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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8-17 08:30 (수)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주재소에 가봤자 소용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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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주재소에 가봤자 소용없다고 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6.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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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는 무너진 성당 벽에 몸을 바짝 기댔다. 바깥 공기는 음산했다. 어떤 소리도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다만 역한 냄새만이 불어오는 서풍을 따라 말수를 자극했다.

거대한 시체의 섬은 부패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는 전쟁이 끝났는지 일본이 패망했는지 미국이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는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성당을 벗어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탈출의 기회를 엿봐야 한다. 그는 깃발을 찾기 위해 눈을 땅이 아닌 위쪽으로 돌렸다. 성조기인지 일장기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깃발은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증명해 주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깃발을 꼽을 만한 높은 건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승리자의 표식은 바람이 불어도 좀체 찾을 수 없었다.

말수는 조심스럽게 몇 발짝 걷다가 왔던 길을 되짚었다. 어지러웠다. 공기도 세상도 머리도 한없이 빙빙돌았다. 세상에 첫발을 디딘 어린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이 말수도 벽에 드러난 벽돌에 겨우 의지했다.

며칠 굴속 같은 성당 지하에 갇혀 있다 나온 세상은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현기증이 가신 뒤에야 말수는 겨우 원래 있던 용희가 있는 근처로 돌아왔다.

그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괴로웠다. 아직 미군인지, 일본군인지 승리자가 누구 편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더 멀리 갔더라면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말수는 그러지 못했다. 파괴된 무덤의 흔적앞에서 말수는 살펴보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돌아섰던 것이다.

‘아직 떠나기는 이른 것 같아.’

‘당장 내일 아니 모레는 아니라는 말이죠.’

‘맞아, 여기서 좀 더 기다리자.’

말수는 체념했다.

용희는 그런 말수가 안쓰러웠다. 자신보다 그를 더 걱정했다.

살인을 저지른 그가 어떤 식으로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당장 해법은 없었다. 말수는 왜 그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자신에게 했을까.

영원히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살리는 일보다 쉽다. 그것은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용희는 말수가 태풍이 부는 바닷가 난파선에서 벌어진 일도 별 것 아닌 것으로 간주를 바랐다. 말수아닌 그 누구라고 그것이 옳았다.

용희가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말수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골똘했다. 한동안 말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자신이 정한 날짜를 언제로 수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정한 날짜는 운명의 이름으로 행해야 한다.

말수는 자신이 밖에서 휘청인 이유가 해를 보지 못한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 신체가 고정된 탓으로 여겼다. 용희도 그럴 것이다.

‘다음에는 함께 가자.’

‘그래, 그러지 뭐.’

용희가 대답했다. 그도 이런 상황을 운명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겼다.

어떤 식의 결정이든 모든 것을 운명으로 여긴 사람답게 여유가 있었다.

‘나 또 할 게 있다.’

‘뭐가요.’

‘살인 고백.’

용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그러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그래. 더구나 여기는 십자가가 있잖니.’

용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해.’

‘살인에 방화야, 아니 방화에 살인인가.’

선장을 해치기 이태 전 이었다. 마을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왔다.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이 통영 촌구석에 그들이 온 이유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입구에 오래전에 부서져 방치된 성황당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수리해 집으로 사용했다.

돈을 제법 줬다고 했다. 동네 부자가 골칫거리를 처분할 기회를 얻자 싼값에 처분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떠들었다.

70대 부부와 30대 부부로 2대가 함께 왔는데 행색이 초라했다. 품행은 말할 것도 없었다. 뱉는 말은 거칠었다. 마을에 와서 동화하면서 살려는 의도가 없다는 듯이 걸리는 사람 누구나 시비를 걸었다.

마을 길을 마치 자신의 땅 인듯이 사용했고 어구를 함부로 늘어놓았다. 말수네가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집 앞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자들은 어떤 날은 길을 아예 막기도 했다.

치우라고 해도 되레 남의 땅으로 다니니 돈을 내라고 소리쳤다. 늙은 부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아들 내외도 가세해 이런 경우가 어디있느냐고 따지는 말수 아버지에게 욕설을 해댔다. 어쩌구니 없었다.

말수 아버지가 보기에 대대로 내려온 길을 자신의 땅이라고 다니려면 돈을 내라고 길을 막는 행위는 온당치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다들 쉬쉬했다.  자신들은 그 집 앞을 지나갈 이유가 없었다. 대립은 이사 온 자들과 말수네 뿐이었다.

하루는 말수 아버지와 젊은 아들 내외와 대판 싸움이 붙었다. 논을 갈고 늦은 시각 서둘러 오는데 사람 하나 비켜 갈 공간도 남겨두지 않고 그물을 깔고 그 위에 돌을 얹어 놓았다.

말수 아버지는 소리쳤다. 이런 상황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늙은이들은 어디 갔는지 젊은 부부가 나서서 내 땅 내 마음대로 하는데 영감이 왠 잔말이냐고 대들었다.

말수 아버지도 지지 안았다.

‘이 길은 내가 젊었을 적에 품을 내서 낸 마을 길이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길이 있었다.’

그러나 젊은 부부는 그런 말은 듣지도 않고 내 땅을 지나가려거든 돈을 내라고 소리쳤다. 언성이 오가는 와중에 젊은 부인이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도 따라나섰는데 세상에 그런 욕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말수 아버지는 그날 몸저누웠다. 삼 일을 앓고 일어났을 때 말수 아버지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그는 헛소리를 했다.

말수를 불러 놓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말수야 네 말 신중하게 들어라.’

‘네, 아버지.’

‘네 엄마 말이다. 돈을 갖다 바친다.’

‘누구에게요.’

‘저 앞집 이사 온 놈에게.’

말수는 펄쩍 뛰었다.

‘아버지 무슨 말씀을요. 그 놈들한테 엄마가 돈을 주다니요.’

밖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 준비하는 엄마가 내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고는 말을 뚝 그쳤다.그리고 그 날은 그것으로 지나갔다.

말수는 그럴리가 없지만 혹시 엄마가 그들에게 무슨 약점을 잡혀 돈을 뺏겼나 걱정했다. 그리고 다시 삼 일이 지났다.

‘말수야, 너 아버지 말 진지하게 들어.’

‘네 아버지.’

‘네 엄마가 저놈들하고 친하게 지낸다.’

‘무슨 말씀을 하세요, 아버지.’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 안다.’

‘보셨어요. 친하게 지내는 것을.’

‘아니 보지는 못했다.’

‘보지 못한 것을 왜 상상을 해서 말을 하세요.’

‘너 가족이 뭔지 아니?’

말수는 머뭇거렸다.

‘가족은 말이다. 어려울 때 같이 힘을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네 엄마는 아니다. 길을 막고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말이세요, 아버지.’

말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것을 아버지가 봤어요?’

‘보지는 않았다.’

‘그럼 왜 지어내서 하세요.’

‘지어낸 것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그놈들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네 엄마가 뭐라고 했는 줄 아니?’

‘뭐라고 했는데요.’

‘왜 그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해요.’

‘어처구니가 없더구나.’

이 말을 하면서 아버지는 손을 조금 떨었다.

‘아마도 엄마는 조금 지나면 그 사람들도 잘못을 인정하고 길을 풀겠지 하는 생각을 했겠지요. 생선 몇 토막 가져와서는 그동안 잘못을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할지 모르니 대립하는 대신 조금 기다려 보자. 이런 의미 아니겠어요.’

‘너 태평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버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도 알잖아요.’

‘그래 너도 네 엄마와 한패구나.’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놈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다니.’

그 이후 아버지는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몸도 예전만 못했다. 어떤 날은 가다 쓰러져서 한 참 만에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밤에 자다 일어나서는 등긁개로 마루를 치면서 뱀이 달려든다고 소리쳤다.

‘말수야.’

이번에는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망령 들렸나 보다.’

말수는 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을 모두 새로 이사 온 사람들 때문으로 돌렸다. 그들은 여전히 길을 막았고 지나는 아버지에게 욕을 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급하게 늙었다. 몸이 쇠약해지자 머리도 따라 약해졌다.

‘아버지가 망령 들렸다면 다 이사 온 놈 때문이다.’

말수는 분노를 키웠다.

아버지의 의처증은 더욱 심해져 갔다. 밤새 잠을 안 자고 어머니를 볶았다. 가족을 들먹이다가 들어주지 않으면 밤에 어디 갔다 왔느냐, 그놈 어디서 만나고 왔느냐. 나는 썩은 고기다. 한 탄을 하다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머니도 이러다 탈이 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뱃일을 하고 들어온 어느 날 말수가 마당에 도착하자 짐꾸러미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모자를 쓰고 말끔한 새옷으로 갈아입은 아버지는 급하게 대문을 막 나서려던 참이었다.

‘네 엄마와 이혼하러 간다.’

말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저히 네 엄마와는 살 수 없다. 이혼하기 전에 경찰에 고소하러 가겠다.’

‘아버지, 제발 정신 차리세요.’

‘내가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데도.’

‘아버지, 제발.’

‘그래 너는 누구 편도 들지 못할 것이다.’

‘이 일은 나와 네 엄마의 문제다.’

말수는 겨우 아버지를 진정시켰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주재소에 가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다시 나와서는 작은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올라오면서 조카네를 들렀다. 그리고 말수에게 했던 똑같은 말을 했다.

처음에는 놀랐으나 그 다음 날도 다음날도 같은 말을 하자 작은아버지처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던 조카는 삼촌이 망령 들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그런 말 하려거든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 날 이후로 마을에는 아버지가 노망에 들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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