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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자신이 결정한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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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결정한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6.15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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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졸음을 참지 못하고 앉은 자리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곧 깨고 말았다. 깊은 잠을 자고 시원한 몸으로 기지개를 켜는 상황은 아니었다.

눈을 떴을 때 겨우 잠들었나 싶은 정도의 시간 밖에는 지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찌뿌둥한 몸과 몸 주변을 무언가가 끊임없이 건드리고 있었다. 말수는 촉각을 곤두세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왼 팔뚝 언저리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그가 급하게 팔을 휘둘렀다. 붙었던 것이 떨어져 나가면서 저쪽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찍찍찍, 쥐였다. 그전에도 간혹 나타났으나 오늘처럼 공격적으로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잠은 다 잤다 싶었다. 촛불을 들어 용희를 살폈다. 무언가 후다닥 달아나는 기세가 느껴졌다. 불빛에 위기를 느낀 쥐들이 잠시 안전을 위해 뒤로 물러났다.

말수도 그들처럼 앉은 상태에서 뒷걸음질 치면서 신부님이 설교 때 손을 받치는 탁자 쪽으로 움직였다. 그것을 옆으로 뉘어 그 속에 들어갈 참이었다.

아무리 쥐라고 해도 성경책이 놓여 있는 식탁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수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가 들어가서 조금 있자 나무 벽을 박박 긁는 소리가 요란했다. 한두 마리가 아닌 듯싶었다. 그들 중 용기 있는 놈이 발톱을 세워 먹잇감이 들어있는 상자 안으로 들어왔다. 나머지들도 따라서 행동했다.

이것들을 떨쳐 낼 수 없다고 판단한 말수는 곧장 일어나 거친 몸짓으로 탁자를 밟아 버렸다. 판자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용희가 깨어나면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그는 다시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서너 마리의 쥐들이 그녀 주변에서 서성였고 어떤 놈은 옷 안에 들어가 제집인들 꿈틀거렸다. 그런데도 용희는 깨어날 줄을 몰랐다.

조심스럽게 말수는 그녀 주변에 붙은 쥐들을 쫓고 어떤 놈은 꼬리를 잡아 멀리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도 화를 풀지 못한 그는 닥치는 대로 판자를 휘둘렀다.

분노에 눈이 돌아간 말수는 자칫하면 휘두른 판자로 용희의 머리를 내리칠 뻔도 했다.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쥐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앉은 무릎 위로 다시 달려들었다.

시체를 만지는 것보다 더 소름이 돋았다. 튀어나온 내장을 집어넣으면서 괜찮다고, 살 수 있다고 외칠 때보다도 더한 구역질이 올라왔다. 부서진 벽돌이 생각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벽돌로 작은 집을 만들어야 한다.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벽돌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곧장 행동에 나섰다. 지하에서 일 층으로 분주히 오르락거리면서 잠든 용희 한쪽에 벽돌을 세우기 시작했다.

천장은 부서진 나무판자를 활용하면 한동안은 쥐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삼 일째 되던 날 말수는 비몽사몽에 있는 용희와 관속의 무덤 같은 벽돌 속에 갇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을 어렵게 마친 직후 이곳도 더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쥐들과 살면서 며칠 더 숨 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구한 자신들의 운명이 너무 가혹했다. 총 맞아 죽으나 무모하게 버티다 쥐에 뜯겨 죽거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더 험한 꼴을 보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나가자. 나가 보자꾸나.’

그는 이런 다짐을 하면서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마음대로 상상했다. 그러는 시간은 좋았다.

지옥 같은 이곳과 천국 같은 그곳이 대비됐기 때문이다. 운 좋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지 않은가. 배를 타고 태평양에 왔고 광산에 들어갔고 의사가 됐고 용희와 탈출했고 그 모든 것이 운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마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더 살아갈 운이 있다면, 용희도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서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 그는 한 번 더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막다른 상황에 몰려 있기 때문에 더는 다른 방도가 없기도 했으니 시험결과는 순전히 운에 달려있었다. 그는 상해로 가고 싶었다.

거기에는 건너온 많은 이들이 함께 사는 조선족 마을이 있었다. 흰옷입은 그들의 오두막 집에서 이른 아침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상상했다. 통영의 집처럼.

그러나 말수는 곧 그 생각을 지웠다. 그는 그들과는 섞일 생각이 없었다.

조선말 중국말 거기다 전선에서 배운 서투른 영어는 말수에게 큰 무기였다. 그는 밖에서도 여전히 의사이고 싶었다. 다른 어떤 외과의보다도 수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수술뿐 아니라 양약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훤했다.

용희도 마찬가지다. 부부의사로 상해에서 활동하면 많은 돈도 벌 수 있다. 이런 꿈으로 그는 몸이 달아올랐다. 용희가 깨려는지 몸을 뒤척이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악몽은 아닐 것이다. 저 정도 반응은 그저 깨도 좋다는 신호에 불과했다. 말수는 용희를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데 이견이 없는 그녀는 그를 따르기로 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당신만 좋으면 당장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녀도 운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이런 운을 타고 났으니 그 운을 한 번 더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말수의 계획에 그녀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자유의 몸이 돼도 조선족 마을로 가지 않겠다는 말수처럼 용희는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고향도 그의 머릿속에서 많이 지워졌다. 부모 형제가 그리웠으나 그리움은 다른 것으로 충분히 대체됐다. 슬픔과 고통이 참을 수 없을 때 그런 감정은 의식 속에서 사라졌다.

문제는 날짜였다. 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이거나 치열한 전투 와중에 섬의 중심부로 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성당 지하실에서 전쟁이 멈췄는지 소강상태인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밖에서 두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먼저 말수가 나가서 동정을 살피기로 했다. 그런 다음 용희가 합류하는 식이었다. 둘이 움직이는 것과 날렵한 하나가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정한 날에 나가기 전에 십자가 앞에 다가섰다. 거기까지는 쥐의 공격을 피했는지 촛불을 받은 십자가는 위엄과 기품이 함께 있었다.

남은 한 손을 들어 올린 말수는 자신이 결정한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간혹 나타날 장애물은 앞길이 창창한 용희를 봐서라도 치워달라고 그러면 상해에 가서도 잊지 않고 기도드리겠다고 거듭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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