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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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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6.03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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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의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우체국 쪽을 향해 걸었다. 누가 옆에서 보면 서두르거나, 아무 일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목적한 대로 움직이고 있는 의지가 엿보였다.

광화문 쪽에 있는 일경이 보기에도 그는 단정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으로 의심을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휴의는 그런 몸가짐으로 주변의 시선을 받지 않고 우체국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휴의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뒤를 밟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같이 상해서 출발한 할머니였다. 그녀는 60대였으나 얼핏 보면 70대 노파처럼 늙었다. 지팡이를 짚지 않았으나 구부정한 어깨를 펴지 않은 것이 영락없는 늙은 노인이었다.

그러나 속은 40대였다. 훈련으로 단련된 그녀는 휴의가 위험에 빠지면 도울 유일한 경성의 조력자였다. 경성에 들어온 후 두 사람은 서로 은신처를 바꿔 가면서 떨어져 생활해 왔다.

그러나 이 삼일 연락이 없으면 특정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므로 근황을 염려하지는 않았다. 오늘 휴의는 그녀가 자신을 뒤쫓고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도 당황했었다는 증거였다. 아니면 할머니가 노련했다. 나이가 주는 경륜은 무시할 수 없었고 그 점을 상해 임정은 인정했다.

휴의의 진심을 확인했으면서도 그녀를 따라 붙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인사동에서 잠깐 멈춰서서 낯선 여자와 대화를 나눌 때도 그녀는 휴의를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뒤따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짧은 순간에 그녀는 휴의가 그녀를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할머니는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는 휴의에게 그녀의 존재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가 그 이후로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은 데다가 그녀 역시 휴의에게 어떤 의심을 살 만한 일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상해로 돌아가면 임정의 수뇌부에게 휴의가 인사동에서 만났던 젊은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믿었다.

할머니는 휴의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걷는 동안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순간에도 일경에게 미행당하는지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때로는 휴의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다. 젊음의 패기가 자칫 일을 그르치지나 않을까 고심했다.

그 실망은 수표교 다리 위에서 일경을 멋지게 따돌릴 때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다. 그녀는 일 분 정도 시차를 두고 우체국으로 안으로 휴의를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휴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반대쪽 출입문을 순간적으로 응시했으나 여닫는 문 사이로 휴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임무를 마치고 벌써 우체국을 빠져 나갔을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도망치기 위해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그 안에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둘러 보아도 그는 보이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몸과 소음이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순간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섬뜩한 기운이 달려들었다. 광화문 쪽에서 내려오던 바로 그 일경이었다. 그는 돌아본 할머니의 눈에서 두려움 혹은 어떤 의심의 눈초리를 발견했다.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물었다. 태도는 거침이 없었다. 할머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대신 품 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도쿄에 있는 자식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어떤 내용이냐고 그가 물었다.

그녀는 동경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편지를 받아든 그는 주소지를 한 번 쑥 훑어보고는 어디로 보내는지 동경의 주소를 말해보라고 했다.

미심쩍은 마음을 해소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동했다. 어미라면 주소 정도는 당연히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할머니는 능숙한 일본어로 주소지를 말했다. 편지지 대신 일경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그리고 아들이 와세대 법대를 졸업하고 막 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첫 근무지로 조선을 희망한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소속이 어디냐고 이번에는 할머니가 거만하게 다가섰던 그에게 공손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물었다.

아들이 경성에 오면 당신의 친절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는 의미였다. 일경은 머리를 숙이고 편지를 돌려주면서 자신은 총독부에 근무하는 고바야시라고 했다. 고바야시. 할머니는 순간 뜨끔했다.

휴의가 써먹은 바로 그 고바야시가 이 고바야시라는 말인가. 그녀는 그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가 몇 명인지 물었다. 아빠를 닮았다면 분명 잘생긴 아들이거나 딸이라고 했다.

긴장했던 고바야시의 얼굴이 풀리면서 잠시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아들 하나인데 경기중학교에 올해 입학했다고 말했다.

‘경기중이라면 조선 제일의 학교지요.’

그녀가 받았다. 왜 일본 학교를 보내지 않았느냐고 할머니는 묻지 않았다. 고바야시는 아들이 일본어와 조선어에 능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야 조선에서 한 자리 크게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서투른 조선어로는 조선인들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일본어로 학교 수업을 하고 일본어가 공용이 됐어도 상당기간 조선어는 은밀하게 조선에서 쓰일 것이다.

고바야시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는 머리를 또한 번 숙였다. 그리고는 무언가 자신이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총독부에 찾아오라고 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볼일을 보러 접수계 쪽으로 갔다.

능숙하게 업무를 보는 그녀를 지켜보던 고바야시는 조선에서 커다란 끈 하나를 잡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속으로 주소를 외웠다. 편지를 집어 들었을 때 발신자의 주소를 이미 머릿속으로 암기해 놓았던 그 주소를 다시 상기했다.

처음에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나중에는 출세를 위한 기대로 외웠던 주소지였다.

한 번 찾아갈 것이다. 고시에 합격한 법대 졸업생이 조선에 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에 고바야시는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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