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 때문에 진격이나 후퇴를 미룰 수는 없었다.

은하수 물결에 덮여 있던 별들 가운데 하나가 긴 꼬리를 흔들며 남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병사 중 하나가 소대장님, 저 별 보셨죠 하고 물었다. 휴의는 그래 하고 대답했다.

'죽은 주도수 동지의 영혼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자.'

휴의는 몸을 돌려 누웠다. 가랑잎이 차가웠다. 산의 가을 밤은 추웠다. 그들은 서로 붙어 누워서 잠을 청했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평양은 확실히 지났다.

해주일까, 아니면 개성 언저리일까. 아직 삼팔선을 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일은 그 아래에 있겠지. 휴의는 미몽 간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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