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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상해서 병원 차리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로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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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서 병원 차리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로 해줄게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6.20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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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려고 해도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자신만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을 안고 산다고 했으나 말수는 그 이상이었다.

그가 성질이 더럽고 욕을 해대는 이유를 알 만했다. 그러나 그는 갑판위에서 보였던 거칠고 성질 잘 내는 사내에서 점차 변해갔다.

변하는 속도는 빨랐다. 그때의 말수와 지금의 말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얼굴도 바뀌었다.

날카로운 살인자에서 눈매가 부드러운 청년이었고 말투나 걷는 폼이나 말하려고 입을 열 때 내는 입술 모양도 그 전과는 완전히 달라 있었다.

그가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 용희는 자신도 그러기를 바랐다. 그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신 앞에서 어떤 경우든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는 다른 삶을 살기로 약속한 것이다.

오늘의 고백을 통해 용희는 말수에게 더 기대고 싶었다.

그런 용기 있는 과거를 들추어내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음이 갔다. 그녀는 몸을 돌려 말수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작게 내던 코 고는 소리는 멎었다.

쥐가 올라타서 자신을 깨우는 것으로 알았던지 말수는 용희의 손을 뚝 쳤다. 용희가 깜짝 놀라면서 나야, 나하고 이번에는 팔까지 길게 뻗었다. 말수는 그런 용희의 팔뚝을 감싸 안았다.

'안 잔 거야.'

'잠이 안 와.'

'그래도 자야지.'

'때가 되면.'

'그래 잠은 네가 알아서 해.'

'그런데.'

'응.'

'그 허우대는 어떻게 됐어.'

'살고 있겠지 뭐.'

이사온 사람을 충동질 했던 허우대는 순가가 가고 나자 죽은 자들을 강하게 성토했다. 새로운 길을 내줘도 모자랄 판에 대를 이어온 길을 끊은 행위는 저주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그것이 그들이 불타 죽은 이유라고 했다.

'부처님, 하나님이 괜히 있나. 저런 놈들 태워 죽일라고 있지.'

'암, 암.'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동조했다.

말수는 허탈했다. 쓴 웃음을 지었다.

'너 같은 놈도 저렇게 될 거야. 그러나 내 손에는 아냐.'

이제 말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용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지 않았으나 그 일로 인해 자신에게 쌓아왔던 떤 벽 같은 것이 무너졌다는 것을 느꼈다.

용희와 자신이 한 곳으로 향해 가는 믿음이 생겼다. 누가 자신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 용희를 맞아 주겠는가.

그는 내 침 김에 여기서 하고 싶었다. 비록 쥐들이 하객이 되겠지만 성당의 지하실에서 백년가약을 맺고 싶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단상을 부숴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축복해 줄 신부님이 없으니 그런 것은 상관없다.

'용희야.'

'응.'

'나랑 결혼할래.'

'결혼? 뜬금없기는. 우린 이미 수도 없이 했잖아.'

'그런 거 말고.'

'정말로 하자고.'

'그래 십자가 앞에서.'

용희는 결혼이라는 말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결혼, 내가 이 몸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더럽혀진 이 몸을 받아 줄 사내가 있을까.

용희는 눈을 감았다.

말수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절망에 빠져서, 죽기 직전에 갑자기 사랑이 생긴 것이 아니다.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고비를 함께 넘기면서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마침 그녀도 말수만 좋다면 그와 살아 있는 한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지는 있어? 결혼 반지.'

'그래 결혼 반지는 있어야지. 양가 부모는 없어도.'

'정말?'

'나는 준비했다. 이런 날을 미리 대비했거든.'

'용희는?'

'난 없어.'

'그럴 줄 알고 내가 둘 준비했다.'

'상해서 병원 차리고 돈 벌면 그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로 해줄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용희가 말했다.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쥐가 움직이는 소리는 아니었다.

말수가 용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쇠붙이가 왼손 약시 손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장난감이 아니었다.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났어.'

'탄피로 만들었어.'

'딱 맞네.'

'나도 딱 맞아.'

어둠 속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났다. 입술 부딪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정식 신랑 신부가 된 것을 자축하듯이 서로의 입술을 상대의 입술에 가볍게 갖다 댔다.

'우리 결혼했으니 여보, 당신으로 부르자.'

'그래.'

'그래가 뭐야 당신이라고 불러봐.'

'그래 당신.'

'좋아 여보.'

용희는 나 이뻐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수가 그런 말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오늘은 결혼식 날 아닌가.

'용희야, 아니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용희는 눈물을 흘렸다. 조금씩 울다가 흐느끼다가 펑펑 울었다. 둘은 껴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오늘 다 울고 평생 울지 말자. 둘은 울다가 웃다가 소리 질렀다가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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