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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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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6.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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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시오.’

심문이 끝나자마자 말수가 한 말이었다.

‘돌 볼 환자는 어디에 있나요.’

용희가 같은 말을 했다.

미군들은 이들 부부에게서 진정한 의사의 정신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잡힌 포로의 위치라는 것도 잊고 부상병의 안부부터 물었다.

베이징행 수송기에 올라타기 불과 한 시간 전까지 말수와 용희는 손에 피를 묻혔다. 태어난 이유가 환자를 돌보는 것이라는 듯 그들은 한시도 피비린내와 비명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미군들은 조선인의 헌신에 신뢰를 더했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베이징행은 우연히 얻어낸 것이 아니었다.

부러진 미군 대령의 다리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은 썩어들어가고 뼈까지 균이 침투했다.

유능한 지휘관을 살려내려는 군의관들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말수는 운 좋게도 대령의 다리를 살필 기회가 있었다.

담당 군의관이 응급환자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대령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는 상처를 열었다. 심각했다. 수술 부위가 썩어가고 있었다.

째고 다시 수술을 해야 했다. 그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다리를 잘라야 한다. 뼈까지 균이 침투했다. 살을 드러내고 뼈를 긁어 낸 후 강한 항생제를 투여하면 어쩌면 살릴지도 모르겠다.

'동의하겠느냐.'

대령은 말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에게서 어떤 확신에 찬 자신감을 읽었다.

망설임 끝에 그는 당장 수술하자고 말했다.

죽음의 현장에서도 한시도 놓치 않았던 수술 가방을 열고 말수는 찢고 자르기에 알맞은 칼을 골랐다. 그 전에 용희는 부어 오른 살의 이곳저곳에 주사를 찔렀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마취약이었다.

이 정도 수술은 전신 마취가 필요했으나 대령은 한사코 거절했다. 마취는 회복을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말짱한 정신으로 이겨내고 전선에 다시 투입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했다. 처음에는 다리 부분도 거절했다. 그러나 용희는 완강했다.

'정신을 잃으면 회복이 더 더디다.'

그는 진정한 전사였다. 통증이 심하다는 말보다 회복이 느리다는 말에 그는 자신의 주장을 꺾었다.

수술은 길게 이어졌다. 무려 세 시간이 넘었고 그 사이에 담당 군의관이 들이닥쳤다. 무모한 짓이라고 소리쳤으나 대령은 그를 제지했다.

'너는 다른 환자나 봐.'

총알이 날아오는 것은 막지 못했으나 정강이뼈가 검게 썩고 있는 것을 마이클은 막아냈다.

그날 밤 대령은 밤새 앓았다. 총알이 뚫고 나가 피가 솟구칠 때보다도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고함에도 말수는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3초만 일찍 떠났어도 괜찮았어.'

그는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들더니 자신을 쏜 자를 쏘려는 자세를 취했다.

'퍽 큐우.'

대령은 총알이 날아오기 이미 십 분 전에 그곳을 떠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자신의 실수에 크게 화를 내면서 권총을 내려 놓고는 아픈 다리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필 다리야, 왜냐고? 차리리 내 몸통의 다른 곳을 뚫었으면 나았을 것을. 머리라도 좋았어.'

'진정해, 마이클.'

그 옆에서 용희가 환자에게 용기를 주었다.

'너는 이겨낼 수 있어.'

'지르고 싶으면 질러. 그런다고 용감한 군인이 어디 가겠어?'

죽음으로 가득찬 마이클의 잿빛 얼굴에 잠깐 화색이 돌았다.

대령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삼 일째 되는 날 부기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균이 잡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대령이 말했다.

'통증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어.'

'그래 잘 됐다. 네가 이긴거야.'

'아냐, 너희들이 이겼어.'

말수는 용희를 쳐다봤다. 서로는 서로에게 우리는 진짜가 맞다고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대령은 한 동은 웃음띤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 너희들.'

'부탁한다면 들어줄 수 있니.'

'나에게 하면 가능하다. 아직도 살아 있는 나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다.'

'우선 내 몸을 돌보고 싶다. 너도 알다시피 우린 끌려온 존재다. 원래의 상태로 돌리고 싶다.'

'처음으로 가고 싶다는 얘기군.'

'맞다, 베이징이 중간 기착지다. 그리고 종국에는 조선 땅 통영이 목표다.'

'그런 다음 보령에 갈 거야. 거기가 내 친정이거든.'

용희가 말했다.

마이클은 통영이나 보령이라는 말은 알아 듣지 못했다.

'베이징은 왜.'

'그래야 상해로 갈 것이고 거기서 병원을 차릴 생각이다.'

'전시에 개업이라고.'

'왜, 그러면 안돼? 거기라면 독립군들을 치료할 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말수는 만주와 상해에서 싸우다 다치는 독립군들을 치료하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이 지은 죄업을 씻는 길이라고 믿었다.

옆에선 용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이름도 지었다고 했다.

'상하이 부부병원.'

악마처럼 괴성을 질러대 정말로 입이 악마처럼 비뚤어진 마이클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름 좋다. 전쟁이 끝나면 찾아갈게.'

의사를 많이 봐 왔지만 그는 이들 부부에서 가짜 의사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말수는 목구멍을 통해 소리를 질러대는 그 입술 사이로 나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지 의심스러웠다.

마이클은 그만큼 부드러워져 있었다. 원래의 그로 돌아왔다. 그는 비명 대신 돌격 앞으로, 를 외칠 준비 태세를 완료했다.

대령은 그들을 수송기에 태우는데 사인을 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 그들은 수송기에 탈 일단의 미군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다. 비는 뚝 그쳐 있었다. 도로는 진흙투성이였다.

임시 비행장까지 가는데 두 어 번 바퀴가 빠져 고생을 했다. 세 번째 멈춘 곳이 성당 앞이었다. 성당의 지붕은 아예 무너져 내렸다. 그곳이 성당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삐죽이 나온 십자가가 전부였다.

'저곳에 있었다면 우린 지금 여기에 있지 못했을 거야.'

등 뒤에서 트럭을 밀고 다시 제자리로 온 말수가 용희에게 말했다.

'지면과 붙었어. 빠져나올 수 없었을 거야.'

용희는 그 말을 들으면서 시선은 폭삭 가라앉은 성당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겨우 버티고 있는 천장이 밤새 내린 폭우에 그만 주저앉은 것이었다.

말수는 운명을 생각했고 용희는 베이징에 내리면 제일 먼저 국수를 먹고 싶었다. 아버지는 우리 용희 시집가는 날에 국수를 삶아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이 왜 지금 났는지 모르겠다. 멸칫국물로 우려낸 국수를 먹고 나면 무언가 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 흙과 시체가 반반씩 섞여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데도 용희는 먹을 것을 생각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국수를 먹을 운명이 자신에게 있음을 용희는 확신했다. 뼈 가득 붙은 검은 곰팡이를 긁어 낼 때 느꼈던 역겨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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