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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개들이 짖기도 전에 그들은 개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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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짖기도 전에 그들은 개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7.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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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만주로 이동 중인 일본군 병력 가운데 3개 중대가 두만강을 넘기 전에 기차역에서 내렸다.

이들은 경찰과 합세해 남하하는 독립군을 양쪽에서 협공하기 위해 전투력을 재정비했다. 만주 토벌대 출신들로 구성된 그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조선은 그들에게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조선 땅에서 나고 자란 그들이었기에 만주를 떠나 강을 건너 조선땅에 도착하자 마치 자기 안방에 드러누운 것 처럼 편안했다.

아침상에 흰쌀밥과 소고기 국이 올라왔다. 그들은 배불리 먹었다. 자신들을 대접해 주는 대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번 더 새겼다.

'조국을 위해 여기서 죽자.'

출정식은 이 한마디면 족했다.

그 누구의 손이 아닌 자신들의 손으로 독립군 잔당들을 무찌르고 싶었다. 기어오르는 싹을 잘라 더는 목을 내밀지 못하게 싹둑 베야 한다.

토벌대는 삼중의 그물망을 치고 독립군을 기다렸다. 숨어서 매복하는 자에게 걸려든다면 저쪽은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토벌대장은 어두워지는 들판을 지휘봉을 들고 가리켰다.

밖은 어두워 선글라스 안에서 보는 시야는 더 검었다. 그는 적들이 저 검은 들판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다 신의주 경찰서를 습격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늘 밤에는 인육 냄새가 진동할 거야.'

토벌대장은 벌써 불타 죽은 독립군의 냄새가 퍼져 오기라도 하는 듯 코를 벌름거리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다 작전이 끝나고 난 후 요릿집에서 질펀하게 벌일 술판을 생각하며 입가에 작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자신의 존재도 없을 것이기에 토벌대장은 한편으로는 생각할수록 괘씸했으나 또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켰으면 하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다.

망한 소국이 대국을 상대로 싸우려 드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잃어버린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 되찾으려는 노력은 가상했다. 그런 마음이 들때면 자신의 행동이 바른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뼛속 깊이 일제에 동화됐던 것이다. 이미 기운 나라의 백성이 자신처럼 그러지 못하고 배반하는 하는 행위는 그들이 모자라서였다. 자신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실력이 내면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토벌대장은 안타깝게 여겼다.

세계 재패를 눈 앞에 두고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킁, 하는 소리와 함께 토벌대장은 망원경을 받아든 부하에게 손가락으로 담배 피우는 시늉을 했다.

눈치 빠른 부관은 얼른 성냥을 그어 한 모금 빨아 불을 붙인 후 대장에게 건넸다.

'미군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무지렁이들까지 설치다니 이거야 원.'

그가 같잖은 것들이 피곤하게 한다는 투로 한 마리 지껄이자 부관은 상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버러지 같은 것들, 이번 기회에 확 쓸러 버리겠습니다, 하고 거들었다.

토벌대장은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일이 잘 풀릴 때 흔히 그렇듯이 그는 몸이 위로 붕떠올랐다. 확 쓸어 버리겠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한 번의 출동으로 적을 전멸시켜야 한다. 만주의 작전 사령부는 전적으로 믿는 토벌대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잘 알아서 해라. 너도 조선 사람 아니냐.'

작전사령부는 토벌대장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필요할 때면 조선과 조선 사람을 꺼내 들었다. 항상 내선일체를 주장하다가도 골치 아픈 일을 만나면 조선 사람을 들먹였다.

조센징이라고 대 놓고 하대하고 싶었으나 대장의 체면을 살려 주어야 할 때는 그런 말을 삼가했다. 그만큼 만주국 대장은 토벌대장의 심기를 살폈고 그를 우대했으며 그런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도 컸다.

눈치가 빠른 토벌대장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안 잠잠하던 독립군이 기세를 올리는 것은 못마땅한 일임에 틀립 없었다. 그들의 사기를 꺾고 보란듯이 풍악을 울리며 귀대하리라.

작전을 펼치기도 전에 그는 성공 확률을 팔 할 이상으로 봤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도 간혹 판단이 틀릴 경우가 있었다. 이번 작전이 그랬다. 독립군은 과거의 독립군이 아니었다.

숨죽였다가 나타난 독립군은 토벌대장이 생각하는 그렇게 형편없는 존재에서 벗어나 있었다. 싸우기도 전에 전멸당하는 오합지졸을 졸업한 지 오래였다.

전투에서 대장의 판단이 틀렸을 경우 승패는 이미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대의 힘을 너무 얕잡아 본 결과가 어떤 것인지 토벌대장은 뒤늦게 알고 땅을 쳤다.

정말로 손바닥으로 땅을 치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나중에 작전 참보의 뺨을 세게 치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 그의 손바닥은 피로 얼룩졌다.

상대의 힘은 과소평가하고 자신들의 힘은 크게 키운 결과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작전참모에게 있다는 듯이 그는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참모의 뺨을 여러 대 후려갈겼다.

참모의 입에서 피가 튀어 나왔다. 손바닥에 묻은 피인지 아니면 참모의 새로운 피인지 부하들은 알기 어려웠다. 그는 참모를 박살 내면서 실패한 책임을 그에게 돌렸다.

그러나 작전의 실패는 참모의 책임이 아니었다. 굳이 묻는다면 오랜 기간 훈련한 결과 숙달된 조교의 경지에 오른 독립군 개별 병사들의 힘이었다.

아무나 찍어 조교를 시켜도 될 만큼 경찰서 습격 독립군 일진은 일당백을 하는 살인 무기 그 자체였다. 토벌대가 세운 삼중의 포위망은 쉽게 뚫렸다.

신의주역을 통과한 수상한 무리의 움직임을 포착한 토벌대장은 그들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앞당겨 만주국 13사단의 정예 중대를 그곳에 배치했다.

인간의 힘으로 달릴 수 있는 최대치를 계산한 결과였다. 무장을 하고 인파를 피해 산악 지형으로 내달 릴 경우 도저히 그 시간 전에 당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어려운 것을 독립군은 해냈다. 토벌 8중대가 포위망을 치기 바로 3분 전 독립군 부대는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신의주 경찰서가 마주 보이는 산의 등성이에 도달했다.

독립군 대장은 육안으로도 보이는 경찰서를 동서로 포위하고 수류탄 공격으로 안에 있는 일경을 몰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두만강을 넘어올 때 세운 것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었으나 출동에 앞서 독립군 대장은 다시 한번 그것을 상기시켰다.

일사천리로 그들은 산을 내려왔다. 영화를 찍는다면 촬영 감독이 꾀나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눈 쌓인 산을 스키로 타고 내려오듯이 빠르고 정확했기 때문이다. 어둠이 질 무렵이었다.

개들은 짖지 않았다. 짖으려고 준비하는 순간 그들은 개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독립군은 개들을 속일 만큼 빠르고 민첩했으며 심지어 발자국 소리 조차 통제했다.

독립군이 두 번째 포위망을 뚫고 나서야 포위망이 뚫린 것을 안 토벌대장은 안색이 하애지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거친 손으로 쓰다듬다가 세게 꼬집었다.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꿈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허탕을 친 것이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군홧발로 서 있는 소나무를 이단 옆차기로 찼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쓰러 뜨릴 만한 나무를 골랐고 어른 주먹만한 소나무는 그와 함께 써러졌다. 그가 옷을 털고 일어났을 때 총소리가 우당탕탕, 하고 심하게 나고 있었다.

토벌대장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 연병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 총소리를 듣고 안에서 순사 4~5명이 무슨 일인가 하고 밖으로 나오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럴줄 알고 대기하고 있던 독립군 기관총 부대가 일시에 낙엽 쓸듯이 쓸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등성이에서 보고 있던 토벌대장은 급하게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적들의 배후를 쳐라.’

그러나 그것은 토벌대장의 세 번째 실수였다. 그 실수는 아주 뼈아팠다. 매목하고 있던 일개 분대의 독립군은 명령을 받고 죽기 살기로 달려 내려오던 토벌대를 정확히 조준 사격했다. 일개 소대가 전멸당하는 데는 1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토벌대장은 부관이 등에 메고 있던 무전기를 거칠게 뺏어 들고 추가 병력을 요구했다.

그리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적들이 포위하고 있으니 섣불리 밖으로 나오지 말고 안에서 숨어서 반격하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전화를 받던 순사는 하이,를 외치기도 전에 독립군 총에 맞아 죽었다.

뚜뚜뚜뚜, 신호음을 총소리와 함께 듣던 토벌대장은 그 자신이 직접 매복조와 전투를 벌이기 위해 부관을 포함한 선발된 요원 8명과 함께 우회로를 찾아 경찰서 방향으로 진입했다.

그 무렵 토벌대와 합류하기로 한 일경 30여 명도 경찰서를 보호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마치 물살을 거르는 연어처럼 거칠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그 발걸음을 오래 뛰지는 못했다.

연어가 뛰어 넘기에 벽은 너무 높았고 물살은 셌다. 그곳에도 매목을 서고 있던 일개 분대 규모의 독립군은 사냥을 하듯이 조준경이 달린 소총으로 정확히 조준 사격을 해 그들을 하나씩 쓰러트렸다.

사선에서 표적의 심장을 뚫듯이 정확히 적의 심장으로 총알은 날아갔다. 달려들 줄 만 알았지 방어할 줄은 몰랐던 일경 역시 전멸하는데 채 13분이 걸리지 않았다.

독립군 선발대 3명은 그 시각 경찰서 문을 박차고 한쪽 벽에 기대섰다. 동시에 두 눈은 적을 찾았으나 적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무턱대고 서장실로 들어가려는 부하를 선임은 제지하고 그곳에 수류탄 세발을 투척하기로 하고 자신이 먼저 던졌다.

또르르르, 선명한 수류탄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 번째, 세번 째 검은 공이 날아들었다. 그들 특공조 3명은 그와 동시에 문을 박차고 난간 뒤로 숨었다.

쾅쾅, 쾅 잇따라 터지는 수류탄 폭발음은 천지를 흔들었다. 그들은 그 소리를 신호로 신속하게 뒤로 빠졌다. 매복조와 합류한 3명은 작전이 성공한 것을 알았다.

다음 동작은 대장의 지시에 따라 후퇴하느냐 아니면 밖으로 나오는 부상병을 처지하고 떠나느냐 하는 양 결단만 남았다. 멀리서 대장은 편 오른 손바닥을 들어 부상병은 내버려 두고 남하를 지시했다.

다음 목표를 세우기 위한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너편 산의 언덕에서 불에 타고 있는 경찰서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만족감과 함께 승리했다는 기쁨이 넘쳤다. 반면에 어서 경성에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총독부에서도 이처럼 승전보를 올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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