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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인간의 운명(1957)- 전쟁의 광풍과 두 개의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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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인간의 운명(1957)- 전쟁의 광풍과 두 개의 모래알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6.25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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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그날 내가 부카노프 마을에 가지만 않았어도 그를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음이 녹고 강물이 미친 듯이 날뛰는 돈 강 상류의 3월 말에 나는 가야만 하는 어떤 이유때문에 두 마리 말이 끄는 육중한 사륜마차에 몸을 실었다.

해뜨기 전에 출발 해 한 낮에 나는 부락에서 멀지 않은 강변 모래사장 근처에 있었다. 낮이 되면서 태양은 5월의 날씨처럼 뜨거웠고 솜을 넣은 군용 웃옷과 바지를 입은 것을 후회했다.

강물을 건너다 물에 젖은 시가는 필 수 없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정적과 고독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는 담청색 하늘에 두둥실 떠내려가는 구름을 보면서 잠시 유쾌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때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대여 살 된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특별히 어디 갈 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잠시 쉬면서 나를 태우고 갈 보트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나도 경험했던 비참한 전쟁이야기였다. 독소전쟁이 끝난 후 처음으로 찾아온 어느 화사한 봄날이었다.

커다랗고 까만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그는 마치 재를 흩뿌린 듯 쳐다보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늘 죽음의 고통으로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말동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인생을 망쳐 놓은 눈동자가 있다면 바로 그 눈일 것이다. 부모와 누이는 굶어 죽었고 그는 부농을 위해 죽기로 일해 살아남았다.

이후 목공조합에서, 공장에서 대장장이로 살았다. 그 무렵 그는 고아원에서 자란 이리나와 결혼했다. 그녀는 그에게 과분한 여자였고 지상에서 하나뿐인 천사였다.

일터에서 돌아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악마처럼 굴어도, 욕을 바가지로 해도 그녀는 한 번도 맞대응하지 않았다.

월급날에 동료들과 술을 퍼마시고 옆에서 누가 보면 무서울 정도로 갈지자걸음을 걷다가 급기야 네발로 기어서 집에 돌아와도 마찬가지였다.

비난이나 큰 소리로 내는 바가지 대신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고작 한다는 말은 ‘안드류사, 벽 쪽으로 누워요. 안 그러면 잠자다 침대에서 떨어져요.’

이런 걱정을 해주는 것은 어려서부터 큰 실수 없이 보내는 법을 배웠고 그것이 성격에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둘은 곧 씩씩한 아들과 예쁜 두 딸을 낳았다.

그도 곧 정신을 차려 동료들과 관계를 끊고 월급을 고스란히 집에 가지고 갔다.

▲ 전쟁 포로가 된 안드류사는 독일군에게 군화를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
▲ 전쟁 포로가 된 안드류사는 독일군에게 군화를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

휴일엔 맥주 한 잔 먹고 딱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1929년에는 공장일을 접고 자동차 운전수가 됐다. 러시아 전역을 돌면서 10년을 보냈고 그 기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남들처럼 살게 됐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집도 지었고 아내는 염소 두 마리를 사들였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집을 지은 곳이 하필 비행기 제조공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 때 독일과 전쟁이 일어났고 그 다음날 안드류사는 군사위원회의 소집 통보를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 헤어질 때 십 칠 년을 함께 산 그녀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슬픈 운명을 예감했다.

실성한 사람과 같은 눈을 보고 안드류사는 이러지 말라고 슬쩍 밀치기까지 했다. 기차는 떠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폭격으로 마침 집에 있던 아내와 두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줄도 몰랐던 안드류사는 독일군을 때려잡고 조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보태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그 와중에 두 번의 큰 부상을 입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1942년 전투에서 포로가 됐다. 가축보다도 더 심하게 두둘겨 맞았다. 부상병들은 총살당했다. 군사위원, 공산당원, 유대인들도 그렇게 끌려나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날 좋은 날을 택해 그는 수용소를 탈출했다. 그러다 숨어 있던 밀밭에서 쫓아온 사냥개와 오토바이 두 대에 탄 독일군에 잡혔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곧바로 죽음으로 내몰지 않았다. 독방 생활과 지독한 구타를 견뎌냈다. 이후 코너링이 좋은 운전실력 덕분에 독일군 소령의 운전사로 적국을 위하는 일에 참여했다.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산목숨 생으로 끝장낼 수 없어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전쟁은 밀고 밀렸다. 스탈린그라드가 점령당하는가 싶더니 2년 만에 아군이 쏘는 대포 소리를 들었다.

45구경 포병 중대의 지휘관 얀드류사의 아들이 쏘는 대포 소리였다. 누구를 닮았는지를 모를 수학 실력은 그를 포병 대위로 이끌었고 그는 아버지처럼 용감했다.

탈출에 성공한 아버지와 아들은 전선의 가까운 곳에서 함께 싸웠다. 부자는 곧 만날 것이다. 5월 9일, 승리의 날 바로 그날 아침 독일군 저격병 손에 아들은 살아서 만나지 못하고 죽어서 아버지와 만났다.

: 부모와 누이는 굶어 죽었다. 아내와 두 딸은 폭격으로 죽었다. 아들은 저격병 손에 죽었다. 안드류사의 운명은 전쟁이라고 해도 너무 비극적이다.

그의 표현대로 파란만장한 '내 인생'이었다. 꿈이었다면, 봄날의 한 바탕 꿈이었다면, 그러나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안드류사의 운명은 이렇게 비극적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끝은 아니다. <고요한 돈강>의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는 그의 운명을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앞서 등장한 아들과 그는 남은 생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개척해 나갈 것이다. 비록 혈육의 아들은 아니지만 아버지라고 믿는 다섯 살 꼬마와 그는 부자의 정을 키우면서 남은 인생을 살 것이다.

두 개의 모래알은 하나로 합쳐 졌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피한다고 해서, 피하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 운명을 바꿔놓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에는 가정이 없지만 만약,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안드루샤 가족의 운명도 바뀌었을 것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집을 비행기 제조공장 근처에 짓지만 않았더라면...아쉬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 운명마저도 바꿔놓은 전쟁의 참상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짐승과 같은 잔혹함, 내가 살기 위해 벌이는 밀고와 배신, 가족의 죽음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나쁜, 전쟁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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